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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7/29 17:56:48
Name Eternity
Subject [책 리뷰]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귀족의 나라에서 연대를 말하다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책 리뷰]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귀족의 나라에서 연대를 말하다


(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한겨레신문사, 2002.)



10년 만에 다시, 홍세화를 읽다


10여년 전인 대학생 시절, 스물 한 살에 읽은 홍세화의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은 내게 생경한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곧 이 책은 그 시절의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이자 대한민국 사회를 읽는 하나의 창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10년. 문득 궁금해졌다. 그 시절 프랑스 사회의 이방인이었던 홍세화가 진단하고 바라본 한국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2014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할까?





사회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은 '민주'도 아니고 '공화'도 아니므로 오직 남는 것은 '국'뿐이었다. 이를테면 '재벌 공화국'이나 '겨울 공화국'이 우리 공화국에 제격이었다. 권세 있는 자들이 국민의 4대 의무 중 가장 중요한 의무인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를 가장 지키지 않는, 또는 권세 있다는 말 자체가 국민의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특권인 양 인식되고, 따라서 한국의 '애국주의'가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도 '민주'도 '공화'도 비어 있는 데서 온 것이다.···(중략)···그래서 나는 차라리 이 나라를 사회귀족의 나라로 정하고 사회귀족에 오른 사람들에게 귀족 서품을 주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품을 받은 사회귀족들에게 그에 어울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나마 기대할 수 있겠으니 말이다. 말로만 '민주공화국'이고 실제로는 '사회귀족의 나라'인 것보다는 속과 겉이 모두 사회귀족의 나라일 때 귀족들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p.26~28/ 사회귀족의 나라 中)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 홍세화는 공화국의 정의와 본질에 대해 말한다. 즉 'Republic'에 담겨있는 공(公) 개념의 역사적 요체인 사회정의와 평등사상이 비어 있는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 이른바 허울뿐인 껍데기만 존재하는 우리들의 민주공화국에 대한 날선 비판. 이럴 거면 차라리 전제왕권시대처럼 사회귀족의 나라로 정하고 사회귀족들에게 서품을 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그의 농담 섞인 일침은 일면 황당해 보이지만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묵직한 자조감과 씁쓸함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서,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으로 평생 살아가겠다하는 이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피로사회, 고단한 대한민국


[97년에 난생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았다. 유럽 땅에서 18년 동안 산 뒤의 일이었다. 97년 일본에 도착한 날 저녁 무렵 도쿄 시내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나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적지 않은 승객들이 피곤한 표정으로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랬지!' 잠시 뒤에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여지없이 서울의 시내버스와 지하철 풍경이 떠올랐던 것이다. 피로에 지친 승객들의 모습, 고단한 삶의 표정들을 서울의 시내버스나 지하철에 오르면 항상 볼 수 있었다. 그 모습과 표정을 나는 18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p.175/ '삶의 질'을 바꾼다 中)

이 책에서 묘사하듯 피로에 찌든 채로 출퇴근길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싣는 우리네 고단한 일상은 사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딱히 달라진 게 없다.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시절 지하철 안의 풍경은 역 앞에서 나눠주던 메트로나 포커스 등의 무료 신문을 읽거나 MP3로 노래를 듣거나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던데 비해, 이제는 각자의 스마트폰을 열심히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낸다는 차이일 뿐.

여담이지만 영화 [토탈리콜]을 보면 먼 미래, 지구 중심을 관통하는 중력열차 '폴'이 등장한다. 미래의 지구를 지배하는 UFB(브리튼 연방)은 이 최첨단 열차 '폴'을 이용해 콜로니(식민지)의 거주자들을 브리튼 연방으로 매일 매일 운송시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이른바 노동자들의 편의를 위한 교통수단이 아닌, 노동력 착취를 위한 최첨단 운송수단인 '폴'. 나는 출퇴근 시간의 서울 지하철을 볼 때마다 [토탈리콜]의 중력열차 '폴'이 떠오르곤 한다. 버스와 더불어 서민들에게 제공되는 현대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안에서 사회귀족의 서품이 없는 우리들은 매일 매일 화장기 없는 피곤한 얼굴과 미처 다 말리지 못한 머리칼로 콩나물시루처럼 서로를 밀쳐대며 몸을 싣는다. 기다란 현대식 '폴' 안에서의 풍경이다.





연대인가(solidaire), 홀로인가(solitaire)


[우리가 흔히 겪는 일이지만, 가령 한국에서 지하철 파업이 일어나면 한국의 언론들은 노동자들이 왜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즉 파업을 하게 된 원인과 배경은 거의 무시하고 오직 파업의 결과만을 부각시켜 보도하곤 한다. 즉,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점만을 강조하면서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것이다.···(중략)···생존권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이면에 바로 기득권 세력의 집단 이기주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p.197,207/ '사회정의'와 '질서 이데올로기' 中)

[사기업화된 영국 철도와 관련해 계속되는 우화들을 통해 우리가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공공서비스 부분을 사기업화할 때, '이윤이 나면 (당연히) 챙기고 손해가 나면 정부 부담, 즉 국민 부담으로 넘긴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떠맡아야 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공공서비스'라는 성격 때문인데, 철도의 '사기업화' 자체가 공익 추구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관철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중략)···한국에서 공공 부문의 사기업화 논의가 있을 때마다 영국이 마치 모범이나 되는 듯 말하는 입들이 적지 않다. 이제 정작 영국이 철도 부문에서 사기업화를 포기하고 공사(公私) 반반이며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업으로 바꾼다고 하는데, 영국을 예로 들면서 한국철도의 사기업화를 주장해온 입들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할지 무척 궁금하다.] (p.214~215/ 사기업화 또는 민영화 中)

[자본과 권력은 항상 노동자의 힘이 분산되기를 바란다. 세력관계에서 항상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다. 가령 정규직 노동자 아래 비정규직 노동자를 두고 또 그 아래 외국인 노동자를 두는 식으로 차별화를 기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임금 등 노동조건을 서로 다르게 함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경쟁심을 유발시키며 남의 불리한 조건이 나의 유리한 조건을 담보한다고 믿게 함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에 연대의식이 자라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p.194/ 노동자의 힘과 연대 中)

10년 전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통해 홍세화가 지적한 노동자의 파업과 시민의식, 공기업 민영화, 노동조합 합법화, 비정규직 차별 문제 등 우리 사회가 봉착한 숱한 문제들, 이 모든 것들이 2014년의 대한민국을 여전히 뜨겁게 달구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서발 KTX 법인 설립 문제에 따른 철도민영화 논란과 코레일 노조의 철도파업이 핫이슈였으며 지난 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합법화 15년 만에 법외노조 판결을 받았다. 또한 세월호 참사의 주된 원인 가운데, 효율성만을 중시한 청해진해운의 비정규직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모르는 이가 없다. 이제와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다시금 찬찬히 읽다보면 과연 이 책이 10년 전에 쓰여졌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2014년 현재에 썼다 해도 믿길 만큼 시대를 역행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 앞에 절망이란 두 글자가 드리워지기도 한다. 이 책의 현시성과 유효성에서 느껴지는 암담한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안타까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더불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이에 대한 홍세화의 대답은 한결같다. 그는 끊임없이 '연대'를 이야기한다.





슬픔과 분노의 땅, 그 야만에서 벗어나기


[23년 만에 돌아온 사회. 오랜만에 돌아와 잘못 보았기 때문일까. 야만과 광기로 가득한 정신적 황폐함을 홀로 서기의 물질적 욕구로 채우고 있는 사회가 아닌지 묻게 한다. 대학가에는 책방을 찾기 어려운 대신 '먹고 마시고 놀자' 거리와 고시원들이 널려있었다. 'Think Money', "부자 아빠를 꿈꾼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억대 연봉'이 대중지들의 표지를 요란하게 장식하고 있다. 교육 상황은 광란에 가깝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추려내기식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몸부림치고 있다. 마치 어린이들에서 어른들까지 모두 '나 홀로 잘 먹고 잘살자'는 구호 아래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동물적 욕망들이 인간적 성찰들을 압도하고 비웃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남의 고통과 어려움에 관심이나 가져줄 것인가.] (p.279~280/ 야만에서 벗어나기 中)

이러한 우리사회의 현실, 야만의 맨얼굴 속의 대한민국을 저자는 '슬픔과 분노의 땅'이라고 표현한다. 사회구성원들을 야만적인 약육강식의 벼랑으로 내모는 비정한 슬픔과 분노의 땅.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의 동물적 본능과 광기가 가득한 이 땅, 이 대한민국에서 그럼에도 홍세화는 '연대를 사는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슬픔과 분노의 땅. 동시대를 사는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젊은 벗들에게 부끄러움부터 앞선다. 그러나 역풍을 온 가슴으로 안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 벗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쁨은 그 슬픔과 분노를 뛰어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몰상식과 불의로 가득한 사회를 창조적이며 자유로운 구성원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로 가꾸기 위한 투쟁의 길목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p.282/ 야만에서 벗어나기 中)

앞서 말한 것처럼 10년 만에 다시 읽은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은 2014년의 대한민국에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유효함을 넘어서 야만의 광풍 속에 그것이 야만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날카로운 일침과 커다란 숙제를 남겨준다. 10년 전보다 더욱더 강고해진 약육강식의 덫과 물질만능주의의 황폐한 늪 속에서도 우리가 끈질기게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연대를 사는 즐거움'을 아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우리는 사회불의보다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지하철-철도 파업에도 불편함을 감수하며 마음으로 응원하는 어린 학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서명지에 서명하는 정규직 직장인, 장애인 시설 확충을 위한 모금함에 품속에서 꾸깃꾸깃한 지폐를 꺼내어 넣는 어르신. 이러한 '연대를 사는 즐거움'을 널리 퍼뜨리고 알려온 것만으로도 홍세화, 그리고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 우리사회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의 말미에 저자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그래, 이 책에 적힌 그의 말처럼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이기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패배'인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결국은 좌절이나 절망을 끝내 거부하고 그 삶을 마냥 껴안는 '끝없는 패배'라면 그 패배의 동반자로서 기꺼이 누군가의 손을 맞잡아줄 준비를, 그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누군가가 우리여야 한다는 것. 이것이 결국 홍세화의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 우리에게 전해준 의지의 낙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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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9 19:12
수정 아이콘
연대와 혁명으로 현대사에 있어서 크나큰 변화를 일궈낸 우리나라인데 되려 연대에 대한 비관론과 무용론이 지배하는 것을 보며 신자유주의 시대가 얻은 문화와 정치에 대한 헤게모니, 이를테면 경쟁,업적지상주의와 실용주의같은 것들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특히 요즘 비정규직이나 노동자, 대안경제와 신자유주의 비판관련 책들을 탐독하는 입장에서 꼭 읽어보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Eternity
14/07/29 19:38
수정 아이콘
현대사의 시각에서 보자면 nickyo님 말씀처럼 크나큰 변화를 일궈낸 것이 맞지만 역사 전체로 보자면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같은 경험이 없는 우리 사회의 혁명과 연대의식은 보잘 것 없는 수준, 혹은 아직도 태동기에 머물러있다고 보여집니다. 그 사회의 연대의식이라는 것이 결국 노동자로서의 스스로의 위치와 존재를 자각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홍세화가 말하는 프랑스 사회와 우리사회의 노동자 의식 혹은 시민 의식의 간극 혹은 차이는 이른바 넘사벽이겠죠. 시민의 손으로 전제왕권을 끌어내린 경험이 없는 역사, 분단 국가라는 특수성과 이에서 비롯된 레드컴플렉스, 그리고 우리나라 특유의 지역주의 등이 결국은 이러한 연대의식 약화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는 다르게,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시각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 '비록 불편하지만 그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응원하겠다'라는 분위기가 과거에 비해 (특히나 젊은 층들 사이에서) 부쩍 많이 형성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민의식의 성숙에 홍세화씨와 같은 진보적 지식인들의 노력도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보여지고요.
14/07/29 20:41
수정 아이콘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분단국가와 반공주의 특수성에의해 좌파정치 자체가 없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연대에대한 시민의식이 굉장히 강한편이었다고요. 오히려 지역주의, 적자생존 경쟁지상주의, 자유주의를 통한 연대의식 약화는 90년대 삼당합당 이후 외환위기를 겪으며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왕권을 무너뜨리고 시민혁명과정을 통한 근대화가 없다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치열하게 항일민중연대의 역사가 어느정도 그를 대행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대한민국 정치지도 자체가 프랑스의 좌우파 개념과는 다르게 변형되어 구성되었다고 생각하구요.
노동자 인식과 관련해서도 사실 이정도의 경제발전속도와 더불어 이정도로 치열하게 싸우고 결과를 얻어내온 노동자계층을 생각하면 그게 과연 많이 낮은 수준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에 대한 상대적 인식차이는 심했지만 노동자계층 자체의 싸움은 상당히 활발했으며 그 역량도 열등하지 않았다고 여기고요.. 모바일에 일중이라 좀 두서가 없는데...여튼 지역주의나 개인주의 연대약화등은 1990년대 이후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Eternity
14/07/29 22:04
수정 아이콘
좋은 의견 잘 읽었습니다. 어떤 말씀이신지 잘 이해했구요. 제가 볼 때는 경제사회적 관점과, 정치사회적(혹은 사회문화적) 관점의 차이라고 보여집니다. 우선 연대의식이 싹트기에 무척이나 척박한 역사적 환경과 토양이었다는 사실은 nickyo님이나 저나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인 것 같구요. nickyo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연대의식은 상당히 강했다. 다만 90년대 신자유주의와 외환위기 등의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연대의식을 약화시켰다.' 라고 보시는 시각인듯 합니다. 저는 좀 다르게 보는 것이 90년대 이전 그러니까 해방이후 군사정권을 거쳐 지금까지 연대의식이 싹 틀 수 있는 토양 자체가 전무했다 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시민들의 노동자로서의 자각을 통한 연대의식도 매우 약했다고 보는 입장이구요. 이는 80~90년대 전교조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살펴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인데요. 그 부분은 잠시 후 언급하겠습니다.

우선 말씀하신 일제강점기 항일민중연대, 더 나아가서는 군사정권에 대항한 민주화투쟁은 우리가 논의하는 연대의식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 항쟁의 과정은 '나도 똑같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라는 연대의식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연대, 폭압적인 군사정권 하에서 생존권을 지키고 민주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이른바 민족적 차원 혹은 생존을 위한 민주적 연대이니까요. 항일독립운동 앞에, 그리고 민주화투쟁 앞에는 좌-우도 NL-PD도 다 의미없었죠. 그당시에는 이념에 관계없이 모두가 연대하고 하나로 뭉쳤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서의 단단한 연대가 제가 생각하는(혹은 저와 nickyo님이 논의하는) 현대적 의미의 (이른바 프랑스식의) 시민 연대의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들만 해도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금과 무척 달랐습니다. 지금이야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노동자들의 파업을 (과거에 비해)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불편을 감수하는 연대의식이 어느정도 싹 터 있었지만, 70~90년대만 해도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군사정권의 호도와 수구언론의 빨갱이 덧칠에 의해 색안경이 덧씌워지기 일쑤였고 노동자들과 일반 서민들 사이의 작지 않은 간극이 존재했으니까요. 80년대의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노동운동 내부의, 그러니까 노조간의 연대를 통한 활발함이었을 뿐 (대학생, 지식인 계층이 아닌) 일반 대중들의 적극적 연대를 이끌어내진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일례로, 전교조가 출범했던 89년부터 합법화된 99년 이후에도 전교조하면 빨갱이 집단으로 규정하며 "너네가 무슨 노동자냐"라며 교사집단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던 사회분위기가 만연했던 것이 그 시대였고 지금까지도 이러한 시각은 일부지만 여전히 남아있죠. '교사=노동자' 임을 부정하던 사회 전반적인 당시의 인식은 신자유주의적 물결, 혹은 외환위기로 인한 경쟁지상주의와는 크게 관계가 없었으며 오히려 그 이전부터 팽배해온 한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 즉 그릇된 노동자의식과 연대의식을 보여줍니다. 즉, 블루 칼라만이 노동자이고 그 외의 화이트 칼라를 포함한 일반 서민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그릇된 사회적 인식은 해방이후 군사정권 시절부터 최근까지 줄곧 팽배해왔다는 뜻이죠. 그렇기에 과거 정권에서는 노동자라는 말대신 근로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노동자 계층을 이간질 시키고 또 고립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했구요.

결국 이러한 연대의식의 약화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근현대사 속에서 지속되어온 국가주의 공교육과 언론 통제, 그리고 분단으로 인한 반공주의와 레드컴플렉스 등에 있다고 봅니다. 서민들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자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쟁 위주의 국가주의 공교육, 그 위에 덧씌워진 노동운동에 대한 종북주의 프레임, 그리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들의 선동이 (군사정권 시절의 활발한 노동운동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인식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연대의식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는 것이죠. 여기에 말씀하신 90년대의 신자유주의 물결과 외환위기가 더욱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분명하구요. 즉 nickyo님이 말씀하신 90년대의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이러한 연대의식을 약화시키는 더욱 강력한 촉매제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전까지 성숙해져 있던 시민들의 연대의식이 90년대에 급격하게 무너져내렸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원래 약했던 토양을 더 뭉개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전 생각해요. 결국 nickyo님께서 90년대의 사회경제적 변화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계신다면 저는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정치사회적(혹은 사회문화적) 토양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고 봐야겠네요.

그리고 이러한 저의 생각(연대의식과 공교육의 상관관계)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하는 블로그 글이 있어 소개드려봅니다.
저는 꽤나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어요. 이것이 아마 연대의식에 대한 한국과 프랑스의 사회문화적 토양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http://blog.daum.net/parismadame/8792448

더불어 신문 기사 하나 더 링크할게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ansong2&logNo=130017520484

이 기사 중간에 손석춘 대표가 언급하는 '노동계급의식의 부재'가 바로 제가 생각하는 노동자 연대의식 약화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봅니다.
포프의대모험
14/07/29 21:54
수정 아이콘
민족주의자가 빨갱이가 되는 요지경 국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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