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2/07 14:00:59
Name ChefRyan
File #1 팔레드고몽.jpg (0 Byte), Download : 44
Subject [일반] 대한민국에서 레스토랑 경영자로 산다는 것


글 / 서현민 (‘팔레 드 고몽’ 대표)




당신은 레스토랑에 앉아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친 후 한없는 행복을 맛본 적이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기분 좋은 식사란, 완벽하게 세팅 된 테이블과 스태프들의 온갖 섬세한 배려가 꼼꼼히 묻어나는 친화적인 서비스, 사람과 음식의 대화와 소란이 취하듯 어우러지는 분위기, 미각의 정점을 맛보게 해 줄 최상의 식재료에 가족을 위해 준비한 듯한 지혜로운 조리사의 요리, 나아가 그 전체가 한데 어울린 완벽한 공간까지 집합한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에겐 아직까지 '먹는다'는 행위와 '먹기 위한 공간'은 본능적 차원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지만, 음식 문화의 질적인 섭취보다는 '먹는 것'에 우선하거나 '맛있는 것만이 최상의 가치'라 믿는 단편적 접근들로 자긍심과는 상관없는 엉성한 우리 외식 문화의 조급성과 고급하지 못한 상업성만을 키워 놓았다. 그렇다고 '음식'과 '문화'에 대한 개념의 차이가 그쯤에만 머물러야 하는 걸까?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도 있는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이로써 나는 문화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을 때, 음식 문화 역시 그런 다양성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먹고 계산하는 기능만 지닌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음식도 문화의 일부란 인식이 예전보다 높아지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지금 우리 식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왠지 성급하다. 전통과 고전이 뿌리내리지 못 한 나라에서 퓨전과 미니멀리즘이 창궐한다는 것은 슬픈 희극 같고, 그렇게 우리 식문화는 늘 모순돼 왔다. 요리와 공간에 대한 원칙과 성찰이 없었기에 언제나 '적당한 기준'과 '대충'이란 고질적 타협이 자리한 건 아닐까? 시멘트 콘크리트 건물에 달랑 잔디 몇 줄 심는 것으로 고풍스런 유럽의 레스토랑 운운하는 건 차라리 촌극이다. 물론 식당의 존폐는 전적으로 고객에게 달려 있고, 손님만 들어 준다거나 적당한 투자에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할 순 있겠지만, 난 그런 이유들로 우리 문화의 정당한 가치가 편협한 일부에 의해 속박 당하고 퇴보하는 것에 대해선 단연코 반대한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무심코 했던 사소한 값의 지불이나 부당한 선택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개인의 숨은 권리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쯤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내가 까다로운 프렌치 스타일의 레스토랑을 경영하기로 마음먹은 후, 그와 관련된 공간 설계와 디자인, 시공에 이르는 작업들을 홀로 감수하며 최상의 식재료 확보를 위해 투쟁하고, 포크 하나에까지도 완벽을 원했던 건 기존 레스토랑들이 보여준 어설픈 서로의 흉내내기나 완성도와는 상관없는 우리 식문화의 초라한 현실이 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대한민국이 지닌 부조리한 여러 모습들을 투영해 볼 수도 있는 축소된 세상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마음 속에 자리한 이상적 레스토랑은 미켈란젤로의 장중하고도 섬세한 창조적 스케일을 닮은 공간이었다. 고객의 동선, 디자인과 사람의 조화, 기능의 편리함과 공간의 몰입성, 생명을 지는 자연과의 친화부터 그 안에 파묻히는 안락함까지, 잘 쓰여진 각본 같은 치밀한 구성과 계산은 전사의 사명감만큼이나 내게 필요했다. 하지만 사람이 중심이 된, 사람을 닮은 레스토랑을 만들기 위해 나는 6개월의 준비 기간 외에 수작업의 공사 기간만 2년여라는, 다시는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고통의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건축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지진아인 채 연필로 설계를 하고, 시공과 관련한 세세한 부분들을 진행하는 과정에선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부딪혔다. 극한 의견의 대립 앞에선 사흘을 드러누워 관철했고, 모순된 건축법과 싸워 17개월 만에 관련 허가를 얻어냈으며, 사욕에 찬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고 9시간을 투쟁하기도 했다. 힘든 현실 앞에 호접처럼 흩어진 졸렬한 군상들의 추상 따위는 기억조차 아련하다 해도 6개의 문짝을 손으로 작업하는 데 5개월, 중세 문양의 바닥을 재현하는 데 4개월, 열 뼘도 되지 않는 천장의 한 귀퉁이를 작업하는 데만 2개월, 수십 그루 나무를 옮겨 심는 데 보낸 두 계절 등의 태산 같던 노동의 세월들은 차라리 상처투성이인 승리 같기만 하다.



요리와 관련된 것들도 그랬다. 백악관까지 들어간다는 포크와 나이프를 수출하는 나라에서, 변변한 제품 하나 구할 수 없다는 건 참기 힘든 모욕 같았고, 그 수출용 제품을 얻기 위해 인천 변두리를 한 달 넘게 헤매 다녔다. 겨우 찾은 수출 회사에 간청, 공장용 샘플을 보기까지 2개월이 걸렸고, 다시 8개월이 지나서야 부족하나마 두 아이템이 빠진 상태에서 세팅할 수 있었다. 나머지를 찾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 테이블 웨어 풀 세트를 채워 넣은 것은 오픈 후 한 달 반이 지나서였다. 커피를 구하는 일은 또 어땠는가. 웬만한 고급 제품들이 수입되는 걸 알곤 있지만, 뭔가 우리가 접해 보지 못한 특별한 커피가 있을 것 같았다. 이탈리아인들이 전해준 소문 속 어느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난 곧장 로마로 날아갔다. 3박 4일의 일정 내내 그의 집 앞에 묵으며 간청했지만, 귀국 하루 전까지도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 그에게 "나는 아주 먼 한국이란 나라에서 당신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신의 커피 없이는 돌아갈 수 없기에,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난 모든 걸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진심을 보았을까? 굳게 다문 입술이 미소로 변하던 노인은 한 세기 동안의 비법이 간직된, 손에 꼭 쥐고 있던 그 커피를 내 품에 안겨 주었다. 그것이 지금 바티칸 성당과 로마 정부 청사 안에서만 마실 수 있는 안토니오 커피다. 그 과정 때문인지 난 이 커피의 맛보단 영혼을 더 사랑한다.



어떤 이는 나의 이러한 무모한 집착을 '르네상스 시대의 낙관적 클래식'이라고 했지만, 반면 비난과 의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난 나의 소중한 삶의 가치가 값싼 물질의 유익에 취하거나, 허상만을 바라는 요행 따위에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사막처럼 황량한 세상 가운데 소설 속 브휘에 노인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남자>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작은 유산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한 때 환경의 영향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기도 했던 내가, 지금은 상류 문화의 상징인 청담동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경영한다는 건 때로 양복을 걸치고 논을 메는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지도 모를 이러한 혼란은 80년 '광주'의 아픈 유년기를 보냈던 나의 환경적 특성과 성장의 시기에 기인한다. 그러나 역사란 진리의 수레바퀴와 같아서 사회의 의식 있는 부르주아가 깨어 있을 때 자본주의는 건전해 질 수 있고, 건전한 자본주의가 살아 있을 때 민주주의는 바로 설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몇 해 전 성공적인 레스토랑 운영으로 모 일간지 화제 인물난에 소개된 한 젊은 경영인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유한 계급 환경 속에서 자신이 성취한 생활을 즐기는 자세를 당당하게 표현했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부적절한 의식의 주장은 소외 받은 이들의 상처와 우려로 이어졌고, 바람 잦은 이 동네는 또 한 번 화해하지 못 할 상류민의 치외법권 지대가 된 듯했다. 지금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역시 유사한 환경적 조건을 지녔으므로 같은 비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부조리한 반문엔 굳이 휘말리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하는 것은 죄일까? 난 고급스러움이 사치의 단편처럼 폄하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일류를 꿈꾸는 건 죄가 아니다. 거기엔 구분되어야 할 분명한 가치의 차이가 존재한다. 상류라고 해서 일류일 수 없고, 상류가 아니라 해서 일류가 아닌 건 더더욱 아니다. 일류란 비싸고 싸고의 경계 점에 머무르는 단순한 이치가 아니며, 그것을 상징 짓는 건 브랜드의 소유나 통용보다 개인이 지닌 가치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 내가 일류 레스토랑의 이념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회에 대한 깨어 있는 의식을 통해 진정한 일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항공기를 만드는 것이 한 국가의 과학 기술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듯, 완성도 높은 레스토랑을 만들고 그 속에서 당당하게 교통할 수 있는 대중의 권리는 그 사회 인본문화 수준의 또 다른 척도다. 붓을 들었다고 모두 화가가 되는 게 아니듯 아무 레스토랑이나 일류가 되는 건 아니다. 최고란 값으로도 매길 수 없는 장인의 정신과, 변절하지 않는 명예, 그리고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애정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침묵하지 않는 지성의 부활을 통해 일류 국가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아가 이곳 청담동이 노동자나 대중의 눈에 혐오스런 존재로 배척 당하는 천민 자본의 이방 지대가 아니라,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한민국 상류민들의 아테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 나는 남도의 별미 요리를 접하며 자랐다.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 때마다 가족의 건강과 맛을 위해 기도했고, 열흘씩 걸리던 김장은 온 마을의 축제 같았다. 한 때 별난 세상의 음식 같던 프렌치 요리는 내게 배운다는 개념에 더 가깝지만, 미각의 끝과 끝은 어딘지 맥이 닿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금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요리는 '미슐랭 (Michellin : 1900년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 미쉐린에서 발간한 레스토랑 평가서)'이 선정한 전 유럽 스타 어워드 레스토랑과 '붉은 모자 (Red Chef's Hat : 최고의 조리장에게 수여되는 명예의 모자)'를 수상한 조리 장인들이 기술한 책들을 바탕으로 조리된다. 그 안에서 나는 어릴 때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꼬리찜과 흡사한 요리를 맛보고 놀라기도 했으며, 미슐랭 별 2개를 받은 프랑스의 어느 조리장이 이듬해 별 하나를 감점 받자 목을 매 자살했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간의 친구'인 '엔다이브(소화를 촉진시키고 간에 효능이 있는 벨기에 야채)'가 이름 모를 들풀에서 전세계 미식가의 야채로 퍼져나가게 된 다채로운 사실들에 흥분했다. 마치 사치스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철학적 기록과 요리에 대한 깊은 애정은 왜 굳이 어렵다는 프렌치 스타일을 추구하느냐는 물음에 명쾌한 답변을 내려준다.



지난 해 한국을 찾은 미슐랭 쓰리 스타의 프랑스 조리장 조엘 호부숑은 "가장 훌륭한 레스토랑은 고객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곳이며, 그것은 어떤 맛과 서비스보다 우선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고결한 가치가 무엇보다 우선한다던 장인의 말 속에서 나는 그들 조상이 르네상스 시대에 꽃 피웠다던 인본주의 정신을 깨달았다. 나는 단순한 요리의 기쁨만이 아닌 그 안팎에 존재하는 그들의 완벽주의 정신을 사랑한다. 가르송 사관학교 (웨이터, 집사 등을 양성하는 오랜 전통과 규율의 전문 교육 기관)에서 가르친다던 자로 재어 맞추는 세팅 과정이나, 다림질한 신문이 바로 펴지도록 가로 접는 훈련까지. 프랑스 음식이 어찌 혁명 전 황실 요리라 해서 그토록 매력적이겠는가. 난 모든 게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되는 우리의 흐트러진 모습을 그들 전통에 뿌리내린 원칙과 최선의 정신을 통해 치유 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상적 접근만이 실체를 가능하게 하진 않는다. 1백년 전통을 목표로 명예를 지켜가는 나의 레스토랑에선 반드시 최상급 고기와 치즈, 유기농법의 특수 야채와 과일, 살아있는 바다 생물만을 고집한다. 특급 호텔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입산 프라임급 쇠고기를 쓰고 있지만, 우리는 훨씬 높은 가격의 한우 고급육만을 사용한다. 한우가 지닌 깊고 풍부한 고기의 맛을 서양소에서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적의 생육 조건 속에서 사육된 청정우 가운데에서도 일등급 소량의 부위를 찾는 것은 물론, 최상 부위의 핵심만을 추려 써야 한다. 실제 매출액 대비 식품 재료 코스트가 호텔 레스토랑이나 일반적 기준 (30~35%)보다 월등한 42~48%를 넘는 이 같은 수치는 음식을 팔아 이윤을 내는 보편적 상식과 '낮은 투자로 높은 수익을 얻는다'는 통념에 비춰 보면 다소 이해하기 힘든 소신 같을 때도 있다. 게다가 38명에 이르는 스태프들은 모두 연금과 보험 혜택을 받는 정식 사원이다. (제조업 아닌 서비스업으로 이 같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우리도 언젠가는 파리의 가르송처럼 존중 받으며, 백발 노인이 될 때까지 열정을 잃지 않고 고객 삶의 일부까지도 공유할 날이 오길 바란다. 지금도 이곳 스태프들의 수첩에는 낯익은 고객들의 취향 (좌석, 와인, 요리 방식, 특이 사항 등)과, 서비스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일류 레스토랑이 되겠다는 신념은 이윤 추구만이 목표가 되는 우리의 현실과 맞서 싸울 용기가 없는 한 허상이며,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적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존 머포드 (도쿄 파크 하얏트 등을 디자인했다)는 그의 편지를 통해 스스로도 이례적이라 표현할 만큼 나의 이념과 결과에 깊은 신뢰를 보내 주었고, 벨기에 왕실 수석 플로리스트인 다니엘 오스트는 만나던 첫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마음을 담은 위로와 함께 세계 일류에 뒤지지 않는 레스토랑으로 성장하길 기원해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모든 것을 사려 깊게 관찰한 후 오랜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우정을 나누어 주었다. 넓은 세상에서 깊은 인생의 관조를 지닌 그들이 여기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련에도 꿈을 지탱하는 노인의 용기 같던 그것은 오랜 수고 뒤에 얻은 소중한 보상 같은 것이었다고 난 감히 생각한다.



인생이 연극 같다지만 레스토랑을 바라볼 때면 난 늘 불 켜진 무대가 생각난다. 좋은 대본과 연출, 뛰어난 무대와 배우, 화려한 조명과 음악, 돋보이는 의상과 소품, 격을 갖춘 행동과 대사, 그 모든 것에 반응하는 관객의 기대와 감동까지, 사람을 닮은 이 작은 공간에는 다양한 삶의 편린들이 존재한다. 선진 교육엔 이미 고급 식당을 이용할 때의 에티켓에 관한 학습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오랜 전통 속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 레스토랑처럼, 교실 밖 또 다른 학습 연장의 과정이 편식하지 않는 사고와 안목을 키우는 순기능의 역할을 한다고 그들은 믿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격식과 품위를 갖춘 레스토랑을 찾아 세심하게 준비된 요리를 맛보며, 사람에 대한 예절과 배려를 통해 성숙한 인격체로서의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시대의 정치도 예술도 문학도 사상도,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따른 내면사까지도 능히 대화하고 이해하며 호흡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 일류 레스토랑의 궁극적 목표다.



이 모든 고백과 주장들이 내겐 무척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 또한 어떤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신념에 대한 보상이나 긍휼 같은 위로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 같은 순수의 열정과 도전이 관습의 높은 벽이나 금전 따위의 헛된 실리적 논리 앞에서 좌절된다면 누가 다시 이러한 고난을 굳이 선택하고 나은 내일을 꿈꾸는 선한 개척자가 되려 하겠는가, 라는 두려움 말이다. 물론 일개 식당 하나를 운영하며 외식 문화의 첨병인 양 가치척도를 외친다 해서 혁명 같은 변화를 꿈꾸는 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미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맛이란 기억의 일부이고 오랜 세월 속에서 나오는 것이며, 열정과 지혜와 겸손을 담은 어머니의 사랑 같은 것이다. 나는 인생을 그릇에 담는 현명한 어머니와 같은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다. 그러니 지금은 기본부터 충실하자. 그런 후 우리에게도 비로서 미슐랭의 별 한두 개쯤 받을 수 있는 자랑스런 레스토랑이 나오지 않겠는가?



나는 10년 안에 그 꿈을 이룰 것이다.




*여러분들 '요리를 즐기는 것' 을 좋아하시나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요리를 즐기는 것' 이란 본인이 가보고 싶은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픈 분들과 약속을 정하고 예약시간에 맞추어서 공간에 맞는 옷차림(캐주얼 혹은 정장 등등)으로 단정한 후 레스토랑을 방문 해 그 날 준비된 레스토랑의 메뉴를 둘러본 후 주문을 하고 함께 곁들여지는 와인 혹은 칵테일 한잔, 지혜로운 조리사로부터 준비된 음식들을 접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삶에 대해 공유하며 대화하고 행복함 혹은 어떠한 감정을 느끼든 그 순간을 즐기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기억으로, 좋은 순간으로 남기는 것' 을 이야기 합니다.

저는 요리를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째 접어들었고 해외에서 요리를 한 지는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네요. 한국에서 휴가를 보낼 때를 제외하곤 외국에 있다보니 한국이 그리울 땐 인터넷 블로그나 뉴스를 통해 이러한 저러한 소식을 접하곤 합니다. 특히 요즘 소위 말하는 'SNS' 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한 곳이 아닌가 란 생각도 듭니다.
'서비스' 란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는 한국의 '외식문화' 가 외국의 '선진 외식문화' 와 비교해 보면 안타까울 때가 정말 많습니다. 레스토랑 예약문화, 노 쇼(레스토랑 예약 후 부재중으로 나타나지 않으시는 분 들), 빨리빨리 문화에서 오는 음식의 텀이 길어지어 컴플레인을 거시는 분 들, 서비스는 단순히 '공짜' 혹은 '무료' 라는 의식이 많은 분들로부터 팽배한 부분, 본인에게 맛이 없다는 이유로 인터넷에 비판 아닌 비난의 글을 올려 어쩌면 정작 열심히 땀흘려 기본 12시간씩 일하는 요리사들의 음식에 상처를 주는 분들(특히 이 부분은 손님들은 음식을 드시거나 서비스 후 돈을 지불하지만 세상에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요리사, 소믈리에 혹은 웨이트리스 등의 직업들이 사회적으로 아직 존경을 받는 직종은 아님에는 분명한 사실같습니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것들은 언젠가 개선되었으면 하는 부분들이네요.

저는 얼마나 외국생활을 더 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 저만의 철학과 경험이 담긴 멋진 공간을 만들어 레스토랑을 오픈하는것이 꿈입니다. 항상 마음속에 품고있는 이 꿈을 갖고 있지만 SNS 나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 외식문화에 대해 접하면 아직까지 많은 요리사들은 고객들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네요. 저는 언젠가 요리사 중 한 사람으로서 이런것들이 개선되어지는데 작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참고로 윗 글은 제가 삶에 지치거나 직업에 대해 회의감을 갖을 때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을 때 읽는 글입니다. 10년이 지난 글이지만 이제와서야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아마 저 글이 처음 써졌을 때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란 생각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을 겁니다.

요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 직업은 좋아하지 않고 열정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 입니다. 하루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16시간을 서서 땀흘리며 일하고 사소한 것 하나 완벽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고객의 평가는 추운 겨울날 깨진 얼음이 스치는 것처럼 날카로우며 그래도 고객들 중 몇 분들이라도 식사 혹은 서비스 후 '좋은 시간 보냈다' 혹은 '놀라운 음식이었다' 라는 칭찬에 온갖 피로가 싹 날라감을 느끼는 직업 중 하나입니다. 그리하여 내일도 내일모레도 다시 한번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도 하네요. 그리고 동시에 하루에도 12번씩 그만두고 싶을때가 있는 직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뭐, 다른 여타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피지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직종에 종사하시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얼마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네요(....)
먼 미래에는 이 작은 소망들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참고로 저는 윗 레스토랑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글이 너무 좋고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퍼온 글입니다)
출처:http://blog.naver.com/luke_suh/150126038979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절름발이이리
13/02/07 14:02
수정 아이콘
좋을 글 감사합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픈 사람이 있는지 먼저 묻는게 예의가 아닙니까 라고 드립을 치고 싶지만 제가 칠 드립은 아니긴 하군요.
불량공돌이
13/02/07 14:10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2)
저도 그 드립을 치고 싶지만 저 역시 해당사항이 없으니 다음분께 넘기겠습니다.
지나가다...
13/02/07 14:42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3)
그런데 함께 시간을 보내고픈 사람이 있는지 먼저 묻는게 예의가 아닙니까? 흐흐흐
(요컨대 저는 해당 사항이 있습니다.ㅠㅠ)
Je ne sais quoi
13/02/07 14:1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다만 한국에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한민국 상류민'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OurFreedom
13/02/07 14:1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즘 저의 관심사인데, 정말 많이 배우는 글입니다.
13/02/07 14:24
수정 아이콘
많은걸 느끼게 하는 글이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13/02/07 14:2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요리에 개인적으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자기 일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그 분야에 관계없이 존경합니다.
김연아
13/02/07 14:53
수정 아이콘
이런 댓글 남기기 조심스럽습니다만,
팔레 드 고몽이 여러모로 괜찮은 식당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요리사를 바꿔야 하지 않나;;;; 그리 생각합니다.
아님 가격을 현재의 최고급 레스토랑 선에서 조금 낮추거나.
본문에도 나오는 조엘 호부숑의 식당과 비교하면 맛에서 가장 수준 차이가 납니다.

라고 쓰면서도 우리나라에서 팔레 드 고몽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고 있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도 없긴합니다ㅠ
저글링아빠
13/02/07 15:05
수정 아이콘
팔레 드 고몽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갈수록 디그레이드되고 있는 참이라서 그렇죠.
잘 아시겠으나 한국에서 정상급 프렌치 레스토랑을 로컬로 운영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참 어려운 일이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정도로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망하지 않고 있고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는 놈이 강한거니까요.

참 괜찮았지만 변했거나 없어진 많은 프렌치 레스토랑/비스트로의 길을 따라가지는 않았으면 하는 식당입니다.
차라리 가격을 올렸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여튼 본문글의 십년전의 열정을 대표님(아직도 대표님이신가요?)이 척박한 현실 앞에서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저런 일에는 열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연아
13/02/07 15:10
수정 아이콘
네 그래서 저도 댓글 달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웠는데, 요샌 진짜 좀 그래요. 차라리 말씀대로 값과 수준을 동시에 올렸으면 좋겠네요.
저글링아빠
13/02/07 15:13
수정 아이콘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쉽죠. 이렇게 말하는 저도 발길하지 않은지 꽤 되었습니다.
저글링아빠
13/02/07 15:17
수정 아이콘
쓸데 없는 대화로 찬물을 끼얹은 게 아닌가 해서..

작년에 본 영화 중 스시장인 지로의 꿈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스시집 주인의 삶을 담담하게 쫓아가는 다큐 스타일의 영화인데,
위와 같은 진실성으로 손님을 대하며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한 사람의 모습이 오롯이 드러나 울림이 큽니다. 이런 길을 걷고 계신다면 한 번 보시길 추천드리고 싶네요.
ChefRyan
13/02/07 15:18
수정 아이콘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분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묵묵히 지켜보는 것 뿐일 것 같습니다. 한가지 기쁜 사실은 요즈음 한국에서 젊은 세대의 쉐프들이 한국 외식문화 발전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열정' 만 가지고 버티는건 힘에 부칠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댓글들 감사합니다.
runtofly
13/02/07 15:23
수정 아이콘
와이프와 교제 1주년 기념해서 찾았던 미피아체서 먹었던 디너코스.
출장으로 갔던 파리에서 방문한 미슐랭 스타받은 (몇개인지는...) lasserrie에서 먹었던 디너코스..
본문에서 말하는 한없이 행복했던 식사를 떠올리면 이 두번의 식사가 떠오릅니다.
반대로 작년에 찾았던 서래마을의 파울로 데 마리아 같이 맛은 좋은데 서빙이라든가 기타 요소가 부족했던 식사도 떠오르구요..
완벽에 가까운 식사는 맛도 중요하지만 인테리어, 세팅, 서비스품질... 등등 정말 챙길게 많죠..
최근에 그라노에 갔었는데 서버들이 서빙도 잘하고 메뉴에 대한 숙지도 잘되어 있어서 아주 좋았어요...
마님이 음식을 맘에 들어하지 않아서.. 한국식(?)으로 푹 익은 해물이 아닌 수분과 육즙을 느낄 수 있는 촉촉하게 익혀낸
해물이 익숙치 않은 사람에겐 비린내로 느껴지는 듯 하더라구요.. 워낙 예민한 식감을 지녀서 그럴수도 있고..
팔레드 고몽 이라..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ChefRyan
13/02/07 15:29
수정 아이콘
저도 한번도 가본적은 없습니다. 지난번 휴가 때 가려 했지만 어쩌다보니 못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이번 여름 휴가에는 꼭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완벽에 가까운 식사에는 옆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것 입니다(...)하하
runtofly
13/02/07 15:46
수정 아이콘
맞아요..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식사가 가장 완벽한 식사지요.
보봉보
13/02/07 18:54
수정 아이콘
양식은 아니지만 동종업계인입니다.

지난번 글도 그렇고 스토리가 좋고 신념이 와닿아서 아름답네요.

잘 읽었습니다.

조만간 본인의 철학을 엿볼수 있는 글을 기대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396 [정치] 채수근 상병 순직 특검법 21대 회기 중 본회의 통과 [60] 사브리자나4502 24/05/04 4502 0
101394 [일반] 최근 내 삶을 바꾼 제품들 총 6선 - 전구, AI에서 태블릿 pc까지 [33] Kaestro4996 24/05/04 4996 9
101392 [일반] 수학은 커녕 산수도 헷갈리는 나, 정상인가요? [67] 만렙법사7527 24/05/03 7527 4
101391 [일반] 가정의 달 5월이네요 [8] 피알엘5682 24/05/03 5682 4
101390 [일반] 키타큐슈의 등나무 정원, 카와치후지엔 (河内藤園) [4] 及時雨5103 24/05/02 5103 4
101388 [일반] 영화 스턴트맨 보고(스포 미량) [17] PENTAX3454 24/05/02 3454 2
101387 [일반] 소장하고 있는 영화들을 다시 꺼내어 볼때면 [16] 머스테인3968 24/05/02 3968 0
101386 [일반] MV의 유튜브 조회수는 믿을 수 없다: 유튜브 프로모션 [99] 최적화10941 24/05/02 10941 10
101385 [일반] 비트코인, 미국 재정적자, hard asset, 투자, 장기적 관점 [148] lexial8137 24/05/02 8137 7
101384 [일반] 합격보다 소통을 목표로 하는 면접을 위하여(2) - 불명확한 환경에서 자신을 알아내기 위해 안전지대를 벗어나고, 이를 꾸며서 표현하는 방법 [2] Kaestro2530 24/05/02 2530 3
101383 [일반] 최근 읽은 책 이야기(교양서 셋, 소설 둘) [6] 수금지화목토천해2789 24/05/02 2789 3
101382 [정치] 오늘(2024.5.1.)부터 온라인상에 병역 면탈을 조장하는 글을 쓰면 형사처벌 [22] Regentag2996 24/05/01 2996 0
101381 댓글잠금 [일반] [후원] 유니세프 페이커 패키지 기부 동참 이벤트 [1] 及時雨4804 24/05/01 4804 0
101380 [일반] 떡락하는 4차 산업혁명 [135] 차은우12802 24/05/01 12802 2
101378 [일반] 합격보다 소통을 목표로 하는 면접을 위하여(1) - 20번의 면접을 통해 느낀 면접 탐구자의 소회 [21] Kaestro4168 24/05/01 4168 7
101377 [정치] 매우매우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유통업체 회장 [21] 매번같은5499 24/05/01 5499 0
101376 [일반] 뉴욕타임스 4.21. 일자 기사 번역(사기가 급증한 디지털 시대) [5] 오후2시5346 24/04/30 5346 4
101375 [일반] 맴찔이가 외국 나가면서 느끼는 점 [27] 성야무인7685 24/04/30 7685 3
101374 [일반] 10km 달리기 추천 (서울하프마라톤) [33] 무민4061 24/04/30 4061 8
101373 [정치] K-패스가 5월 1일부터 시행된다고 하니 신청해보세요. [4] lemma3744 24/04/30 3744 0
101372 [일반] 3년간 역사 글을 쓴 회고 [19] Fig.14460 24/04/30 4460 43
101371 [일반] 연휴 앞두고 드라마 추천드립니다. [6] 뜨거운눈물5363 24/04/30 5363 1
101370 [일반] 엔터 vs it플랫폼 [37] kurt7656 24/04/30 7656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