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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13 10:50:03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내게 그런 소리 하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19세기 중반에 유명한 미국의 포경선 선장이 있었습니다. 찰스 멜빌 스캐몬이라는 사람이었는데 1857년 한 지역 어부로부터 캘리포니아의 바하 라군(Baja lagoons)지역에 캘리포니아 쇠고래들이 와서 따뜻하고 잔잔한 물에서 새끼를 낳고 기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포경선 선장이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지요. 당장 배를 끌고 해당 지역으로 갑니다.

해당 지역으로 가봤더니 그곳은 모래톱이 라군의 입구를 적절하게 막고 있어서 쇠고래들의 천적인 범고래가 출입하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쇠고래들에게는 새끼를 낳고 기르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던 것이죠. 하지만 그 말은 곧 포경업자들에게도 노다지인 장소였다는 의미도 되었습니다.

스캐몬은 신이 나서 고래 사냥에 돌입합니다. 작살꾼들이 보트를 타고 고래들에게 접근해서 그들에게 비오듯 작살을 퍼붓고 사냥이 시작되지요. 어미 쇠고래들은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악마의 생선(devilfish)"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게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 상황을 스캐몬은 자신의 항해일지에 아래와 같이 기록합니다.

[어미 쇠고래들이 공격을 받으면 그들은 불굴의 의지와 끈기를 보여주며 저항하는데 이것은 쇠고래들을 다른 모든 고래들과 구분해주는 특징이다. 많은 전문 고래잡이꾼들이 이들과 마주치면 어려움을 겪고 또 많은 선원들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작살꾼들이 탄 보트가 고래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나서 고래 사체가 물위에 둥둥 뜨면 선원들은 고래 몸에다가 빨간 깃발을 꽂아서 모선에게 사체의 위치를 알리고 나중에 모선이 와서 고래 사체를 수거해 가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어린 새끼들은 상업적 가치가 없어서 잡지 않고 그냥 나뒀는데 어차피 어미가 없는 새끼들은 굶어죽게 될 뿐이었습니다. 사냥이 끝나면 바하 라군의 바닷물이 프랑스산 적포도주 색깔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양반이 약 5년 동안 겨울에 이 바하 라군 지역에서 쇠고래 사냥을 하고 난 후로 더 이상 바하 라군에서 쇠고래를 볼 수 없었습니다.

포경업으로 큰 재미를 본 스캐몬은 나중에 이 업을 그만두고 흥미롭게도 박물학자로 변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태평양 연안의 포유류들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을 쓰는데 그 책에는 쇠고래에 대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큰 만과 라군 지역에는 한때 쇠고래들이 번성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새끼를 낳고 양육했었지만 이제 이 지역은 쇠고래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시베리아에서 걸프 만에 이르기까지 은빛 바닷물이 출렁이는 해변들에는 이미 백화된 이 거대한 동물의 뼈들만 어지러이 널려 있을 뿐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이제 이 쇠고래들은 태평양에서 멸종해버런 다른 종들처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인가?]



에필로그...

윗글에 나온 쇠고래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암초들 사이에서 귀신같이 나타난다고 귀신고래라고도 불렀지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도 바로 쇠고래입니다. 이 쇠고래들은 북태평양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번식할 때가 되면 일군은 동쪽으로 이동해서 캐나다, 미국 서해안을 따라 멕시코까지 가서 번식을 하고 또 다른 일군은 서쪽으로 이동해서 동해로 들어와 우리나라나 일본 앞바다에서 번식을 했었습니다....원래 북대서양에도 쇠고래들이 살았었는데 이들은 가장 먼저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쪽으로 내려오는 쇠고래들도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서 위험한 상태이고 아이러니하게 스캐몬이 부지런히 사냥을 했던 캘리포니아 쇠고래들은 적절한 보호조치들 덕분에 개최수를 상당히 회복해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라군 지역에는 이제 다시 쇠고래들이 찾아와 번식하고 새끼를 기르는데 이곳이 고래구경하는 투어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어미 쇠고래와 새끼 쇠고래들이 보트로 다가오는데 너무 순해서 직접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관광객이 만지려고 하면 어미가 새끼를 보트 쪽으로 밀어줄 정도라고 하네요...스캐몬이 얘기했던 devilfish의 면모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답니다...결국 악마의 생선이라는 특성은 인간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었을 뿐 그들의 본성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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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在江湖
14/08/13 10:51
수정 아이콘
허허 나쁜 사람 같으니라구
VinnyDaddy
14/08/13 10:54
수정 아이콘
찰스 '멜빌' 스캐몬이라는 이름을 보고 모비 딕의 허먼 멜빌이 떠오르네요. 실제로는 별 관계 없겠죠?
14/08/13 10:56
수정 아이콘
유체이탈화법은 전세계적이었군요.
크리슈나
14/08/13 10:56
수정 아이콘
유게였다면
넌 웃을 수 있니? 내지는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가는거 안 배웠냐?
정도의 댓글을 달았을텐데...
이거 참 웃프네요
몽키.D.루피
14/08/13 10:59
수정 아이콘
에효.. 가끔보면 혹성탈출처럼 인류도 더 강력한 종을 만나서 한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하네요.
당근매니아
14/08/13 11:11
수정 아이콘
아래 문단을 자긍심에 찬 문장으로 읽어보면 재밌습니다.
사악군
14/08/13 11:21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저도 꼭 그런 느낌으로 읽히는 군요. '내가 한 종의 생물을 멸종시켰어...! 나는 신과도 같군 우후후'랄까요..-_-;
눈바람
14/08/13 11:14
수정 아이콘
진심 욕나오네요.
곧내려갈게요
14/08/13 11:17
수정 아이콘
정말 상욕나오네요.
14/08/13 11:20
수정 아이콘
아..글 몇줄 읽었을 뿐인데 뒷골땡기네요..
유체이탈 화법은 옜날부터 존재했었군요 ㅡㅡ;
토쁜이
14/08/13 11:28
수정 아이콘
머리통에 작살을 꽂아주고 싶은 인간이네요.
단약선인
14/08/13 11:43
수정 아이콘
뭐만 많이 있다하면 몰려가서 싹쓸이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가봅니다.
지구에 제일 해로운 것이 인간이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안해도 몇 번씩 생물이 절멸 했던 지구 역사를 보면...
이것이 최선이자 필연일 수도 있고...
하심군
14/08/13 11:52
수정 아이콘
당시 박물학자라는 양반들이 요즘같이 환경보호학자 이미지 보다는 사냥꾼 이미지였으니 나름 정석스런 전직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보니 요즘 그린 피스 뭐하고 지내나 모르겠네요. 요즘은 포경선도 잘 없고 고래 개체수도 늘어났다던데.
14/08/13 13:46
수정 아이콘
관광객이 만지려고 하면 어미가 새끼를 보트 쪽으로 밀어줄 정도라고 하네요...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Neandertal
14/08/13 13:54
수정 아이콘
직접 보면 정말 경이로울 것 같습니다...웨일와치...죽기 전에 한 번 해봐야 되는데...
14/08/13 15:12
수정 아이콘
네안데르탈님 글은 대부분 재밌네요.
지식의 양은 저보다 훨씬 많으신 것 같은데, 취향은 저랑 비슷하신 듯...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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