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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17 23:06:44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소위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에 대하여
비극적인 사고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사고의 진행경과를 전달해주는 차가운 활자들조차 제 마음을 이렇게 분탕하는데, 당사자인 유가족들,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글을 올려도 될지 몰라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불분명하게 뒤섞인 담론들의 실타래를 풀어서 보여주는 게 그나마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글을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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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어떤 글에서도 그렇고, 그 밖에 많은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의견이 소위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입니다.

우리나라는 유사이래로 늘 지도자가 수도를 버리지 않고 결사항전한 적이 없었다든가

아랫사람들에게 방어를 맡겨두고 윗사람은 도주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전통시대 전쟁사에 대한 사적 이해의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통시대의 전쟁의 양상과 의의가 근본적으로 근대 전쟁의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기인합니다.


전통시대 전쟁의 승패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요소들이 고려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지도부를 괴멸시켰는가 입니다. 특히 상대방의 최고지도자의 신병을 구속하거나 아예 사살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요.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최고지도자는 상대 진영의 의사결정구조의 정점에 있는 인물로, 실제 총 지휘가 다른 인물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을지라도 그 지휘자의 권위와 통제의 정당성이 최고지도자로부터의 권한 위임에 의존하고 있는 바, 최고지도자를 제거하는 순간 방어 진영의 의사결정구조 전체를 일시에 붕괴시킬 수 있습니다.

지도자 부재 상황에선 설령 방어군이 멀쩡히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방어군 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당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정치적 분열이 일어나기 쉽고, 통일된 작전수행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합니다.

정리하자면, 최고지도자의 제거에는 [실용적] 목적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현대전에서도 마찬가지이기도 하구요.




둘째, 최고지도자의 제거는 [그 자체로] 아군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케네스 로빈슨은 그의 박사논문에서 (1997) 초기 조선왕실에 대한 주변 세력들의 조공관계를 분석하면서 이들의 조공 행렬이 [서울]로 향했던 것이 아니라 [왕]에게 향했다는 사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왕은 그 자체가 하나의 권력기관으로서, 외교 사절의 최종기착지였는데요, 이는 곧 바꿔말하면 전쟁 발발시 적군의 최종 목표 역시 [서울]이 아니라 [왕]이 된다는 걸 암시합니다.

왕의 제거는 곧 상대 국가가 구축한 통치질서의 붕괴를 상징하며, 이는 곧 상대 국가의 [패배]를 의미합니다. 왕이 제거되기 전까지가 국가대 국가의 전쟁이었다면, 왕의 제거 후에는 [잔당 소탕]이 되버리는 거죠.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사례가 곧 명나라 중엽 때 정통제가 친정에 나섰다가 몽골군에게 생포되는 대 사건, [토목보의 변] 당시 몽골군의 행보와 명나라 조정의 대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명의 황제가 몽골에 생포되는 순간 몽골군의 인식은 [어? 그럴 생각 까진 없었는데 명나라를 이겨버렸네?] 였습니다. 몽골군은 이 생포된 황제를 질질 끌고 다른 명나라 성을 돌아다니며 이제 우리가 이긴거니 잔당들은 어서 투항하라는 식으로 나왔고, 명나라 조정은 몽골군의 이러한 행보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 번개같은 속도로 [생포된 황제를 폐위하고 다른 황제를 옹립] 해버립니다. 한 마디로, [아냐아냐 우리 진 거 아냐, 그거 황제 아님] 이라고 오리발을 내민 거죠.

이 비유가 정확할지 모르겠으나, 비유하자면 명나라 황제나 조선의 왕이나 리그 오브 레전드의 넥서스 같은 존재였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는 증거요, 그의 제거 자체가 패배 인증인 셈이지요.

이와 같은 [상징적 승패]는 당시 전쟁이 영토점령이라는 실제적 성격 뿐 아니라 일종의 [전례적(ritual)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실제 대규모 접전이 없었다 하더라도 어찌어찌 왕만 항복시키면 어쨌든 우리가 이긴 게 되니까 재빨리 왕의 항복만 받아내는 전술이 쓰일 수 있는 거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정묘-병자 양란이 되겠습니다. 정묘호란 때 왕을 직접 잡아내지 못하고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간 만주족은 병자호란 때 오히려 기동력을 더 높인 전술을 짜서 기어코 왕에게 항복을 받고 돌아가는데 성공합니다. 이 두 차례의 전쟁에서 양쪽 군사의 인명 손실은 놀라울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전체에 임진왜란 때보다 더 강력하고 심각한 정신적 데미지를 입혔던 건 임진왜란은 왕을 지켜낸 승전, 병자호란은 왕을 지켜내지 못한 패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죠. 스타크래프트로 비유하자면, 임진왜란 때는 병력의 대부분을 잃고 벙커 지키던 SCV도 많이 상했지만 그래도 커맨드센터와 팩토리 등을 많이 남겨서 경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반면, 병자호란 때는 아비터 리콜 한 방에 커맨드부터 날아가버린 것과 비슷합니다.

정리하자면, 최고지도자의 제거에는 [상징적]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소위 [윗대가리]들은 다 부도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도망갔으니까?

다른 층위의 리더들을 살펴보면 그림이 달라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왕과 그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이들은 전쟁의 패배를 막기 위해 [이 사람]을 지키는 것 자체가 그 목표였므로 [이 땅]은 얼마든지 버리고 퇴각할 수 있었고, 또 그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태수, 부사, 장군 등은 그 임무가 [이 땅]의 방어에 있었습니다. 이 경우 그들은 놀라울 정도의 결연함을 보여줬습니다. 일본쪽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 선봉대는 동래부사의 의연함에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송상현은 자신의 임무인 동래부 방어를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지휘소를 버리지 않고 항전했습니다. 일본군이 지휘소까지 도달했을 때 목격한 것은 송상현이 도망가지 않고 의관을 바로한 채 정좌하고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죠. 전통시대 전쟁의 낭만(?) 같은 걸 느꼈는지, 아니면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는지 일본군은 그를 함부로 하거나 모욕하는 대신 무인의 예우를 다해 죽였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를 감안하고 보면 이승만의 후퇴,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아웅산 테러 사건, 실미도 부대 양성 등은 1980년대 초반 까지도 남북한 정권의 전쟁인식이 여전히 전통시대의 그것이었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 최고지도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 그게 일종의 [승리 조건]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던 거죠. 또 그 당시에도 물론 목숨을 사리지 않고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부하들과 함께 진지에서 산화했던 많은 지휘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인식 역시 동래부사 송상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세월호 선장 탈출 사건을 조선왕조 왕들의 피난경험과 연결시켜 네러티브를 구성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세월호의 선장은 자기 목숨을 지키는 게 그 임무가 아니라 끝까지 자신의 배를 지키고 승객을 탈출시키는 게 그 임무였습니다. 말하자면, 동래부를 버리고 도망친 동래부사가 된 셈입니다. 애초에 선조와는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는 승객들의 최고지도자가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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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볼 때 그 위기의 순간 최후까지 다른 승객들을 도왔던 이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월호의 선장이 보여주지 못했던 의연함을 가진 사람들이 그만큼 있었다는 건데요, 한 편으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잠재적으로 많이 있을 거라는 데서 (비록 평상시에는 잘 눈에 띄지 않겠지만) 희망을 볼 수 있고, 하필 그렇지 못한 사람이 선장이었다는 데서 어떤 인재의 선별과 배치에 대한 구조적인 취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세월호 선장의 개인적 못남에 대한 비난, 우리 민족의 윗대가리들은 언제나 그랬다는 시대착오적(anachronistic), 자조적 한탄을 넘어서서

사람의 교육, 선발, 배치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기능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생존자들의 생환을 마음 깊이 바라고, 이번 사건에서 잘못된 대처를 보여준 선장과 승무원들은 엄정한 처벌을 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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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17 23:10
수정 아이콘
도망은 갈때 가더라도 다른 사람들한테 거짓말하고 도망가지는 말아야죠.
누가 이승만 도망간거만 가지고 뭐라고 합니까. 수도사수 운운하면서 짐싸고 있었던걸 욕하는거죠.
나이트해머
14/04/17 23:14
수정 아이콘
이승만까지라면 모를까, 조선시대의 파천 사례를 끌어오는 건 부당하다 이거죠.
기아트윈스
14/04/17 23:14
수정 아이콘
음.. 이승만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이승만 정권의 [전쟁] 관념이 전통시대의 그것이었다는 걸 말했을 뿐입니다. [발빠른] 이라는 표현이 긍정적으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방금 삭제했습니다.
14/04/17 23:15
수정 아이콘
시대의 관념이 그랬을지언정, 이승만 개인의 판단은 그 관념에 영향받은게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자기 목숨과 권력을 보전하고자 백성들을 내팽개친거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이건 조선의 시대관념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백작지미
14/04/17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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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 이승만이 보여줬던 행동 전체를 보면 ..... 도망친 대가리 새x라고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아케르나르
14/04/18 07:39
수정 아이콘
하긴 이승만은 평소 자기가 양녕대군의 후손인 걸 자주 떠벌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자신을 프린스라고 소개하기도 했고, 1공화국 시절에도 거의 왕같이 행동했다고 하죠.
14/04/17 23:12
수정 아이콘
대전가서 난 서울에 있고 서울은 안전하다고 방송하고 한강다리 폭파하는게 그저 그런 역사관의 일부라고 보시면 할말이 없습니다.
14/04/17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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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역사관이 아니라..... 이승만이라는 인간이 쓰레기인거죠.
기아트윈스
14/04/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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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 역사관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닉부이치치
14/04/1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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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방패막이 삼았으니 분노할수밖에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세월호 선장도 배를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하기위해 움직이지 말라고 했고
자기 혼자 살아서 도망쳤으니 그 모습과 오버랩되고요.
피아칼라이
14/04/1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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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재해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기아트윈스
14/04/1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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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자가 먼저 도망쳤다는 면에서 조선 왕실의 파천사례와 연결시키는 글이 피지알에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그대로 연결시켜 비교하기 어렵다는 게 제 생각이었구요.
曺操 孟德
14/04/17 23:15
수정 아이콘
선조의 몽진이나 몽골 침입시 고려 왕실과 최씨 정권의 강화도 천도 자체를 까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작태겠죠.
왜란 당시 광해군을 제외하고 선조를 비롯한 왕실이 얼마나 나라와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쳤는지, 그리고 본토에서 백성들이 죽어나가는데도 고려 지배층들이 강화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어떤 생활을 영유했는지를 본다면 그들의 부도덕함에 대한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봅니다.
기아트윈스
14/04/17 23:24
수정 아이콘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한 비판 역시 가능합니다. 실제로 그런 비판적 연구가 많이 생산되기도 했구요.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에서 그런 연구의 생산, 유통, 소비 역시 하나의 역사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민중사관인데요,

[민중]이라는 아이덴터티를 구축하고 그것이 소위 [지배 엘리트]의 피착취 집단으로 정의한 뒤

역사상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강조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유행이었던 거죠.

사실 1차사료를 자세히 검토해보면 제가 고려사 부분은 약해서 잘 모르겠다만 선조와 왕실이 딱히 큰 민폐를 끼친 면은 찾기 어렵습니다.

선조 암군론도 요즘에 와서는 많이 재검토되기도 했구요.
키니나리마스
14/04/17 23:17
수정 아이콘
전체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이승만의 행동에 대해서 확실하게 비판하셨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정독하면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게 맞는 것 같은데 스리슬쩍 넘어가면서 댓글반응이 이렇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기아트윈스
14/04/17 23:20
수정 아이콘
이승만 부분은 아예 빼버리거나 확실히 비판할 걸 그랬습니다.

지금 와서 수정하자니 그것도 좀 이상하네요;;

제 논증 전체보다도 이승만에 대한 댓글이 압도적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14/04/17 23:17
수정 아이콘
사실 좀 더 적합한 비유는 1.4 후퇴 때의 도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때는 대비할 시간이 확실히 있긴 했지만 어쨌든 시민들을 확실히 대피시켰으니까요.
이승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1.4 후퇴 때 도망갔다고 이승만 비판하는 사람은 못봤네요.
기아트윈스
14/04/17 23:33
수정 아이콘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14/04/17 23:36
수정 아이콘
1.4후퇴에는 국민 방위군사건이......
14/04/17 23:19
수정 아이콘
선장은 선내의 모든 안전에 대한 책임자일 뿐입니다. 본문에서도 뭐 말씀하셨지만.

윗대가리 담론에 껴주기도 아깝습니다.
그냥 X나 지 할 일 못한 X 이라고 생각하네요.
14/04/17 23:21
수정 아이콘
그래서 이번 비난의 초점이 선장한테 맞춰지는 것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사후 사법처리에서의 포인트는 선박회사한테 얼마만큼의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이런 중요한 사안을 선장 개인의 역량에 맡기는 건 너무나 변수가 크고, 이런 일이 터지면 그 회사는 무조건 망한다 수준의 배상금을 때려야 앞으로 사용자가 물적, 인적으로 최대한의 방비를 할텐데요.
기아트윈스
14/04/17 23:26
수정 아이콘
깊이 동의합니다.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그리고 향후 비슷한 사고 발생시 초기 대응의 수준을 제고하려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로니카
14/04/17 23:21
수정 아이콘
국가 지도자나 이번 사고의 선장 같은 책임자가 위기시에 몸을 피할수도 있지요.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와 함께 이승만을 떠올리는 이유는 거짓 정보로 국민들을 기만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될대로되라
14/04/17 23:22
수정 아이콘
그 도망간 윗대가리가 최후까지 남아 있다 사망한 박지영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기사도 보이네요.
사실이라면 이게 인간이 맞나 싶습니다.
모든 책임을 져야할 인간이 대학 휴학한 알바생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게 상상이 안됩니다.
오보겠죠?
기아트윈스
14/04/17 23:30
수정 아이콘
저도 제발 오보이길 바랍니다...
사람이라면 그래선 안 되죠..
14/04/17 23:41
수정 아이콘
알바생에게 책임전가요??????????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TheMarineFly
14/04/17 23:25
수정 아이콘
허구의 이야기지만 삼국지 연의의 유비의 도망과 선조의 도망은 비교가 되죠. 거기다가 의주를 넘어서 중국으로 도망가려고 한 것도요. 그리고 전쟁이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자 이순신을 제거하는 것 까지도요. 아무리 글쓴분의 생각도 이해는 하지만 하루종일 가슴이 뜨겁네요. 6.25때도 이승만 박사께서는 기밀문서를 다팽겨치시고 내려오셨다죠. 단순히 도망만 가면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기아트윈스
14/04/17 23:29
수정 아이콘
삼국지 연의의 유비의 도망은 사실 연의 구성 당시, 즉 명나라 중엽의 동북아시아 사람들의 일반적 [파천] 관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파천이 아주 당연하고도 마땅한 것으로 묘사되죠. 의주를 넘어서 중국으로 도망가려고 했다는 게 선조까기의 대표적인 [건 수] 중 하나입니다만, 사실 유비 역시 자신의 영토를 열심히 넘어서 사실상의 [타국]으로 도망다닌 케이스입니다. 딱히 의주를 넘으려고 했던 걸로 선조가 흠잡힐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TheMarineFly
14/04/17 23:34
수정 아이콘
연의지만 유비가 도망갈 때 형주의 백성을 데리고 간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것에 비해서 선조는 어떠하였나요? 그리고 타국에 가려는 선조를 붙잡은 신하들은 전쟁에 지기위해서 그렇게 이야기한 걸까요? 임금이 전쟁중에 몽진한 상황에서도 신하들은 조선을 떠나면 안된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죠.
기아트윈스
14/04/17 23:38
수정 아이콘
그부분은 조금 더 연구가 되어야합니다. 일단 명나라에서 선조의 입국을 반대했었어요. 또 선조의 생존 여부가 승패의 갈림길이긴 하지만 너무 멀리 가버리면 저항군의 사기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구요.
TheMarineFly
14/04/17 23:41
수정 아이콘
그 부분은 더 봐야하지만 중국으로의 도피는 '선조'가 주장한게 팩트죠. 아무도 원하지 않은 도피란 말이죠.
나이트해머
14/04/1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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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항복 등 중국으로의 도피를 주장한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의주파천 초창기 조정에 만연한 패닉상태를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선조 혼자 주장했다는 건 [팩트가 아닙니다.]
나이트해머
14/04/17 23:31
수정 아이콘
선조의 파천 당시 상황 보면 이미 한성이 공황상태에 빠지고 거기에 휩쓸려 모아놓은 병력들까지 흩어져 버린걸 파악 가능합니다만. 그리고 그런 혼란속에서도 반드시 들고가야 하는 것들은 들고 나갔고요. 이승만의 그것과 비교하는 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두 사건은 수도를 버렸다 한가지만이 공통점이죠.
기아트윈스
14/04/17 23:36
수정 아이콘
선조 정권은 그에게 주어진 가용 자원과 상황 전개를 생각해 봤을 때 잘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큰 잘못도 없었다 그정도 평가가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아쉬운 판단이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전체적인 상황 수습을 하긴 했으니까요.
TheMarineFly
14/04/17 23:39
수정 아이콘
비록 제 짧은 사견이지만 선조를 평가할 땐 전란 전에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그 후로는 낙제점의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전란 와중에 선조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14/04/17 23:37
수정 아이콘
인조를 생각하면 선조가 잘 도망다닌건 칭찬해주고 싶네요

선조가 일본군에 사로잡혔다면 이순신의 기록적인 승리도 없었을겁니다.
기아트윈스
14/04/17 23:41
수정 아이콘
사실 병자호란도 조선군이 싸워볼만한 면이 있었죠. 실제로 각지에서 의병이 많이 일어났구요. 그런데 남한산성이 포위되어있으니 근왕병들이 모이긴 모였는데 함부로 작전도 못펴겠고 어쩔줄 몰라하다가 그냥 항복으로 싸움이 끝나버렸죠. 만약 인조가 잘 도망가서 부산까지 갔다고 생각하면 청군을 격퇴는 못시키더라도 빈 손으로 퇴각시키는 건 가능했을 겁니다.
14/04/17 23:37
수정 아이콘
정확한 사료는 모르겠지만 서사만 놓고 봤을 때, 명나라 망명을 시도한 선조나 마찬가지로 일본에 망명 정부를 세울려고 했던 이승만이나 다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스카이
14/04/17 23:38
수정 아이콘
이러한 맥락의 글을 쓰고 싶었으나 지식의 부족과 게으름으로 쓰지 못 했는데 본문에 동의합니다.

조선시대왕들과 지금의 사건을 비교하기는 무리이고, 이승만에 대한 내용은 이승만이나 근대 우리나라 정권이 그만큼 뒤떨어진 인식을 갖고 있었다가 본문 내용인 것 같은데, 댓글 얼핏보고 이승만 옹호하셨나 하고 본문 다시 봤네요 흐흐

과거 역사까지 가서 우리나라 자체에 대해 뭔가 패배의식?이라고 해야할까요? 한탄?포기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런 감정까지 가지실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일단 생존자들의 무사귀환에 초점을 맞추고 그 다음에는 사고는 날 수 있다해도 이런 쓰레기같은 대처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데 중점을 둬야겠습니다...만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한탄 밖에 할 수 없는게 사실이고, 그것이 참 슬프네요. 이건 뭐 돈 모아서 성금 보낼 일도 아니고 말이죠 ㅠ
기아트윈스
14/04/17 23:49
수정 아이콘
기도 밖에 할 게 없다는 무력함이 괴롭네요.....
양념게장
14/04/17 23:42
수정 아이콘
도망가느냐 아니냐보다 뒷통수를 쳤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거 같아요.
소독용 에탄올
14/04/17 23:44
수정 아이콘
이번 일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도망간 양반의 '인물'로서의 속성이 아닙니다.
'이른바' 근대적인 조직체계는 그 자리에 앉아있는 인물이 가지는 속성과 관계 없이 최소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관료제....)로 합니다.
선장이 어느양반이던 관계 없이 해난사고시에는 '최소한도'를 지시하는 규정에 따라 이함과정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선장의 '유고'시에도 필요최저한의 기능은 수행되어야 하는것입죠.
선장의 '인물'로서의 속성에 따라서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이 시행되지 못한다면, 한국 해상운송체계가 실패한 것이고, 문제를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아트윈스
14/04/17 23:46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동의합니다.
14/04/17 23:47
수정 아이콘
결과보단 과정이 문제지요. 도주하기전에 미리 막지 못한 한심함. 코 앞에 닥쳐서야 도주하는 무모함에. 백성 또는 국민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몰염치.
낭만토스
14/04/17 23:51
수정 아이콘
사실 선장이
승객여러분 배가 좌초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빨리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거나 갑판으로
나와서 구조를 기다리십시오

하고 제일먼저 도망갔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으니까요
그 사람이 무슨 성인도 아니고
선장은 배와 침몰한다
이딴거 바라지도 않아요

승객여러분 가만히 있으셈
기관실애들아 망했다 빨리 올라와라 튀자


이게 죽일놈이죠
14/04/17 23:55
수정 아이콘
방송부분은 좀 기다려야 될 것 같습니다.

아까 jtbc 뉴스에 방송을 직접한 승무원 인터뷰가 나왔는데(살아서 본인이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판단으로 대기하라는 방송을 했다가 나중에 지시를 받아서 같은 내용을 계속 했다고 얘기했습니다.
(나중에 받은 지시가 누구로부터 나온 건지는 불분명하구요. 조타실이라고만 했어요)
14/04/17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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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너무 좋습니다만
재난과 전쟁이라는 차이 때문에 공감하긴 힘드네요
극단적인 예로, 이 사건으로 선장의 신변에 문제가 있더라도 어느에게도 패배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죠. 물론 극단적인 예로는요
소독용 에탄올
14/04/1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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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선시대 '왕'은 어느정도 도망간 윗대가리가 될 수 있지만,
이승만이나 이번 사건의 선장은 '임무수행에 실패한' 경우라......
한국사회에서 이전시대의 전통이 짙게 남아있는 부분이 특정 직위에 대한 인식인데요,
사실 대통령이나 선장은 윗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직위'입니다.
전자는 '국가의 선출직 행정부 책임자'이고, 후자는 '배의 운항 책임자'니까요.
기아트윈스
14/04/1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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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이 제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글을 잘 못써서 그걸 정확히 전달 못한 것 같은데요, 몇 칸 아래에 재난과 전쟁이라는 차이를 건너 뛰고 소위 윗대가리 담론으로 모든 경험을 묶어서 설명한 자조적인 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시대 전쟁사에서 지도층의 피신과 이번 재난사태에서 선장의 몰상식한 도망을 그대로 연결시키는 것이 무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14/04/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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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포인트를 놓쳤네요;; 죄송합니다
기아트윈스
14/04/1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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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제가 서두에 맥락을 더 분명히 제시했어야하는데;;
Judas Pain
14/04/1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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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보의 변은 근대이전의 극동 전쟁에서 국가의 왕/황제가 사로 잡힌다고 해서 바로 국가가 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지 바로 패한다(고 인식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외려 명이 어떤 상징적 인물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배후의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체제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지요.
기아트윈스
14/04/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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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명나라 정도의 시스템을 구축한 사회에서 과연 황제가 먹고자는 거 빼고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연구하고자 할 때 토목보의 변은 가장 좋은 연구사례로 꼽힙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해당 시스템에서 황제만 쏙 뽑아냈을 때 어떤 사태가 발생하고 그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는지를 보면 황제의 실제 [역할]이 무엇이었냐를 알 수 있으니까요.

토목보의 변을 좀 다르게 비유하자면, 두 사람이 장기를 두는데 한 쪽 왕을 다른 쪽이 경기 초반에 따먹어버린 거죠. 먹은 쪽이 이겼다고 주장하는데 먹힌 쪽에서 [아냐아냐, 그거 왕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님. 진짜 왕은 그 옆에 있는 사였음. 니가 착각한거임] 이라고 우기는 상황이랄까요? 배후의 시스템이 잘 조직되어있었다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황제직의 상징성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마 그런 사례라고 봅니다.
Judas Pain
14/04/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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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 국가체제에서 왕/황제의 상징적 기능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시에 전쟁에선 룰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실제 가능한 힘의 범위가 한계를 결정하므로, 우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상징중추를 교체 가능하고 또 교체하니 명나라가 몽골에 패하지 않고 정통제도 돌려받은 것이겠지요.
나이트해머
14/04/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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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황제가 사로잡히는 참사를 겪고도 국가가 버텨낸 건 토목보의 변이 유일합니다. 신속하게 신황제를 세우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이런 예외적 현상이 벌어진거죠. 황제는 단순히 상징중추가 아니라 실질적인 정부 그 자체입니다. 국가의 중심은 수도가 아니라 황제가 있는 곳이고, 심지어는 황태자도 어디까지나 그 대리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명나라가 새황제 옹립으로 그 상황을 대처한 건 놀라운 위기 극복이지만, 그 명나라도 두번째는 여지없이 실패하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기아트윈스
14/04/1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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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태클은 아닌데 그럼 혹시 정강의 변 때 송나라가 남송이 된 것도 국가가 버텨내지 못한 사례로 간주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나이트해머
14/04/1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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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은 북송의 정치적 연속성을 잇는데 성공했죠. 그래서 국가로 살아남았고.

관료조직으로서의 북송 조정은 정강의 변에서 거의 완벽하게 박살이 납니다. 조정백관들 태반이 끌려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송으로 정치적 연속성이 이어졌다 하는 건 송고종이 휘종의 친자식으로서 유지를 받고 즉위하였다는, 당시의 혼돈 속에서 그 어떤 황족도 감히 비길 수 없는 정통성이 있었고, 이를 신속하게 선언하여 인정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즉 '관료조직과 국가 시스템이 다 날라가도 어찌어찌 황제가 세워지고 전대의 정통성을 승계받는다면 국가가 망한 건 아니다. 왜냐하면 황제가 있는 곳이 곧 정치적 중추니까.'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지요.
기아트윈스
14/04/1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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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Judas Pain
14/04/18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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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인 전력차와 영토의 장악에 이은 패배의 결과로 황제가 사로잡힌 것과 황제 개인이 기습적으로 사로잡힌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으로서의 황제와 국가의 현신으로서의 황제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기아트윈스
14/04/1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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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동의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제가 쥬다스 페인 님의 첫 댓글의 취지를 살짝 오해한 것 같네요.
여튼 토목보의 변을 예로 든 건 말씀하신 그 상징적 기능성이란게 있다는 걸 부각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다른 사례를 들 걸 그랬나봐요 -_-;;
Judas Pain
14/04/18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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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가 촉발하는 논점은 극동의 왕/황제의 상징적 기능성이 황제 개인의 인격성에 나오는가 아니면 (유가/법가 이데올로기로 정비된)시스템에서 나오는가라는 점 같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필요로 하긴 하지만 덕분에 흥미로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눈부신날
14/04/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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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전공자입니다.

이야기하시는 논리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단 전쟁과 같이 적이라는 진영 논리가 발생하는 경우와 지금의 사례를 비교하는것은 전제자체가 다릅니다(이러한 재난에 대해 지도부가 책임을 지는게 국가의 존망과 직접연결되느냐에 있어서 비교가 안됩니다)

둘째, 앞의 문제와 관련해서 이러한 사태와 관련해서 책임져야할 지도부를 처벌하거나 그들의 책임을 묻는것이 사태 해결이나 향후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 비판의 각도는 그리로 맞춰져있지, 윗대가리들 모두 xxx다와 같이 극단적인 형태가 아닙디다. 오히려 이글에서 현재의 담론을 극단적으로 분리하고 있습니다

셋째, 다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전란 당시 태수 부사 장군등은 이땅을 지키기 위해 결연한 자세를 보였다는건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신것은 맞지만 그런 분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쉽게 항복하고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당연히 조선 기록에는 충성을 지킨 신하들이 강조되고 그런 사례들이 나열되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최고 지도부는 전략상 피하고 밑에서 옥쇄했다 식의 역사 왜곡은 곤란합니다. 왜란이나 호란당시 적군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도성을 함락했는지, 그리고 선조가 임란 피란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얼마나 배척당했는지 살피면 그런 이야기가 신화라는건 자명합니다(목숨을 바쳐 수호한 사람들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임란 호란을 비교했는데 둘 사이에 정신적 데미지는 당연히 왕의 항복도 컸지만 그보다 훨씬 더크게 작용한 것은 명나라의 멸망입니다.

오히려 작금의 사태에서 이런 글은 물타기 성이 될 수밖에 없고 선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행동도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배층에 관대한 작금의 잘못된 관행과 밀접하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비판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아트윈스
14/04/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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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격 논란이 일어날까봐 전후 맥락을 빼고 쓴 글인데,

제가 동의할 수 없었던 건 https://www.pgr21.com/pb/pb.php?id=freedom&no=51096 이 글의 4번 항목이었습니다.

소위 [윗대가리] 담론이란 건데,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전쟁과 같은 사례와 지금의 사례를 직접 비교하며 같은 범주로 묶고 있죠.

저는 오히려 그런 비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본문을 작성한 겁니다.

바꿔 말하면, 선조의 몽진과 이번 사고에서의 선장의 부도덕한 대처를 하나로 묶어서 설명하기엔 선조에게 미안하지 않냐는 거죠.

더불어 위 링크 4번 항목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자조적 목소리에 대해 반론할 생각으로 송상현을 꺼내든 거구요.


둘째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 역시 책임자를 아주 강력하게 문책해야 하는데 동의합니다. 분명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위에 소독용 에탄올님의 말씀 대로 한국식 여론은 너무 사람의 능력 여부에 귀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제 불만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건이 생길 경우 파산을 각오할 정도의 책임을 회사에게 귀책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그래서 선장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아주 좋은 해결책 아닌가요?

셋째, [임무]에 두 종류가 있다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였지(피하는 게 임무인 사람, 지키는 게 임무인 사람), 모든 태수와 부사와 장군들이 옥쇄했다는 주장은 한 적 없습니다. 임무가 있으면, 임무를 완수한 사람도 있고 완수하지 못한 사람도 있지요. 이 정도도 역사 왜곡인지요?

선조가 배척당한 것 역시 사실인데, 우선 그가 서북면으로 몽진했다는 걸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요? 잘 아시겠지만 선조의 능력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조선의 북변은 왕조에 대한 충성도가 현격히 떨어졌으니까요. 또 많은 못난 이들 가운데 정말 뛰어난 이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 역시 사실 아닌지요?

명나라의 멸망의 정신적 데미지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삼전도의 구고두가 조선 지배층에 어떤 데미지를 주었는지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북경 점령 후에도 명의 멸망은 기정사실이 아니었죠. 삼전도와 명의 멸망 인식 사이, 그 사이에도 이미 삼전도의 정신적 충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당연히 임란을 능가했구요.
눈부신날
14/04/1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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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해주신 글은 첨읽었습니다. 그 글에 대한 반대논리로 쓰여진 글이라면 일정 수긍할수 있는측면이 있습니단만 거꾸로 지금의 비판이 과연 왜 생겼는지도 따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지도층이라 불리는 계층적 차원의 비난인지 혹은 최소한의 책임을 져버린 직책을 가진 사람에 대한 비난인지.. 전 지금 언론에 알려진 바대로 따지면 왠만한 사람은 후자라고 생각하고 있고요(링크해주신 글은 전자쪽에 가깝지만) 그런 상황에서 전제를 확실히 하지 않은 이글이 후자로 비판하고 있는 (대다수의)사람에 대해 공격적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분도 글의 서술 배경을 알고나서는 이해가 됩니다만 과연 목숨 걸고 지킨 사람들의 수호 대상이 왕이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오히려 동서양사를 막론하고 최근의 연구는 왕보다는 종묘사직, 그리고 종묘사직보다는 향토방위의 목적이 강하다고 결론이 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에 주다스 페인님 말씀처럼 토목보의 변이나 몇몇사례에서 왕이라는 개인의 신상이 오히려 국가 존속에 도움이 되는 사례들도 생각보다 많고요
나이트해머
14/04/1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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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요최근의 임란시기의 연구같은 걸 보면 향토방위적 성격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위치한 곳이 최전선이었을때만 그럴 뿐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바로 근왕적 성격을 나타내는 행동을 보이는 걸로 파악됩니다만.
눈부신날
14/04/1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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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긴다는게 어떤 말인지 설명이 가능할까요?
나이트해머
14/04/1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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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시기 최전선이 아니었던 호남지역의병들의 모습을 보면 의병군마다 어떻게 근왕을 해야하는가 하는 방법론적인 차이가 있을 뿐 근왕이라는 명제에는 이견이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올라가자(김천일군)-병력을 최대한 모아서 움직이자(고경명군)의 두가지로 나눠지죠. 이후 이치 웅치 등 호남이 위협받자 일단 방어억 힘쓰다가도 일본군이 물러나면 곧바로 다른도까지 움직이는, 향토방위적 성격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모습을 보여주죠. 계사년 초 조선군 배치 현황을 보면 충청도 및 경기도에 전라도 지역의병과 관군이 보이고, 경기도에는 충청도 군대도 눈에 띕니다.

이게 향토방위만을 위한 투쟁일까요? 그렇게 생각되진 않넉요.
눈부신날
14/04/18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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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쪽으로 연구하신분이신거 같아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일단 답변의 많은 부분을 밑의 댓글로 갈무리합니다.추가로 이야기하면 의병을 주도하던 대부분의 사람이 양반 및 불교의 영향력을 높이려던 승병이었다고 개론적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근왕의 실제 목적은 기표와 기의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본 사료에서는 (어떤 목적에서건) 의병 지도부들이 관군의 지휘아래 들어가거나 강하게 연결되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또 의병지도부들이 양반계층이 대부분이라면 관군지도부와 이해관계도 맞구요 당연히 관군 지휘아래 들어간 조직은 해머님 말씀처럼 움직이는게 당연하고요
그렇다면 오히려 관군의 지배력및 저항력이 생각보다 강했고 의병도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게 맞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의병의 성격자체가 관군과 크게 다르지 않고 결론적으로 그들의 활동이 왕개인을 지키는데 있었느냐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일단 잘 모르는 분야라서 틀린점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아트윈스
14/04/1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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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습니다. 제가 너무 맥락 없이 본문을 툭 던져 놓았다는 후회가 듭니다.

왕보다 종묘사직, 종묘사직보다는 향토방위가 목적이었다는 결론은 사실 제 밥그릇이 걸린 중요한 문제인데요 (부끄)

말씀하신 것처럼 결론이 나버리면 조선왕조의 소위 [이념적 장악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말이 되고

그럼 저 같은 지성사 전공자는 더 할 말이 없게 되는 참혹한 결론이...으으..

여튼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나이트해머님의 말씀 처럼 황제가 곧 정부요 황제가 곧 국가인, 어떤 강력한 이념이 그들의 소위 국가 네러티브를 장악하고 있었다고 해야 더 설득력있게 느껴집니다.
눈부신날
14/04/18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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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향토방위적 성격에 대한 이야기까진 저도 확신까진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이념적 장악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우선 조선이 신권이 강하냐 왕권이 강하냐를 놓고 봤을때 전 단연코 전자입니다 특히 중국과 비교했을때 조선은 왕(중국으로 치면 황제) 개인의 권력이 생각보다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을 전제로 깔고 근왕적 성격의 이데올로기나 행위들의 궁극적 목적이 실제로 근왕이었느냐에 대해서 논하면 전 회의적입니다. 말씀하신것처럼 상징성으로서의 왕을 수호한다는 개념은 있어도 실제 목적은 [우리의 지배력을 보호해주는] 현체제와 왕을 보호한다는 계산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점을 인정하면 근왕의 성격이 완전히 엇갈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초창기 의병이나 독립운동에서 평민 이하들의 참여가 저조한것도 설명이 될수 있을거 같고요)

쨌든 나중에라도 더 심도있게 이야기할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내요
라이트닝
14/04/18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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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없었다면 이렇게 구분해서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겠지만
이승만 사례-대구지하철기관사까지 절묘하게 네러티브를 완성시켜버렸죠
14/04/1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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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도자에게 최전선에서 전투에 참여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도망치면서도 한끗차이로 리더가 되느냐 그냥 윗대가리가 되느냐가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역할을 수행여부에 따라서요.
루크레티아
14/04/1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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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역사상 정통성 있는 지도부가 무력으로 털려서 망하면 그것의 부흥을 위한 새로운 지도부가 어디선가는 나타났습니다.(호란은 망했다고 볼 건덕지가 아니니 접어두죠.) 애초에 반도의 국민성은 지도부가 털렸다고 좌절하고 지지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어떻게든 국면을 뒤집으려고 기를 쓰죠. 문제는 그 대상인 망한 지도부 입장에서는 그러든가 말든가 일단 내가 살아야 하니 튀는 것이고요.

글의 내용에는 그럭저럭 동의합니다만, 적어도 우리나라 역사와 국민성을 보면 단순히 지도부가 망했다고 끝내고 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도망간 지도부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도망가지 말고 그냥 싸우다 죽어라. 그러면 우리는 그걸 양식으로 삼아서 더 처절하게 싸우겠다.' 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토였죠. 문제는 지도부 입장에서는 내 목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게 문제인가요.
endogeneity
14/04/18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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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자체가 역사적 예증으로 가득하고, 댓글창도 역사 논쟁이 주도하고 있지만
저는 본문의 내용을 '주권 이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는게 편하군요.

제 생각엔 주권을 왕이 가지는 공동체에서의 '권위' 내지 '정통성' 문제가 우리들의 민주주의 사회와 갖는 차이가 있으리라는 점에서
기아트윈스 님 글이 의미있는 지적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옛 사람들이 '왕 개인/국가의 현신'을 어느 정도로 '날카롭게' 구분했다고 봐야 할지는 만만찮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분명 유가의 왕도정치는 이 둘의 구분을 암시하지만, 현실에서 이 둘을 당당히 구분하는게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요?

하지만 그와 별개로 조선인들이 저리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우리가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에 대해 좀더 비판적인 거리를 둘 이유가 되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입니다.
제 생각엔 로버트 달이 민주주의자로서 당당하게 플라톤과 맞짱을 떴던 것처럼
'국가란 임금입니다'라고 생각하던 조선인들의 발상을 공격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좀더 오만한 소리를 하자면, 이 논쟁에선 우리 민주주의자들이 조선인들에게 뒤질게 없고요,
소독용 에탄올
14/04/18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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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이 '국가가 임금'이라고 생각했을련지도 사실 모르는일이라서요......
조선시대의 상당부분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기층을 향한 '유교'의 전파노력은,
역설적으로 당시 지배계층이 가지고있던 혹은 체제안정을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상'이 충분히 전파되지 않아서 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Judas Pain
14/04/18 03:02
수정 아이콘
조선설계자 정도전은 일단 구분하고 있고

“임금의 지위는 존귀한 것이다. 허나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하고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임금을 버린다.
”(<조선경국전> ‘정보위·正寶位’)

이렇듯 왕은 국가의 현신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지위이고 왕의 지위에 있는 개인 그 자체가 상징중추 기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지요.유가에서 이 개념은 사실 명료한 편입니다. 민>사직>왕으로 국가의 근본적 구성 위계를 파악한 맹자계열과 사대부들은 특히 그렇지요.



(법가는 더 냉혹해서 왕을 인격이 거세된, 시스템의 중앙정보처리장치 같은 존재로 파악합니다. )
endogeneity
14/04/18 02:22
수정 아이콘
곁가지를 붙이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선 프랑스와 투르크를 비교하며(당연히 마키아벨리 시대의 프랑스, 투르크인데)
프랑스는 정복은 쉽지만 통치는 어려운데, 투르크는 정복은 어렵지만 통치는 쉽다는 얘기를 하면서
본문이 사용한 것과 같은 개념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대귀족이 많은 프랑스에선 왕을 쳐냈다고 통치가 쉬워지는게 아니지만, 투르크는 일단 술탄만 날리면 나머지는 쉽다는 식의...
기아트윈스
14/04/18 08:14
수정 아이콘
마키아벨리는 참 재밌는 인물이네요.

음.... 그런데 과연 투르크에 대한 인식이 옳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자성이 명나라 황제를 날려먹고 청군이 북경을 점거했을 때도

부단히 어디서 자기가 황제라고 주장하고 군벌 하나 끼고 등장하는 주씨들이 꽤 많았거든요.

동양은 황제 1인의 독재라는 식의 오리엔탈리즘이 마키아벨리에게도 있지 않았나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써놓고 보니 진짜 궁금해지네요)
하시시박
14/04/18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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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까지 하고 내빼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목숨다해 끝까지 항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인단다운 겁니까?
14/04/18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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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을 당했으니 응전을 하든지 맞아 죽든지 해야하는 건가요^^?

우선 제가 올린 글에 대해서 약간의 첨언이 필요할 듯 합니다. 글에서도 밝혔지만 그제와 어제의 제 심정은 사실 분노와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좀 많이 슬펐습니다. 더 많이 알고, 상황에 대해 책임질 거라 믿었던 사람들의 통제에 잘 따르면서 서로 위하고, 서로 챙겨서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아이들이 그 믿음에 배신당한 채 차가운 물속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그 상황이 많이 슬프더라구요. 집에서 모음으로만 이루어진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는 9개월쟁이 제 아들을 보다가도 왈칵 눈물이 날 것같아 삼키고 또 삼킬만큼 슬펐습니다.
그런데 많이들 분노하시더라구요. 조작질을 하는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에,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없이 친구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앵커의 실수에, 가장 책임지려고 노력했던, 아마도 가장 어릴, 여대생 승무원을 제외하고 모두 살아있는 승무원들에게 많이들, 격하게 분노하시더라구요. 제 글의 3번째 꼭지는 그 분노들을 모아둔 웹툰이었습니다. 저는 보지 못했지만 집에 와서 와이프 이야기를 들어보니 웹툰에 있던 내용들이 모두 있었던 일이라고 하더군요. 아이돌 팬덤에 대한 이야기도, 선거 문자도, 선진화법 개정안도, '운지' 이야기도, 보험금 이야기도 모두 사실이었고 소위 '공분'을 샀던 내용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 분노들이 조금 아까웠습니다. 아직 분노와 증오의 굿판을 걷어치우고 상생으로 가자거나 할 인격은 못됩니다. 단지 분노가 갈 데를 찾지 못하고 형태가 변형된 채로 엉뚱한 사람들을 향하거나 혹은 자신을 공격하게 되는 그 상황들을 참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분노하고 분노하다가 분노할 여력도 남지않아 결국 '피로감'으로 탈을 바꿔쓰는 그런 상황도 피하고 싶었습니다. 분노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분노하다가 정작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하고 또다시, 또다시 반복되는 것들이 참 견디기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쓰게 된 글이었습니다. 분노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하고 싶다고, 내 분노를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데 쓰고 싶다고, 내가 분노해도 되는 사람들에게만 분노하다가 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까봐 쓴 글이었습니다. 제 글의 요지를 정리해보자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쓸데 없는 데 감정 허비하지 말고 좀 생각해보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잠시 내 분노를 갈무리해두자.'
맥락은 좀 다르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첨언하자면 저는 법률적인 처벌이나 제도적인 개선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니어도 할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분노하고 변화시키는 데 집중해야 하는 것은 더 공적이고 사회적인 문화와 담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같이 동참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제도나 책임에 대한 법률을 정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과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일이죠. 그리고 같은 이유로 훨씬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부분일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제 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말씀해주신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먼저, 긁어온 글을 쓰신 전성원님은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저술하신 한 계간지의 편집장입니다.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시겠지만 역사에 접근함에 있어 미시사적인 관점을 가지신 분입니다. 어느 댓글에선가 말씀해주신 민중 사관적인 관심, 왕족과 귀족의 역사가 아닌 일반 대중들의 일상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 작업을 하고 계신 분이시죠. 국사학 연구자시라면 서양사 연구자들의 미시사적 전통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전통시대 전쟁사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다? 별로 부족하지 않습니다. 사실 글에서 말씀하시는 부분은, 전혀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습니다, 상식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지도자가 사로 잡히는 것이 단순히 포로 한명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그저 그분에게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뿐입니다. 민중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은 왕조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반 민중들의 삶을 변화시킨 이앙법의 전파, 외래 작물의 전파 같은 것들이 훨씬 중요합니다. 역사학 연구자시라면 뭐 다 아시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이승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선조며 기타 왕들을 엮어낸 것이 불만이셨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정확한 저격 지점은 소위 '윗대가리'들이 국난의 상황에서 도망갔어도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지지 않았다는 논증이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들의 피폐한 삶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비운 왕을 지켜내지 못했을 때보다 훨씬 낫다는 논중이 필요하겠죠. 전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뭐 사실 굳이 따지자면 전통시대와 근대의 전쟁을 구분할 필요도 별로 없습니다. 선출직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에 대통령이 포로로 잡혔다면 상징적이면서도 실재적으로 그 전쟁은 패배했다고 봐야죠.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소위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에서 시대착오적, 자조적 한탄만을 읽으셨다면 우리의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저는 커뮤니티라고는 pgr21밖에 안다닙니다;;;)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이 유통되는 동력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지도자들이 늘 그래왔기 때문에 이 나라는 어쩔 수 없다'는 자조나 한탄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윗대가리들이 위임받은 것보다 훨씬 과도한 권한을 휘두르며 책임져야 하는 일들에서 계속적으로 도망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보전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다가 문제가 발생했을때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고 꼬리 자르기 하거나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하는 일들 말입니다.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온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나몰라라 아랫사람에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책임으로부터 도망쳤던 사람들이 결국 자기 보전에 성공하는, 혹은 더 큰 권한을 위임받는 세태에 대한 분노 말입니다. 심지어 별 일 없으니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방송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여기서 선장이 선조에 해당하는지 동래부사에 해당하는 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현재'의 경험들이 대구 지하철과 이승만을 호출하고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왕들까지 소환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나 이해부족으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왕이 잡히면 패전이라는 걸 몰라서 그러는게 아닌 겁니다. 공동체의 경험을 통시적이고 공시적으로 확장하는 작업인거죠. 물론 이 와중에 억울한 역사적 인물들이 생겨날 수 있음도 사실이지만 모든 공동체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공동체성을 '만들어냅'니다. 민족주의 담론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더 드릴 말씀은 없을 거 같습니다. 저는 잘잘못을 뛰어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뇌에 관련된 문제죠.

길게 쓴 거 같은데 막상 올려보면 얼마나 길지는 또 모르겠네요^^; 혹시나 아직 깨어계시다면 댓글은 내일 확인하겠습니다. 일터에서의 반응이 지금만큼의 성의를 보이지 못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__)
기아트윈스
14/04/1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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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응전 감사드립니다. 저도 더불어 좀 진지해져야겠네요.

긴 댓글을 요약하자면 모두 3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첫 부분에서 첫 글에 대한 첨언을 해주셨습니다. 분노를 쓸 데 없는 곳에 허비하지 말고 정말 분노해야할 대상에게 집중공격 일점사를 하자는 말씀이시지요.

두 번째 부분은 긁어오신 글의 원저자인 전성원님에 대한 소개로 시작해서 거시사가 아닌 미시사의 시점으로 역사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계십니다. 더불어 제 본문이 상식적인 수준의 거시사이며, 사실 딱히 전통시대 전쟁양상의 특징을 서술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냥 시대를 구분할 것 없이 전쟁이라는 행위의 보편적 양상이 아니냐는 것이죠.

세 번째 부분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왜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이 유통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사회의 모순을 경험한 이들의 분노가 수평적(공시적)/수직적(통시적)으로 확장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론 상대적으로 한정된 규모의 공동체가 자신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바깥에 위치한 다른 이들의 경험을 자신들의 경험과 동종의 것인 것으로 [해석]하고, 이러한 해석을 통해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하셨구요. 또 이러한 과정은 잘잘못을 뛰어넘는 문제이므로, 그저 인간 고유의 속성이므로, 가치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하셨구요.



첫 번째 부분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글쓴이께서 어떤 목표를 향해 분노의 동력을 쏟아붇자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범 좌파라고 해야할까요, 범 진보라고 해야할까요, 여튼 크게 보아 새누리당 계통에 절대로 표를 주지 않는 일군의 시민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소위 [큰 변화와 새로운 사회]와 같은 의제에 대해 저는 큰 틀에서 공감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불만이 많습니다. 일단 너무 모호하잖아요? 그 중 가장 큰 불만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은 스스로가 목표하는 (비록 모호하긴 하지만) 어떤 결정적이고 궁극적인 변화를 갈망하며, 이 변화를 추동할 동력을 마련하는데 늘 전전긍긍합니다. 목표가 절대적이고 동력은 부족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어떤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면 민첩하게 그것이 가용 동력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가용 동력이라는 판단이 서면 적극적으로 이쪽으로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과정이 아주 매끄러울 경우 역사책에 남을 혁명으로 기록됩니다만 (예컨대 87년 항쟁이라든가), 대부분의 경우는 과정의 껄끄러움이 결국 다수의 반감만 남겨둔 채 일을 망칩니다.

변화의 목표로 말씀하신 [더 공적이고 사회적인 문화와 담론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수백년의 시간을 하나로 묶어서 시대착오적(anachronistic)인 역사해석을 가함으로써 이번 사고로 유발된 분노의 동력을 쏟아부어야 할만큼 지고지선한 변화인지, 그렇게 금방 찾아올 변화인지, 이러한 종류의 동력을 유도해서 쏟아붇는게 적합한 그런 종류의 변화인지 등등의 의문이 생깁니다.

두 번째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일단 미시사와 민중사는 전혀 다른 분야입니다. 민중 사관은 한국의 운동권문화에서 배양된 토산품에 좀 더 가까운 반면 미시사는 그보다 훨씬 보편적으로 쓰이는 가치중립적 용어입니다. 미시사의 대상이 [왕족과 귀족이 아닌 일반 대중들의 일상사]라고 하셨는데 오해입니다. 오히려, 왕족과 귀족의 식탁에 무엇이 올라왔는지는 미시사를 표방하는 역사학자들의 오랜 관심 중 하나인걸요. 민중사는 다릅니다. 민중 사관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민중]이죠. 문제는, 이 [민중]이라는 아이덴터티 자체가 근대 사회과학의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정치 용어라는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조선시대에 [민중]이라는 카테고리의 적용을 통해서만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산출해낼 그런 종류의 집단이 있었는지에 대해서조차 전 회의적입니다. 차라리 정치적인 스탠스를 뺀 [민속사]라면 말이 될지 몰라도요. 민속사의 대상이 되는 [민속]은 최소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우리 불쌍한 민초들을 연구한다고 표방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훨씬 솔직하고 담백합니다. 때로는,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어떤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만들어내기도 하구요.

한 발 양보해서 민중사가 의미있는 역사서술이라고 한다고 해도 여전히 전통시대의 전쟁[관]에 대한 연구는 한국사 분야에서 미개척지입니다. 대통령이 포로로 잡힌 것과 왕이 포로로 잡힌 게 별 차이 없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 말이 이 분야가 미개척지임을 방증합니다. 별 차이 없다뇨, 천지차이인데요. 그 두 가지가 별 차이 없다면, 지금 당장 왕정국가로 돌아가는 것과 공화정을 유지하는 것 역시 별 차이가 없다는 게 될텐데, 동의하시는지요? 평시상태에서 왕과 대통령이 다른 만큼 전시상태에서도 왕과 대통령이 다릅니다. 이 부분을 연구한 한국사학자가 제가 알기로 한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안 되는 걸로 압니다. 대중적인 인식이야 말 할 것도 없구요.

마찬가지로 전시에 왕의 생사여부는 소위 [민초]의 일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인조가 남한산성이 아니라 부산까지 피난가는데 성공했다면 어땠을까요? 청군의 진격으로 삼남지방은 큰 피해를 입었겠죠? 반대로 선조가 초기에 일본군에 사로잡혔다고 해보죠. 명나라는 참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그 때부터 식민지시대가 시작됐을지도 모르죠. 거시세계가 미시세계와 격리되어 따로 돌아가므로 거시세계에 대한 역사연구는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별로 수긍이 되지 않네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는 늘 긴밀하게 묶여서 같이 굴러다닙니다. 선조의 생존여부가 백성들의 생활에 있어 이앙법의 전파나 외래 작물의 전파 같은 것들보다 훨씬 중요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세 번째 문단으로 넘어가자면, 말씀하신 [현재 대한민국의 윗대가리]들의 행패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야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만, 그 경험을 역사적 사실에 덧씌움으로써, 그 경험을 역사적 사실로부터 [읽어냄]으로써 어떤 공동체성을 만들어내겠다고 하신다면, 역사적 인물들이 좀 사실과 다른 억울한 평가를 받아도 괜찮다고 하신다면, 전 극력 반대합니다. 전도에요. 목표를 위해 수단을 불사하겠다는 건데요, 그런 인식이 전후 한국사학계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쓰레기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 연구는 없고 [XX를 위해서] 하는 연구만 가득한 쓰레기통이요. 한국사를 전공하고자 하는 서양인 학생이 한국어보다 일본어를 먼저 배워야하는 참혹한 학문적 빈곤이요. 왜 굳이 선조까지 가야하나요? 선조가 언제 새누리당 가입했나요?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바로 그 세상에서 싸우면 됩니다. 굳이 조선까지 날아가서 선조를 도로 꺼내와 부관참시해야 하나요. 조선의 왕이 무언가를 잘못했다면 조선의 맥락 안에서, 조선의 시공간 안에서 꾸짖으시면 됩니다. 한국이 조선이 아닌 바로 그만큼 조선도 한국이 아닙니다.



여기는 이제 저녁 11시 50분이네요. 제 댓글에 다시 댓글을 남기신다면 한 8시간 후에나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밤 되셨길 빌며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4/04/18 14:09
수정 아이콘
범좌파라... 좌파. 저희 때는 좌익용공이라고 불렸죠^^;

좌파가 현실 정치에서 유미의한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범좌파라는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범좌파나 범진보라고 불리울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다면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좀 아쉽기는 하네요. 하지만 좌파는 속성상 ‘범’좌파로 형성되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그런 일은 우리한테 있을 수가 없겠죠^^;;;
기아트윈스님이 저한테, 그리고 제 글에 씌우신 많은 혐의들은 기아트윈스님이 저를 범좌파로 구분하시면서 생겨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 말미를 보면 아마도 범좌파로 구분하시는 많은 친구들에게 실망하신 모양입니다. 얼치기 좌파와 진짜 좌파, 뭐 이런 건 큰 의미없는 얘기고, 트윈스님이 실망하신 그 친구들과 공통점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되게 억울해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여담인데 개신교도로 살아가면서도 비슷한 경우를 참 많이 당했거든요. 아마도 마이너한 기질이 있는게 아닌가 혼자서 생각합니다.

우선 제 글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자고 한거죠. 큰 틀에서는 부르디외적 의미에서의 ‘재생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겐 오래된 화두거든요. ‘재생산’ 그리고 이건 지고지선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금방 찾아올 변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닙니다. 경향성이고 끊임없는 운동이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어떤 뉘앙스들을 읽어가실지 조금은 걱정스럽습니다만, 스스로 하는 계몽이나 교육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하지만 이건 이제와서 하는 생각이고 저격하신 본 글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 내용입니다. 어떻게든 새누리당을 까보려는 글로 읽으신 분들이 없지는 않으니 제 글에도 혐의가 일부 있다고 시인해야겠으나 그렇게 읽지 않으신 분들도 계셨다고 봅니다. 제 글은 그들이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분노가 아까우니까 모든 일들에 분노하지 말고 좀 생각해보자는 글이었습니다. 일베 사람들이나 문자를 조작하고 즐거워하는 초등학생이나 친구의 사망을 전하는 기자들에게, 심지어는 움직이지 말라고 방송하면서 가장 먼저 배를 떠난 선장 개인에게도 너무 분노하지 말자는 글이었습니다. 제 의도를 생각하고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정치병 환자의 글로만 읽힌다면 그건 분명 제가 글들을 잘못 배치한 탓이겠지요.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제 글의 요지는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혹여 글이 부족했다면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민중사와 미시사는 다른 분야가 맞습니다. 하지만 층위가 다른 것이지 서로 절대 겹칠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분야도 아닙니다. 민중 중심의 역사를 서술하고 싶다는 목적의식과 정치사 중심의 기존의 사서가 아닌, 지금껏 의미없다고 여겨지던 전당포의 거래장 등을 사료로 개인의 일상을 재구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미시사는 분명 다르지만 같이 할 수 있는 학문입니다. 계속 관심법을 사용해서 죄송합니다만 역시나 연구 현장에서 종종 만나셨던 민중사관만 가지고 공부하지 않는 친구들의 이미지를 민중사관에까지 덧씌우시는 걸로 보이는데 그 친구들이 공부하지 않고 ‘XX를 위해서’ 하는 팩트 없는 논문만 써댄다고 해서 역사 속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민중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고 싶다는 민중 중심의 역사관이 가치를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걸 민중사라고 부르든 민속사라고 부르든 그건 사실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민중이라는 개념이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해하고 계신 것처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불쌍한 민초들’ 같은 교조론적인 맑시즘에서 벗어난지는 한참 됐습니다. 지금 당장 pgr에서만 봐도 ‘민중’이라는 개념이 말씀하고 계신 정치적 ‘민중사관’의 민중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많은 민중 사관을 지닌 학자들이 민속사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번 전성원님의 책을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그 책에서도 정치병 냄새와 공부하지 않고 목적만 앞세우는 쓰레기 학자가 보이신다면 저도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민중사와 미시사는 양립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전통시대 전쟁관에 관한 이야기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건지 잘 모르겠네요. 본문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요약해보면
'전통시대 전쟁의 승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도부를 괴멸시켰는가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근거로 첫째, 상대편의 의사결정구조를 붕괴시켜 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으며 둘째, 왕의 제거는 통치 질서의 붕괴를 의미하는 상징적이고 전례적인 의미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병력이 남아 있어도 넥서스만 파괴시키면 이기는 거죠.
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렇게 복잡한 이론이 필요한가요? 근대의 전쟁과 얼마나 차이가 나나요? 근대전에서도 군대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사로잡히거나 제거되면 의사결정구조에 심각한 타격이 오고, 인질인 대통령이나 그의 시신은 적군의 선전선동에 끊임없이 활용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어렵지 않다는 얘기가 왜 공화정과 왕정까지 거론되어야 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전공자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애초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서술하시고서 왜 한국사학계에서 손에 꼽을만큼 연구자가 적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왕의 생존 여부가 민초의 일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주 적절한 비판지점이 될 수 있다고 원 댓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제 글 어디에서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뉘앙스를 읽어내셨는지 모르겠네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가 따로 돌아가므로 거시세계의 역사 연구는 중요치 않다는 주장 또한 저는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어떤 미시사 연구자도 하지 않는 생각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되나요? 대체 어떤 미시사 연구자가 사서를 무시한답니까. 단지 관심사가 다를 뿐이지요. 원 댓글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에게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뿐입니다’라고. 저는 ‘선조의 생존여부가 백성들의 생활에 있어 이앙법의 전파나 외래 작물의 전파 같은 것들보다 훨씬 중요했다’는 논증이 이승만에서 끝나지 않고 선조까지 엮는 그 내러티브에 대해 가장 정확한 비판이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왕이 잡히면 민초들의 삶이 전란에 휩쓸렸을 때보다 훨씬 더 피폐해졌을 것이라는 논증 말입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선조가 백성들을 버리고 떠나지 않은 게 되니까요. 물론 가정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설득력을 갖추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세번째 문단에 대한 말씀은 제가 뭐라 말을 시작해야 할지 참 막막합니다^^; 제가 세번째 문단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현재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에서 중요한 지점은, 시대착오적인 자조와 한탄만을 읽어내신 기아트윈스님의 시각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의 역사속 모든 지도자들이 부도덕했다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미 여러 분들이 리플로 지적하셨지만 지금 저 선장의 모습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Raw한 단면을 보고 있다는 거죠. ‘실재’는 상징계로 들어와서 언어로 매개된 채로 유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3번째 단락에서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했던 그 ‘아랫사람들을 방패로 삼고 혼자 도망치는 지도자에 대한 분노’, '저 혼자 도망갈 궁리를 하면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그냥 기다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획득해가는 방식인 겁니다. 이데올로기가 되는 거죠.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타인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뭔가 운동권의 선전선동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누가 만들어 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고해서 주입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지금 내 마음 속에 있는 이 ‘언어화’되지 않은 것들을 언어화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고 한번 언어에 매개가 되면 부수적인 이미지들은 떨어져나가고 언어만 남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힘은 타인을 향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데 있습니다. 뚱뚱한 자신의 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많은 불쾌한 경험들을 나의 의지 부족으로 언어화하고 나면 이후에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행한 일들을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게 되는 그런 경향성이 생기게 되는 방식입니다.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애매한 곳에서 걸림돌을 만나게 되는 것은 기아트윈스님의 글이 이 ‘분노’를 간과하셨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언어화된 것을 다른 언어로 더 매끄럽게 설명하지 않으면 (아마도 싫어하실 단어를 사용하자면 이데올로기 투쟁이라고 하죠.) 자신을 언어화하려던 욕망이 튕겨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실재는 어떻게든 상징계로 진입해야만 하거든요.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선조에 대해 변호하고 싶으셨다면 ‘선조에 대한 변명’ 같은 제목으로 유통되는 담론에서 소비되는 것과는 다르게, 전통 시대에 왕이 수도를 떠나는 것은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과 결이 다르다는 것만 제시하셨어도 충분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랬다면 ‘잘 읽었습니다’라는 십여개의 리플과 리플보다 더 많은 추천이 달리는 추게행 글이 되었겠죠. 사실 올려주신 글도 당연히 추게로 갈만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 추천들 중에서 제꺼도 있습니다^^;) 예상하신 것과 다르게 글의 주된 논지와 다른 부분에 대한 리플들이 적잖게 달리게 된 것은 왕의 파천에 대한 설명에서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하실 때에 비약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에 대한 비판으로는 부족한 거죠. 타격지점을 잘 못 잡았다고 할까요? 정말 조선시대 왕들이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믿기 때문에 유통되는 담론이 아닌 겁니다. 저는 그걸 말씀드렸던 겁니다.
공동체가 자기 정체성을 위한 담론을 형성할 때는 역사를 우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확히는 모든 개인이 자기 정체성을 위해 자신의 기억을 가공합니다.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을 유통시키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선시대 왕의 존재가 세월호의 선장과 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게 아닙니다. 더 확장된 자기 정체성을 위해서 부수적인 이미지는 덜어내는 거죠. 모든 날 것은 실재 그대로 언어화될 수 없거든요.
물론 그 유통 과정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로 전통시대 왕들까지 세월호의 선장 수준으로 생각하게 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기아트윈스님 같은 분들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더 나은 담론으로 매개되지 않는 한 ‘아는’ 사람들도 여전히 그 담론을 유통시킬 겁니다. ‘야, 언제는 안 그랬냐. 다 똑같지.’ 이런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전문가가 아닌 분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국사학의 전문가이신 기아트윈스님도 다른 분야에서는 진실과 다르지만 자신의 경험을 잘 설명해줄 많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유적 속성이죠.

다만, 올려주신 글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과는 별개로 조선 시대에 관한 담론장에서, 수도를 떠난 조선시대의 왕과 배를 버린 선장이 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의미 있고, 옳으며,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적를 위해 수단을 불사한다던가 선조가 언제 새누리당에 가입했냐던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뭐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했던 변혁 운동의 지도자들이나 XX를 위해서 연구라고 이름 붙이기도 아까운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굳이 말을 보태자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이나 혹은 수단이 목적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베버가 잘 설명해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멀리 있는 일이거나 '우리 아닌' '저들'만의 일은 아닌거죠. 그리고 전 새누리당에 표를 던질 생각도 없지만 주로 민주당을 비판(비난?)하는 사람입니다. 민주당에 표를 던져본 적도 없고 발전적으로 해체되었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대화가 되네요. 당하신 게 많아 진영논리의 색안경을 끼는 건 기아트윈스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공적인 담론장을 만드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함께 '대화'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머네요.
기아트윈스
14/04/18 21:40
수정 아이콘
밤에 쓰는 글은 감상적이거나, 혹은 격앙되기 쉬운데, 어젯밤 제 댓글이 좀 그랬던 것 같아 부끄러워집니다. 관심법을 써서 허수아비를 친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되구요. 글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소통을 유도하는 많은 촉매들이 사상될 수 밖에 없다고, 그래서 늘 관심법이, 다소간, 동원되곤 한다고 변명하고 싶습니다. 댓글의 길이가 확장일로로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 조금 간략한 답변 겸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1. 말씀하신 글의 취지, 즉 [분노가 아까우니까 모든 일들에 분노하지 말고 좀 생각해보자는 글이었습니다]와 실제 작성하신 글을 여러 차례 비교해가며 읽어보았습니다만, 여전히 어떤 간극 같은 게 느껴집니다. eLeejah님께서 처음 썼던 글에는 분명 분노해야할 대상에게 향해야 할 분노이니, 분노할 수 있는 대상에게 향하는 분노는 갈무리해두자고 하셨죠. 본 글에서는 [분노해야할 대상]을 염두에 두셨지만(비록 명확히 지시하진 않으셨어도) 본 댓글에서는 그 부분이 여전히 감추어져있습니다. 몇몇 분들이 이 모호한 지시어에서 [새누리당인가?]라는 생각을 떠올리고 [정치병]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 역시 그것이 감추어져 있기에 추측에 의지할 수 밖에 없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요.

또한 본 글의 마지막 꼭지에서 어떤 사탐 강사의 말을 인용하신 걸 보았습니다. 정치의 추기적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었죠. 그 짧은 인용이 글 전체에서 우리 사회의 raw한 단면, 즉 [정치 과잉]을 연상케 합니다.


2. 여전히 원하시는 [변화]에 대한 구체적 답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댓글에서 언급하신 [원하는 바]는 조금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지요. 스스로 하는 계몽, 교육 과 같은 것 말이죠. 부단한 향상. 독서가 짧아서 사회적 레벨에서 벌어지는 부르디외의 재생산과 글쓴이께서 언급하신 개인적 차원의 고양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3. 민중사에 대한 부분에서 [역사 속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민중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고 싶다는 민중 중심의 역사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민중사라는 이름 대신 굳이 민속사라는 다른 표현을 들고 나온 데에는 민중이라는 말의 뿌리 깊은 규범적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제 관심법이 어느 정도 적중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아무도 주목하지 았았던" 이라든가 "찾아주고 싶다"는 표현에서 전 여전히 깊은 당위성, 규범성을 느낍니다. 민중 사관을 시종 일관 감싸고 있는 진지하고, 더 나아가 비장한 분위기를 소거하고 좀 더 경쾌한 공기를 넣은 표현으로 민속사라는 말을 골랐는데 양자간의 차이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또 저는 민중사와 미시사가 양립할 수 없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양자가 전혀 다른 범주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네요. 죄송합니다. 민중사는 필연적으로 미시사입니다만, 미시사가 꼭 민중사인 건 아니라는 말이지요.


4.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 같네요. 제가 '분노'를 간과했기 때문에 애매한 곳에서 걸림돌을 만났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바로 그 걸림돌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싶었습니다. 조선의 역사경험에 대한 해석의 이념성 말이죠. 제가 일전에 자유게시판에 이데올로기에 대해 글을 썼는데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념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로 스텔스 기능을 꼽습니다. 본 댓글에서 많은 이들이 윗대가리 담론의 이념성을 [알면서]도 유통시킨다고 하셨는데, 저는 조금 달리 인식합니다. 몰라요. 이념은 자기 자신의 이념성을 숨깁니다. 대신 [사실]이라는 덮개를 쓰고 있죠.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좀 예민한 주제이긴 하지만 앞서 말씀하신 뚱뚱한 이의 사례로 가볼께요.


[뚱뚱한 자신의 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많은 불쾌한 경험들을 나의 의지 부족으로 언어화하고 나면 이후에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행한 일들을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게 되는 그런 경향성이 생기게 되는 방식입니다. ]

뚱뚱한 이의 일상 경험이 [나의 의지 부족]이라는 형태로 언어화하고 나면, 본인은 이 언어의 이념적 성격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이 이념의 상징적-허구적 성격이 자각되지 않는한 그는/그녀는 이 모든 불쾌한 경험에 대한 분노를 자기 자신에게만 쏟게 되겠죠.


5. 선장의 도주 사건이 우리네들의 마음속에 무어라 언어화하고 싶지만 표현할 길을 몰라 방황하던 그 분노, 그 분노에 구체적 표현을 주는 일종의 상징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선장의 도주 사건과 지배층에 대한 우리의 분노를 매개해주는 그 링크의 임의성입니다. 뭐랄까, 어떤 詩적인 연결고리랄까요. 선장 도주 사건의 구체성과 맥락이 사상된 채 말씀하신바 우리사회의 한 단면, 나아가 우리 민족 전체의 역사 경험을 하나로 묶어서 표상하는 시어가 되는 거죠. 우리의 분노의 [표현태]요. 언어화되지 못한 자신의 분노 때문에 갈등하는 마음에게 이러한 표현태가 주어지는 것에는 일종의 치료적(Therapeutic) 효과가 있습니다. 타인유심(他人有心)을 여촌탁지(予忖度之)라고, 복잡한 마음이 간결한 언어로 정리되는 기쁨을 느끼죠.

하지만 우리는 한 사건을 다룰 때 치료적 목적으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행정적 목적, 사법적 목적, 사적 목적 등 여러가지 목표를 위해 다양한 해석과 이해를 시도하죠. 제게 있어서 1차적인 목적은 역시 사적 목적입니다. 이 부분에서 글쓴이와 저의 해석의 렌즈가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맞는지요.


6. 잠복한 이데올로기를 하나씩 건져올려서 자각할 때 마다 제 마음이 한 단계씩 성장함을 느낍니다.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없앨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유적 특성인데. 다만 이들이 내 필요에 봉사할 지언정 날 지배하지는 못하게 해야지요. 더이상 내 뚱뚱한 뱃살에 대해 자학하지 않게 해야지요. 이건 내면의 욕망을 언어화함으로써 치료의 효과를 보는 이념화의 치료라기보다는 탈이념의 치료입니다. 뚱뚱한 이에 대한 불쾌한 경험의 탓을 자기에게 돌리던 분노의 태도를 잘못된 사회적 인식으로 전환시키는 치료가 아니라, 그 총부리 자체를 내려놓는 치료입니다. 뚱뚱하면 어때요? 잘 말씀해주셨듯이 이념은 자아비판, 자조를 동반합니다. "야 언제는 안 그랬냐. 다 똑같지."라는 담론이 결국 그 기저에 자조적인 쓴 맛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래서, 조선사가 엉뚱한 이념에 종사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습니다. 조선사 해석의 몰역사성, 탈문맥성, 이념성을 지적하고, 그럼으로써 해방시키는 게 제 학문적 목표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조선의 것은 조선에게, 대한민국의 것은 대한민국에게. 분노를 덜어놓고 쿨하게 바라보는 순간 조선사는 무궁한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를 드러내는걸요.
14/04/19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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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씀해주신 부분들에 대해서 짧게(!) 답 아닌 답을 하자면

1. 글을 명확하게 쓰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넓은 이해를 구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분노해야할 대상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오후에 쓴 댓글에서도 그닥 분명치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2. 아직 부르디외를 접하지 못하셨다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스스로 하는 계몽이라고 표현했지만 개인적으로 도를 닦겠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적으로 사회를 우회하는 방식이죠. 좋은 철학자? 사회학자? 라고 생각합니다^^;

3. 민중사를 굳이 민속사와 구분하고 싶어하시는 부분이 가장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민중사와 민속사는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간단한 답변만 하고 저 밑에다가 더 쓰겠습니다.

4. 기아트윈스님의 글은 즐겨 보는 편입니다만 다시 한번 찾아봐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글은 찾지를 못하겠네요.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이념성에 대한 경계심이 저와 다르네요. 제가 '안다'고 했던 것은 이데올로기의 이념성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조선시대 왕이 적군을 피해 수도를 떠난 것과 선장이 배를 가장 먼저 버리고 떠난 것이 서로 다른 층위의 문제임을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알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로써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의미였죠. 현실을 설명해주거든요.

5. 링크의 임의성이라고 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그닥 임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접어두죠. 해석의 렌즈가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트윈스님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으셨다면 윗 댓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史적 담론장에 머무르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도망간 윗대가리 담론을 비판할 필요는 없는거죠. '에이, 선조를 선장에 비교하는 건 좀 심하잖아'라는 글이었다면 저 또한 '옳으신 말씀입니다' 리플하고 추천 한방 날렸을 겁니다. 뭐 이해하지 못하셨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또 똑같은 이야기를 주절 주절 했네요. 사실 제가 짧게 쓰지 못하는 병이 있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 3과 4에서도 걸리는 부분인데 모아서 제일 나중에 쓰기로 하고, '야 언제는 안 그랬냐 다 똑같지'에서 자조를 읽으시는 건 조금 흥미롭네요. 흥미롭습니다^^


트윈스님과 제가 멀어지기 시작하는 부분은 이념성에 대한 판단인 듯 합니다. 이데올로기, 참 어려운 문제네요^^;
기아트윈스님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접하고 나니 이념성에 대해서 왜 그렇게 각을 세우시는 지는 이해가 됩니다. 다만 조금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 말씀하시는 민중사관 문제라던가 가용 동력을 어디다 끌어댈지 고민하는 운동권들은, 기아트윈스님은 직접 겪어보지 못하신 세대거든요. 학계에서 교조적인 민중사관이 죽은지는 이미 한참 전이고 학생운동만 하더라고 연대 사태 이후로는 뭐 눈길을 끌만한 Movement를 보여준 일이 없는데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적개심이 생기셨는지 개인적으로 좀 궁금해집니다.
각설하고, 저는 탈이념이란 환상이 진정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는 말씀하신 대로 스텔스 기능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속성이죠. 감추고 숨깁니다. 그 스탤스 속성의 가장 극적인 예가 바로 탈이념이라는 환상이죠. 이데올로기면서 자기가 이데올로기가 아닌 척 하거든요. 인간은 이데올로기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한 이야기가 될 듯 해서 이쯤에서 패스하겠습니다. 제 말에 반드시 동의하게 만들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으니까요.

조선사에 대한 애정이 뚝뚝 넘치는 글들 잘 읽었습니다.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다는데 언젠가 국사학계의 거두가 되시는 거 아닙니까^^?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닉네임 기억해놓고 꼭꼭 찾아 읽는 애독자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아가도 잘 키우시고 먼데서 목표하신 성과들 반드시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아트윈스
14/04/19 18:22
수정 아이콘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는 저 역시 지속적으로 언급했습니다. "탈이념"이라는 용어를 쓰는 바람에 불필요한 오해를 산 것 같은데요, 전 우파들의 통속적 레토릭 마냥 "이념"을 좌파의 전유물로 여기지도 않고, 비운동권 총학생회 선본들의 전가의 보도인 "탈정치 학생회" 같은 요상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열심히 머리를 써서 비유를 몇 개 마련해봤는데 제 견해가 잘 전달될 수 있길 바랍니다.


1. 서유기를 봅시다. 손오공이 삼장법사에게 제압당한 이후 천축에 도달하기까지의 이야기는 대개 일정한 패턴으로 흘러갑니다. 각종 요괴들이 가는 길을 막고 있는데, 이들은 거의 대부분 특정 지역에서 [부처님] 행세를 하며 지역민들을 지배하고 있지요. 손오공 등이 무력으로 이들을 대적해보지만 역부족이고, 결국 관음보살에게 날아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관음보살은 조요경을 주고, 조요경으로 비추어본 요괴의 진상은 하늘나라 어느동네 신선이 타고 다니는 탈것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손오공은 그 신선에게 가보죠. 십중팔구 자고있습니다. 흔들어 깨워보면 "아이구 깜박 낮잠을 잤네. 한 세 시간 잤나?" 하는데, 그 세 시간 사이에 탈짐승이 도망쳐서 하계에 내려가고, 무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백성들을 착취하고 있었던 거죠. 제정신을 차린 신선이 후딱 내려가서 호통을 치면 짐승은 그제서야 덜덜 떨며 다시 얌전한 탈것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식으로 손오공이 제압하는 요괴들의 총 수가 아마 108마린가 그럴겁니다. 곧 108개의 번뇌를 상징합니다. 어떤 요괴는 먹는데 탐욕스럽고, 어떤 요괴는 여자에 탐욕스럽고, 어떤 요괴는 돈에 탐욕스럽고, 그런식입니다. 이 108개의 번뇌는 손오공 본인이 가진 번뇌만 상징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각급 신선들이 가지고 있는 번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포악한 성질을 타고난 사람의 자기수양은 포악함을 버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실 불가능해요. 대신 포악함의 자각은 자신의 성질머리를 적절히 통제하고 운용할 힘을 줍니다. 포악함을 자신의 운용 범위 안에 넣는데까지 성공하면, 자기 부하들에게 포악함을 부리는 대신 적군을 향해서만 포악함을 부릴 줄 아는 천상계의 용장이 될 수 있는거죠.

서유기의 은유체계 내에서 이러한 [나의 성질머리]가 곧 신선들의 탈것으로 나타납니다. 자기 마음 속의 짐승 같은 측면은 누구에게나 있고, 없앨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 짐승을 길들이면 그놈에 올라타 순식간에 십만 팔천리를 날아갈 수도 있는 반면, 잠시라도 방심해서 그 짐승이 나를 장악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민폐를 끼치게 되는 거죠. 예컨대, 천계의 장군이 타고 다니는 애마가 곧 그 장군의 마음 속의 포악한 성질을 상징합니다. 장군이 낮잠을 자면, 즉 방심하면, 언제든 주변인에게 민폐가 되는, 하지만 정신 차리고 있으면 적군을 공포에 떨게 하는 그런 성질이요. 요는, 짐승을 죽여 도살하는 게 아니라, 정신을 번쩍 차리고 사는 거죠. 짐승이 나를 타고 다니지 않도록.


2. 물고기는 물을 떠날 수 없습니다. 대신 자기가 물 속에 살고 있는지 물 밖에 살고 있는지, 자기가 사는 곳이 물인지 기름인지도 모르는 물고기도 있는 반면, 자신이 속한 세계를 자각하고 그곳에서 편안한 물고기도 있습니다. 물고기의 자유는 물 밖에 나감으로서 성취되는 게 아니라, 물을 자각하는 데서 성취됩니다.


3. 이데올로기는 세리(稅吏)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싶어하지 않습니다. 늘 자신의 행위를 (비록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적 이해에 의해 추동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보다 숭고하고 의미있는 이름 하에 수식하고 싶어하죠. 이데올로기가 바로 이 이름들입니다. 우리는 한정된 수량의 시간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한 이데올로기에 시간과 능력을 납부한다는 것은 다른 이데올로기에 납부할 시간과 능력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대선기간이 되면 프로야구가 재미없어져서 잘 안 보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겁니다. 대선이라는 세리가 프로야구라는 세리보다 더 상위의 것이기 때문에, 대선이 징세하고 간 마음자리에 프로야구가 가져갈 자원이 남아있지 않은 거죠.

우리 모두가 다 세금을 내고 사는 것처럼, 우리 마음들도 이처럼 세금을 내고 삽니다. 다만, 강제징수냐 자진납부냐의 차이가 있지요. 자기가 어디에 얼만큼의 세금을 내는지 모르고 살 수도 있는 반면, 알고 살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각의 끝에 세금 납부의 대상을 바꿀 수도 있고, 세율을 협상할 여지도 생깁니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이념들에 대한 [인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렇게 보면 제가 앞서 사용했던 [脫이념]이 확실히 잘못된 표현이네요. 다크템플러로 가득한 마음 속에 계속해서 스캔을 뿌리는 것, 즉 [이념의 자각]을 통해 내 마음의 지형도를 확보하고, 그럼으로써 자유를 얻는 정도가 제 목표입니다.



p.s. 운동권 문제에 대해서는..... 21세기 초중반 대학가의 분위기에 대해 80년대 학번들은 운동권이 전멸했다 정도로 인식하더군요. 아마 본인들이 졸업한지 오래라 이런 오해가 생긴게 아닐까 싶습니다. 17세기가 되어도 18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유럽사회는 각급 기독교 단체와 세력이 충분한 힘과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죠. 다만, 패권을 잃었을 뿐입니다. 기독교에 적대적인 계몽주의자들이 (볼테르 라든가) 중세 때 나오지 않고 근세기에 나왔던 건 기독교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그들이 숨 쉴 공간이 생성됨과 동시에 여전히 기독교가 그 자리에 비판을 기다리며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학내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보운동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패권을 잃었고, 그래서 조금 달라졌을 뿐입니다. 좀 많이 달라졌죠. 술을 마시고 민중가요를 부르던 입이 이제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깃발을 흔들고 주먹을 치켜올리던 손이 이제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고, 독일어 대신 영어를 배우고 있고..... 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꼭 저를 볼테르의 자리에 둔 것 처럼 됐는데 사실 그렇진 않아요. 차라리 제 스탠스는 흄 정도에 비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실하고 정직하게 잘 살며 좋은 일 많이 하는 기독교에 대해 기본적으로 우호적입니다만, 그들이 끄적여놓은 잘못된 글들은 참아주기 어렵습니다. 답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14/04/20 03:23
수정 아이콘
서유기의 비유 아주 좋네요~!!!

남성 여가 문화의 빈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글에서 베네딕트 앤더슨에 대한 이야기를 봤던 기억이 있어 '만들어진 공동체'로서의 '민족'에 대해서도 윗 댓글 어딘가에서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하고 제 이야기를 풀어갔었지요. 세리 이야기는 그 글이 다시 생각나는 내용이네요. 말씀하셨던 이데올로기에 관한 글이 그 글이었군요^^;
계속 많이 읽은 척하는 느낌이 들어 조심스럽습니다만, 기아트윈스님은 그런 오해는 하지 않으실 것 같아 편하게 말씀드리자면, 제 이데올로기론은 주로 라깡의 정신분석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여기서 그에 관한 장광설을 늘어놓을 계제는 아닌 듯 하고,(언젠가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론에서 보자면 대선이 상위고 프로야구가 그 아래에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에겐 한정된 자원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환상을 '주로' 즐길 것인지에 대한 우선순위는 존재하는 게 분명하죠. 그리고 그 즐거움('불쾌한' 즐거움을 포함한)을 주는 환상이 환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 또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환상을 환상이라고 자각하더라도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요건 참 오해하기는 쉽고 설명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 다음 기회를 기약하겠습니다.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서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사회를 우회하는 스스로 하는 계몽이라던가 하는 부분들까지 다 말씀드릴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자유'를 탈이념적인 자유로 혼동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경험하신 운동권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변이 됐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제가 너무 쉽게 넘겨 짚었네요.

애초 '도망간 윗대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찌 여기까지 왔나 싶습니다. 덕분에 기아트윈스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네요^^ 어마무지 즐겁고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들 속에서 즐거운 대화를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대화로 인해 이후에 읽는 기아트윈스님의 글은 훨씬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거 같네요. 기약 없지만, 다시 대화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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