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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7/25 13:36:06
Name 민머리요정
Subject [야구] 인천야구의 행복한 추억, 태평양 돌핀스
안녕하세요. 민머리요정입니다.
휴, 벌써 마지막 글을 쓴게 5월 중순이니까 2달만에 글을 쓰게 됐네요.
제가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글 1개 정도는 더 쓰고 1달정도 쉬었을텐데.....
게으른 탓에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면서 이리저리 도망다녔습니다. -_-)//

마지막으로 작성했던 글이, 쌍방울 레이더스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많은 분들이 좋은 평가를 주셔서,
오늘도 흘러간 옛팀을 다시 추억하자는 의미로 준비해봤습니다.

제가 옛팀을 추억하기 위해서 '2'번째로 준비한 글입니다.
'2'번째로 준비한 글인만큼,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





82년 한국 땅에 프로야구가 개막한 이래로 연고팀이 무려 5차례나 바뀐 지역이 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이곳은 인천.
가장 서글픈 야구역사를 가진 팬들이 바로, 인천야구팬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30년이 넘은 프로야구 역사에 가장 많은 연고팀의 교체,
줄곧 하위권을 맴돌던 연고팀들의 성적, 믿었던 연고팀의 배반으로 연고팀을 잃을뻔했던 아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팬들은 아직까지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위치를 지키며,
끊임없이 인천야구에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많은 인천야구팬들이 그리워하는 팀이자,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태평양 돌핀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태평양 돌핀스는 삼미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에 이어, 3번째로 인천의 주인이 된 팀입니다.
85-87년까지 3년간 인천을 지킨 청보 핀토스,
모기업 청보는 야구단 운영과 더불어 시작했던 라면사업의 실패와, 주력사업의 부진으로
매년 적자가 나는 야구단 운영이 매년 벅차기만 했습니다.

결국 87년 구단 매각을 결정했고, 한진, 현대, 대우, 선경, 태평양 등 여러 기업들이 구단창단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들 중에서 태평양화학이 3개월간의 길고 긴 협상 끝에 50억에 팀 매입을 결정하며 청보에게 야구단을 인수받게 됩니다.

* 구단이 창단되고나서, 돌핀스라는 이름이 지어지기 이전에,
태평양은 구단 이름을 돌핀스가 아닌 다른 이름을 구상했었습니다 - 태평양 아모레
이후, 공모를 통해서 돌핀스라는 이름이 지어지기는 했지만, 아모레는 좀......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역대 인천 연고 팀 중 가장 인천과 어울렸던 팀명은, 돌핀스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태평양 이전의 연고팀들이 꼴찌팀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태평양은 시즌 목표를 '인천야구의 명예회복과 중위권 진입'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88년 위대한 첫번째 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신생팀답게 신인선발도 가장 많이하고, 재일교포 투수 김일부 영입과 해태에서 김일권 트레이드.
의욕적인 시즌을 시작했지만, 개막이후 6연패. 천신만고 끝에 1승을 하긴 했지만 다시 8연패.
구단은 8연패의 과정에서 첫 감독이었던 강태정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고,
김명성 수석코치도 2군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팀의 지도체계과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이후, 임신근 투수코치를 감독대행으로 기용하며 시즌을 치뤘지만 결과는 꼴찌.



돌핀스의 첫해는, 유독 구단이 현장에 간섭하는 일이 많았고,
선수와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생기면서 선수단이 갈라지는 일까지 생겼었다고 합니다.

시즌 종료되기 직전에 감독을 선임하게 되는데, 김성근 감독이 선임되게 됩니다.

김성근 감독은 구단이 현장에 개입하는 것을 미리 알고,
'선수들이나 코치들과 개별적인 접촉 금지'라는 계약조건을 걸었고,
구단은 이를 수용하지 못해 무산 직전까지 갔으나,
극적으로 구단이 이를 수용해 김성근 감독을 2대 감독으로 선임하게 됩니다.

김성근 감독이 선임된 이후, 태평양에 대대적인 칼바람이 몰아쳤는데,
박용진 2군 감독을 제외한 모든 코치들을 내치고, 자신과 OB에서 함께했던 인물들을 데려와,
김성근 사단을 결성하게 됩니다.



89년은 처음으로 단일시즌제가 치뤄진 시즌입니다.
120경기가 치뤄지는 장기 시즌에 꼴찌를 탈출해보자는 소박한 목표를 내세우고 시작했던 시즌.
시즌이 시작되기 이전에,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의 정신력 무장과 훈련을 위해서,
그 유명한 '오대산 지옥훈련'을 단행합니다.

89년 1월, 6박 7일간 진행되었던 이 '미친' 훈련은
맨발로 눈이 내린 산길을 뛰며, 얼음을 깨고 얼음물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추위와 맞서 싸우며 정신력을 재무장하고, 하나로 뭉치자는 차원에서 진행된 훈련이라고 합니다.

이 훈련은 공교롭게도 89 시즌 태평양 돌핀스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와 상통합니다.
[하나로 뭉쳐진힘. 돌핀스여 승리하자!]

이 훈련 당시 선수들의 반응으로,
김동기-"칼이라도 있으면 찔러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김신부-"연봉 1억원을 줘도 싫다.당장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  
김일권-"과연 이렇게 훈련하는 것이 시즌때 야구를 하는 것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런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선수들도 결국 다 훈련에는 참가했다고 합니다. -_-)......



이런 훈련때문이었을까요, 89년 프로야구에는 인천발 태풍이 몰아치게 됩니다.

박정현 - 최창호 - 정명원 / 20대 초반의 젊은 투수 3인방이 팀을 견인하면서,
짠물야구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게 됩니다.

19승, ERA 2.15의 박정현, 10승, ERA 2.22의 최창호, 11승, ERA 2.45의 정명원.
이들 3명은, 평균자책점 2,3,4위를 차지했고, 팀 평균자책점 3.03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19승을 올린 박정현은 이해 신인왕에 뽑히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핀스가 3위에 머물렀던 이유는, 그들이 굉장히 물방망이였기 때문입니다.
어느정도 수준이었냐면,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 타격 20위에 들어간 선수가 전무했으며,
팀내 수위타자가 빙그레에서 이적해온 이광길로 0.270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시즌 초, 56승을 목표로 내세웠던 태평양은, 여기에 6승을 더한 62승을 거둬 목표를 초과달성.
더불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이들이 처음 맞이한 포스트시즌은 짠물야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의 대결을 하게된 태평양.

- 1차전 : 박정현과 성준의 대결이었는데, 박정현이 14이닝 8피안타 완봉을 했고,
14회말 김동기의 끝내기 쓰리런 홈런에 힘입어 3-0 승리. (14이닝 완봉 -_-)......
- 2차전 : 최창호가 3-0 리드를 지키다가, 김용국에 역전 만루홈런을 맞으며 3-4 패배.
- 3차전 : 10회까지 1-1로 팽팽한 투수전을 치르던 두 팀.
김일권이 출루에 성공했고, 상대의 폭투로 3루까지 진루.
이후 만루작전을 펼친 삼성에게 곽권희 선수가 끝내기 안타를 때리며 2-1 승리.

이렇게 준플레이오프에서 극적으로 삼성을 꺾은 태평양은,
자신들이 시즌 3위의 성적을 거둔 것이 단순히 우연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냈습니다.

이어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된 해태와의 대결.
결과적으로 태평양은 해태에게 3패를 당하며 떨어지게 되었는데,
억울한 판정 하나로 1승을 놓쳤다며, 팬들이 객석에 불을 지르고, 상대팬들에게 병을 집어던지는 등,
관객석 쪽에서 약간의 사고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토록 꿈같았던 한해를 보낸 태평양.
절반의 성공을 거둔 시즌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던 89년 한해,
이듬해에는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목표로 야심차게 새로운 시즌을 준비합니다.



별다른 보강없이 시즌을 시작한 태평양.
김경기의 입단과, 김경문, 오영일의 영입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보강이 없었고,
작년에 효과를 제대로 봤던, 극기훈련을 또 한차례 가지게 되죠.
(덕분에 삼성, 롯데, OB도 덩달아 극기훈련을 태평양처럼 떠나는 바람에...... 생고생을....)

90년의 태평양은 완전한 대실패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89년 최고의 한해를 보냈던, 최창호, 정명원, 김동기 등의 선수들은,
구단과의 연봉협상싸움 덕에 전지훈련에 제대로 참가하지도 못했고,
신인왕과 평균자책점 2등을 차지하며 에이스로 부상했던 박정현은, 허리부상을 얻어 중도하차.

투수력으로 버텨낸 태평양에게, 전년도 투수 3인방의 붕괴는 곧 팀의 붕괴를 의미했습니다.

투수력이 붕괴된 상태에서, 김성근 감독은 이를 버텨내기 위해 플래툰 시스템을 운용하며,
어떻게든 시즌을 치뤄나가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시즌 내내 분전하던 태평양은 결국 시즌 5위로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하게 되죠.

시즌이 끝나고 김성근 감독은 계약기간 1년을 남기고 사퇴하게 됐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습니다.

삼미 - 롯데 - 청보를 거쳐,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팀을 이끈 에이스였던 임호균.
김성근 감독은 임호균 선수에게 5승을 보장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사퇴하겠다는, '5승 각서'를 제출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단은 이 5승을, 선발 5승으로 고쳐 실현이 어려운 조건으로 바꿔버렸고,
김성근 감독은 임호균 선수를 단 한차례도 선발로 등판시키지 않는 것으로 맞대응하게 되었죠.
결국 임호균 선수는 7경기에 구원으로 등판하여, 승패없이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이 각서의 내용이 외부로 노출이 되었고,
타팀에서 김성근 감독이 사퇴를 하게 되면 영입할 의사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고나서,
태평양은 김성근 감독에게 해임을 통보하고, 박영길 감독을 신임감독으로 영입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알고 있던 내용은,
작년 8월에 임호균 전 선수의 인터뷰를 통해서 다시 뒤집혀버렸는데요.
이미 87년부터 구위가 떨어져 하락세를 걷던 임호균 선수는, 구단에 이미 은퇴할 것을 시사했고,
김성근 감독은 팀의 레전드로 팀에 남아서, 선수들을 다독여주는 역할로써 남아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성적을 원했다기보다는, 리더로써 팀에 남아주길 바랬던 것이죠.

인천야구는, 이렇게 김성근 감독에게서 가을야구의 달콤함을 맛보고,
좋지 않은 과정을 보이며 김성근 감독과 첫번째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새로운 감독인 박영길 감독을 영입해,
기존 김성근 감독의 짠물야구가 아닌 공격야구로의 전환을 선언했던 새로운 태평양.

시즌 내내 불협화음을 일으켰던 팀은,
6월에 박영길 감독과 신용균 코치의 충돌로 팀의 결속력이 와해가 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민감한 선수들까지 동요하게 되며 팀은 또 한번 무너져버립니다.

신생팀 쌍방울에게 4연패를 당하며 완전히 팀은 무너져버렸고,
팀은 시즌 5위의 성적을 받아든 채 쓸쓸히 가을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즌이 끝난 후, 태평양은 박영길 감독을 교체하기로 결정하고,
전 삼성 감독이었던 정동진 감독을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게 됩니다.



시즌이 끝나고, 태평양발 병역비리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김동기, 가내영, 허정욱, 이근엽, 노민승 / 1차지명 정민태 /
총 6명의 선수들이 병역비리로 수사를 받게 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동기, 정민태 - 보충역 → 병역면제자
가내역, 허정욱, 이근엽, 노민승 - 현역입영대상 → 보충역으로 바뀐 것에 대해서,
허위진단서 발급 여부에 대해 경찰의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요.

결국 정민태 선수는 병역법 관련 제3자 뇌물 교부 혐의로 구속되고
나머지 선수들은 전원 무혐의 처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진실은 저너머에.....)

정민태 선수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다음해인 92년 2월14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서울 구치소 수감 65일 만에 석방됩니다.



이후, 2년간 6위 - 8위를 기록하며, 다시 꼴찌를 기록하게 됩니다.
93년 다시 꼴찌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태평양은, 다시 심기일전하여 새시즌을 준비에 나섭니다.

이전에는 투수들이 심각한 혹사가 전시즌에 있어서,
한시즌 성적이 나더라도 다음해에 탈이 나버리는 경우가 생기곤 했는데,
94시즌에는 전년도에 충분한 휴식을 주고 준비를 잘해왔기에, 굉장한 기대감이 팀에 있었습니다.
신인으로는 이숭용, 하득인, 최상덕, 전준호 등의 선수들이 입단했고,
타격코치로 빙그레 출신이자, 재일교포 출신의 고원부 코치를 영입하게 되죠.

94시즌, 태평양은 89년 돌풍 이후,
또 한차례 돌풍을 일으키며 짠물야구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92년 팔꿈치 수술 이후, 93년에 2경기만 출장한채, 재활에 매진했던 정명원은,
선동열의 31세이브를 넘어서, 40세이브를 달성하며, 역대 최초 40세이브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김홍집, 최창호가 각각 12승을 거두고,
원주고 신인 안병원이 11승, 인천고 신인 최상덕이 13승을 올려 10승투수 4명을 보유한 투수왕국이 됩니다.

팀타율은 0.244로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강력한 투수력과 태평양 특유의 클러치능력을 바탕으로 시즌 내내 승전보를 울리게 되는 태평양.

시즌초, 팀의 목표를 66승으로 잡았는데, 최종 성적은 68승 55패 3무로 2승 초과달성하며,
역대 인천야구팀 사상 최고의 기록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를 처음으로 꺾은 한화가 진출.
하지만 태평양은 높은 마운드를 자랑이라도 하듯, 3승을 거두며 가볍게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인천야구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진출.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을 기다리는 상대는 LG 트윈스.
유지현, 서용빈, 김재현 - 신인 3인방의 맹활약 속에,
압도적인 게임차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여유롭게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던 LG 트윈스.
시즌에 13승 5패로 완전히 태평양을 압도했던 LG 트윈스기에,
태평양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들은 기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시리즈 1차전.
태평양 돌핀스 팬들에게 가장 큰 임팩트로 남아있을 이 역사적인 한국시리즈 1차전.

LG의 1차전 선발투수는 18승의 다승왕 이상훈.
태평양의 1차전 선발투수는 김홍집으로 좌완투수들의 맞대결이 성사되었습니다.

시즌의 임팩트는 이상훈이 더욱 강했을 지 모르나, 이날 경기에서 김홍집은 이상훈을 압도했습니다.

위기를 잘 벗어나고, 압도적인 구위로 마운드를 지휘한 김홍집과 달리,
8회 이상훈에게 위기가 찾아보자, LG 벤치는 마무리 김용수를 투입하며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10회가 끝난 시점에서 130구를 넘긴 김홍집.
모두가 11회에는 정명원이 올라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김홍집은 또 다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첫타자를 잘 처리한 이후, LG에서 대타로 낸 타자는 무명의 김선진.
공교롭게도 김선진은 태평양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가 방출되어, 트윈스에 입단했던 선수.
안타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 대타작전.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김홍집이 던진 마지막 공 141구는,
대타 김선진에게 통타. 좌측 담장을 넘어 길고 긴 승부의 종지부를 찍는 끝내기 홈런이 되었습니다.
이 한방이 시리즈의 승패를 가르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충격의 패배를 당한 이후, 내리 3연패를 당하며, 결국 태평양은 왕좌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13년의 길고 길었던 기다림. 아쉬운 준우승.
비록 우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인천야구팬들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원정팀에게 굉장히 극렬한 반응을 지금껏 보였던 인천야구팬들은,
우승팀 LG 트윈스에게 모두 기립하여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는 모습은,
당시 스포츠뉴스에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되었었다고도 합니다.
(LG트윈스는 정규시즌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을 도원야구장에서 장식했습니다. -_-).....)



전시즌 준우승팀 태평양. 모두가 예상하길 무난히 가을야구를 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예상은 정말 크게 빗나가고 말게 되죠.

김홍집이 어깨부상으로 일찌감치 전력에서 이탈.
구단은 이를 꾀병이라고 오인해서, 이에 섭섭함을 느낀 김홍집은 팀을 이탈해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전년도 13승으로 신인왕 후보에도 올랐던 최상덕은,
방위복무로 1승도 올리지 못했고, 그나마 마운드에 오른 경기에서 장종훈의 타구에 얼굴을 맞아,
안면에 큰 부상을 입어 시즌아웃이 되고 맙니다.

전시즌 김동기, 김경기와 함께 클린업트리오를 이뤘던 윤덕규는 부상으로 1할대 타율에 머물렀고,
주전포수 김동기는, 무릎과 허리 부상, 백업포수 장광호 마저 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2군 포수였던 김성태가 태평양의 안방을 지키게 됩니다.
거기에 팀의 간판타자 김경기가 부상으로 1개월동안 전력에서 이탈.

여러 악재를 거듭되고..... 9월 초, 태평양이 현대에 인수된다는 공식적인 발표가 나면서,
인천야구는 또 한번 연고팀을 바꿔야되는 일이 생기고 맙니다.

태평양의 마지막은 48승 73패 5무 - 7위라는 성적표를 마지막으로.....
8년간 인천야구의 주인생활을 마치고, 현대유니콘스에 인수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오른쪽 상단부터 순서대로)

여러분은 그들을 얼만큼 기억하고 계십니까.

돌핀스의 일원이 되어,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운 김일권
어두웠던 태평양의 암흑기를 지킨 에이스 최창호
돌핀스의 역사에 가장 완벽했던 마무리 정명원
인천야구팬들에게 눈물이자 아픈 기억. 141구의 투혼, 김홍집
든든한 안방마님이자, 선동열의 천적, 김동기
선수생활 끝까지 인천을 홀로 지킨 인천야구의 아들, 김경기
중심타선을 굳건히 지켜준 초구의 사나이, 윤덕규
만년 유망주에서, 이후 인천야구의 에이스로 다시 태어난 정민태.



어느새, 태평양 돌핀스가 프로야구판을 떠난지도 19년이나 됐습니다.

인천야구를 나름 길게 지켜줬으며,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며 인천야구의 봄을 이끌어냈던 태평양 돌핀스.

돌핀스! 돌핀스! 무적함대! 돌핀스!

아직도 귓가에 돌핀스의 응원가가 생생하다고 말하는 팬들이 참 많습니다.
태평양 돌핀스는 인천야구팬들에게 꿈과 희망이었으며,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모두 말합니다.

2012년 태평양 돌핀스 출신 선수로는 마지막으로,
전준호 선수 (투수)가 은퇴를 결정함으로 현재 프로야구 판에 태평양돌핀스 출신 선수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ㅠㅠ

하지만 그들은 이제, 한국야구의 발전을 위해, 한국야구의 더 큰 부흥을 위해서,
한 팀의 감독으로, 코치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인천야구에 있어서 행복했던 시절,
태평양 돌핀스를 함께 추억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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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의K
14/07/25 13:45
수정 아이콘
으악... 94 한국시리즈 피꺼솟... 생애 처음으로 잠실야구장을 갔던게 저 94 한국시리즈...
그날 이후로 LG가 싫어하는 팀 1위로 올라간 한 소년은 20년후 LG만 만나면 펄펄나는 넥센팬이 되어있다고...
BetterTogether
14/07/25 14:0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 야구장 갔던게 93년 5월 5일인지 94년 5월 5일인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엘지와의 잠실경기였어요 어린이날 태평양과 엘지의 경기였죠
만원 관중이 꽉 들어찬 잠실야구장에서 어린마음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고
비록 태평양이 졌던거 같지만 그 때부터 이후로 현대 - 넥센 응원하고 있네요 크크
좋은 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견우야
14/07/25 14:07
수정 아이콘
제가 태평양 돌핀스 팬이라서..
94년.. 좋은 글 감사합니다.
파버카스텔
14/07/25 14:18
수정 아이콘
현린이-> 넥센팬입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탕수육
14/07/25 17:48
수정 아이콘
저랑 같은 테크 타셨네요.
14/07/25 14:21
수정 아이콘
김일권 선수가 도루왕 김일권이였나요? ... 저도 태평양 응원하다가 현대를 거쳐서 지금은 넥센팬이 되었죠...
민머리요정
14/07/25 14:59
수정 아이콘
네 맞습니다. 도루왕 김일권 선수 맞아요 :)
14/07/25 14:22
수정 아이콘
중간에 전준호 선수 얘기는 투준호라고 해두지 않으면 헷갈리는 분들 계실 거 같아요.
민머리요정
14/07/25 15:00
수정 아이콘
아 네, 수정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14/07/25 14:34
수정 아이콘
안녕하세요 돌핀스 어린이야구단 출신입니다
아직 돌핀스 모자가 집에 있습니다..
Bluedawn
14/07/25 14:39
수정 아이콘
아련하네요 도원구장에서 5회 끝나고 라면 먹는게 꿀맛이었지요
drunken.D
14/07/25 14:50
수정 아이콘
인고 100회 졸업생입니다.
태평양 돌핀스는 애증의 팀이죠.
짠물야구라고 표현하기도 뭐합니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에이스들을 배출해 냈지만, 기억에 남는 타격을 한 선수는 김경기, 김동기 선수 둘 뿐입니다.
(나름 KK포라고 인천구장가면 난리였지만, 그 KK포가 같이 터진 날은 제 기억에 없습니다..)
돌핀스 팬이었던 저는 엘지 어린이야구단 애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답니다.

재밌는건 그 당시 인천 고교야구는 타고투저 현상이 매우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점이네요.

제겐 어찌 보면 마지막 인천 연고팀인 돌핀스를 추억하니 가슴속이 꿈틀꿈틀 간질간질 하네요.
我無嶋
14/07/25 15:23
수정 아이콘
태평양의 많은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전성기를 보내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사라졌죠.. 마치 후에 쌍방울이 그랬듯
김일권, 김경문, 김재박, 윤덕규..
박준태를 참 좋아했는데 LG로 가버린 기억도 나고..그러고보니 인천야구는 청룡-LG 와 선수를 잘 주고 받았네요..김재박, 윤덕규, 박준태, 최창호, 안병원...
이름 특이한 선수도 많았죠
가내영 감독님, 안병원 코치님, 계기범, 여태구, 염경엽 감독님도 발음이 익숙치 않은 이름이었고..
3루에서 꼭 포구 후에 글러브에서 공을 쥔 손을 두세번 팡팡 치고 1루로 송구하던 이선웅 선수도 떠오르고.. 도원을 지키던 쿠웨이트 박 아저씨도 생각나고...

김홍집 선수와 관련해서는 오마이뉴스 김은식 기자님의 '그의 141구는 아직도 내 마음을 날고 있다' 라는 기사를 추천드립니다.
니시키노 마키
14/07/25 16:46
수정 아이콘
응원가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H사 인수 결정 후 그 응원가를 몇십번이나 돌려서 또 듣고 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단약선인
14/07/25 16:53
수정 아이콘
저는 그 문제의 한국시리즈를 현장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집사람 절친이 LG 열혈팬이라 어떻게 표를 구하고, 또 자리도 맡아놔서 편하게 봤는데...
김홍집 선수의 그 역투가 참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몰래 응원했습니다. 태평양을)

8회초 1사 1,3루에서 김동기 선수가 아마 병살타를 쳤지요. 그게 가장 아쉬웠네요.
진지한거짓말쟁이
14/07/25 18:24
수정 아이콘
돌핀스 유목민 으로 이렇게 추억에 잠기게 해주는 글 감사합니다.....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가던 야구장, 94년의 기억, 태평양 돌핀스는 저에겐 가장 오래된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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