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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0/08 10:33:43
Name 눈시BBbr
Subject 훈민정음, 한글이 되다 (3) 혼돈

+) 봉지가 갔습니다. 에궁 ㅠㅠ
+) 제목을 뭘로 해야 될 지 모르겠네요.

"금일 언어를 소유하고 문화를 소유한 민족으로서는, 사전을 가지지 않은 민족이 없다. 그러하나, 우리 조선 민족은 언어를 소유하고 또 문자를 소유하면서도 금일에까지 아직 사전 한 권을 가지지 못 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의 언어는 극단으로 문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요, 또 조선 민족의 문화적 생애는 금일과 같은 황폐를 이루게 된 것이라." - 조선어사전편찬회 취지서

사전은 어려운 단어 찾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닙니다. 한 언어의 모든 것이 담긴 기준이죠. 우리나라처럼 모두 같은 언어와 문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언어가 곧 민족이고, 나라입니다. 더욱이 남에게 지배당해서 우리를 잃어가던 그 상황에서는 더욱 중요했죠. 하지만 이걸 하는 데 드는 노력과 비용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죠.

우리말 큰 사전이 나오기 전까지 사전은 한일, 한영 등 대역사전 뿐이었습니다. 선교사 등 외국인들이 자기들 필요에 맞춰서 만든 거였죠. 부족한 게 많았지만 그걸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일본 쪽은 나았죠. 통치를 제대로 하려면 조선어를 제대로 알아야 할 테니까요. 합병하자마자 조선어 사전 편찬에 들어갔고, 많은 조선의 지식인들도 참가합니다. 10년이나 걸린 대작업이었고, 이 때 모은 어휘들이 이후 사전 편찬에 도움이 되기도 했구요. 하지만 그럼 그렇지 결과는 한일사전이었습니다. 원래는 한글 뜻풀이도 집어넣으려는 계획이었지만 누가 실수로 잘라먹었나봐요. 결국 우리 건 우리가 해야 했죠.

일제는 경성부 조선어연구회를 만들어 조선어를 연구하게 합니다. 언어와 문자는 국가가 주도해서 기준을 만드는 것이고 조선을 지배하려면 당연히 조선의 말과 글도 지배해야 했으니까요. 12년에는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제정, 발표합니다. 병합 이전 국문연구소의 연구도 받아들였고, 향가로 유명한 오구라 신페이부터 조선인 학자들도 참가했죠. 여기서 아래아가 사라지고 표음주의 원칙을 볼 수 있네요. 그 다음은 21년, 완성된 조선어사전에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게 일반적으로 쓰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발이 심했죠. 특히 3.1 운동 이후 조선인들의 입을 좀 열어주면서 꽤나 거대한 반격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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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최남선은 광문회를 만듭니다. 민족주의+계몽주의 지식인들의 모임이었죠. 유명한 건 역사 쪽이지만 언어 정리 역시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두 가지 사업을 시작했죠. 하나는 사전 편찬이고 다른 하나는 문법 정리였습니다. 그 시작으로 1915년 신자전(新字典)을 완성합니다. 우선 우리말과 관련 깊은 한자를 정리하자는 거였죠.

주시경은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 등의 제자들과 여기에 참가하면서 사전 편찬 역시 시작합니다. 15년즈음엔 원고가 완성된 걸로 보입니다만... 더 이어지진 못 했죠. 주시경은 14년에 사망, 김두봉은 3.1 운동으로 19년에 상하이로 망명, 이규영은 20년에 사망했거든요. 이게 최초의 사전이 될 뻔한 [말모이]입니다.

최남선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27년에 그와 윤치호, 박승빈 등이 주도한 계명구락부에서 사전편찬을 시도하죠. 하지만 2년만에 포기합니다. 계몽주의 지식인들이긴 했지만 어학전문가들이 아니어서 그런 듯 합니다. 최남선 등은 좀 열성적으로 한 모양입니다만... 이 때의 자료는 나중에 조선어학연구회로 이어집니다.

+) 계명구락부는 민족개조론 쪽인 상류층 지식인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일제와 타협적인 편이었죠.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아래쪽에서 ( ..)

주시경의 국어연구학회(1908)은 합병 후 조선언문회(1911)로 이름을 바꾸었고, 21년에 조선어연구회가 됩니다. 하지만 힘이 크진 않았습니다. 시작부터 15명 정도였고 연구회 때마다 10명 이하의 사람들이 발표회를 가지는 정도였죠. 돈도 없었구요 -_-; 26년에는 가갸날을 지정하고 27년에는 기관지 [한글]을 발간합니다. 이렇게 이름을 퍼뜨리기 시작했지만 돈이 없어서 다음해부터 휴간 orz;;;

이름을 바꾼 21년에는 권덕규가 총독부의 철자법조사회에 위원으로 참가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별 힘을 못 썼죠. 그나마 이런 게 가능했던 건 3.1 운동으로 일제가 문화통치로 바꿔서 그랬겠습니다만...


그러던 29년, 이극로가 독일에서 귀국합니다. 곧바로 조선어학회에 가입했고, 사전편찬 사업을 시작하죠. 각계각층의 지식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거기엔 위의 계명구락부 인사들도 포함됩니다. 아니 각계각층에서 모두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될 겁니다. 무력투쟁 쪽이든, 실력양성 쪽이든, 최남선, 이광수 등 민족개조 쪽이든 말이죠. 어느 방향이든 민족주의를 외쳤고, 계몽을 주장했습니다. 사전을 편찬한다는 것은 그들 모두에게 지지받는 것이었죠. 각 신문사들도 열광했구요.

학술단체인 조선어연구회와 별도로 대중적인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조직됩니다. 발기인만 무려 108명이었죠. 그리고 그걸 주도한 건 주시경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또한 조선어연구회 역시 이를 통해 크게 성장하죠. 어휘 수집은 사전편찬회 쪽에서, 맞춤법은 조선어연구회 쪽에서 맡기로 합니다.

+) 가장 중요한 부분일 "무엇을 표준으로 삼느냐"는 건 이미 합의된 상태였습니다. 조선의 지식인들부터 총독부까지 서울(경성)말을 표준으로 삼는 걸 당연히 여겼으니까요. 그리고 이 때 서울의 "중류" 계층에서 쓰는 말을 표준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사전 편찬을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직 맞춤법을 제대로 통일하지 못 하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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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아무리 연구한들 작은 단체에서 더 널리 퍼뜨릴 순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총독부에서 정한 표준을 따를수도 없었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죠.

28년, 조선어연구회는 총독부에 정식으로 건의서를 제출합니다. 총독부 학무국에서 3차 교과서 철자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죠. 다른 이들의 반대도 심했습니다. 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에서 부결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중추원이 뭐 힘이 있나요 (...)a 총독부에선 조선어연구회의 손을 들어줬고, 3차 개정 철자법은 조선어연구회에서 주장한 방식, 주시경이 주장했던 방식대로 됩니다. 표의주의였죠.

그리고 개정 철자법에 맞춰서 해설서를 만들었고, 학생들과 일반인을 상대로 교육했구요. 출판사부터 신문사에서도 그들을 찾습니다. 그들의 것이 기준이 되었으니까요. 이 맞춤법을 다듬는 작업 역시 계속했구요.

+) 31년에는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죠. 우리에겐 이게 가장 유명할 겁니다.

하지만 반대는 계속됐습니다. 아예 이에 반대하는 조직을 만들죠. 박승빈, 윤치호 등이 주도한 '조선어학연구회'였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표음주의, 전통적 혹은 보수적인 방식이었죠. 기관지 [정음]을 통해 조선어학회와 대립했죠.

+) 못 한 얘긴데 성경 번역하는 쪽에서도 참가합니다. 대한제국 때부터 시작된 성경 번역은 한글 보급에 큰 기여를 했죠. 글 모르는데 찬송가 줄줄 외다가 한글 뗐다는 얘기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무튼 이들의 방식도 표음주의였죠.

이들의 대립이 격화되자 동아일보에서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32년 11월 7일이었죠. 토론회가 끝나고서도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만 더 깊어졌죠. 30년대 내내 양측은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계속합니다. 승자는 조선어학회였습니다. 어차피 총독부에서 조선어학회의 주장에 따른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문학인 78인도 조선어학회 지지 선언을 했구요. 조선어학연구회는 힘을 잃어갔고, 40년대 초에 [정음]도 폐간됩니다.

36년, 사전편찬회의 작업은 조선어학회로 이관됩니다. 이제 우리말을 정리하는 건 온전히 그들의 몫이 된 것이죠.

현재 표음주의 편을 드는 쪽에선 이 때의 조선어학회를 크게 비판합니다. 너무 독단적이었다는 것이죠. 당대에도 이런 조선어학회의 아집에 대한 비판을 볼 수 있습니다. 해방 후에도 이런 비판은 계속됐구요. 확실히 생각해볼만한 부분입니다만... 좀 민감한 비판 역시 있죠.

결국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고 상대를 찍어누른 게 아니었냐는 겁니다.

20년대 후반까지 조그만 학술회 정도였던 조선어학회는 사전편찬과 총독부의 맞춤법 정리에 참가하면서 커집니다. 자신들의 맞춤법이 총독부에 받아들여지자 그걸 강하게 밀어붙였고, 사전 편찬은 미뤄지고 정음파는 탈퇴해서 자기들만의 사전 편찬을 시도했죠. 여기서 총독부의 힘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총독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을 했기에 - 거기다 이전의 맞춤법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기에 - 교육을 조선어학회가 전담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총독부로서도 나쁠 건 없었습니다. 어차피 조선어를 지배해야 조선을 더 잘 지배할 수 있었고, 딱히 독립운동 한다는 느낌도 없었으니까요. 민족운동하는 건 친일파도 마찬가지였구요. 오히려 이를 더 지원할수록 독립을 포기하고 일제에 순응하는 이들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었죠. 문화 통치는 민족분열 통치로도 불립니다. 일제에 순응하면서 민족운동을 한다는 것, 친일로 연결되기 너무 쉽죠. 독립에 대한 방법론으로 분열시키기도 쉽구요.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도 비중이 크진 않지만 빼놓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한글을 연구하고 퍼뜨리기 위해서는 결국 조선을 지배하던 총독부와의 협력이 필요했다는 것이죠. 이른바 저항과 협력을 함께한다는 거겠습니다만... 솔직히 이 시기 조선 내에서 민족운동가와 친일파를 구분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일제의 정책이 바뀌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는 부분이죠. 이는 곧 민족말살 통치가 필연이었을까와 연결되구요. 내선일체의 주 목표는 전쟁을 위해 조선인들도 동급 취급해주고 끌고 가기 위한 거였거든요. 다시 말 해 2차 대전을 일으킨 일제의 폭주가 필연이었을까와도 연결되는 것이죠.

... 머리 아픈 문제군요.

다만 그들이 딱히 친일을 더 해서 그랬을지는 의문, 아니 말도 안 되죠. 그들의 상대도 일제에 순응한 이들이었는데요 -_-a 처음에 부결시켰던 중추원의 인사들이 더 일제와 가까웠을까요 힘 없던 조선어학회가 더 가까웠을까요. 애초에 일제가 받아 줄만큼 설득력이 있었다는 것이고, 문학인들도 지지할만큼 조선 내에서도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겠죠. 여기다 정음파의 주요 인사들이 적극적 친일을 한 반면 조선어학회의 주요 인사들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감옥에 갔죠.

해방 후에도 한글학회의 표의주의는 도전 받습니다. 그 때 상대는 무려 대통령 이승만이었죠. 그 때도 그들은 승리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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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폭주가 진행되면서 조선 내에서도 이제 두리뭉실하게 살 수 없게 됩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릴 시대가 온 겁니다. 그 때의 일제에게서나, 지금의 우리에게서나 말이죠.

1937년, 수양동우회와 흥업구락부 사건이 터집니다. 민족운동 단체긴 했지만 이 때는 독립운동보다 실력양성 혹은 민족개조 쪽이었죠. 일제는 이제 이것도 허용하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변절합니다. 독립운동가 이광수부터 친일까지는 아니었던 윤치호 등이 말이죠. 적극적 친일이 아니면 더 이상 살지 못 하게 됩니다.

+) 뭐 가난하게 목숨 걱정하면서 살 순 있겠습니다만... 그랬으면 친일파로 남지 않았겠죠. 참고로 조선어학연구회를 이끈 박승빈 역시 적극적 친일파가 됩니다.
+) 이러면서 국내 독립운동에서 우파 쪽은 전멸 -_-a

조선어학회에서도 최현배, 이윤재, 이만규 등 주요 인물이 붙잡혀 갑니다. 크게 감옥살이를 하진 않았지만 그 타격은 컸죠. 그런 가운데서도 끈질기게 총독부에 요구해서 조선어사전의 편찬 허가를 받습니다. 그 이후로 더욱 조용히 사전 편찬에만 매달렸겠습니다만...

어차피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어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조선어는 사라졌고, 조선인들끼리 일상 생활에서나 쓸 수 있는 정도가 됩니다. 일본어를 배우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조선어학회가 할 수 있는 건 그에 대한 반대 정도였죠. 일제로서도 없애버릴 필요까진 못 느꼈을 겁니다. 오히려 이미 자신들의 손이 닿은만큼 통제하면 된다 생각했겠죠. 조선어학회에서 어떤 성과를 내든 그건 그들의 것이 될 것이었으니까요. 조선 내에서도 조선어는 필요없다는 인식이 강해집니다. 일제에 동화만이 살 길이다고 외치는 친일파들이 그랬고, 어릴 때부터 일본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그랬죠. 잘 먹고 잘 살려면 우리말에서 멀어져야 했습니다. 민족말살은 그렇게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선어학회는 숨죽이며 사전 편찬을 합니다만... 일제는 더 이상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참 치밀하게 진행됐던 민족말살은 전쟁과 함께 아주 강압적으로 바뀝니다. 내선일체, 조선을 일본에 동화시키기 위해선 더 이상 조선 민족이라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죠. 당연히 조선어도, 조선의 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통제는 끝났습니다. 이제 말살만 있을 뿐이었죠. 뭐 그런 것치곤 시간을 제법 준 편이군요.

1942년, 기차 안에서 조선어로 대화하던 여학생이 조선인 경찰에게 붙잡힙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의 시작이었죠.

+) 자... 마감에 맞출 수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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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ist
13/10/08 12:08
수정 아이콘
오오, 조선어학회에 대해서는 사실 조선어학회 사건 말고는 아는게 하나도 없었는데 정말 좋은 글입니다 흐흐;;

근데 사소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요, 본문에서 주시경 제자로 나온 김두봉이 그 김두봉인가요?
눈시BBbr
13/10/08 12:18
수정 아이콘
^^ 감사합니다~
네 그 김두봉입니다. 김두봉도 그렇고 이극로도 그렇고 북한으로 가서 잘 안 알려졌죠.
azurespace
13/10/08 13:21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이모티콘 등장과 발음의 변화로 인해서 요즘 혼란해져가는 표기를 보면, 표음주의 내지는 연철으로 표기했더라면 이런 현상이 더 가속화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눈시BBbr
13/10/08 13:24
수정 아이콘
하긴 그런식이 많죠.
반대로 연철이 표준이니 분철이 나타나거나 하진 않으려나요 ^^;;
azurespace
13/10/08 13:53
수정 아이콘
소리나는 대로 쓰면 그만인 것과 소리나는 대로 적으면서 뜻이 드러나게 쓰는 건 난이도가 다르니까요 후자는 교육 없이는 실현할 수가 없잖아요 흐흐

전 한국어에는 형태음운론적 표기가 가장 잘 맞고 또 필요한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끔 하는 한글이라는 문자도 대단한 것이구요.

박과 밖은 그 자체로는 동음이의어지만 뒤에 다른 조사가 붙으면 다른 음이 되죠. 이런 예가 한국어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형태소를 살려 쓰지 않으면 이런 구분이 불가능하고, 결국 표기에서의 혼란 때문에 언어 자체가 바뀌는 일이 벌어지게 되겠죠. 물론 언어는 항상 변화합니다만... 동음이의어가 많아지는 형태의 변화는 그리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눈시BBbr
13/10/08 14:01
수정 아이콘
크크 그렇네요. 확실히 처음 배울 땐 쉽겠지만 깊어질수록 더 혼란되겠네요. 어휘도 줄 거고... 그걸 막기 위해 혼용으로 갔을 수도 있구요. 박끼리 헷갈리면 밖을 그냥 한자로 ㅡㅡa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디로 튈지도 모르겠네요.

... 덕분에 왜 한글학파의 표의주의가 이겼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
azurespace
13/10/08 14:49
수정 아이콘
바로 그래서 일본에서 한자를 버리지 못하고 형태소로써 사용하는 것이죠. 동음이의어가 안 그래도 많은데 가나는 형태음운론적 표기가 불가능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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