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7/14 12:51:37
Name 두괴즐
Link #1 https://brunch.co.kr/@cisiwing/17
Subject [일반]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을 책임지는 BGM (발칙한 아이유/ 에세이)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을 책임지는 BGM
-아이유의 느낌표



아이가 태어난 지 15개월이 되었다. 이제는 떠나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첫 가족 여행을 준비했다. 근로자의 날이었고, 그다음 날은 강의가 없어서 떠나는 일정이었다. 아내의 픽은 거제도였고,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바보 남편의 미션은 여행의 BGM을 고르는 일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기에 이는 매우 중한 일이었다. ‘아기와 함께 가는 여행의 추천음악’을 검색해 보니 ‘모차르트’, ‘민요 모음’, ‘동요 모음’ 따위가 나왔다. 보자 하니 이 음악을 들으면 아이의 인지 능력이 좋아지고,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되며, 잘 하면 천재가 된다고 적혀 있었다. 나로서는 아이를 천재로 만들 생각이 없기에 이런 노래는 듣지 않기로 했다. 아가의 생각도 같았다. ‘안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해야 하는 일, 그러니까 모래사장에서의 모래 촉각 놀이, 몽돌해수욕장에서의 몽돌 촉각 놀이, 목재체험관에서의 목재 촉각 놀이, 아기 풀장에서의 수영 등 할 것도 많은데, 고막은 내버려 줘’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물론 15개월의 아기는 말은 못 한다.



아내와 나의 음악 취향은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학창 시절 나는 서태지 팬이었고 아내는 신화 팬이었다. 아내에게 서태지 음악은 시끄럽고 한물 간 음악이었고, 나에게 신화는 ‘무슨 노래가 있었지?’였다. 그런 우리에게 맞는 음악을 찾는 것이 나의 과제. 답 없는 문제에도 끝내 답을 내고야 마는 인류의 일원인 나도, 결국 답을 찾았다. 그러니까 아이유였다. 국민 여동생인 그녀. 지금도 여동생인가?



오빠가 좋다는 말을 삼 단 고음에 실어 외쳤던 당시의 아이유는 국민 여동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국가의 국민이 아니었기에 하늘에 뜨던 UFO 보듯,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 UFO는 종종 나타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홀연히 사라졌다. 이런 안일한 생각을 하던 2015년의 어느날 'CHAT-SHIRE'가 나왔다. 아이유가 전권을 잡고 프로듀싱한 첫 앨범이었다. 이 음반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CHAT-SHIRE'는 여러모로 색달랐고, 논란도 상당했다. 로리타 콘셉트 논란, 소아 성애 묘사 논란, 음원 폐기 운동 등 찬반 여론도 뜨거웠다. 그 논란에 일부 공감했고, 또 일부에는 나 원 참했다. 무엇보다 나로서는 이 앨범을 통해 아이유가 예쁜 노래를 부르는 인형 같은 가수가 아니라 도발적인 아티스트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유는 국민 여동생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지은이라는 개인과 아이유라는 캐릭터 혹은 팀 사이에는 무지개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는 아티스트는 스물셋의 나이에 아주 발칙한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누군가는 당황했고, 누군가는 신경질이 났고, 또 누군가는 ‘이게 누구야!’했다. 나는 느낌표가 되어, 그 도발에 응해왔고, 그 답을 이번 여행에 내놓았다.



거제도로 향하는 스포티지의 무대에서 아이유는 불렀고, 아기는 춤췄으며, 아내는 “응, 노래 괜찮네”했다.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이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DayInTheLife
23/07/14 13:21
수정 아이콘
저는 아이유의 팬이라기엔 막 열성적이지 않은 일반 리스너라고 생각하는데, 스물셋은 정말 놀랐습니다. 흐흐 이런 일상글, 음악글 너무 좋아요!
두괴즐
23/07/14 16:52
수정 아이콘
저도 그랬어요. 지금은 관심을 갖고 꾸준히 듣고 있는 가수가 되었지요. 최근 곡도 좋고, 롱런하길 응원하고 있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플프리터
23/07/14 23:22
수정 아이콘
아이유, 성시경 이거 두개면 대부분 차안에서 불만이 없지요.
두괴즐
23/07/16 13:00
수정 아이콘
네. 맞아요. 호불호가 심하지 않은 가수이지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9298 [일반] 서이초 교사 사건 유족의 글 - 누가 죄인인가? [143] 일신15015 23/07/25 15015 21
99296 [정치] 우리는 계몽 성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 [14] 자급률8477 23/07/25 8477 0
99295 [일반] 신림 칼부림 MBC 조작 영상 - JTBC 사건반장 [93] 만찐두빵16951 23/07/24 16951 26
99293 [정치] 국토부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선언은 일종의 충격요법" 사업 재개 시사 [75] 검사11230 23/07/24 11230 0
99292 [일반] 오송 주민의 입장에서 본 이번 사고의 문제점 [34] kurt11064 23/07/24 11064 4
99291 [정치] 조선일보 일본 특파원: ‘후쿠시마 취재’를 거절한 이유 [18] 기찻길9797 23/07/24 9797 0
99290 [일반] 군인권센터 "채수근상병 동료 주말 출타·면회 전면통제" [46] 만찐두빵12313 23/07/24 12313 9
99289 [일반] 신림역 흉기 사건을 두고 조롱하는 사람들.jpg [137] 깐프17820 23/07/24 17820 19
99288 [정치] 오송 침수사고 경찰이 출동조차 안했다는 뉴스에 경찰측에서 블랙박스 공개 [32] Schna16165 23/07/23 16165 0
99287 [일반] 오송 지하차도 참사, 충북경찰의 반박+블랙박스 공개로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41] 동훈15362 23/07/23 15362 9
99286 [일반] 다시 다가온 모기철,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41] valewalker6832 23/07/23 6832 2
99285 [일반] 감각을 되살리고 픈 이야기. [10] aDayInTheLife5378 23/07/23 5378 3
99284 [일반] 뉴욕타임스 7.16. 일자 기사 번역(인구구조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 [8] 오후2시8096 23/07/23 8096 9
99283 [일반] 점점 초등도 어린이집/유치원 같아지는 것 같아요. [30] 착한아이7510 23/07/23 7510 29
99282 [정치] 與 "풍수학 최고권위자에 또 '무속 프레임'…野 말바꾸기 졸렬" [103] 유료도로당14231 23/07/23 14231 0
99281 [일반] <업그레이드> - 기시감이 느껴지지만. [12] aDayInTheLife5353 23/07/23 5353 1
99280 [일반] 전기차와 휘발유차의 순수 연료 가격 효율 [82] VictoryFood10047 23/07/23 10047 4
99279 [일반] 다이어트 순항중에 2달만에 술 마신 후기.jpg [3] 2023 lck 스프링 결승 예측자insane7164 23/07/23 7164 1
99278 [일반] 평범하게 살아가는 척 [1] 여기에텍스트입력5858 23/07/23 5858 5
99277 [일반] [팝송]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 새 앨범 "Council Skies" [3] 김치찌개4249 23/07/23 4249 0
99276 [정치] 대통령실 "초등 교사 극단 선택은 종북주사파가 추진한 학생인권조례 탓" [253] 된장까스20724 23/07/22 20724 0
99275 [일반] "인종차별"적 시험낙제자들이 보상으로 18억달러를 받을예정 [93] 숨고르기13105 23/07/22 13105 5
99274 [정치] 〈원신〉여름축제 행사장 '폭탄테러' 예고, 행사중단 및 해산 [20] 기찻길7659 23/07/22 765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