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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게시판
Date
2011/09/18 05:46:18
Name
눈시BB
Subject
그 때 그 날 - 미래 (1) 팔자흉언, 최후의 승자
https://www.pgr21.com/ace/1018
삭게로!
시작하기 전에 잡담 두 개
1. 문명의 후유증. 뒤늦게 창궐한 모기 때문에 자다가 열 군데 넘게 물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비몽사몽하는 사이에 "엄지발가락에 도시가 세워졌나" 하고 근처도 물렸으면 "여기까지 (도시가-_-) 성장했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머엉... 아무래도 요새 정조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데 그 때도 "정조가 이런 이런 신하들을 포섭하고 벽파의 거두 심환지에게도 어찰을 보내고..." 이런 부분을 "벽파 쪽에 개척자를 보내서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됩니다. 꿈 속에서요. -_- 하아... 안 할래요.
2. 예전에 일했던 편의점에서 가끔 땜빵을 하거나 새로 온 알바생 교육을 해 줍니다. 오늘도 했는데 재밌는 친구라서 시간은 잘 갔네요. 하지만... 점장님 이제 그만 저 좀 잊어주셨으면 ㅠㅠ
--------------------------------------------------------------------------------
미래편은 시간을 거꾸로 돌릴 겁니다. 순조 때 사도세자 문제가 완전히 종결됐을 때부터 사도세자가 죽기 전까지로요. 그 이유는 재밌어서... 가 아니라 (후회하고 있어요 ㅠㅠ) 그 사이에 말들이 변하는 게 참 재밌거든요. 솔직히 누구 말을 믿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이전 여인천하 마지막 편에서 정순왕후가 한 건 결국 "집안 싸움일 뿐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적 있습니다. 사도세자를 추숭하려 했던 정조도, 오빠 김귀주를 신원했던 정순왕후도, 아버지를 위해 책까지 쓴 혜경궁 홍씨도 그 말이 얼마나 옳든 중심이 된 건 "개혁" 문제가 아니라 자기들 집안 살리기 문제였다는 거죠. 일단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만... 제 생각이 맞다고 확신할 순 없겠네요. 아직 배움이 짧고, 인간적으로 너무 길고 어려워요 -_-
그래도 써 봐야죠. 정순왕후 얘기 너무 간단히 해서 아쉽긴 했었거든요. 과거편이라면 몰라도 미래편은 최대한 가려서 들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최선은 다 해 볼게요.
1. 누구의 잘못인가
정순왕후가 아무래도 나쁘게 몰리지만, 그렇다 해도 일단 기본적으로 깔리는 것은 이것입니다. "홍씨 집안과 김씨 집안 두 외척의 다툼"이라는 거죠. 한 쪽은 세자의 장인 집안이고, 다른 한 쪽은 새로 들어온 어린 중전 집안입니다.
홍씨 집안을 이끈 것은 세자의 장인 홍봉한. 여기에 그의 동생 홍인한과 홍낙임이 꼽힙니다. 김씨 집안은 역시 김귀주죠.
혜경궁 홍씨는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세자를 보호했는지, 그리고 세자가 죽을 때 아버지는 죄가 없었고, 세자가 죽자 세손이라도 보호하려고 갖은 고생을 다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자의 죽음에 결정적인 근거가 된 "나경언의 고변"이 김귀주 쪽에서 꾸민 거라고 하고 있죠. 한중록에서는 정순왕후에 대해서는 좋게 좋게 쓰고 있지만 돌려서 말할 뿐 결국 정순왕후를 까는 거였죠. 여기에 김귀주 쪽에서 세손이 죄인의 자식인데 어찌 왕에 오르겠냐면서 음모를 꾸몄다고 하고 있습니다.
반면 김귀주는 홍인한 등이 세손이 왕위에 오르는 걸 방해했다고 주장했고, 그걸 통해 홍봉한까지 공격했습니다. 정순왕후도 수렴 청정을 하면서 이걸 확고히 했죠. 결국 둘이 같은 말로 서로를 욕 하고 있는 겁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요? 뭐 결국 이긴 쪽의 주장이 되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렇게 승자가 가려지는 부분을 다뤄보겠습니다.
사족으로 이렇게 둘이 대립했는데 둘 다 노론이고 둘 다 짜고 사도세자를 죽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a
2. 반격
(1) 정순왕후의 마지막
순조 4년 5월 20일, 박윤수의 상소가 올라옵니다. 역시 길기만 하고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이 상소는 꽤나 큰 영향을 줍니다. 그가 지목한 것은 권유. 그는 순조 1년에 어떤 상소를 올리는데 그것이 큰 음모를 담고 있었다는 거죠. 그 음모가 뭐였는지는 추국 과정에서 간단명료하게 나타납니다.
"이 상소는 대혼을 저지할 수 있다"
순조와 순원왕후의 국혼을 저지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겁니다. 당연히 그 타겟은 시파, 안동 김씨인 김조순이었죠. 그는 고문당한 후 같이 의논했던 사람들을 내뱉습니다. 스케일이 꽤나 커졌죠. 이 과정에서 갑자기 정순왕후가 다시 수렴을 내렸습니다. 그녀가 다시 전면에 나서야 될 정도의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벽파에 대한 시파의 반격이었죠.
하지만 이 시도는 너무나도 어이 없이 깨집니다. 그에 맞선 이가 바로 이시수였습니다. 그 방식도 정순왕후의 말에 반박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말을 못 하게 한 거였습니다.
+) 정조 암살설에 따르면 이 이시수가 정조의 건강에 대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그가 "벽파"라서 심환지 등과 함께 정조를 죽인 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단 이모씨가 증오하는 노론도 아닌 소론이었죠.
"수렴이 얼마나 큰 일인데 이럽니까? 수렴 했을 때는 진짜 좋았고 (이하 정순왕후 찬양) 지금 갑자기 이러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는데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왕한테 하는 게 맞고요. 이게 실록에 적히는 건데 어찌 그리 함부로 합니까? 수렴 빨리 거두세요 -_-"
정조 때부터 존재감을 크게 드러낸 여자, 3년 동안 정점에 올랐던 정순왕후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한 거죠. 하지만 그녀 역시 대답이 궁색했습니다.
"내가 그걸 모르겠나? 근데 옛날에도 ~~~한 예가 있고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가 워낙에 보기 안 좋고 중요하니까 이러는 거지. 지금 수렴하는 게 안 좋은 건 아는데, 지금 내가 이라는 거 안 좋은 거 알긴 아는데, 느그들이 말만 많고 일 제대로 못 하니까 이러는 거 아이가."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적당히 모른 척 해라 이런 느낌입니다. 그 정도면 알아서 들을 거라 생각했겠죠. 이시수는 그녀가 오회연교를 해석하면서 시파를 공격하려 할 때 "아따 정조대왕님의 뜻은 다들 알지라. 그놈들은 다 잡아서 죄를 드러내야 한당께요"라고 했던 예스맨이었습니다. 다만 그녀가 수렴 청정을 거두려 했을 때 정말 기뻐했었죠. 글쎄요. 그 때까지 그저 숨 죽이고 있었던 걸까요.
그 대화를 좀 옮겨보겠습니다.
이시수 : 지가 원본을 안 봐서 누가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겄는디, (정순왕후가 예를 들었던 것들) 그 때는 진짜 어쩔 수 없는 거고 이번이랑은 다르지라. 대비께서 주상께 거시기 대충 이래라 말씀하셨으면 될 것인디 또 이러면 되겠소잉? 이건 잘못된 거고 그걸 지적 안 하면 대비의 덕에 거스르는 것이 되는 것잉께 수렴 청정 그만 거두소.
대비 : 대간들이 그라는데 내가 가만 있을 수 있겠나? 내가 덕이 없어갖고 뭔 일 있으면 다 내랑 연결짓는데 열 안 받겠냐고. 4년 동안 내가 나랏일 다 했는데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그라니까 이러는 거지.
이시수 : 전하께서 뭔 말인들 안 하시고 대비께서도 말씀을 못 해 불 것은 없지라. 근디 그걸 전하께 말씀하시면 될 것을 이러면 쓰겄소.
대비 : 대간이 상소에서 한 말은 다 내가 이미 끝낸 거고 주상도 동의했던 거다. 근데 지금 또 이렇게 말 하는데 이게 말이 되겠나?
이시수 : 지도 그거 다 보진 못하고 대충 내용은 들었지라. 대간이 잘못한 거면 진짜 쳐죽일 놈일 것잉께 전하께 말씀허시고 그만 물러가소.
대비 : (또 옛날 일들 -_-;) 내가 아직 살아 있는데 이런 개소리 듣고 가만 있으라고? 내 생각 제대로 말 할라고 부득이하게 이러는 거라고! 정조 때도 내가 언교 내린 게 있는데 그것도 하지 말라는 거가?
이시수 : 지도 그 언교 봤당께요. 그랑께 하실 말씀 있으면 전하께 얘기하면 되지 않겄소잉?
여기서 우의정 김관주도 끼어듭니다. 여기서 그는 "오늘 하실 말씀을 들으니 얼마나 열 받았는지 알겠는데, 이게 죽을 걸 각오하고 말 하는데 수렴 다시 내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죠. 계속하겠습니다.
대비 : 정조가 30년 동안 고민한 게 의리에 대한 거였으니 우리는 이거 잘 기억해야 된다. 근데 또 이걸 어기는 게 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이시수 : 긍께로 이게 을매나 중요한지 아시면 전하께 얘기허면 될 것이제 왜 이러는거요.
대비 : 내가 수렴 거둘 때 형벌에 대한 건 참여한다고 안 했나? 내가 지금 잘못하는 거 안다. 다 감수하고 이러는 거다.
이시수 : 아이구 형벌 뿐이겠어라?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일일이 대비께 고허고 대비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라? 근디 당최 뭔 큰 일이 있는데 이러는 것이요? 감수한다고 하셨는디 지들이 자성(대비)를 섬긴 게 몇 년인디 이럴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 했당께요. 얼렁 수렴 거두소. 그래야 자성의 공덕이 빛나지 않겄소잉?
대비 : 내가 공덕이 있다고? 니 지금 내한테 "거짓말" 치고 있제?
이시수 : 웜메, 지들이 워낙에 무식헌데도 대신의 직임을 받고 있는디 지금 "거짓말"이란 말을 들으니 두려워서 손발이 오그라든당께요. 나가서 목 씻고 도끼나 기다리고 있어야 되겠구마이
대비 : 니 진짜 와 이라노? 일로 와 봐라. 할 말 있다.
그래서 이시수는 앞으로 가서 엎드렸다고 합니다.
대비 : 내가 덕을 잃은 거 다 안다. 내 본심 말할라고 이러는 거다. 근데 왜 지금 내를 이렇게 핍박하노? 어차피 실록에 쓰면 내 죄가 되는 거고 나는 상관 없다.
이시수 : 아따 지가 또 이런 말을 들으니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나을 것 같소.
여기서 김관주가 다시 끼어듭니다. "말씀하시는 게 너무 지나치시니 조용히 기다렸다가 다시 말해도 될 건데 너무한 거 아니냐"구요.
대비 : 내가 아는 게 없어서 실수했다. 그니까 이거 가지고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 지금 느그들 둘밖에 없는데 이라면 되나?
이시수 : 에고 지가 또 이런 죄를 졌으니 어찌 감히 입을 열 수 있겄소. 허나 구구절절 충성을 바치려 하는 마음은 끝내 누를 수 없소잉. 이번 일이 참말로 아니라 입을 도저히 다물 수가 없응께, 지가 무식하지만 대비의 말씀에 맞는 것이 있으면 당연히 듣지 않겄소? 헌디 이번 일은 참말로 아니랑께요. 수렴 거두소.
... 정말 말 자체를 꺼내지 못 하게 했고, 정순왕후가 문제 삼은 거에 대해서는 모른다로 일관했습니다. 여기에 그 당당한 정순왕후도 꼬리를 내려야 했죠. 중요한 건 이시수와 같은 말을 한 김관주입니다. 그는 정순왕후의 6촌, 그녀의 편이었습니다. 그가 배신한 걸까요? 여기서 이시수의 막타를 보겠습니다. 대비가 GG 치고 들어가자 그가 한 말입니다.
“오래지 아니하여 복구하시는 자성의 덕이야말로 신은 이루 다 흠앙할 수 없습니다. 신이 비록 무사하오나, 대신의 이름을 띠고 있는데 삼가 두 구절의 엄한 하교를 받았으니, 장차 무슨 얼굴로 스스로 세상에 서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빨리 엄한 주벌을 내리시어 신하의 분수를 바로잡게 하소서.”
마지막까지 비꼬고 있죠. -_-; 여기서 밑줄을 쳐 두시면 다음 편들 보기 편할 겁니다. 정순왕후가 정조 때부터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건 그녀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시수는 이 무기를 원천봉쇄하면서 그녀가 말도 꺼내지 못 하게 한 거죠. 크게 존재감이 없었던 그는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시수를 쳐 보시면, 딱 요것말고는 업적이 없습니다. (...)
그녀가 이렇게까지 무리를 한 것은 상소의 표적에 자신이 끼어 있다고 여겨서였습니다. 여기 관련된 것이 김노충이라는 자인데, 상소에는 그를 욕 하면서 이런 저런 걸 달아놨습니다. 그녀는 이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면서 자기네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국혼을 저지하는 걸 막았다고 주장했죠. 실제 권유가 그 상소를 올렸을 때 심환지와 정순왕후는 그를 비판했었습니다. 이걸 밝힌 정순왕후는 얼마 안 가서 죽습니다.
(2) 벽파의 자살골
아무래도 그의 상소가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봐야겠군요.
"대개 그 뿌리와 소굴은 이미 수삼십 년 전에 저절로 점차 양성되었는데, 한 번 변천하여 홍인한·정후겸이 되었고 두 번 변천하여 홍국영·송덕상이 되었으며, 세 번 변천하여 김우진·조시위가 되었고 네 번 변천하여 역적 정동준이 되었으며, 지금의 윤행임이 요망하고 터무니없이 흉악한 짓을 한 데에 이르러서 세변이 극도에 도달하였습니다" (순조 1년 6월 12일)
뭐 대충 이렇게 이름 올린 자들이 숙청의 대상이 되었겠죠. 뭐 중간까지 봐도 참 벽파스러운 글입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죠.
"저 명문 거족 중에는 성세와 기미가 본래 역적의 집안과 서로 관련되어 평일의 의논에서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반드시 없을 것이라고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니, (아나 옛날 고사들 좀 고만 좀 얘기해 - -) 삼가 바라건대, 기미를 분변하고 그림자를 살펴서 미연에 방지하여 억만년토록 영원하기를 기구하는 계책을 삼도록 하소서.”
한 마디로 명문가들 중에서도 "의리를 버리고" 그들과 손 잡은 놈들이 있을 거니까 역시 찾아내자는 거였죠. 이에 대한 심환지의 비판입니다.
"덧붙여 진달한 몇 줄 가운데의 구어는 실로 살피지 않은 것이 많고 지적한 뜻도 또한 서로 믿는 것이 결여되어, 거의 거실 명문의 뜻이 같은 사람과 굳게 지킨 의논이 가지런하지 않음이 있는 듯하니, 이는 크게 실수한 말입니다."
심환지의 말과 이후 권유가 역적으로 몰린 과정, 정순왕후도 그 자체에는 별 토를 달지 않았던 점을 보면 권유의 목표가 김조순에게 간 것은 맞는 듯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벽파 내에서도 의견이 달랐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조순 등 여전히 남아 있는 시파까지 싸그리 엎애버려야 된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고, 정순왕후는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김관주가 이시수의 편을 들었던 것은 이시수가 한 말이 반박의 여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과 별개로, 괜히 긁어 부스럼 내지 말자는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정순왕후가 죽은 후, 순조는 자기 증조할머니(...)가 했던 일들을 조금씩 되돌립니다. 이 때 중심이 된 세력은 김조순의 안동 김씨와 순조의 외조부 집안인 반남 박씨, 에... 이번에도 외척이네요. -_-; 벽파에 의해 귀양 갔던 이들이 조금씩 돌아오는 상황, 이 때 우의정이었던 김달순이 상소를 올립니다.
그가 공격한 것은 채제공을 비롯한 사도세자를 추숭하려 했던 세력들, 그리고 경모궁(사도세자)의 아름다운 덕을 찬양하며
[제일 먼저]
간언을 올린 박치원, 윤재겸을 추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 조선시대는 왕을 욕해야 충성을 인정받는 시대죠. 사도세자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 이들에게 시호와 벼슬을 추증하라고 합니다. 결론은 간단하죠. 벽파가 맞다, 시파는 틀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열여섯살 순조의 대답은 조금 달랐습니다. 열흘 후의 일이었습니다. 꽤나 고민한 거죠.
"(정조가 사도세자가 죽을 때의 기록을 세초해 달라고 한 것은)
[차마 볼 수 없고 차마 거론할 수 없는 일]
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은 데서 나온 조처인 것이다. 영조, 정조의 뜻이 이랬으니, 후사로서 준수해야 하는 도리에 있어 어찌 차마 추후에 거론할 수 있겠는가?"
"나는 도리어 원서를 찾아본 것을 후회하는 것은 물론 마치 영묘(영조)·경모궁(사도세자)·선조(정조)께 죄를 진 것만 같다."
증조할머니와 벽파에 의해 숨 죽이고 있던 순조가 자기 생각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때는 서매수, 한용귀등 다른 정승들도 김달순을 지지해서 그들의 주장을 들어줍니다. 하지만... 반 년 후에 올라온 조득영의 상소에 모든 것이 뒤바뀌죠. 이 때 그의 반응입니다.
"분발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고서 명백히 분변하고 통렬히 말을 하였으니, 내가 감탄하여 마음에 감동되는 점이 있는 것을 느낀다." (6년 1월 15일)
맞는 말을 했으니 감동 먹었다, 왕의 뜻이 확실히 드러난 거죠. 이렇게 시파의 총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박시백 화백은 이를 "김달순의 자살골"이라고 표현했죠.
(3) 시파 총공격
"두려워하여 뉘우칠 줄 몰랐을 뿐만이 아니라 불만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드러내어 보였음은 물론 그 가운데 한두 구어는 가슴이 떨리고 뼈에 사무치는 것이었으니, 이는 고의로 범한 것이다." (1월 19일)
김달순을 처벌하라는 상소에 대한 순조의 답이었습니다. 이렇게 김달순은 "정조의 의리를 배신한 죄"로 쫓겨납니다. 정순왕후가 말한 정조의 의리는 곧 벽파의 의리, 이것을 뒤집는다는 것은 곧 정순왕후의 뜻을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렵 김달순은 분위기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사직과 벌을 청하고 물러나려 합니다. 순조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죠. 이 때 김달순은 성 밖으로 도망갑니다. -_-; 분위기가 정말 이상해진 거죠. 결국 그는 유배지에서 처형당합니다. 시파의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매수 등 김달순을 지지한 쪽은 쫓겨나고, 심환지가 그 배후라는 주장이 계속되어 결국 추탈(죽은 사람의 벼슬을 없앰)되죠. 여기에 김관주도 포함됩니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정순왕후는 물론 심환지, 김관주도 김조순을 왕의 장인으로 앉히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그걸로 물고 늘어졌다는 것, 이건 국혼 문제를 떠난 거죠. 그걸 빌미로 벽파 전체를 공격한 것입니다. 김관주는 유배가던 도중 죽고, 나머지 경주 김씨 가문은 뿌리가 뽑히다시피 했습니다. 정순왕후가 다시 수렴을 내렸을 때 김관주는 이걸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 때 죄를 지었다고 하는 이들은 거의 "국혼을 막으려 했다" 즉 김조순을 견제했다는 죄목을 받았습니다. 그건 더 나아가서 "정조의 의리를 어겼다"가 되죠. 벽파가 천주교 박해를 이용 남인들을 숙청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 이 때 벽파들이 일부러 남인을 노려 천주교를 박해한 건지, 박해하다보니 비주류였던 남인들이 많았던 건지는 확신하기 힘드네요. 확실한 건 이 때 남인들이 많았다는 것이고, 천주교를 이용해 공격한 것도 분명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격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팔자 흉언이었습니다.
3. 팔자 흉언
(1) 벽파 전멸
죄인의 아들은 왕위를 이을 수 없다 罪人之子 不爲君王
태조의 자손이라면 누군들 왕이 되지 못 하겠는가 太祖子孫 何人不可
앞의 여덟 글자를 따서 팔자 흉언이라고 합니다. 뒤의 여덟 글자까지 다 합쳐 십육자 흉언이라고 하기도 하죠.
시파의 공격이 계속되던 순조 6년 5월 13일, 김이영의 상소가 올라옵니다. 그에 대해 순조는 정승들에게 의논을 시작하죠. 영의정 이병모는 이렇게 말 했습니다.
"신 등이 이 말을 보고는 가슴이 뛰고 뼈가 오싹하여 진달할 바를 몰랐습니다. 정조 초년에 홍상길의 역옥 때 선조께서 친히 묻기를, ‘이와 같다면 향후의 일을 장차 어떻게 하려고 생각했느냐?’ 하니, 홍상길이 말하기를, ‘추대한다면 이찬(사도세자 5남)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중략) ‘이는 모두 〈당나라 중종의 일을 인용한〉 여덟 글자의 흉언 가운데에서 나온 것이다.’ 하시고"
"그 언근은 김한록한테서 나왔다는데, 대개 김한록이 호중에 있으면서 이러한 흉언을 발설하자, 고 참판 김이성의 부형 김의행과 지금 중신 김희순의 조부 김교행이 심한 말로 준엄하게 배척하였다고 합니다."
가슴이 뛰고 뼈가 오싹한 말, 팔자 흉언의 전모가 세상에 나타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시수 역시 이렇게 말 했죠.
"이 말이 전언된 지가 이미 오래 되었으나, 아직도 십분 상세하게 알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분명히 듣고서 아는 사람이 있으니 다시 무엇을 의심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김한록은 정조가 왕위에 오르는 걸 막았으며, 역모로밖에 볼 수 없는 말을 했다고 결론납니다. 여기서 몇 가지 추가 결론이 내려지는데, 정조도 이미 이걸 알고 있었으면서 (그것도 즉위 초에) 덮었고, 정조 12년, 13년에 김이성이 직접 다시 말 했지만 이번에도 덮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걸 증언할 사람도 너무 적다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그러나 이 역적의 역절은 하루 아침 저녁의 변고가 아니니, 진실로 그 근저(뿌리)를 찾는다면 김귀주 바로 그일 뿐입니다." (6월 15일 부수찬 이우재의 상소)
"김한록과 김귀주가 창자를 맞대고 심보를 같이하여 서로 협력한 상황이 더욱 밝고 환하게 드러났습니다"
"어찌 김한록과 김귀주가 서로 표리됨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역적 김한록은 그가 제 스스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한집안 안에서 한마음으로 같이한 것인데, 선창한 자는 김귀주이고 화답한 자는 김한록이었습니다"
"김한록의 진장이 나왔으니, 김귀주가 근원이 되고 소굴이 됨은 소명하여 가리울 수가 없습니다.
그 후 쏟아져 나온 말들입니다. 이 전체 글들을 잘 살펴보면 김귀주가 관련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아니, 그 흉언 자체가 증거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이것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대저 김귀주·김한록의 추율이 김종수가 이미 죽은 뒤에 있기는 했지만, 김귀주·김한록의 역절이 이미 김종수가 죽기 전에 갖추어져 있었으니, 저 김종수의 조제야말로 어떠하겠습니까?" (순조 7년 7월 27일)
김한록의 뿌리는 김귀주고, 김귀주의 뿌리는 김종수... 이걸로 결론이 난 거죠 뭐. 이렇게 벽파와 김귀주는 사도세자를 죽인 세력, 정조의 즉위를 반대한 세력이 되었습니다. 벽파와 정순왕후의 경주 김씨 일가는 뿌리 뽑혔죠. 혜경궁 홍씨가 "귀주네"라면서 증오했던 이들은 마침내 정의의 철퇴를 받았습니다.
(2) 김성길의 격쟁
"신의 한 집안 노소가 병인년(순조 6년) 사이에 하나같이 모두 유배되어 집에 장정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신만 7세 된 아이로서 외롭게 혼자 남아 있는데, (중략) 감히 만 번의 죽음을 무릅쓰고 연로 아래에서 호소합니다." (순조 12년 10월 30일)
일곱 살 어린 아이의 상소. 대단하다고 봐야 될 지 애가 뭘 안다고 생각해야 될 지 애매하죠. 재밌는 건 이 애가 태어난 게 순조 6년, 자기 집안이 끝장날 때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팔자 흉언에 대한 반박을 합니다. 그 내용을 살펴 보죠.
"김이영·김희순·김이교의 무리 세 사람의 상소가 차례로 번갈아 나와 때를 틈타 멸망시킬 꾀를 만들었으니,"
"흉언을 정조가 들었지만 "나쁜 짐승을 포용하듯" 감싸 준 거라고 했는데, 정조가 나쁜 놈은 반드시 벌 주었고 죄가 없으면 참소를 막은 분이셨다. 김상로, 홍계희는 그럼 왜 죽이셨는가? 그 이전의 역모는 죽이면서 그 이후의 역모를 살려주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 증조부께 죄를 묻지 않으신 건 죄가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김이영의 상소 중 당나라 중종의 얘기를 한 것에 대해서) "그가 말했다는 한두 명의 친구는 김교행과 김의행, 그들은 동문으로 주자의 얘기를 하는 건 당연한 거였고 김한록이 말한 것 역시 그 내용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또 이를 말한 게 신사년 봄인데 김이영은 신사년 이후라 해서 일부러 시간을 바꿨다." (신사년은 사도세자가 죽기 전, 즉 애초에 정조와는 관련도 없는 말이었다)
(그 흉언이 정말이었다면) "김교행은 분명 나라 전체에 알리고 왕에게도 알려야 했는데 김이영의 상소에는
[절교했다]
고 하고 있고 김희순의 상소에는
[마음속으로 책망했다]
고 하고 있는데, 진짜 그 말을 했다면 절교하기만 했겠는가?"
"왕에게 고발하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그 후에도 그들의 우정은 그대로였고, 편지도 계속 보냈다. (그들이 계속 친하게 지냈다는 증거 잔뜩)"
(김이영의 상소에서 권유와 김관주가 뜻을 함께 했다는 것에 대해) "나라의 경사를 맞아 죄수들을 풀어 줄 때 김관주는 권유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고, 왕의 허락까지 받았다. 권유가 죽은 후 옥에서 쓴 글 중에서 이를 원망하는 글까지 나왔다."
"그들이 말한 바는 ‘우리 집 형제의 말이 이러하였다.’는 것과 ‘우리 집 부조의 말이 이러하였다.’는데 불과하였고, 처음부터 근거할 만한 문자나 증거댈 만한 사적(사료)도 없는 것입니다. 문자와 사적이 없이 단지 집안의 사언만 가지고 사람을 흉역으로 무함한다면 무슨 말인들 만들어 내지 못하겠으며, 무슨 일인들 날조해 내지 못하겠습니까?"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김이영, 김희순, 김이교와 대질해 달라. 시비를 가리겠다."
김성길은 김한록의 증손자요 김관주의 손자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이런 어린 아이가 이 정도의 글을 쓸 순 없는 게 당연하죠. 그 배후에 대해 조사하라는 요구가 계속되지만 순조는 듣지 않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배후가 나타나죠. 유배돼 있던 김일주였습니다. 김관주의 동생으로 나름 벼슬을 받긴 했지만 거부하고 재야에 있었습니다. 덕분에 죽음까지는 안 가고 유배로 그쳤던 것 같네요. 유배지에서 나올 수 없으니 김성길을 시킨 거죠.
공격 대상이 된 김이영 등은 이를 해명하는 상소를 올립니다. 왜 이 때 정조가 눈 감아 줬는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만 솔직히 부족하죠. 하지만 순조는 이들을 벌하지도 않았고, 이들의 주장에 따라 김성길이나 김일주를 벌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소에서 말 한 대로 대질을 시켜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묻었죠.
격쟁은 임금이 행차할 때 징이나 꽹가리를 쳐서 이목을 집중시킨 후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뜻 합니다. 일곱 살 어린 아이가 임금이 가는 길을 징을 쳐서 막고 저 상소를 당당히 올렸다는 것. 참 대단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이후 그는 두 번이나 더 징을 칩니다. 하지만... 순조는 역시 그대로 묻을 뿐이었습니다.
4. 최후의 승자
이렇게 시파는 승리했습니다. 벽파는 사도세자와 정조를 모함한 세력이 되었죠.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이상한 게 많습니다. 특히 김귀주 등이 역적이 된 결정적인 증거인 팔자 흉언에 이르면요.
김귀주는 홍인한, 정후겸을 공격하면서 세손 보호를 자청했습니다. 하지만 영조 때도 밀렸고, 정조 때도 밀렸죠. 정조에 의해 유배된 김귀주는 결국 10년 후 거기서 죽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죠.
팔자 흉언을 즉위 초부터 알았다는 정조는 왜 김귀주와 김한록을 죄 주지 않았을까요? 김귀주의 죄는 "외척 하나를 없애려다 다른 외척 하나를 키우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한 말은 "혜경궁이 홍인한을 버렸듯 대의를 위해 정순왕후도 김귀주를 버려야 된다"는 거였죠. 이 처벌이 팔자 흉언 때문에 한 거라면 너무 억지입니다. 차라리 그 말을 공론화 시키는 게 낫죠. 정순왕후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오빠를, 그것도 정조를 보호하려 했던 오빠를 정조가 "너 힘 너무 세졌어"라는 이유로 벌 준 겁니다.
보통 왕들은 "너 힘 세졌으니 아웃"이라는 말 대신에 다른 핑계를 댑니다. 하지만 정조는 그걸 그대로 들이댔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순왕후와 직접 싸우게 되는 게 두려웠을까요? 그 때문에 나온 "다른 핑계"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대는데 대의만큼 간단한 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정조는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이유로 홍인한 등을 벌하고 있었습니다. 정조가 왜 역적질을 한 사람들 중 김씨 집안에게만 다른 행동을 보인 걸까요?
뭔가에 접근하기는 정말 힘듭니다. 그 과정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추측할 수 밖에요. 다음 편부터 시간을 돌려보면서 홍씨 가문과 김씨 가문,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정조 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말 한 "사도세자를 죽인 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도요.
끝으로, 저기에서 특이할 점이 있습니다. 김귀주의 경주 김씨 외에 위에서 언급된 김씨는 모두 안동 김씨입니다. (김달순까지도요 - -;) 8자 흉언을 들은 사람도, 그걸 정조에게 말한 사람도, 그걸 밝혀낸 사람도 안동 김씨였죠. 재밌는 건 이들의 중심 김조순은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기까지 최고의 대우를 받았고, 안동 김씨는 세도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조 때부터 시작된 사림들의 당파 싸움, 최후의 승자는 안동 김씨였습니다.
* OrBef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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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육십근
해시 아이콘
11/
09/18 10:34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늦더워 조심하시고 보양식품 팍팍 챙겨드세요~^^
sungsik
해시 아이콘
11/
09/18 16:19
수정 아이콘
음..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뭔가 결론부터 풀어내시니 그림이 잘 안 그려지네요 ㅠㅠ
Montreoux
해시 아이콘
11/
09/18 17:53
수정 아이콘
(뻘글 죄송)
점장님 흐흐.. 아련 돋네요 =,.=
적절한 알바는 좋은 경험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제가 요즘 바빴습니다.
긴글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네요, 단종 이후부터 다시 읽어 봐야겠습니다.
安穩
해시 아이콘
11/
09/18 23:44
수정 아이콘
이야.. 미래편은 끝에서부터 거슬러 올라오는군요. 이러면 과거와 미래가 그 때 그 날에서 만나는 건가요. 오늘은 갑자기 맨 뒤가 나와서 깜짝 놀랐지만 구성 자체는 재미있어 보이네요! 시점이 오고 가면 글 쓰실 때도 힘드실텐데 독자로서는 그저 기대하고 있으니 힘내시라는 말씀밖에 드릴게 없군요. 이번엔 국문과로서의 힘도 보여주시리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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