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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30 00:39:07
Name 눈시BBbr
Subject 휴전과 고지전 - 1. 휴전회담 시작
얘기가 길어질테니 둘로 잘랐음 좋겠는데 자를만한 부분을 찾기 어렵네요. 이 둘을 떼기도 힘들고 =_=; 그대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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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목표인 전쟁의 해결은 전쟁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여 휴전으로 해결하고, 최종목표인 통일 국가 수립은 UN기구를 통해 계속 추구한다."

5월 17일, 미국은 이런 방침을 정하고 물밑 접촉을 시작합니다. 5월 31일과 6월 5일에 조지 케난이 소련의 UN 대표 말리크와 접촉한 것이었죠.

스탈린은 이에 따라 13~14일에 김일성과 중국의 부주석 고강(가오강)을 불러 휴전문제를 협의합니다. 돌아온 고강은 모택동에게 이를 알렸고, 모택동 역시 찬성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죠. 먼저 회담을 제시하는 건 상대편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도 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작부터 은근한 자존심 싸움이었죠.

양 쪽 다 만족할 만한 방식은 제 3국의 중재, 거기에 어울리는 건 역시 소련이었습니다. 51년 6월 23일, 말리크는 UN에서 연설을 통해 이를 제안했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였으며, 27일 소련 외무부차관 그로미코가 이를 받음으로써 휴전 협상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리지웨이는 이 명령을 받고 현 전선에서의 정지를 명령했고, 30일 라디오 방송으로 회담 날짜와 장소를 제안합니다.


UN측 대표는 5명으로 수석대표는 극동해군 사령관 터너 조이, 8군 참모부장 호데스, 극동공군 부사령관 크레이기, 만재배수량 9200톤 이지스 구축함 알레이 버크(... 가 아니라 극동해군 참모부장), 백선엽 국군 1군단장이었죠. (사진 순서로는 크레이기 -> 백선엽 -> 조이 -> 호데스 -> 버크)

+) 키의 차이를 볼 수 있네요 (...) 더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사진도 있지만.

헌데 공산군 쪽의 회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음날인 7월 1일에 제안을 하려고 했죠. 딱 이 때 회신이 옵니다.

이 때까지 미국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양 쪽 다 휴전을 원하고 있으니 그까이거 금방 끝나겠지."

그리고...


"... 라고 저 미 제국주의자들은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러니 최대한 뽑아먹을만큼 뽑아먹자."

라는 상황이 나온 것이죠. 스탈린은 막후에서 이를 모두 지휘합니다. 다만 소련은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 했죠. 스탈린 -> 모택동 -> 김일성으로 내려오는 체계를 갖추고 김일성이 자기에게 직접 대화하는 걸 모두 거부합니다. 29일 김일성은 소련에 직접 연락했다가 묻혔죠. = =a 이후에도 모택동이 허락하는 것만 스탈린에게 올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휴전협상 원칙은 이랬습니다.

- 쌍방 동시 전투중지 명령
- 쌍방의 군대를 38도선을 기준 10마일씩 밖으로 철수, 완충지대 설치
- 이 이상의 무력증강 행위 중지
- 중립국감시위원회 구성
- 전쟁포로 송환 : 적은 일대일 교환을 제의할 것이지만 모든 포로의 일괄교환 고수해야 함. 적의 포로 숫자가 더 많음. 거기다 원래 한국군 출신 포로도 북한군 포로로 돼 있어 논란의 여지가 큼
- 모든 외국 군대의 일정한 기한 내 철수, 피난민들의 원래 거주지 귀환조치

스탈린은 기본적으로 이를 수용하면서 포로송환과 외국군 철수, 피난민 문제는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중립국감시위원회는 먼저 제안하지 말고 UN에서 군사정전위원회 설치를 제안하면 이를 받아쳐서 요구하라고 했죠. 이는 이후의 협상에서도 기본적인 뼈대가 됐습니다.


공산군측 대표는 수석대표 남일(중간), 중공군 대표 해방(세팡), 등화(덩화)(왼쪽), 북한군 대표 이상조와 장평산이었죠.

보시다시피 북한 쪽이 한 명 많고, 수석 대표를 맡았습니다. 이 전쟁은 북한이 주도한 것이며 중공군은 지원군일 뿐이다는 거였죠. 반면 우리 쪽은 한국이 아닌 UN이 대표라는 걸 밝힌 거구요. 좀 센스를 발휘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없었고, 어차피 이승만은 반대하고 있었으니 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 대표들 역시 UN군 쪽은 야전군인인 반면 북한군은 정치군인들로 뽑았죠.

스탈린은 UN군이 회담 장소를 양보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UN이 제시한 원산 앞바다의 덴마크 병원선을 거부하라고 합니다. 대신 선택한 곳은 개성이었죠. 스탈린의 예상대로 UN은 받아들입니다.

뭐 그렇다고 UN에서 휴전에 대해 아예 낙관하거나 많이 양보하더라도 빨리 끝내자고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양보하면 안 되는 지침이 있었고, 공산군의 의도를 모르는 상태니 확실하지 않는 이상 시간을 연장하더라도 이를 지켜야 된다고 방침을 잡습니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짜여졌고, 워싱턴과 최소 2시간 내에 보고할 수 있는 통신선이 설치됩니다. 다른 UN군은 물론 UN군 사령관의 역할도 제한돼 있었죠.

- 휴전의 근본목적은 적대행위 중지, 전투의 재발방지 보장, UN군의 안전 확보
- 휴전협상은 정치적 문제를 제외한 순수한 군사적 문제로 국한
- 최소 20마일 폭의 비무장지대 설치, 한국에서 군사력 증강 금지, 군사정전위원회 설치
- 전쟁포로는 1:1로 교환
- 옹진반도와 연안지역은 포기 가능

자... 이쯤 되면 어느 부분에서 충돌할 지 대강 보이죠.

7월 3일, 리지웨이는 휴전 예비회담을 제안, 4일에 공산군이 이를 받으면서 8일에 예비회담이 열립니다. 장소는 개성 광문동의 한 민가였습니다. 전쟁 전에는 다방이었다는군요. 중령~대령급의 장교들이 참석했고, 대표의 명단을 교환하고 회담 날짜를 정합니다. 개성 반경 2.5마일은 중립지대로 간주하기로 했구요. 다만 쌍방의 경계선을 UN군은 개성 남대문 로터리로 요구했습니다만, 공산군은 현 접촉선을 요구합니다. UN군이 이를 받아들이니 이 장소가 판문점입니다.

이때까지 개성은 어느 한 쪽이 확실히 점령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개성을 공산군에게 준 것이나 다름없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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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UN 대표단은 헬기로 개성으로 갑니다. 수행원들은 백기를 달고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갔죠. 이들은 V자 사인과 만세를 부르는 시늉을 되풀이했고, 열심히 이를 찍습니다. 이후 신문에 "항복한 UN군"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붙였죠 (...) 개성이 공산군 쪽으로 간만큼, 동양의 관습인 "패자가 적지에 항복하러 가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죠.

신경전은 계속됩니다. 공산측은 이미 남향의 의자에 자리잡고 있었고, 높이도 더 높았습니다. 동양에서 북쪽은 패배와 맞닿아 있었죠. 조이는 이를 항의하며 똑같은 높이의 의자로 바꾸게 했죠.

+) 이건 예비회담 때도 있었는데 UN측 대표인 키니는 안내도 무시하고 남향에 앉아버립니다. 또한 동양 관습으로 "승자가 패자에게 베푸는" 다과도 거절했죠.

또한 UN측 대표는 작은 UN기를 탁자에 놓습니다. 미처 준비돼 있지 않았던 그들은 당황했고, 오후에 10cm 정도 높은 인공기를 놓았죠. 이런 경쟁이 계속돼 천장까지 닿게 됩니다. (...);;; 서로 합의하에 그만하자고 했죠.

마 아무튼 드디어 모였습니다. -_-a 노가리 깔려고 모인 거 아니죠?

일단 조이가 먼저 연설을 하고 남일이 이어 연설을 합니다. 사이좋게 지내자 뭐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조이는 휴전이 성사될 때까지 전투는 끝나지 않을 거라 했고, 회담은 정치적인 게 아닌 군사적인 문제로 압축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남일은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38도선으로 철수, 빠른 시일 내에 외국군 철수를 주장했죠.

이어 조이는 9가지의 의제를 내놓습니다. 하지만 남일은 그딴 거 필요 없이 일단 38도선으로 철수를 주장합니다.

조이는 남일에게 지금 군사적 현실을 무시하고 있으며, 정치적인 문제는 회담의 주제에서 벗어나니 니들 패를 꺼내라고 반박합니다. 오전은 이런 입씨름만 하다 끝났죠.

오후에 남일은 본격적으로 UN에서 꺼낸 9개의 조항을 조목조목 반박 후 새로 5개를 제안합니다. 비교해 보죠.

- 회의 의제 채택, 국제적십자사 대표들의 포로사용소 방문을 위한 장소와 권한, 한국에만 관계되는 순수한 군사사항 문제로 제한, 한국에서 적대행위 재발 방지 보장하는 조건 하에 행위 중지, 한국을 횡단하는 비무장지대 협정, 군사정전위원회 구성, 그 예하 기구로 군사감시단에 대한 협정, 군사감시단의 구성과 기능, 전쟁포로에 관한 협정

- 회의 의제 채택, 38도선 군사분계선 설정 및 비무장지대 설치, 모든 외국군 철수, 한국에서의 정전 및 휴전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협정, 휴전에 따른 전쟁포로에 대한 협정

시작부터 걸린 건 38선이었습니다. 공산군은 계속 분계선을 38선으로 밀어붙였고, 미국은 그럴 생각이 없었죠. 3일간 이에 대한 입씨름만 계속되다 회담이 파토납니다. 이유는 좀 다른 데 있었습니다. 공산 측에서 UN 기자단의 참가를 거부했거든요. 리지웨이는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있고 (...) 공산측이 일방적으로 언론을 이용하는 건 문제도 크기에 이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개성의 중립지대는 2.5마일에서 5마일로 늘었고, 100여명 중 20명의 출입이 허가됩니다. 회담도 재개됐죠.

그래봐야 계속 입씨름이었습니다. 또 걸린 건 외국군 철수 문제, UN군은 이건 정치적 문제지 회담에서 할 얘기가 아니다고 주장했고, 공산 측은 "그럼 외국군 철수 안 하면 놀러 온 거냐?"고 맞섭니다. 이는 25일에 가서야 공산측이 한 발 물러서 "휴전 후 쌍방 관계국 정부에 건의한다"고 하면서 일단락 됩니다.

26일, 드디어 회담의 의제가 결정됩니다. 5개 항이었죠.

- 회담 의제 채택
- 군사분계선 설정
- 정전, 휴전 감독 기관의 구성을 위한 구체적 협정
- 포로 협정
- 쌍방의 관계 정부에 대한 건의

그래봐야 시작일 뿐, "우리가 이걸 의논하자"는 것만으로 보름을 쓴 거였어요.

군사분계선에 대해 현 전선에서 북쪽 VS 38선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38선은 전쟁 이전부터 이미 모든 나라가 경계선으로 인정하고 있음으로 그 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 남일

"공산군과 UN군이 지난 13개월의 전쟁 동안 적어도 4번이나 38도선을 넘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 선은 군사분계선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 조이


조이가 주장한 휴전선은 현 전선에서 한참 북상한 것이었습니다. UN군의 전력이 강하니 이런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남일의 대답은...

"가소롭다" (...) 였습니다. 그러면서 38선을 계속 주장했죠.

+) 이 때 조이는 "2차대전 때 단 한 명의 미군도 일본 본토를 밟지 않았지만 일본이 패했다"면서 이걸 주장했고, 남일은 "일본 패한 건 조선과 중국 인민의 투쟁 + 소련 때문이지 니들은 이긴 적 없다 ㅡㅡ"고 맞섰습니다.

어느덧 8월, 결론은 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4일에 무장한 중공군 1개 중대가 UN측 대표단의 건물 가까이로 지나간 사건이 발생했죠. 회담장 근처에는 어떤 무기도 있으면 안 됐고, 중립지대인 5마일에는 권총 휴대만 가능했습니다. 리지웨이는 이에 항의했고, 공산측은 실수였다고 합니다. 리지웨이는 중립지대 전체에 걸쳐 조사단을 구성, 이를 확인해야 된다고 주장했죠.

이렇게 되자 6일에 공산측은 이에 대한 조치를 했으니 회담에 복귀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리지웨이는 거부했지만, 워싱턴에서는 공산측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9일에 회담을 재개했죠.

그런데 다시 회담장에 가보니 공산측은 자기들이 7일에 공격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대표단의 보급차량이 UN 공군기의 기총소사를 받았다는 것이었죠. 이에 조이는 "통행시간과 경로 통보를 안 했고 시변리는 보급로에서 벗어나 있었으니 오히려 대표단 이외의 목적이 아니었냐"로 맞섭니다. 공산측은 이에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고, 회담은 재개됐죠.

10일, 조이는 "현실적인 군사상황에 기초한 군사분계선 설치 및 비무장지대 조정을 위한 토의"를 제안합니다. 이에 남일은 또 항의, 2시간 11분간 "침묵의 회담"이 시작됩니다. 서로 팔짱을 낀 채 서로를 노려보는 것이었죠. 이 침묵을 먼저 깬 것은 UN측, 하지만 공산측은 계속 침묵과 장광설로 이에 맞섭니다.

이런 상황을 보던 리지웨이는 "72시간 내 변화가 없으면 회담 결렬"을 워싱턴에 건의합니다. 워싱턴은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니다며 거부했죠.

대신 리지웨이는 다른 패를 꺼내듭니다.

15일, UN측은 군사분계선 설치를 위한 합동분과위원회 구성을 제안합니다. 공산측도 이에 동의, 17일에 위원회가 개최됐죠. 다음 날에는 공산측이 양보해 동부는 38도선 북쪽으로 4km, 서부는 남쪽으로 4km를 제안합니다. 슬슬 뭔가 얘기가 풀릴까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러다가 23일, 공산측은 UN 공군이 회담장을 폭격했다면서 일방적으로 회담 중지를 선언합니다. UN측의 키니 대령이 그 곳으로 가 봤지만 공산측이 주장하는 네이팜 탄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리지웨이와 조이는 회담 재개를 촉구했지만, 공산측의 UN군의 폭격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거부합니다. (근데 찾아보면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에요 -_-;)

이런 가운데서 리지웨이가 꺼낸 패는 무력이었습니다. 공산측이 더 이상 회피하지 않도록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었죠. 이 무렵 공산군은 병력 면에서도 제대로 우세를 점하지 못 한 상황이었고, (뭐 UN군의 절반 이상은 전투력 약한 국군이었지만) 더 시간이 필요했죠. 하지만 공산군이 휴전을 아예 거부할 정도의 군사 작전은 막습니다.

적당히 우리의 힘만 보여주는 작전, 이것이 휴전까지 계속되는 고지전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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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잉뿌잉잉
12/11/30 07:18
수정 아이콘
여기서 영화 고지전에 나오는 고지전이 나오는거군요

계속 ~ 잘보고 있습니다
soleil79
12/11/30 07:36
수정 아이콘
항상 감사합니다. 제가 알고 있던 편견이 상당히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제레인트
12/11/30 10:10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보고 있는데 댓글은 별로 못 달아서... 다시한번 연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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