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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012/01/25 14:18:18 |
| Name |
PoeticWolf |
| Subject |
이 나이에 벌써 빚이 얼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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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사정 때문에 명절 때면 항상 외삼촌 댁에 번갈아 가며 모입니다. 작년엔 둘째 삼촌 댁이었고 올해는 막내 삼촌 차례입니다. 아내가 입이 부르트도록 준비한 산적과 잡채 등을 챙겨 어머니 집에 가서 한 차례 식사를 하고, 동생과 어머니를 동승시켜서 막내 외삼촌 댁으로 갔습니다. 이미 도착한 삼촌들, 이모 식구들로 집안이 와글와글합니다. 숙모들과 이모는 부엌에 계시고 삼촌들은 거실에 계시는 풍경이 여전합니다. 사촌 동생들은 방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이들 크는 건 매년 새롭습니다.
막내 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알아주는 수재에 착실한 분으로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저희 어머니가 늘 예뻐하시고 자랑하시는 막내 동생이기도 합니다. 또한 어머니 큰 병 앓고 누워 계실 때 집 가까이 사시는 막내 삼촌과 숙모님이 가장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셨고, 저 결혼할 때 어마어마한 축의금과 결혼 준비금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에게는 학창시절 제 책상에 있던 새파란 영어 사전의 원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줄이 좍좍 그어져 있어 포켓용 사이즈가 아니었다면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던, 어느 날 어머니가 사전이 커 가지고 다닐 수 없다고 불평하던 저에게 주셨던 그런 사전이었습니다.
저나 아버지나 상당히 안 좋은 버릇이 하나 있는데, 바로 뭘 시작하려고 마음 먹으면 무엇보다 그 분야와 관련된 도구를 사기 시작하고, 그 도구 산 것으로 성취감이나 보람의 상당 부분을 미리 느껴버린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에는 그래서 오래된 새 테니스채와 탁구채가 벽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고, 문제집은 학년 별로 되팔아도 될 만큼 상태가 좋았습니다. 그런 제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처음 영어란 걸 접하면서 각종 영어 사전 - 책상용, 휴대용 - 을 요구한 건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해보겠다라는 의지의 천명이기도 했고, 어머니 입장에선 이번에도 속아줄까, 말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사전이 저희 집에서는 비싼 책이었기 때문이죠.
어머니는 항상 징글징글하게 돈을 아끼셨습니다. 아버지가 종교계에 몸을 담고 계시다가 뒤늦게 아무런 상업 지식 없이 장사라는 세속 생활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집안 사정이 좋았을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처럼 용돈 좀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물론 몇 번 졸라서 받아내긴 했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도 IMF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생활비가 안 들어오는 때가 더 많아짐에 따라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밥 사먹을 돈도 없이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아무튼 전 입학 선물로 받은 큰 사전이 무거워서 학교에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들고 다니며 영어 단어도 외우고 그래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휴대용 사전이 필요하다, 라고 계속해서 어머니를 졸랐습니다. 공부하겠다는 아들 이길 어머니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어머니는 알겠다고 하시더니, 어느 날 전혀 면학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경망스런 파란 껍데기 영어 사전을 주셨습니다. 이미 종이 귀퉁이는 죄다 말려 들어가 있었고, 책등은 거의 떨어져 제본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거기다가 거의 모든 중학 수준 단어마다 줄이 좍좍 그어져 있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게 뭐냐며 실망하는 저에게 어머니는 “막내 삼촌이 쓰던 거다. 잘 써라.”라고 하셨습니다. 입을 심통스럽게 삐쭉 내밀었지만 사실 중1짜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전은 제가 가진 유일했던 한영, 영한 부착 사전이라 꽤나 손에 오래 두고 봤습니다. 게다가 삼촌이 공부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전 주요 단어가 무엇인지 미리 파악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공부가 생각보다 편리해졌습니다.
그 사전이 한 장 한 장 떨어지고, 영어는 제 생계 방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동생과 제가 가끔 용돈처럼 드리던 돈으로 생활비를 하셨기 때문에 집은 항상 컴컴하고 추웠습니다. 학교 끝나고, 혹은 회사 끝나고 들어오면 어머니는 기우는 해를 쫓아 겨우겨우 책을 보고 계셨고, TV 소리가 크면 전기세가 많이 든다고 TV도 소곤소곤 보셨습니다. 보일러도 정말 추울 때나 켰지, 보통은 집에서 잠바나 스웨터를 입어야 했고, 뜨거운 물을 쓸 때도 어머니는 화장실 안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를 가늠하시며 보일러를 미리미리 끄셨습니다. 가끔 샤워를 다 마쳤겠거니 오해하시고 보일러를 끄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아들이나 딸한테 싫은 소리도 듣곤 하셨습니다. 집안에 테이프도 하나 없었습니다. 어디 상자에 붙어 온 스티커나 전표를 오려서 테이프 대용으로 모아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나가면 돈 든다고, 누가 대접하는 거 아니면 절대 외출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는 게 장남으로서 참 화가 났습니다. 호강을 시켜드릴 능력이 되지 않으니 그저 만만한 어머니께 용돈 올려 드릴 테니 이렇게 궁상맞게 살지 말자고 큰 소리를 쳐버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렇게 벌벌 떨며 작동하시던 보일러 스위치를 무심하게 켜고, 전등 스위치를 망설임 없이 켜고, 컴퓨터를 일부러 며칠 씩 끄지 않고 켜두었습니다. ‘못된 것’과 ‘못난 것’은 그 철자만큼이나 가깝고 비슷한 사이인가 봅니다.
그런 제가 어느 날 아내를 데리고 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역시나 돈 걱정부터 하셨습니다. 모아둔 돈은 있냐, 아니요. 집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신혼부부전세자금대출이란 게 있어서 얼마든지 대출받아 살 수 있어. 빚지고 살면 나중에 힘들다, 괜찮아 나 젊잖아.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셨고, 저는 일을 할 수 없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머니가 또 노파심을 발동시키고 계시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방에서 통장을 하나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거기엔 무려 오천만원이란 돈이 있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머니를 쳐다봤습니다.
“그 동안 엄마가 너 장가갈 비용 모아뒀다.”
“엄마가 돈이 어디 있어서? 일도 안 하면서.”
“안 쓰는 게 버는 거니까, 되도록 안 쓰면서 살았지, 뭐.”
충격이었습니다. 한 달에 고작 50~60만원도 채 못 드린 게 다고, 그것도 원채 직장을 잘 옮기는 터라, 본격 철새 생활과 연애 시작하면서 못 드린 적이 더 많았는데 그게 지금 오천만원이 돼서 저한테 돌아온 겁니다. 동생도 어머니한테 현금 자체를 많이 드리지는 않는 데 말입니다. 늘 돈 한 번 실컷 써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시던 어머니는 사실 그럴 수 있었음에도 언제일지 모르는 아들놈 결혼을 위해 어둡고 추운 마루를 기꺼이 견디시고 같은 교회 집사님들 모임에도 안 나가시면서 당신 소원 따위 마음에 없는 척 사셨던 겁니다.
“이 돈을 내가 어떻게 받아. 나 못 받아. 엄마 가져.”
“아냐, 네가 가져야 내가 편해. 너도 장가가서 사람 구실 해야지.”
잠깐 실랑이를 했지만 당장에 살 집이 필요했던 제가 졌습니다. 애초에 이길 생각이 없었던 실랑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옛날 사전의 주인이었던 삼촌이 빌려주신 돈으로 결혼을 준비하고,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서울 변두리에 조그마한 빌라를 전세로 얻어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때, 엄마의 발품으로 삼촌의 사전을 빌려 공부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벌이가 시원찮아 어머니께 용돈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촌께 그때 사전 잘 썼다고, 감사하다는 말씀도 한 번 못 드려봤네요.
어머니는 인생의 큰 과제인 아들 장가 보내기를 완수하시고도 여전히 지독하게 아껴 살고 계십니다. 이제 그 모습을 매일 볼 수는 없지만 어머니의 옷차림과 부엌 살림을 보면 짐작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잘 사는 삼촌 댁에 오니 그런 게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슬쩍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왜 아직도 아껴 살아? 00(동생) 결혼 자금?”
“그것도 그렇지만, 쟤는 너 같이 바보가 아니라서 미리미리 다 저금하고 있어. 난 00 걱정은 안 해.”
“그러면? 이제는 그냥 좀 편하게 살아.”
“원래 사람은 자기가 쓸 수 있다고 다 쓰면 안 돼. 여력이 된다고 다 써버리면 다음 세대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어른이 됐으면 쓸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어도 참았다가 남겨 줘야지. 최대한 내가 살다간 흔적이 폐가 되면 안 되도록 해야 하지 않니?”
할부 제도를 찬양하며 소비 생활을 해왔던, 그러느라 어머니 용돈을 깎고 또 깎아왔던 아들놈에게 이젠 폭넓은 절약 정신까지 물려주려 하십니다. 어머니를 통해 삼촌에게 물려 받은 사전으로 영어를 편하게 공부했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남자는 엄마랑 아내 말 들어 나쁠 것 하나 없다는 말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자식은 끝까지 자식입니다. 죽어서도 난 엄마 자식입니다. 그래서 결혼 후 세배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을 어머니가 아들 그릇에 음식 담듯이 꾹꾹 눌러 담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래 사셔야 한다는 말을 고명처럼 얹습니다. 능력 없는 아들에게 5천만원은 큰 빚입니다만, 그게 마음까지 억누르진 않습니다. 그저 그거 상환할 때까지 어머니가 건강히 살아 계셨으면 합니다. 그것 뿐입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2-01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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