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4/23 05:06:03
Name 잠봉뷔르
Subject [일반] 미 영주권을 포기하려는 사람의 푸념
  안녕하세요! 항상 눈팅만 하던 유령회원이었지만 왠지 오늘 따라 여러 회한도 들고 생각도 정리하고 싶어 제 영주권을 포기하려는 자기변명?합리화를 얼굴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져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입니다. 아직 포기신청서를 넣은 건 아니지만 결국 이러니저러니 하다 영주권 만료 끝나고 포기하게 될 거 같습니다.

  요즘 한국의 미래가 대단히 불투명해지면서(출산률이나 경제붕괴나 전쟁위기나 성별과 정치 갈등 등...) 많은 사람들이 흥미본위건 진지하건 이민과 이주에 대해 찾아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많이 나오는 곳 중 하나가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인 듯 하고 그 중에서도 미국 영주권의 프레스티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미 영주권자라 그런 분들이 더욱 눈에 띈 걸 수도 있겠군요.

  아무튼, 제가 뭐 여기서 미국을 욕하거나 멍청한 생각이라거나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저는 말하자면 낙오자고, 이민을 생각하시려는 진취적이고 행동력 있는 분들과는 정 반대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글은 뭔가를 주장하려는 목적보다는 패배자의 푸념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제 두서없는 푸념 이전에 제 미국에서의 삶을 좀 말씀드려야 좀 이해하실지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어 그것부터 공유해보겠습니다.

저는 미국과 좀 기묘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어린 시절에 미국이라고 하면 친척이나 친지가 미국에 있는 가정을 생각하곤 합니다만, 저희 가정은 그런 혈연은 없었습니다. 다만 부모님은 두분 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시며 외동인 저를 키워주셨고, 당시에 그렇게 여유롭지 않은 집임에도 불구하고 미주 영어캠프를 보내주시곤 하셨습니다. 요즘도 있는진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그러니 한 15년 전 이겠군요, 에는 그런 종류의 캠프가 참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LA 인근의 교포가 운영하는 영어캠프에 초등학교 때 갔었는데 솔직히 말해 이때부터 대단히 좋지 못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 교포는 외동떨어진 타운에 아이들 열댓명을 몰아넣고 한인교포청년 하나를 대충 가디언 삼아 애들을 관리했습니다. 근처 공립학교에 포터로 애들을 날라 등하교를 시켰고 숙소로 돌아오면 불법복사한 교재를 무한정 풀게 했었습니다. 학교에선 인종차별 때문에 괴로웠고 숙소생활은 폭력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때리고 윽박지르고 모욕하고 가디언 하나는 지속적으로 남자아이들의 성기를 만지거나 조롱하며 성폭력을 가했지요. 게이인지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강제로 수음을 시키거나 서로를 수음시키게 하거나 하는 일들을 반복했습니다. 당시 전 그게 어떤건지 몰랐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치욕스럽고 자괴감이 느껴지지만 이젠 복수라거나 원한을 갚겠다는 생각조차 안 들고 그저 잊고 싶은 기억일 뿐인 것 같습니다. 숙소생활을 제외해도 교사와 미국의 학생들에게 다종다양한 인종차별을 경험했고 주먹다짐이나 따돌림, 교사의 노골적인 비웃음 틈바귀에서 그렇게 행복했던 것 같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기를 바랍니다.

그런 식으로 초등학교 방학 때 몇번 미국에 다녀오고 전 한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음, 솔직히 말해 도피유학이라고 해야겠지요. 저는 지지리도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아마 부모님도 고민이 많으셨을겁니다. 그래서 저에게 미국의 보딩스쿨 유학을 권하셨고 저는 별 생각없이 동의했습니다. 솔직히 한국에 있었으면 멀쩡한 대학을 갈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전 미국 남부의 좀 이상하고 동떨어진, 보통 사립 보딩 스쿨 하면 떠올릴만한 곳의 정 반대인 곳에 2학년으로 입학하여 3년을 다니다 졸업했습니다. 물론 그때도 공부는 안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그 학교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아시안 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 교육하면 떠오르는? 자유지상적이고 개방적인 교육 시스템에 더해 학교 자체가 좀 히피스러운 곳이었기에 전 별 부담 없이 즐겁게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때가 참 즐거운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도 학생들이 마약난교를 하다 걸린다던지, 동네에 산불이 미국스케일로 나서 한 학기 통채로 연기와 검은 잿물 강 속에서 보냈다던지, 선생이 대놓고 대마를 하며 학생을 부른다던지같은 좀 미국스러운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적어도 당시에 전 큰 상처없이 보냈습니다.

결국 대학을 가야 할 순간이 왔는데 앞서 말씀 드렸듯 전 공부를 정말 못하는 놈이었습니다. 제 SAT 성적으로는 어디 명함도 내밀 수 없었죠.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을 깨는 모델이라고 하면 좀 유쾌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당시 모든 과목에서 꼬라박던 저는 그나마 그 중에서 미술을 그나마 괜찮게 했고 주에서 연 학생미술경연 때 상을 받고 제 그림이 걸린 적도 있었기에 미대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미대는 컷이 훨신 낮다는거였겠습니다만... 아무튼 전 마지막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미대유학원의 보조를 받아)제작했고 다행히도, 아니면 참 비극적이게도 제가 지원한 미대에 전부 붙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남부 오지에 질린 저는 대도시에 가고 싶어 호기롭게 뉴욕에 있는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쩌면 그냥 대학 학비로 다른 걸 하는게 나았을지도 모르겠군요.

뉴욕에서의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습니다. 제 미술의 재능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도시는 험상궂고 차가웠습니다. 가끔 처연하게 아름다운 대도시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학비와 물가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성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기에 상대에게 불쾌한 경험을 준 적도 있었고 저 스스로도 부끄러운 실수가 많았었습니다. 그렇게 몇년 다니다가 전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저는 부모님이 미 영주권을 취득하시며 저도 영주권자가 되었습니다.

군대는 운 좋게도 카투사를 갔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좀 거주한, 적어도 영어 대화에선 별 문제가 없던 카투사였고 당시 미군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의 비호 속에서 속된 말로 꿀을 신나게 빨 수 있었습니다. 이제와선 당시 이기적이고 게을렀던 당시 저 때문에 고생을 했을 후임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아무튼 좀 논란이 될 수 있는 말이겠습니다만, 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 카투사에 있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제대 뒤 다시 복학을 했습니다. 미국은 군대휴학이 없어서 재입학을 한 거긴 하지만 재입학은 딱히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군대 가기 전에 만든 지인들이 모두 졸업을 했다는 거였습니다만 뭐 이건 모든 복학생의 딜레마 아니겠습니까. 전시작업을 준비하며 다시금 학교에 적응하려던 저에게 생긴 진짜 문제는 복학한지 얼마 되지않아 터진 코로나였습니다.

뉴욕의 락다운이 뉴스가 되던 시절을 지금도 기억하실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시에 거기에 있었습니다. 수업은 리모트가 되었고 기숙사는 룸메이트를 포함해 대다수가 자기들의 고향으로 사라졌습니다 .코로나덕에 미국에 거주하지 못하게 된 부모님은 영주권을 놓아버리셨습니다. 항상 시끄럽고 막히던 거리는 텅 비었고 간간히 우버이츠 배달부와 시체를 나르는 냉동탑차만이 거리를 달렸습니다. 대부분의 가게가 닫았고 학교의 시큐리티도 대부분 자리에 없었습니다. 뉴스에선 사람이 죽어나가는 등의 좋지 못한 이야기들로 가득했습니다. 당시 기숙빌딩 같은 층에 있던 사람은 저와 대만 출신 유학생 한명뿐이었는데 저흰 마치 약속이라도 했듯 11시쯤에 문을 열고 서로의 안부를 말없이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 친구의 연락처라도 얻어둘 걸 그랬다고 지금도 후회하곤 합니다. 좀 시적으로 써보자면, 당시 뉴욕은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기숙빌딩 근처의 아시안 식당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느낀 부정적인 감정과, 뭐라 말하기 힘든 미국사회에 대한 불신이 아직도 제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여기엔 오직 나 뿐이며, 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고 내가 무슨 일이 생겨도 바로 찾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지독한 이방인의 고독감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틴 끝에 비행기 표를 구해 귀국했습니다. 어차피 수업은 모두 리모트였기에 굳이 미국에 있을 필요는 없었던 게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에 전 졸업을 했습니다. 한국에서요. 줌으로 졸업식을 진행했고 전 랩탑 화면에서 제 졸업사진을 봤습니다. 학교에서 지원해주던 프로그램은 모두 셧다운되어있었고 전 미국에 있지도 않았기에 미국에서 취직처를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용기와 근성을 보이며 미국으로 건너가 뭐라도 시도했으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겁쟁이에 게으른 놈이었고 미국에 돌아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러저러 레주메를 찔러보긴 했습니다만 제대로 된 경력도 없고 포트폴리오도 쳐지는 놈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프리랜서로 시작하자, 그리고 기회를 엿보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프리랜서 생활은 생각보단 괜찮았습니다. 대부분은 상업적이라 하기 힘든 커미션 부류였지만 그래도 벌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비로운건지 돈이 많은건지 유치한 그림에 괜찮은 가격을 쳐주곤 했습니다. 한국 기준으로 부끄러운 벌이는 아니었지만 말인 즉슨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단지 전 영주권 유지를 위해 간간히 미국에 방문했다가 한국에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한계를 느끼고 서부에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싼 렌트를 내며 미국에 정착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프리랜서로 돈을 벌고 렌트의 보조를 받으며 취업을 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 낮은 수준의 누더기같은 포트폴리오는 아무 곳에도 통하지 않았고 저는 정말 딱 렌트비와 식비만 나오는 수준으로만 돈을 벌었습니다. 그것도 결국 한계를 맞이하고 결국 전 귀국했습니다. 물론 금전적인 영향 외에도 노숙자들에게 둘러쌓여 현금을 뜯기거나 길가에 즐비한 마약중독자에게 걸핏 겁을 먹거나 하는 일들 때문에 미국에서 더 버틸 의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 저를 맞이한 건 부모님 중 한 분의 암과 조부의 영면이었습니다. 저는 상을 치르고 병간호를 했습니다. 꼴에 프리랜서라고 병상 옆 책상에서 그림작업을 하며 간병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초기에 발견된 암이고 부모님도 체력과 근력이 남다른 분이셔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전 여전히 한국에 있습니다.

저는 이제 더이상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토록 원하는 영주권이고, 대단한 기회의 징검다리입니다만, 제 나약함과 무능함, 그리고 나쁜 것부터 먼저 떠올리게 된 부정적인 정신은 한국에 남고 싶어하는 듯 합니다. 제 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변명이 많고 자기합리화를 꽤나 잘합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이라면 분명 낼 수 있을 한줌의 용기, 배짱, 노력, 치열함조차 없는 사람이기에 미국에서 사는 저 자신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사회에서 버틸 능력도 근성도 없고 미국사회를 부정적으로 느끼게 되었고 소중한 사람들이 제가 없는 곳에서 아프고 사라진다고 생각할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미국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유능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고 사회는 역동적이고 대도시는 활기찹니다. 굳이 경제지표나 뉴스를 보지 않아도 미국의 큰 도시와 좋은 카운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물자는 넘치도록 풍부하고 세계 모든 것들이 이곳에 모입니다. 능력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평가해주고 몇배의 기회를 부여합니다. 평범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문제 없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낙오자에겐 자비가 없고 고독함을 느끼게 하는 곳 같습니다. 저는 늘 미국에 있으면서, 바에서 술을 마시고 같이 게임을 하고, 사람들과 스몰토크도 나누고 짧고 비루한 연애도 해봤지만 그 모든 순간에 전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무슨 치안이라던가 총기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 졸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치 고장난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혼돈스럽고 파괴적인 슬픔과 자괴감이 저를 항상 덮쳐왔습니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고, 소중한 인연들은 수백수천 미터 밖에 있고 저의 무능함은 항상 저를 무자비하게 두들겼습니다. 외모도, 능력도, 자산도, 의지도 없는 저는 무너지는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한 채 이제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적어도 가족과는 함께 있고자 합니다.

물론 모두 말하는 대로 한국은 망조의 길에 들어섰고 좋지 못한 전망 뿐이며 미국은 미래가 보장된 최강의 대국이겠지만, 설령 그게 근시안적인 안락일지언정, 제가 이 순간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다행히도 전 도망과 자기합리화엔 꽤나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또 다른 편안함으로 도망칠지도 모르겠군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낙원 씩이나 바라며 도망치려는 것도 아닌 법이죠. 단지 이 순간에도 저를 위해 많은 걸 지원해주시고 희생하신 부모님의 노력을 헛되게 한 것에 대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길고 우울하며 조잡한 푸념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세상엔 저 같은 탕아도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지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건너가시려는 분들, 분명 저와 다르게 멋진 삶을 사실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파란미르
24/04/23 05:18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습니다. 어디든 자기가 행복한 곳에 사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공실이
24/04/23 05:22
수정 아이콘
명필이시네요. 고생많으셨습니다. 남들도 다 대단해보여도 결국 하루 하루 생존해 나가는거고, 살아남으신 것이 곧 승리고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이땅의 살아남으신 모든 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김똘똘
24/04/23 05:23
수정 아이콘
다자이 오사무 소설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24/04/23 05:47
수정 아이콘
오래 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분 이야기 입니다만, 한국에서 괜찮은 학부 졸업 후 대기업 취업 후 맡은 일은 곧 잘하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친한 지인과 대학 동기라서 간간히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13-14년 전, 2010년쯤에 다니던 회사 관두고 미국에서 석사 후 취업 했었죠. 뉴욕 맨하탄에 작은 IT회사에 취업하셨다고 들었고, 결혼도 하셨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만, 7년쯤 전인가 가족들 데리고 한국으로 귀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후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은 IT회사의 수입으로 혼자 살땐 그래도 아껴살수 있었는데, 아내가 생기고 또 아기가 생기니까 그 수입으론 버틸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회사 또한 스타트업이라 월급은 말할 것도 없고, 본인 의료보험비도 절반만 보태 주고 가족들 보험은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네요. 어떻게 렌트내고 보험료 내고 생활비 하면 살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노후를 위한 저축을 하지 못했고 그 부담이 꽤 컸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저축을 잘 안하고 받는대로 다 써버리지만 아시안들은 그런 생활을 잘 하지 못하죠. 결국, 그 생활을 못 버티고 귀국하셨습니다.

또 다른 지인 이야기입니다만, 원래 미국에서 박사까지 공부하셨습니다만 결혼 문제로 귀국하셨던 분입니다. 그래도 S사에 취업해서 잘 다니고 계셨지만, 본인 꿈이 미국에 있었던 건지 S사에 다니면서 따로 NIV를 신청해 영주권을 취득하고, 6년쯤 전, S사를 휴직 후 실리콘 밸리에 머므르며 예전 박사시절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구직 활동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에 머믈면서 본인이 보지 못했던 걸 보셨는데, 대충 정리하면 가족을 데리고 와서 실리콘 밸리에서 살려면 수입이 못해도 150K-200K는 되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셨고, 소위 말하는 빅테크에 취업하면 큰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실리콘 밸리의 수 많은 중소기업들은 페이가 딱 그 정도였다고 하죠. 그 돈 받으면 생활은 어떻게든 가능한데 문제는 저축이죠. 이미 40대 중반이 된 나이에 가족까지 있는 상황에서 저축없는 생활은 부담스러웠겠죠. 빅테크들 몇 군대 면접보고 떨어진 후 중소기업은 생각없이 그냥 접고 귀국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저는 다양한 현실을 봤습니다. 인터넷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보고 있으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벗어나, 본인에게 가장 맞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사람들은 남들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남 신경쓰기엔 다들 너무 바쁘죠. 본인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으신 듯 하니 성공하신 듯 보입니다.
anonymous0
24/04/23 07:06
수정 아이콘
4인 가족이라 하고, 집 렌트까지 하면, 생활비가 한달에 $10k 들어갈껄요. 그럼 연봉을 최소한 $200k 받아야 먹고, 살 수 있다는거죠. (저축은 못 하구요). 미국도 특히 요즘은 살기 팍팍해요.
집으로돌아가야해
24/04/23 12:03
수정 아이콘
3인 가정에 200k 인데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을 받는다고 건너건어 들었습니다.
앙겔루스 노부스
24/04/24 01:30
수정 아이콘
[미국 사람들은 저축을 잘 안하고 받는대로 다 써버리지만 아시안들은 그런 생활을 잘 하지 못하죠]

사실 이 마인드가 작금의 한국을 위시한 한자문화권 사회의 팍팍한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어떤 문화적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자세히 쓸 계제는 아니긴 합니다만
신촌로빈훗
24/04/23 05:56
수정 아이콘
위에 쓰신 내용이 너무 겸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글 솜씨가 좋으신데요?

고생 많으셨어요.

'영원히 엉망일 것 같았는데 대체 난 어쩌다 이런 행복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거지?'라는 생각을 하실 날이 오길 응원하겠습니다.
(제가 30대까지 터널 속에 있었는데 우연히 새로운 일에 몸을 담게 되었고, 지금 7년 째 매일이 감사한 상태로 잘 살고 있거든요. 아... 코로나를 지나오느라 몹시 가난해진 게 단 하나의 단점이긴 합니다만 ^^;; )
임전즉퇴
24/04/23 06:5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전적으로 더 좋다고 하더라도 나쁜 기억이 있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면 어쩔 수 없죠. 하물며 전적인 것만도 아니고.. 현재로서는 영어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국내도 좋고 미국 외 다른 나라도 좋습니다.
별론으로, 나가면 나가는 거지 망조들어서 나간다면서 나간 다음에 망조든 나라빨로 살 것 같은 저 교포같은 사람은 저렇게 범죄적이기까지 하지 않아도 싫습니다.
24/04/23 07:01
수정 아이콘
한국에서 태어나서, 가치관이 형성되는 유소년기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내면서, 한국사회에 최적화된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한국에서의 생활을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 모든 것에도 물구하고 해외생활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게 오히려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야겠죠. 그러니 전혀 자괴감을 느끼실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의 미래전망이 한국의 그것보다 밝을지는 몰라도, 그게 꼭 미국에 남아계셨을 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겁니다. 한국에서 원하시는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네요.
브레스피해욧
24/04/23 07:58
수정 아이콘
미국의 낙관적인 면이 아닌 비관적인 부분을 잘 보여주는 좋은 수필인 것 같습니다. 글을 너무 잘 쓰시는 것 같고, 엄청 잘 봤어요! 저는 한국이 편하긴한데, 미세먼지가 너무 싫네요. 아직 다른 나라의 비관적인 부분을 잘 몰라서, 공기좋은 선진국 어디에서 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곤하는데, 막상 해외생활은 쉽지않은 것 같네요
프라하
24/04/23 08:27
수정 아이콘
이 울분의 에너지를 미술에 더 쏟으신다면 좋은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고꾸라지기 직전이지만 많이 노력중입니다. 힘내세요!
드러나다
24/04/23 08:31
수정 아이콘
능력이 낮다 스스로 평하시지만, 쓰신 글의 만듦새로는 문장이나 표현의 앞뒤도 참 잘맞을뿐더러, 남들이 잘 겪지 않을 경험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그것을 감각화해내는 능력도 보이십니다. 지금은 상황에 좌절하여 본인의 과거를 모두 평가절하하시는 상태이신것 같은데, 제게는 그것이 모두 어디엔가 쓸모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생업을 지속하시되, 붓은 내려놓지 마세요. 아니면 종종 고등학교 시절 에피소드라도 공유해주세요.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있을겁니다.
행운을 빕니다.
김꼬마곰돌고양
24/04/23 08:32
수정 아이콘
웰컴백. 고향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글솜씨가 좋으신데 그림까지 그리신다니, 웹툰작가 해보시는 것도.
아침노을
24/04/23 08:47
수정 아이콘
다 읽고나니 물꽂이가 생각납니다.
식물을 번식시키는 방법 중에 물꽂이라고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잘라 물이 든 병에 넣어두면 잘린 가지 끝에서 뿌리가 나옵니다. 그때 화분이나 땅에 옮겨 심죠. 계속 물통에 꽂아두고 키우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물도 자주 갈아줘야 하고 손이 많이 가고 비료도 더 신경써야 합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비용이 증가하는 거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뿌리가 고정되지 못하고 떠 있어서 불안정합니다.

미국 생활이 물꽂이로 뿌리를 나게 하는 과정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땅에 뿌리를 내려 흔들리지 않는 삶의 시작이 될 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Cazellnu
24/04/23 08:53
수정 아이콘
도망친곳에 낙원은 없습니다.
한국이라고 뭐 다를거 없죠.
하지만 응원합니다.
24/04/23 09:01
수정 아이콘
제가 미국 포닥 시절에 만났던 한국 친구들 반 정도는 한국에 들어와 잘 살고 있더군요. 아무리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곤 해도 이민자 혹은 외노자로 살아남기 고단한 면이 있죠. 가족도 계시고 한국생활 제로도 아니시고 잘 될겁니다.
24/04/23 09:06
수정 아이콘
국민학교 시절 갑자기 개포동에 주공아파트가 재개발이 된다고 하였고 재개발이 되면서 그 당시 주공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신분상승이 되었습니다. 경남아파트나 현대 아파트 사는 애들은 원래 집이 좀 살아서 학교 다니다 성적이 중위권이면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버리는 집이 많았는데...

주공 아파트 사는 애들이 갑자기 재개발 때문에 10억정도의 자금이 생겨서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애들을 유학보내는 집이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고 갑자기 친구들이 하나둘씩 미국으로 갔습니다.
저희집은 주공아파트를 팔지 않고 재개발까지 가져간다고 하고 버텼습니다. 물론 가족중 미국가고 싶다고 조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냥 재개발까지 참는게 이득이라며 계속 참았지요.

그리고 친구들이 성인이 되서 미국의 좋은 이야기들만 매번 이야기하면서 자랑만 하길레 아 우리도 그 때 미국으로 갔어야되었나 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께 이 친구들이 20대가 되어 돌아왔는데 주공 아파트는 아직도 재개발이 안 되었거든요.....
10년 넘게 재개발 공사조차 안 들어가고 우린 전세로 한곳에 정착 못하고 계속 이사를 다녀야되서 이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30대가 되어서도 이 친구들이 여전히 미국에서 생활하며 군대도 안 다녀와서 더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30대때도 주공아파트는 재개발이 되지 않아서 더 부러웠습니다. 10대때 재개발이 발표되었는데 30대가 되어도 주공아파트가 재개발이 되지 않아서 우리도 남들 미국 갈 때 미국으로 갔어야되는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40대가 되어서도 미국에 친구들은 여전히 미국이 좋다고 합니다. 근데 아직도 개포 주공 아파트는 재개발이 되지 않았습니다.
와... 이제는 아파트 재개발이 되어봤자 가족들은 다 같이 살지 않아서 50평짜리 집도 필요가 없습니다...... (참고로 드디어 주공 아파트는 작년 말에 완공이 끝났습니다.)

계속 생각하는건 그 때 남들 따라서 미국을 갔어야되는데라고 생각이 들지만 뭐 갔어도 저도 인종차별이나 좋은 꼴은 못 당했을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고 저는 일본으로 유학가고 다른 형제들은 유럽으로 유학을 갔는데 외국에 사니 한국이 그리워 질 수 밖에 없더군요.
퀀텀리프
24/04/23 09:18
수정 아이콘
뭔가 웃프네요.. 재개발..
24/04/23 09:23
수정 아이콘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 니네 아직도 재개발 안되었냐? 이걸로 놀려먹었는데 한 20년 넘게 계속 이러니까
그 때 미국 안 갔으면 나 진짜 큰일 났겠네 이 소리 하던데 국민학교 때 재개발 추진 위원회 열리고 재개발 소식을 들었는데

중요한 건 재개발이 친구들 다 결혼하고 자녀도 태어나서 초등학교도 다 입학하고도 졸업하거나 고학년이 되어서 우리가 처음 재개발 소식을 접했을 때 그 때 나이더군요.... 이건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
24/04/23 09:12
수정 아이콘
글이 정말 술술 읽히네요. 영어도 잘하시는데...
나이도 아직 한참이신 것 같고. 앞으로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미국 잠깐 맛만 봤지만 영.. 안맞더라구요.
전국 어느 곳을 가도 안녕하세요. 하면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안정감... 그게 그리워서
인천공항 도착했을 때 하~ 역시 한국이 좋다. 라고 안도하던 느낌이 생각나네요.
리니시아
24/04/23 09:12
수정 아이콘
표면적으론 미국 영주권에 관한 이야기지만 잠봉뷔르님의 역사가 담긴 글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오셨군요.. 멋지십니다.
24/04/23 09:16
수정 아이콘
내용은 낙오자 처럼 묘사하셨으나 그에 반해 글 솜씨는 너무 좋으셔서
읽으면서도 좀 어리둥절 하게 되네요 ;;
좋은 글 감사드리고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김치와라면
24/04/23 09:16
수정 아이콘
글이 잘 읽혀요

부럽습니다
지구 최후의 밤
24/04/23 09:19
수정 아이콘
고생 많으셨습니다.
글 쓰시는 솜씨가 남다르시네요.
퀀텀리프
24/04/23 09:22
수정 아이콘
자본주의의 문제인가 ..
하여튼 물자도 풍부하고 모든게 풍부한데 과반수이상은 사는게 스트레스 쌓이고 불안정하죠.
먹을것도 부족했던 과거보다는 낫다고 자조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지는 거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 낙관도 비관도 할 필요는 없는 세상인것 같습니다.
24/04/23 09:39
수정 아이콘
저도 지금은 미국에서 한국과는 비교가 안되는 좋은 환경에서 꿈을 좇고 있지만 언젠가 한국에 돌아갈 생각은 항상 드는것 같아요. 이방인으로서 외국에 정착하는건 정말 다른 레벨인것 같습니다
노둣돌
24/04/23 10:00
수정 아이콘
모든 분들의 공통된 의견은 님께서 글을 무척 잘 쓰신다는 겁니다.
그림에도 소질이 있으시고, 게다가 영어까지 가능한 데 미래가 어두울리가 없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계속 문을 두드리시면 곧 희망의 문이 열릴 것으로 확신합니다.
아무르 티그로
24/04/23 10:02
수정 아이콘
미술 솜씨는 모르겠지만, 글쏨씨는 부러울 정도로 좋은데요?
제가 직장에서 보직장이 되고 요즘 말하는 MZ 친구들 10여명과 함께 일하다보니, 학벌이 좋아도 못하는게 있고, 학벌이 나빠도 잘하는게 있더라구요.
제가 글쓴님을 잘 모르지만, 글쏨씨는 뛰어난것 같습니다.
국수말은나라
24/04/23 10:08
수정 아이콘
굳이 포기하시는 이유가? 연간 체류일수 맞추면서 유지하세요 군 다녀오셨음 이중국적 될텐데 하물며 영주권은 이중국적도 아닌데요
탈리스만
24/04/23 10:13
수정 아이콘
저도 글이 술술 읽혀서 재미있었습니다.
글, 그림, 영어까지 다 잘하시니 부럽습니다.
푸른잔향
24/04/23 10:28
수정 아이콘
영주권 포기하지 않고 연간체류일수 맞추면서 그냥 한국서 사시는건 어떨까요?
언젠가 써먹을 일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하아아아암
24/04/23 12:1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연간 체류일수가 너무 길지않나요? 6개월 정도로 보이는데 한국에서 정착하지 못할 정도 같은.... 재입국 허가서를 받으면 2년 정도 나와있을 순 있나보네요.
24/04/23 10:30
수정 아이콘
(수정됨) 해외에서 살려면 거주, 직업 그리고 커뮤니티 이렇게 3가지가 해결되어야 정착되는 거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커뮤니티가 장기 거주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이 다른 요소와 달리 내 멋대로 되는 것도 내 선택도 아니고 어떻게 만날지도 이어갈지도 모르는 미지에 가까워서 신이 내려주는 영역이지 않나 싶네요.
코로나가 이 커뮤니티를 초전 박살을 내버렸는데 특히 유학생에게는 모든 기회를 송두리째 가져가 버린 거나 마찬가지니 2년 지나고 난 이후 대다수의 손에 남아 있는건 빈 공기뿐이죠.
도망이 또 다른 선택이 될 때는 많은 기회와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하기에 뒤돌아보았을 때 기분 좋은 선택지였길 바랍니다.
24/04/23 10:35
수정 아이콘
그림은 못 봐서 판단을 못 하겠지만 글은 참 잘 쓰십니다. 예술적 재능이 있으신 것 같은데 글을 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4/04/23 10:50
수정 아이콘
저도 글솜씨에 감탄했습니다. 충분히 행복하게 사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떤 선택 하시든 잘 되셨음 좋겠습니다.

그리고... 미국 빡세죠.
저도 옛날에 짧게 있었지만 진짜 개인주의가 뭔지 자본주의가 차갑다는 게 뭔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인종차별이나 치안같은 거랑 관계 없이요.
한국에서는 항상 집단이란 것과 무의식으로 연결되어 와이파이처럼 안정감을 공급받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런 만큼 해방감도 있고 아무하고나 이야기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좋긴 했지만.
숨고르기
24/04/23 11:09
수정 아이콘
나에겐 전혀 필요없지만 겉으로 번듯해보이는 물질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 또는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 때문에 안그래도 짧은 인생을 의미없이 낭비하는 사람들이 참 많죠. 참 어려운 결정 하신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람되고싶다
24/04/23 12:09
수정 아이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장은 과거의 상처에 붙잡힐지라도, 결국은 딛고 앞으로 나아가실 겁니다. 글쓴이님께선 자신을 패배자라고 슬퍼하시지만 오히려 포기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세상엔 포기마저 스스로 못하고 어영부영 끌려다니는 사람 천지인 걸요. 저를 포함해서.
Keepmining
24/04/23 12:22
수정 아이콘
길게 쓰려다가 지웁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꿈을 안고 건너가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 학위가 딱히 발휘되지 않는(?) 직장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구구절절 어떤 부분은 제 일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울림이 느껴집니다. 우리 모두 남들의 기준과 외적인 허울에서 벗어나서 눈을 감고 내면의 진짜 기준과 행복을 찾아 충만한 삶을 살아봅시다. 역시 존경한다는 말씀 드리고, 화이팅입니다.
날아가고 싶어.
24/04/23 12:50
수정 아이콘
대학까지 미국에서 나온분에게 비길바는 아니겠지만, 저도 미국살면서 깨달은바가 미국이 남들이 살기엔 좋은 도시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겐 고난과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의 삶이라서 빠른 한국행 결정을 내리고 귀국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좀 더 참고 버텼다면 다른결과가 있었을수도 있었겠으나, 내 삶의 뿌리가 단단하지 않은곳에서 적응하며 살기엔 나의 행복은 한국에 있는게 맞았습니다.

전 귀국해서 한국사는데 100%만족했고, 힘들어도 이땅에서 행복한게 최고인것 같습니다.
24/04/23 13: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4/04/23 13:50
수정 아이콘
글도 잘 쓰시고 그림도 잘 그리실테니 웹툰이나 유튜브를 하셔도 성공하실 것 같습니다.
10년 가까이 허송세월 보내다가 이제 막 정신차리려는 입장에서 돌아보니 인생에서 중요한 게 깡과 근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아주 작은 계기로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생과 싸울 용기가 충만하시기를...
지니팅커벨여행
24/04/23 14:57
수정 아이콘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라는 말이 잘 들어 맞는 경우라고 생각하네요.
지금의 결정으로 더욱 행복해지실 겁니다.
24/04/23 16:34
수정 아이콘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언젠가 저도 느껴본적이 있는 감정들이 써져있는 것 같아서 잘 읽혀져 내려가네요.
뭐든 앞으로 잘 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월마가
24/04/23 19:02
수정 아이콘
결은 다르지만 저도 초년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산 입장으로써 .. 좋은 글 감사드리고.. 제 입장에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 예전에 제 인생 관련 글을 적은 적도 있고 너무 길어질 것 같네요.. 아무쪼록 하시는 바 잘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앙겔루스 노부스
24/04/24 01:32
수정 아이콘
자기 객관화가 잘 되시는 분 같은데, 그래서 더 서글픈게,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도 그것이 사회에서 성공적 삶과 직결되진 않는다는 부분 같긴 합니다. 요즘 좀만 길다 싶으면 글 잘 안보는데, 님 글은 후루룩짭짭 다 읽은걸 봐선 문재가 있는데, 미술쪽 말고 글쪽 일을 하셨어야지 않나 싶단 생각이 드네요.

저는 님보다도 더 팍팍한 인간적 역량을 지니고 있어서 애초에 나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사람이고, 언어도 한국어 원툴인지라, 나갈 생각도 못하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이 나라가 서서히 안착해주길 바라는데, 전 의외로 그거 그렇게 불가능하진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후후
파르셀
24/04/24 14:38
수정 아이콘
타국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미국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미국 관련 영상, 다녀온 사람들의 장단점 등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핏줄을 물려받은 그 순간부터 한국인은 영원한 이방인 이라는 거였습니다

교포 2세는 말할 것도 없고, 교포 3세라면 그냥 미국인인데 그들 중 상당수가 피부와 생김새로 인한 인종 갈등을 작게나마 대부분 겪었고,
아무리 열심히 하고 이너 그라운드에 포함되려고 해도 인종으로 구분된 보이지 않는 벽을 뛰어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반대로 이걸 뛰어넘어서 진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미국에서 한인계는 수많은 계열 중에서도 소수 민족이니까요

거기서 태어난 사람도 그런데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인 정서를 가진 사람이 미국에 가서 정착하고 미국인이 되기는 정말 어려울꺼 같습니다

처음에 가서 천국을 만난 것 처럼 잘 사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이 봤고,
그정도로 성공하지 못해서 한국에 이제 들어갈 수도 없어서 어쩔수 없이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돈이 정말로 많은 부자라면 어느 나라를 가든 선택이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타국살이는 참 어려운거 같습니다

잠봉뷔르님만 그런것도 아니고 많은 분들이 컴백하는 경우도 많고, 그리고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건
미국에서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겁니다

영어 실력은 기본으로 탑재하셨을 꺼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가 있으면 뭘 하시든 잘 하실 수 있을 껍니다
nm막장
24/04/24 15:51
수정 아이콘
글 잘쓰시네요 술술 읽힙니다
그림도 그리시고 시간날때 책 많이 읽고 글을 브런치나 블로그에
고정적으로 써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리처드 파인만
24/04/25 14:44
수정 아이콘
글 너무 잘 읽힙니다.
고생많았습니다. 이방인이였던적이 없던 대한민국 시골 촌동네 토박이라 잘 공감을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교때 전학을 한 번 간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이 글을 읽다보니 다시 상기되네요.
힘든일 다 이겨내시고 너무 무리하지마시고 건강 잘챙기세요!
24/04/30 02:32
수정 아이콘
우와 가볍게 들어왔다가 빨려들어가듯 읽었네요
글 자주 써주세요 분명 곧 좋은 기회를 곧 잡으실 것 같네요
24/05/02 12:36
수정 아이콘
고생많으셨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423 [일반] [2024여름] 카시마 해군항공대 유적답사 [8] 서린언니2850 24/10/08 2850 1
102421 [일반] [2024여름] 길 위에서 [3] 글곰2882 24/10/07 2882 5
102420 [일반] 못생긴 흙수저로 태어나 천하를 제패하다 [29] 식별8425 24/10/07 8425 28
102419 [일반] 유비소프트의 매각 가능성 소식을 듣고 - 어쌔신크리드 [20] 가위바위보5163 24/10/07 5163 0
102418 [일반] 과연 MZ세대의 문해력이 선배 세대보다 더 떨어질까요? [81] 전기쥐7271 24/10/07 7271 5
102417 [일반] 결혼하고 아이 낳는게 너무 멀게 느껴져요 [51] 푸른잔향7492 24/10/07 7492 1
102416 [정치] “소아심장 분야는 아웃사이더… 과감한 투자 시급” [154] Leeka9232 24/10/07 9232 0
102415 [일반] 아이폰 16 프로맥스 2주차 짧은 후기 [7] Leeka3554 24/10/07 3554 1
102414 [일반] [서평]《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 - 기독교적 용서란 정의와 관계를 모두 회복하는 것이다 [2] 계층방정1876 24/10/07 1876 6
102413 [일반] [풀스포] 살아서 고짐고를 두번 당하다니 : 조커 2 폴리 아 되 [9] Farce4751 24/10/06 4751 16
102412 [일반] 나는 왜 <조커: 폴리 아 되>가 아쉬웠는가. (스포) [17] aDayInTheLife3874 24/10/06 3874 3
102411 [일반] 화요일 유료화되는 참 좋은 웹툰-<펀치드렁커드> 소개 [11] lasd2414069 24/10/06 4069 7
102409 [일반] 부천국제만화축제 10/5일 후기 [7] 그때가언제라도3777 24/10/06 3777 5
102408 [일반] 2024년 최악의 흥행 실패작 중 하나가 될 <조커: 폴리 아 되> [37] 비역슨8410 24/10/06 8410 3
102407 [일반] [팝송] 사브리나 카펜터 새 앨범 "Short n' Sweet" [1] 김치찌개3037 24/10/06 3037 1
102406 [일반] 불꽃놀이를 보고 왔습니다 [30] 及時雨6171 24/10/05 6171 11
102405 [일반] 음주운전에 대한 검사 횟수를 늘리는 것은 어떨까요 [47] 소금물8027 24/10/05 8027 1
102404 [정치] '문재인 딸' 다혜, 음주운전 사고 입건…0.14% '면허 취소' 수준 [115] 핑크솔져17223 24/10/05 17223 0
102403 [정치] [단독] '부산 엑스포' 판세 못 읽은 정부…대외비 문건 보니 "성공" 단정 [42] 주말8509 24/10/05 8509 0
102402 [일반] 우리는 버블경제 시기를 살고있는거 아닐까 [82] 고무닦이9054 24/10/05 9054 19
102401 [정치] [단독] 'MBC 칼침 경고' 황상무, KBS 계열 프로그램 진행자로 복귀 [30] 카린7924 24/10/05 7924 0
102400 [일반] 부국제 다녀왔습니다.(사진 많음) [19] aDayInTheLife4811 24/10/05 4811 0
102399 [일반] 오늘 친구가 죽었습니다. [40] wonang12867 24/10/04 12867 3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