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이(考異): 다른 것[異]을 고찰함[考]. 차이점을 살펴 비교함. 상이한 것을 변증함. 옛 주석가들의 문투를 빌리기 위하여 편의상 평어체로 작성된 글입니다.
『눈마새』 4책본 권 3에서, 8면에 이르면, "많은 부분들이 훼손되어 안타까움을 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카시다 암각문의 잔존 내용을 볼 수 있다.
지배자, 상인, ······ 등 ······의 권능을 소원하는 많은 이들이 분명히 ······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용인들 중에는 영웅이나 위인은커녕 이름이 좀 알려진 ······조차 없다. 용인의 권능은 타인을 지배하거나 타인이 소유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에게 지배당할 위험에 노출되게 만드는 것이 용인의 능력이다.
······들은, 둔감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는 이 사실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눈물을 마시는 새, 3권 8쪽)
이 암각문의 훼손된 내용에 대해 일찍이 많은 독자(讀者)가 말을 얹었다.
그 대강을 여기에 옮긴다.
지배자, 상인, [ 군인 ] 등 [ 용인 ]의 권능을 소원하는 많은 이들이 분명히 [ 주지 ]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용인들 중에는 영웅이나 위인은커녕 이름이 좀 알려진 [ 사람 ]조차 없다. 용인의 권능은 타인을 지배하거나 타인이 소유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 도움 ]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 타인 ]에게 지배당할 위험에 노출되게 만드는 것이 용인의 능력이다.
[ 사람 ]들은, 둔감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 무기 ]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 우리 ]는 이 사실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下. 뒷부분 채우기
위와 같이 놓았을 때, 마지막 빈칸의 내용에 대하여 크게 여섯 가지의 추론이 존재한다.
첫째로, 사람들이 용인의 능력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에 주목하여 '둔감함/어리석음/편견' 등을 채워넣는 견해가 있다.[1]
이들에 따르면, 직전 문장에서 언급되듯[2] 보통 사람들은 그 '둔감함'으로 인해 용인과 달리 타인을 자신처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용인의 입장(혹은 카시다 암각문을 쓴, 용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의 입장)[3]에서 보면 '어리석은' 것이며, '편견에 찬' 것이다.[4] 또한 이 둔감함을 '무기'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용인의 입장에서 보면 '둔감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 둔감함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 바람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 미움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보면, '미움'이라는 주장은 마지막 장면의 여행자에 의해 정면으로 부정된 견해이다. 또한 마음속이 증오로 가득차 있지 않은 인물들도 작중에 다수 등장한다.
[3] 암각문의 최초 작성자가 카시다의 소년처럼 증오에 사로잡혀 빈칸에 '미움'을 써 넣었을 수는 있으나, 그것은 암각문에서 기대되는 통찰이 아니며, 문맥상으로도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지금 이 설을 취하지 않는다.
[1] 라세엄마(soul****) https://cafe.naver.com/swallowedbird/7824 / 안티월드(ongr****) https://cafe.naver.com/swallowedbird/29501
[2] (110.46) https://gall.dcinside.com/genrenovel/5939793
[3] 데오늬달비(keyd****) https://cafe.naver.com/bloodbird/74962
넷째로, '미움'을 부정하는 뜻을 확장하여 '사랑
/츤데레' 등을 채워넣는 견해가 있다.
[1]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내보이는 미움조차도 실은 사랑을 전제하고 있다.
[2] 케이건의 미움은 왕국과 아내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고, 갈로텍의 미움은 누이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며, 이름 없는 소년의 미움은 가족과 고향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주퀘도와 비아스조차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방해하는 타인들을 미워하게 된다. 이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 또한 용인이 타인에게 지배당하는 이유도 '사랑'과 연관된다.
[3] 보통 사람들은 '둔감함' 덕분에 타인의 사랑을 무시하고, 타인을 증오하거나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용인은 그 예민함 때문에 타인을 이해하며, 무시하지 못하고, 그래서 사랑으로 인한 미움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4] 결국 사람들은 '둔감함'을 무기로 자신의 사랑을 강요할 수 있지만, 용인은 타인들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남을 해하지 못하고 지배당하는 것이다.
[5]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 사랑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보면, 생각건대 '사랑'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존재하면서도 또한 용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요소이다. 그러나 만일 '미움조차도 사랑에서 나오기에' 마음속이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면, 사랑에서 '나온'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므로, 미움이 있는 이상 마음속이 사랑으로 가득차 있을 수 없다. 물론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곧 혹자에 대한 사랑과 같다고 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사랑'이 적확한 단어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해명을 생략할 경우 문맥상 '사랑'의 등장이 매끄럽지도 않다. 지금 이 의심을 그대로 남겨 둔다.
[1] 이리히(jing****) https://cafe.naver.com/swallowedbird/7829 / 구몬(caji****) https://cafe.naver.com/swallowedbird/29501 / valioso https://cafe.naver.com/bloodbird/51022 / Kaldwin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9266559
[2] https://gall.dcinside.com/genrenovel/6350301
[3] 나선목(roll****) https://cafe.naver.com/swallowedbird/35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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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선목(roll****) https://cafe.naver.com/swallowedbird/35684 / 태위(roll****) https://cafe.naver.com/swallowedbird/29501
다섯째로, '미움'과 '사랑'의 대립에서 착안하여 '모순
/애증'을 채워넣는 견해가 있다.
[1]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랑을 원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이루기는 어렵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힘들고,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고,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 그렇기에 사랑이 사랑으로 보답받지 못할 때 사람은 미움을 내보이고, 때로는 남의 사랑에조차 미움으로 답한다. 이것이 '둔감함'으로 인한 사람의 '모순'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를 끔찍이 위하는 남매(예컨대 케이건과 극연왕, 륜과 사모, 갈로텍과 세페린 등)라 하더라도 그들은 바라기의 두 칼날처럼 평행선을 그리기 일쑤다.
[3] 그리고 용인과 관련해서도, '둔감하기에 용인을 무력화할 수 있지만 정작 그 둔감함 때문에 용인의 권능을 소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순'적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 모순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보면, 생각건대 '모순'은 카시다 암각문의 문맥에 얼추 맞으면서도 암각문의 전제를 적절히 포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 암각문은 그 자체로는 용인의 능력이 무용함을 설파하는 내용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으로 가득하다'고 말하는 마지막 문장은 은연중에 '······'에 대한 기존의 논의나 통찰을 염두에 두고 있다. "모든 사소한 규칙들은 그 속에 더 거대한 규칙의 일부를 담고 있"
[4]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한 것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모순'은 일리 있는 답이 될 수 있다. 『눈마새』의 세상은 네 선민 종족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순을 아직 지양·초극해내지 못한 세계이며, '완전성'이 얻어지지 않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5] 비록 다른 견해들을 충분히 아우르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함축한다는 점에서 '모순'은 무난한 답이다. 지금 이 의심을 그대로 남겨 둔다.
[1] 먼지바람(sisy****) https://cafe.naver.com/swallowedbird/7824 / (122.47) https://gall.dcinside.com/genrenovel/5939793
[2] 마타피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2281280
[3] 데오늬달비(keyd****) https://cafe.naver.com/bloodbird/74962
[4] 『눈물을 마시는 새』 2권 557-558쪽.
[5] 데오늬달비(keyd****) https://cafe.naver.com/bloodbird/74962
여섯째로, '미움'만을 부정하는 뜻을 존중하여 '······'을 채워넣지 않는 견해가 있다.
[1]
이들에 따르면, 카시다 암각문의 마지막 빈칸은 실은 처음부터 채워져 있지 않았을 수 있다.
[2] 왜냐하면 마지막 빈칸의 답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적절한 단어가 달라질 수 있고,
[3] 따라서 읽은 사람마다 각자 빈칸을 채우는 편이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4] 결국 '······'은 '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며, 그렇기에 카시다 암각문의 저자도 이를 채우지 않았던 것이다.
[5] 또한 암각문이 전제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논의의 측면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이 어느 하나로 '가득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6] 그런 단정은 '둔감함'을 부추기고, 남을 오해하게 하며, 사랑에 증오로 답하게 만들고, '다름을 긍정할 수 있는 능력'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다름을 긍정'하는 것이 사람의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할 때, 그 출발점은 암각문의 마지막 빈칸을 '채우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 ······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보면, 생각건대 이 설은 얼핏 무의미해 보이지만 가장 정론에 가깝다. 또한 가장 안전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카시다 암각문을 채우는 탐구를 마친 뒤에 늘 이 자리로 돌아온다면, 결론은 매번 같을지라도 그 의미는 매번 달라질 것이며, 더욱 풍성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설을 미리 취하여 둔다.
지배자, 상인, [ 군인 ] 등 [ 용인 ]의 권능을 소원하는 많은 이들이 분명히 [ 주지 ]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용인들 중에는 영웅이나 위인은커녕 이름이 좀 알려진 [ 사람 ]조차 없다. 용인의 권능은 타인을 지배하거나 타인이 소유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 도움 ]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 타인 ]에게 지배당할 위험에 노출되게 만드는 것이 용인의 능력이다.
[ 사람 ]들은, 둔감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 무기 ]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 우리 ]는 이 사실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 ······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만두(ks****) https://cafe.naver.com/bloodbird/51022 / 마타피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2281280
[2] 박상우(es****) https://cafe.naver.com/swallowedbird/3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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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0.46) https://gall.dcinside.com/genrenovel/5939793
[6] 마타피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2281280
논하여 말한다.
카시다 암각문 자체의 문맥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한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둔감함'이다. 또 '용인이 타인에게 지배당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은 '바람'이다.
암각문 외부의 인물들과 관련하여, 증오의 연쇄와 그 끝에서 나늬를 만나 '미움'을 지우기에 이른 여행자를 떠올린다면, 마지막 빈칸에 가장 가까운 것은 '사랑'이다.
암각문 자체와 외부의 인물들을 공히 고려하여, 문장의 흐름과 글의 전제를 소설상의 장치들과 함께 통합하려고 시도한다면, 마지막 빈칸에 가장 가까운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세리스마의 당부가 소설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고 여기고, 또 어떤 도전에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결론을 지지하고자 한다면, 그런 견지에서는 마지막 빈칸을 '······'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행자가 보여주었듯이, '······'에 들어갈 단어가 적어도 '미움'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