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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31 05:54:21
Name 자이체프
Subject [일반] 조선시대 인권이야기 - 4
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 이번에는 조선시대 솔로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걸 인권 차원에 넣을 수 있는 것인지 좀 걱정스럽긴 하지만 연애도 결국 인간의 권리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그럼 시작합니다.

작년 연말, 여의도 공원을 비롯해서 전국에서 열린 솔로대첩이 큰 화제를 끌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없는 젊은이들의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절박함을 표출한 셈이다. SNS를 비롯한 인터넷에는 솔로들 희화하는 농담들이 오래전부터 떠돌고 있다. 예전처럼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시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연인이 없다는 것은 놀림과 자학의 대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솔로들도 지금처럼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라에서 책임지고 커플로 만들어줬다. 1478년, 성종이 예조에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요즘 장마가 몇 달째 계속되고 있으니 아마도 가난한 집의 처녀와 총각들이 제때 혼례를 올리지 못해서 원광(怨曠)의 한이 혹 화기(和氣)를 범한 듯하다. 한양과 지방의 관리들은 관내의 가난한 처녀와 총각들에게 혼수 감을 넉넉히 주어서 혼례를 올리게 하라.>

원광이란 홀어미를 뜻하는 원부(怨婦)와 홀아비를 뜻하는 광부(曠夫)의 줄임말이다. 성종은 계속되는 장마가 혼례를 치루지 못하거나 홀로 독수공방을 하면서 한을 품은 이들의 분노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비단 성종 개인의 생각이 아니었다. 성종이 이런 지시를 내린지 며칠 후 관리들을 감찰하는 사헌부에서 노처녀와 노총각들을 방치한 관리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린다. 오늘날처럼 기상청이 없던 조선시대에는 기상 이변을 음양의 조화가 깨졌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처녀와 총각들의 분노가 장마와 가뭄을 불러왔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조치는 귀양을 간 죄인의 가족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1426년, 세종대왕은 평안도 양덕에 귀양을 간 귀화한 왜인 평도전의 딸이 가난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러자 세종대왕은 해당 지역의 수령에게 혼수 감을 줘서 시집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귀양을 간 죄인의 가족들조차 챙겨준 것이다. 물론 이런 조치들은 노처녀와 노총각들의 복지나 행복을 위해서 내려진 것은 아니다.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IMF 사태를 맞이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날씨가 조금만 이상해도 기우제를 비롯해서 온갖 조치들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가뭄과 장마를 계기로 억울한 죄인이 있는지 살펴보고, 혼례를 올리지 못한 백성들을 돌봐주는 것은 어려울수록 소외된 사람들을 돌봐준다는 오늘날의 복지와 인권개념과도 놀랍도록 유사하다. 더군다나 결혼에 필요한 비용과 혼수품까지 국가에서 지급해줬다는 것은 위정자들이 이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직도 사회 일각에는 인권을 위해 쓰는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사회가 발달할수록 소외된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깨가 축 쳐진 그들에게는 높은 빌딩과 넓은 도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사회가 치러야하는 비용과 대가 역시 늘어난다. 인권이라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소외되고 뒤쳐진 이들을 비웃고 손가락질하는 대신 부축해주고 잡아끌어주는 것이다. 가난과 장애에 따른 차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에서 책임져야 할 문제다. 솔로대첩이 벌어지는 현대와 노처녀와 노총각들을 나라에서 책임지고 결혼시켜주던 조선시대를 비교해보자. 우리 조상들은 인권이라는 단어와 개념은 몰랐지만 지금 우리들보다 더 인권의식이 더 투철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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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메
13/01/31 07:37
수정 아이콘
크크크 이런글을 보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어쨋튼 저도 복지 받아야 할 대상 중 하나고 조선이 태어났으면 나랏님 덕분에 대장직을 내려놓았겠네요
자이체프
13/01/31 14:37
수정 아이콘
저도 30대 후반에 결혼했으니 동지군요. 흐흑....
13/01/31 08:13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글도 글이지만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는 말을 곱씹어보게 되네요 @_@
자이체프
13/01/31 14:38
수정 아이콘
수사반장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죠. 당시에도 명언이었지만 빌딩이 더 높아진 지금은 더 가치가 높아진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13/01/31 09:00
수정 아이콘
그럼 요새 기상이변과 추위의 이유가.
자이체프
13/01/31 14:38
수정 아이콘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전 세계 솔로들의 분노와 원한 탓이라고 봅니다.
Je ne sais quoi
13/01/31 09:04
수정 아이콘
재미있지만 또 그렇지도 않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자이체프
13/01/31 14:3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역사를 현재에 비춰보면 씁쓸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눈시BBbr
13/01/31 10:36
수정 아이콘
크크 기다렸습니다 ㅠㅠ 잊고 있으셨다니...
대를 잇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당시라는 거 생각하면 '-'a 대단하네요
자이체프
13/01/31 14:40
수정 아이콘
집 사람이랑 노느라고요.^^ 귀양간 죄인의 딸 조차 챙겨줬다는 걸 보면 워 아더 월드 가 아니라 위 아더 조선이라는 느낌이;;;;
알파스
13/01/31 10:38
수정 아이콘
글쎄요. 저런것들을 인권신장을 위한 복지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않나 싶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인권 복지라는 단어는 너무 어색한거 같습니다.
자이체프
13/01/31 14:42
수정 아이콘
현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던 그 시대에 결혼 못한 사람들을 챙겨줬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걸 시행한 임금이나 대신들은 물론 당사자인 백성들까지 인권이라는 말은 몰랐겠지만 말이죠. 인권은 성장하거나 발전하는게 아니라 챙겨줘야 할 것과 누려야할 것들을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wish buRn
13/01/31 10:42
수정 아이콘
바꿔서 이야기하면 솔로들은 사람대접도 못받았다는건가요?!
자이체프
13/01/31 14:43
수정 아이콘
결혼 못한 홀아비들 역시 구제대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쓰럽게 여긴 건 사실일 것 같습니다. 사회 복지제도가 없던 당시에는 혼자 늙으면 먹고 살 방법이 없었으니까 결혼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13/01/31 12:25
수정 아이콘
전 시대를 잘못 태어났나 보네요...
자이체프
13/01/31 14:44
수정 아이콘
어쩌면 한번 태어나셨다가 지금 환생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 때는 정부인에 첩을 수십명씩 거느렸기 때문에 지금은;;;;
13/01/31 16:46
수정 아이콘
아아..... 그런 거라면 전생의 저를 때려 죽이고 싶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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