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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28 23:11:32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왜란이 끝나고 - 왜란종결자
실수로 유게에 올려버렸네요 ㅠ;;; 다시 자게로 돌립니다.


이 글에서는 전후에서 현대에 이르는 이순신에 대한 평가들을 대충 검색해서 올려보겠습니다. 너무 많다 싶으면 마지막에 총평만 봐 주세요. 이순신, 그 이름에 대한 저의 평가입니다.


진도 명량의 동상입니다. 높이 30미터로 한국 최대라고 하네요. 2008년에 세워졌습니다.

1. 조선의 기록
사관은 이순신의 전사를 다룬 기사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부음(訃音)이 전파되자 호남(湖南)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어진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 펴지 못하게 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순신을 병|신년4168) 과 정유 연간에 통제사에서 체직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왔겠으며 양호(兩湖)가 왜적의 소굴이 되겠는가. 아, 애석하다."

보통 장수를 얘기할 때에 중국의 옛 장수들과 비교하는 경향이 크죠. 옛 장수들도 이보다 더 할 수 없다는 것은 당대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난중잡록 1600년 편에 인용한 달천몽유록은 국문학의 몽유록계 혹은 몽자류 소설 중의 하나로... 에 설명은 그만 하고 윤계선이 암행어사로 가다가 충주에서 잠을 자는데 귀신들이 나타나서 함께 애기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전쟁의 참상과 함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들의 혼령이 나타났는데 그 중에 상석에 대장군이 앉았다고 하죠. 혼령들은 각기 자신의 충의를 말하였고, 꿈에서 깨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장군은 이순신이었다고 합니다. 그 부분 중 하나를 옮겨 봅니다.

"군통제사는 진실로 하늘이 낸 거룩한 분으로, 일선 장수에 임명되자, 변경에 크게 자리잡고 한산섬에서 적의 바닷길을 끊으면서 여섯 돌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장수를 바꾼 일은 본래 적의 꾀에서 나온 것이요, 장군이 군사를 내는 시기를 그르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균(元均)이 싸움에 패한 뒤에 아홉 척의 배와 남은 군졸로써 여러번 벽파진(碧波津)에서 싸워 이겼으니 그 공은 종에 새겨 길이 남길 만한 일이요, 노량(露梁) 싸움에서 공이 임종할 때에 죽음을 숨기고 깃발을 흔들고 북을 쳐 싸움을 계속할 것을 분부하자 아들이 그 명령대로 하여 산 중달(仲達)을 달아나게 한 것처럼 하였으니, 그 꾀가 더욱 기이하다 하겠습니다."

저번 편에서 "싸움이 급하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이 진짜일까 의심했는데, 이를 보면 최소한 그 사실 자체는 사람들에게 퍼져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참고로 여기서 원균도 나오는데 옮겨 보죠.

"여러 귀신들이 손뼉을 치며 웃으므로 그 까닭을 물으니 통제사 원균(元均)을 기롱하고 있는 것이었다. 배는 불룩하고, 입은 삐뚤어지고, 얼굴빛은 흙빛이 되어 기어왔으나 퇴짜를 맞고 참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언덕에 의지하여 두 발을 죽 뻗고 주저앉아 주먹을 불끈 쥐고 길게 탄식할 뿐이다. 파담자 역시 크게 웃고 조롱하다가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니, 그것은 한바탕 꿈이었다."

어떤 무리의 말과는 달리 이미 이 때부터 이순신과 원균의 이미지는 확고했습니다.

그럼... 조선 시대 인물들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를 보겠습니다.

“이순신은 백 번 사운 장군으로서 한 손으로 친히 무너지는 하늘을 붙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재질을 가지고도 운수가 없어 백 가지 재능을 한 가지도 풀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영의정 서애 유성룡

“황천에서 다시 일으켜 볼 수 없음을 생각하고 백 명을 대신 바치고도 물려 올 수 없음을 안타까이 여깁니다.”
충무공 제문에서 영의정 오윤겸

"절개에 죽는다는 말은 예부터 있지만, 제 몸 죽고 나라 살린 것, 이 분에서 처음 보네."
현중사 제문 숙종대왕

"이순신이 나라를 위하는 충성과 적을 방어하는 재주는 옛날에도 그 짝이 없었습니다. 싸움터에 이르러 머뭇거리는 바도 또한 병가(兵家)의 이기고자 하는 계획인데, 기회를 보고 정세를 살피고 있는 것을 가지고 방황하면서 전투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죄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상께서 만약에 이 사람을 죽인다면 사직이 망할 것이거늘 어찌하려 하십니까."
정경달의 변호 기록 내용

이후 그를 추모하는 비나 동상, 기타 여러 가지들을 만든 것은 이글루스 zert님의 정리를 보는 게 나을 듯 합니다. 너무 많네요. -_-;
http://viruns.egloos.com/5116495

결론은 친일파고 독재정권이고 독립운동가고 이순신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그저 무릎 끓을 따름이었다는 거겠죠. 누구에게 이용당해서 그 이름이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위대한 이름이기에 다들 이용하려 한 것 뿐이었죠.
일제에 맞서기 위해,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그 때에도, 심지어 한국전쟁 기간에도 이순신을 추모하는 사업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유명하니 말 할 필요 없겠죠 ^^;

2. 중국 장수들
연려실기술에서는 그의 최후에 대해 이렇게 말 하고 있습니다.

"19일 사경에 적이 진린을 포위하여 형세가 몹시 급하므로 순신은 바로 앞에까지 가서 구원하였다. 순신이 화살과 돌을 개의치 않고 직접 손으로 북을 치다가 갑자기 탄환을 맞고 넘어졌다. 순신의 죽음을 듣자 진린은 배에서 엎어지고 넘어지기를 세 번이나 하면서, “함께 일할 이가 없구나.” 하였으며, 남쪽 백성들은 순신의 죽음을 듣고 쫓아와 골목을 메우고 곡하였고, 시장에 간 자는 술자리를 파하였다. 상여가 돌아오자 남도의 선비들은 글을 지어 제사를 지냈으며, 노인과 어린이들도 길을 막고 곡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명병도 고기를 물리고 먹지 않았다."

진린은 그의 전사를 알리며 이렇게 말 하였죠.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은 앞장서서 싸우다가 탄환에 맞아 운명하였습니다. 본관의 충성은 전하께서 잘 알고 계실 것이니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순신에 대한 진린의 평가입니다.
"有經天緯地之才補天浴日之功"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그럼 실록에서 볼 수 있는 명나라 장수들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를 모아 보죠.

“이순신은 마음을 다해 왜적을 토벌하다가 끝내 전사하였으니, 저는 너무도 애통하여 사람을 시켜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국왕께서도 사람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소서. 또 그 아들을 기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순신과 같은 사람은 얻기가 쉽지 않은데 마침내 이렇게 되었으니 더욱 애통합니다.”
- 형개

“이순신(李舜臣)은 충신입니다. 이러한 자가 십여 명만 있다면 왜적에 대해 무슨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조여매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이순신(李舜臣)이 혈전을 벌이다가 죽었는데, 저는 그를 직접 만나보지는 못하였으나 탄복할 만합니다. 그의 자손에게 포상하여 그 충렬을 정표(旌表)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 마귀

“이순신(李舜臣)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자손을 녹용(錄用)하고 봄 가을로 치제하는 일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필시 잘 거행하실 것입니다."
- 서관란

“재차 나와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이순신(李舜臣) 같은 자들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쳤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저의 군사가 대첩을 거둘 수 있었음에도 하늘의 뜻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길을 잘못 들어 마침내 적추로 하여금 전군(全軍)을 철수하여 건너가게 하였으니, 한스럽습니다. 대개 대소 장관들이 각자 생각이 다르고 호령이 여러 곳에서 나와 제동(制動)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었으므로 성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조금도 자랑할 만한 공이 없습니다.”
-유정

이렇게 명나라 장수들은 이순신을 극찬하고 있으며, 마지막에 이순신을 방해한 유정조차도 자기가 한 게 없다면서 이순신을 칭찬하고 있죠. 98년 11월 30일자를 보면 군문 형개가 그의 전사를 슬퍼하며 이미 따로 제사를 지냈고, 조선에서도 제사를 지내라고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재밌는 게 이 때 이순신의 직품이 정 1품이라고 돼 있네요. 이전에 나온 명군 수군도독설에 힘을 실어 주는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때 예조는 제사를 지내는 게 당연하긴 한데 명에서 저렇게 말하니 따로 제사를 지내야 될까에 대해서 선조에게 문의하죠. 그의 전사를 애통해 한 것은 명 장수들이 더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3. 세계 속의 기록
“그의 이름은 서구 역사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공적으로 보아서 위대한 해상 지휘관들 중에서도 능히 맨 앞줄을 차지할 만한 이순신 제독을 낳게한 것은 신의 섭리였다. 이순신 제독은 광범위하고 정확한 전략판단과 해군전술가로서의 특출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탁월한 지휘통솔력과 전쟁의 기본정신인 그칠 줄 모르는 공격정신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휘한 모든 전투에 있어 그는 언제나 승리를 끝까지 추구하였으며, 그 반면에 그 용감한 공격이 결코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는 점은, 넬슨 제독이 기회가 있는 대로 적을 공격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다가도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순신 제독이 넬슨 제독보다 나은 점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계발명에 대한 비상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George Alexander Ballard, New York, E. P. Dutton, 1921.

예부터 장군으로서 기정분합의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지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全으로써 그 分을 쳤다.”고 하는 것도 이 뜻에 틀림없다. 그런데 해군장군으로서 이를 살피면 먼저 동양에 있어서는 한국의 장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장수 넬슨을 들지 않으면 안된다. 이순신은 실로 개세(蓋世)의 해장(海將)이다. 불행히도 생을 조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용명(勇名)도 지명(智名)도 서양에 전하지 않고 있지만, 불완전하긴 해도 임진왜란에 관한 문헌을 보면, 실로 훌륭한 장군이다. 서양에 있어서 이에 필적할 자를 찾는다면 네델란드의 장수 르 롸이테르(Michiel de Ruyter : 1607∼1678) 이상이라야 한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 도저히 인격을 견줄 수 없다. 이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창조한 사람이며, 300년 이전에 이미 훌륭한 해군전술로써 싸운 전쟁지휘관이었다.
帝國國防史論, 수문사, 1908. 해군중장 사토 데스타로오.

러일전쟁의 영웅 도고 제독이 이순신에 비하면 자기는 부사관에 불가하다고 했던 것은 출처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타 일본인들의 말들 역시 카더라가 많다는군요. 이게 일본이 이순신을 영웅시한 증거인지 전후 한국인들이 저 말을 내세워서 자위한 증거인지는 모르겠군요. 쓰시마 해전 직전에 한 일본 병사는 이순신에게 승전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_-; 해군은 이순신을 내세워 해군 없으면 육군은 아무것도 안 된다고 선전했다는군요. 이 말들이 얼마나 맞을진 모르겠습니다만, 명장을 우대하고 설사 패한 자라도 그 지역의 신이 되는 일본의 성향을 생각하면 무리는 아닌 거 같군요.

역시 출처를 확신하기 힘든 말 하나 옮겨 보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순신의 영령에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달라고 빌었다. 도고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그 발가락 한 개에도 못 따라간다.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그만큼의 풍부한 무기와 함선을 주었다면, 우리 일본은 하루아침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히 실례인 줄 알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일-러 전쟁시 제41호 어뢰정 정부(艇付) 가와다 이사오.

뭐 이 때문에 "일본이 이순신을 띄웠고 그 전에는 별로 영웅 대접을 못 받았다" 혹은 "일본이 이순신을 띄웠으니 너무 영웅시하면 안 된다"는 양반도 있다고 합니다. 뭐 그러려니 (...) 일제시대 들어 한국의 역사도 알려지면서 이순신 역시 주목을 받은 듯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위에 인용한 것이죠. 거북선 철갑선설, 잠수함설-_-;도 이렇게 주목을 받으면서 생겼을 겁니다. (실제 있던 학설이예요 = =;;; ) 한국의 인지도가 낮아서일 뿐 이순신의 위대함은 세계 해전사 연구에서 빼 놓을 수 없었던 것이죠. 최근에는 온리 콩판이라는 미국 청년이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하는군요.


진도 명량의 명량대첩탑입니다.

4. 총평
누가 최고냐는 논쟁은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시간 아까운 논쟁거리죠. 특히 넬슨과 도고 헤이하치로와의 비교, 기타 다른 유명한 장군들과의 비교는 빠심 때문에 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긴 합니다. 이들을 모두 같은 배경에 같은 환경으로 두지 않는 이상 비교는 정말 힘들죠.

그래도 확실히 생각해 봐야 될 점은, 이순신은 임진년부터 조정의 지원 없이 싸웠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다른 장수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죠. 넬슨이 이끈 영국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고, 프랑스는 해군이 약체였습니다. 트라팔가르 해전이 힘든 전투였다 하나 애초에 영국이 우세했죠. 영국 정부는 바다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넬슨에게도 많은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도고 역시 마찬가지였죠. 우리의 감정과는 별개로 쓰시마 해전이 일본이 열강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일본은 말 그대로 이 전쟁에 올인한 상황이었죠.

중앙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 하거나 토사구팽 당한 많은 명장들은 패했다는 비장함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습니다. 그 자체로도 이미 대단한 것이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 역시 계백이겠죠? 계백은 백제가 망했기에 가장 역사의 지원을 못 받은 상황에서도 잘 알려졌습니다.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싸움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당당히 나아갔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이겼습니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하는 싸움에 이긴 거죠.

중앙의 지원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겼습니다. 그것도 피해가 극도로 적게요. 육군에 병력을 계속 뺏기면서도 악착같이 견내량을 막아 냈고, 끝내 이겼습니다. 이걸로 부족했는지 하늘은 명량 해전이라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명령을 거부하기는 쉬웠습니다. 상중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나라가 망합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아주 취미생활로 했던 관직 거부. 단 한 번만 튕겼어도 왕이 사정할 시간도 없이 서해는 뚫렸을 것입니다. 죽기도 쉬웠습니다. 그저 열두척 가지고 적에게 돌격하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해도 조선이 망하지만 않는다면 대대손손 충장이라고 추켜세워졌겠죠. 아니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더라도 패한 조선의 명장이라고 인기 많았을 겁니다. 부하들이 따르지 않는다?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적이 나타났다. 여기가 내가 죽을 자리이다. 모두 충심으로 죽자. 임진왜란 때 전사한 장수들 중에 이렇게 죽을 자리를 찾아서 열심히 싸우다 전사한 장수들이 한둘이 아니죠. 이것만 해도 충분히 위대합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우울증을 넘어서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어머니와 자식을 잃고 모든 힘을 키웠던 수군은 전멸했으며 조정에서는 지원도 제대로 해 주지 않죠. 살아 있어 봐야 의미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나라가 망합니다. 나라를 구하려면 살아야 했고, 이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살았고, 이겼고, 나라를 구했습니다.

일제시대 때 이광수의 소설이 현재 이순신의 이미지에 꽤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그건 "조선에는 이순신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조정은 무능했다" 으로 시작돼서 조선은 이순신 같은 명장도 알아보지 못 한 망해야 마땅한 나라다라는 식민사관일 뿐이었죠. 이순신을 더 띄운 게 아닙니다. 다른 이들을 폄하한 것 뿐이었죠.
박정희가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역시 그가 너무 위대했기에 그랬을 뿐입니다. 여기서 선조 등 조정이 했던 모든 잘못은 원균과 요시라에게로 옮겨 가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이순신이 얼마나 힘든 환경에서 싸웠는지가 감춰졌을 뿐입니다.

지금껏 글을 쓰면서 최대한 이순신의 원맨쇼가 아닌 조선 전체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최대한 쓰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언제나 이순신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면 팔수록 위대함의 증거들만 나오니까요.

세상에는 만들어진 영웅들이 많습니다. 그 빛만 너무 강조하다가 어두운 면을 무시하게 되거나 충성심 고취 등의 이유로 과장, 왜곡된 영웅들이 많죠. 그리고 그걸 강조하다가 함께 싸운 이들이 무시되는 부작용도 생깁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거기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조선 수군이 아무런 피해 없이 이긴 것, 명량 해전과 그 이후의 수군 재건에서 이순신의 이름을 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의심할 필요 없이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영웅, 그런 존재가 우리 역사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일까요.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역시 그 시작은 이게 말이 되냐,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문으로 시작한 거겠죠. 하지만 왜곡하지 않는 이상 파면 팔수록 잘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반쯤 장난삼아 말하는, 의심하면서 시작했는데 마지막에는 빠가 되더라~ 이렇게 되는 거죠.

처음에 이순신에 대해 의심하면서 연구를 시작했던 두 사람의 말을 옮기며 이 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는 임진역이라면 곧 이순신으로, 이순신 밖에는 명장이 없는 양으로 일반이 생각하고 있는 듯 한데 대하여 느끼는 바 있어 그에 못지 않은 명장 거성(巨星)을 발굴하여 내리라고 굳게 다짐한 바 있었으나 이 전투에 앞서 그가 '戰船雖寡 微臣不死則 不敢侮我矣'라고 아뢴 그 역성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충신, 어떠한 열사라도 도저히 그를 따르지 못할 것은 단언하지 않을 수 없으며 12척을 이끌고 만중지적중에 뛰어 들어가 조류와 지형을 이용하여 각개 격파 할 심산이 확립되어 있는 그를 신장이라 아니 할 수 없고, 심야고창에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권율, 황진, 정기룡 등의 육상의 명성을 가져와서 견주어 보아도 그의 장덕은 조금도 손색이 없으며 과연 그는 천고를 관통하는 민족의 자랑에 틀림 없는 바 이는 저자가 8년 연구의 결론으로 내리는 소평인 것이다."
- 고 이형석 장군 <임진전란사>

"본 사관이 임진왜란을 잘 몰랐을 때는 판옥선 겨우 열 몇 척으로 왜선 수백 척을 상대한 것은 당연히 과장인 줄 알았다. 만약 사실이더라도 여러 책에 설명돼 있었듯이 13척이 해협을 단단히 차단하고 두세 척씩 해협을 통과하는 왜군을 차례로 각개격파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설명은 거짓이었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이순신이 탄 판옥선 단 한 척이 왜선 전부를 상대했다. (중략) 판옥선 한 척이 나라를 구했다. 싸움에 나선 판옥선 단 한 척이 동양 여러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 이순신이 탄 판옥선 단 한 척이."
- 김경진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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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부터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의 상황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짧게 짧게 다뤄보죠.
왠지 너무 오래 글을 안 올린 것 같아서 추가로 호란에 대해서 다뤄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이거 괜찮으시겠어요? 왜란이야 결국 이겼고 드라마틱하기라도 하지 호란은 뭐 꿈도 희망도 없고 그냥 막장이고 왕은 무릎 끓고 (...)
생각해보면 저 입원해서 한창 아플 때 책 빌린 게 칼의 노래랑 남한산성이었네요. -_-; 이건 뭐 마지막 잎새도 아니고 뭐 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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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1/05/30 16:10
수정 아이콘
고생 많으셨습니다..너무나 잘읽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면서 연재해주세요..
밥펠러
11/05/31 01:15
수정 아이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런 글을 읽을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직도 너무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이순신폄하와 원균명장론에 대한 논파를 위해 사료를 한두개를 인용한게 아닐텐데 그 노력과 정성에 새삼 놀랍니다.

그저 뭉클하고 그저 감동적일뿐입니다. 이순신장군에 대해선 언제부턴가 얘기만 나와도 그저 울컥할뿐입니다. 흔히 애기하는 세계4대 해전에 대한건 어떻게 된건지 궁금하네요.
웃어보아요
11/05/28 23:20
수정 아이콘
잘 보았습니다.!!!
역시 유게에 있을자료가 아니었어요 크크
면역결핍
11/05/28 23:21
수정 아이콘
장문의 시리즈 고생많으셨습니다.
이제는 흑역사 호란의 시작인가요...
Inception
11/05/28 23:27
수정 아이콘
이순신 장군님 관련글은 언제봐도 정말 뭐랄까 가슴이 찡해집니다.
Surrender
11/05/29 00:10
수정 아이콘
예전에 말씀해주신대로 후일담 적어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영웅이 가시는 길 부디 외롭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란스어텍
11/05/29 00:44
수정 아이콘
참 대단한 분이지 말입니다. 김경진 님의 임진왜란은 언제 구해 봐야겠군요
서주현
11/05/29 01:31
수정 아이콘
성웅이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은 분이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벤카슬러
11/05/29 01:53
수정 아이콘
영웅(英雄)이라 부를 수 있는 분은 역사 속에 많이 존재하지만,
성웅(聖雄)이라 부를 수 있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성웅, 정말 이순신 장군을 위해 준비된 단어 같습니다.
BGM부터 해서 마지막 문장까지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무리수마자용
11/05/29 02:31
수정 아이콘
이렇게 깔거리 없는 사람은 세계 역사책을 다 뒤져도 찾기 어렵습니다. 아니 있기나 할까요 엉엉 장군님 엉엉
11/05/29 02:34
수정 아이콘
어떤 수식어를 동원해도 그 가치를 다 표현할 수 없는 분이죠. [m]
11/05/29 08:18
수정 아이콘
아...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누시BB님 아니었으면 이렇게 자세히 알지 못했을겁니다.

고맙습니다.
무한낙천
11/05/29 18:39
수정 아이콘
'존경'이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눈물이 날 정도로 실감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동안 연재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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