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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09/10 18:17:07 |
Name |
눈시BB |
Subject |
그 때 그 날 - 예고편 |
1. 1735년, 왕실에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 때 왕의 나이 42세. 첫째가 죽은 후 오죽 기다렸던 아들이었을까요. 나라 전체가 축제분위기였고 그 아들은 태어난 다음 날에 원자로, 1년 후에 바로 세자로 책봉됩니다. 조선 왕조에서 가장 어릴 때 세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세자는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왕의 자식 사랑도 참 대단해서 세 살 때 한자를 쓰자 막 기뻐하면서 신하들에게 "우리 아들 글자도 쓸 줄 안다~"면서 자랑했다고 하죠. 역시 기뻐했던 신하들이 "집에 가보로 간직하고 싶네여~"라고 아첨하니까 "몇 장 더 쓰라고 할 테니 한 장씩 가져가셈~"이라고 했다고 하죠. 보기 참 좋은 광경입니다.
그로부터 27년 후, 조선 왕조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죽인 거죠. 그것도 뒤주라는 아주 좁은 곳에 가두어서요. 어디에 이걸 비교해 볼 수 있을까요? 국문 받던 사람들도 하루이틀 사이에 죽고, 영창대군도 굶기긴 했었지만 죽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8일 동안 세자는 몸도 가누기 힘든 어두운 곳에서 불볕 더위에 시달리며 굶어 죽어야 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죽게 만들었을까요? 대체 그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어이 없고도 역겨운 죽음을 맞이해야 됐을까요?
2. 그 어이 없는 죽음은 참 많은 논란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노론의 음모라는 거겠죠. 노론을 아주 증오하는 이모씨는 노론의 출현부터 세도정치기까지를 모두 "악의 축 노론의 음모"로 줄여 버렸습니다. 효종, 현종은 송시열이 죽였고, 세자도 노론이 죽였으며, 이 노론은 정조까지 죽이려다가 결국 실패했습니다.
세자는 정상이었는데 친 소론이라서 노론이 그가 미친 것으로 왜곡했고, 영조가 그걸 듣고 죽였다는 거겠죠. 이 자극적인 이론은 많은 인기를 얻고 이 시기의 사극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연애질, 집안 싸움을 참 좋아하던 사극에서 여기서만은 정치적인 싸움을 참 좋아 하죠.
3. 이에 반대되는 건 역시 세자가 제대로 미쳤다는 거겠죠. 근거되는 결정적인 사료가 있습니다. 한중록.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죽은 세자의 마누라가 쓴 책입니다. 그녀는 세자의 죽음에 대해 간단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세자는 정신병자였으니 잘못한 게 아니다, 하지만 영조도 세자의 병을 몰랐으니 그를 죽인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하지만 세자가 병을 얻은 건 아버지 영조가 너무 닥달하고 야단 쳐서 그렇다.
이 정도입니다. 결국 둘 다 크게 책임이 없는, 어쩔 수 없는 비극이었다는 거죠. 이덕일씨는 그녀의 아버지 홍봉한을 변호하기 위해서 일부러 남편을 미친 것으로 적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중록의 집필 목적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 재평가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자기의 아버지이자 남편의 장인 홍봉한을 변호하기 위한 거였습니다. 때문에 가려서 봐야겠지만, 정반대로 세자에게 병이 아예 없었다는 건 억지죠.
4. "니가 죽으면 나라가 살고 내가 죽으면 나라가 죽는다"고 했던 영조이지만, 세자가 죽은 게 영향이 크긴 했습니다. 그 후 순조까지 갈등의 중심엔 그가 있었거든요. 사실 이렇게 되면 재미가 없어지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불쌍하지만 조선이 망조를 보일 무렵에 사람 하나에게 죄가 있냐 없냐 따지는 걸로 싸웠다는 건 허무하거든요. 덕분에 정조가 개혁 군주인 거에 맞추려고 세자의 추숭을 반대한 세력은 곧 정조의 개혁 정치에 반대한 세력이 돼 버렸습니다. 뭔가 생뚱맞은 결론이 나돌고 있는 거죠.
5.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짜증납니다. 단종 이야기는 조선사에서 보기 드물게 선악의 구별이 확실합니다. 덕분에 마음껏 까고 놀 수 있었죠.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그냥 다 미친 것 같습니다. 아버지 영조도, 세자도, 정조도 여기에 관련된 모습을 보면 제정신은 아닌 것 같구요. -_-a 다들 다른 말을 합니다. 정조도 이랬다 저랬다, 혜경궁 홍씨는 아예 책을 만들어서 자기 집안 변호하고, 정순왕후 김씨는 평생동안 자기 집안 살리느라 고생했죠. 진실을 찾기는 어려워져만 갑니다.
6. 이런 면에서 나름 반향을 일으킨 게 박시백씨의 해석입니다. 노론이 세자를 싫어했든 아니었든 무슨 수를 쓸 수 없었다는 거죠. 영조는 늙었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세손이 태어났고, 세자를 폐하기만 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세손을 위해서 세자를 죽여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책임의 주체는 영조입니다. 그의 죽음은 누군가의 음모나 왕의 갑작스런 결정이 아닌, 오랜 기간동안 열심히 머리를 굴린 결과라는 겁니다. 엔하위키에서는 아예 따로 소개해 놨더군요.
뭐 그만의 해석이라고 하지만, 사실 세자가 죽을 때 세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는 건 공통적인 인식이긴 합니다. 노론의 음모이다라는 게 워낙에 잘 알려저서 이 해석이 새로워 보이는 거겠죠.
6. 이번 이야기는 크게 둘로 나뉠 것 같습니다. 세자가 태어나서 죽기까지 일어났던 일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일어났던 일들이죠. 뒷부분이 상당히 중요하고, 어렵습니다. 혜경궁 홍씨는 정순왕후 세력이 세자를 죽였고 세손까지 해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극도로 증오합니다. 반면 정순왕후 김씨의 오빠 김귀주는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 등 홍씨 세력이 세자를 죽이라 했고, 세손까지도 위협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정조는 양쪽을 오가면서 사이좋게 숙청했습니다. 어느 쪽이 사실일까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못 하겠다 싶으면 이 부분 결론은 안 날 것 같네요.
정조 사후, 정순왕후는 벽파와 손 잡고 홍씨와 남인 세력을 숙청합니다. 그리고 김귀주를 신원하죠. 그녀가 죽은 후 집권한 시파는 벽파를 없애 버립니다. 이 때 김귀주가 정조를 몰아내려 했다는 게 공론으로 못 박힙니다. 그러면서 정작 세자를 추숭하지도 못 했죠.
이렇게 서로 다른 말을 하며 싸웠던 두 세력을 같이 '벽파'로 만들어 둘 다 세자와 정조의 적이었다고 하는 요상한 사태가 벌어지는 게 요즘입니다.
7. 그가 죽은 날은 철저히 함구되었고, 모월 모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뒤주 역시 입 밖으로 내지 못 하고 "그거(일물-_-;)"라고 해야 했죠. 덕분에 중심으로 들어가기가 참 어렵고, 그 과정도 너무 깁니다. 제가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목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모월 모일에서 빌려서 그 때 그 날로 정했습니다. 그 날을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갈 겁니다. 취향에 따라 어떤 작품들이 생각난다는 분들은 신경쓰지 마시구요 ( ..);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봐 주세요. 사도세자 이야기,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9-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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