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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17 21:19:52
Name 요정 칼괴기
Subject [일반] 1차 대전사(6)- 국경전투(2)
https://www.pgr21.com/pb/pb.php?id=freedom&ss=on&sc=on&keyword=1%EC%B0%A8+%EB%8C%80%EC%A0%84%EC%82%AC
그전 이야기

(1)  로렌으로의 진격

독프 국경 남부 알자스에서 프랑스 군이 삽질하고 있을 무렵인 1914년 8월 15일 듀바이와 드 카스텔노 장군의 프랑스 1,2 군은 좁은 로렌의 두갈레 계곡 길을 통과하여 살레부르크와 모랑쥬를 노리고 진격해 나아 갔습니다.
독일군은 수년간 전쟁 준비를 해놓은 상태이고 대충 로렌 지방을 노린다면 이 지역을 공격할 수 없는 한정된 좁은 통로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주 방비가 잘 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을 공격하긴 위해서는 야포가 다수 필요했는데, 총검과 돌격전을 믿었던 프랑스 군은 근접 지원하는
75mm 직사포는 있었을 지언정 원거리에서 포격해줄 수 있는 야포는 정말 부족했습니다.
한 포병 장교는 야포가 있냐는 질문에 [그런 것을 갖고 있지 않는데 주님께 감사한다]라고 답했을 정도 었습니다.


[Canon de 75 modèle 1897, 훗날 이 물건의 후계는 셔먼 전차등 연합군 전차포로 활동할 정도로 명품으로 빠르게 근거리에서 다량의 포탄
쏟아 낼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요새를 공격하기에는 화력 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사거리도 직사 그렇게 긴편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군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거대한 야포를 무시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걸 포기했기에 얻는 이익은 기동성에 중심을 두었을 뿐이었죠.
아포는 지금과 같이 충분히 차량이 있었던 시대면 모를까, 아직도 마차에 다수 보급과 견인을 의존해야 하는 이 시대에는 사용하기 힘든 물건
이었습니다. 대신 이 직사포 가볍고 인력만으로 이동까지 가능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도 독일 다수의 야포를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개전 직전에 듀바이 장군이나 국방장관 메시미는 직권으로 밀어 붙여
몇문 야포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충분하지 못했을 뿐이죠.


[독일의 바이에른 왕자 루프레히트, 독일 6군 사령관, 독일제국은 기존 바이에른 왕국을 번국으로 두고 있었는데 그는 그나라의 왕자였습니다.
참고로 그의 가문은 영국, 스코틀랜드 왕실 스튜어트 왕가의 적통이었는데 하노버 왕가 보다도 더욱 적통이었습니다. 단지 바이에른은 가톨릭
이라 왕위 계승권이 없을 뿐이죠. 심지어 문장도 하얀 장미...]


한편 이들을 상대하는 독일 6군의 임무는 약한 전력으로 패배하여 프랑스군은 독일 영내로 길게 끌어 들여 뒤통수에서 돌아 들어오는
벨기에의 독일군이라는 망치에 대응한 모루역이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슐리펜 계획에서는 얼마나 [잘 패배] 하느냐 였는데...
문제는 이게 사령관 루프레히트 왕자를 비롯한 장교, 병사들에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은 승리하면서 진격하는데
자기들은 패하는게 임무라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일단 4일간 독일군은 작전대로 점진적으로 뒤걸음질 쳤습니다. 문제는 그냥 도망치는게 아니라 때때로 포격과 기습을 번갈아 걸어 가며
후퇴했기 때문에 프랑스군 입장에서는 고역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독일군의 야포 공격이었는데 먼거리에서 독일군 포격에
프랑스군 포들은 사거리가 다 안되서 재대로된 대포병 사격이 안되었기에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독일군의 공격은 프랑스의 전열을 점차 벌여 놓고 있었는데 아무튼 프랑스 군은 2개의 목표 중 살레부르크를 점령했고 모랑쥬 근처까지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성공에 프랑스 군의 사기는 크게 올랐으나 사실 이게 프랑스군이 마른강 전투 이전에 얻을 수 있었던
마지막 영광이었습니다. 이미 프랑스가 짜놓은 플랜 17은 점진적으로 붕괴되고 있었기 때문이죠.

(2) 총반격
한편 북부 아르덴과 프랑스-벨기에 국경에서 독일군의 압력이 커져 가면서 프랑스 총사령부는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특히 벨기에
아르덴 북쪽을 지키고 있던 랑레자크 장군의 프랑스 군대 우측에 위협이 증가하고 있었고 이어 최초의 전투가 발생했습니다.
(이전투의 부상자가 프랑스 장군이자 대통령이 되는 샤를 드 골 )

결국 프랑스 총사령부는 이를 막기 위해 추가로 2개 프랑스 군을 북부 아르덴으로 진격 시키는데 이게 아르덴 전투라고 불리는 전투
의 전조였습니다. 이런 상황 변화를 독일군은 파악하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대군이 로렌에 진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독일군 참모부는
눈치챕니다. 이에 이미 반격을 주장했던 루프레히트 왕자의 요구를 결국 참모총장 몰트케는 받아 들이게 되죠.


[몰트케는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여기에 대해 엄청 고민했지만, 계속된 루프레히트 왕자의 반격 요구에 결국 굴복하고 맙니다.]

루프레히트는 독일군 5군과 6군이 계속 자신의 야전군이 후퇴하면 둘 사이에 간격이 벌어져 프랑스가 여기를 찌를 거라고
몰트케를 설득했고 그의 강경한 요구에 결국 몰트케는 굴복하는 형태였지만요. 하지만 이는 핑계였고 그의 부하들과 그는
애초 후퇴라는 역할이 싫었을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와중에 몰트케가 보낸 참모 도메스 소령을 겁박하기까지 했습니다.

독일군 6군과 7군은 18일 드디어 슐리펜 계획을 무시하고 총 반격하고 결정하게 됩니다.

이 때는 영국군이 가장 서쪽에 위치한 랑레자크의 프랑스군을 만나고 벨기에 군이 최종적으로 엔트워프로 철수했으며 독일군이 벨기에 남단
겐트에 도착한 이 시기였습니다.

1914년 8월 20일 국경전투의 주요 전투 로렌전투, 몽스 전투, 샤를루와 전투, 아르덴느 전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은 건 8월 20일 로렌의 프랑스 2개 야전군이었습니다. 듀바이와 드 카스텔노는 독일군 방어선을 전면 공격했습니다.

[프랑스 1군 사령관 외거스트 듀바이 장군,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온갖 재앙은 다 겪은 사람이 됩니다. 로렌, 그리고 베르덩...]

75mm 직사포에서 발사된 유산탄은 독일군 진지에 흠집도 못냈고 돌격해 오는 프랑스군은 독일군 기관총의 먹이감이 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원 포격이 75mm 직사포 뿐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군은 아주 안전한 방어 진지에서 그냥 돌격해 오는 프랑스
군을 상대로 기관총을 긁으면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 후 붕괴된 프랑스군을 향해 바로 루프레히트의 독일 6군이 반격을 가했습니다.

가볍게 그의 군대는 프랑스 군대 전위대를 박살내고 프랑스군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드 카스텔노의 2군의 좌익은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고 예비대는 바닥 났습니다.


[노엘 드 카스텔노 프랑스 2군 사령관, 듀바이와 마찬가지로 로렌, 베르덩의 재앙을 거친 그는 러시아로 보내졌지만 거기에서 혁명을
겪게 됩니다. 그후 1918년 대반격에서 일군을 다시 지휘하게 되죠.]


한편 듀바이의 1군은 악전 고투 끝이 진격 중이었지만 극심한 사상자를 내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2군이 진격은 커녕 대패해버린
가운데 진격은 의미가 없었고 총참모장 조프르는 후퇴를 명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듀바이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무능한 동료 카스텔노에
대한 엉뚱한 불만만 가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 대한 독일의 압도적인 야포 공격은 프랑스군을 찢어 버렸고 심지어 카스텔노 장군의 아들마저 전사하게 될 정도 였습니다.

드 카스텔노의 2군은 전면적인 파멸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몰트케는 이 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독일의 우익이 벨기에서 좌익이
프랑스에서 대승을 거둔다면 그는 숙부인 대 몰트케를 능가하는 군사적 위엄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좀만
더 루프레히트가 힘을 낸다면 완벽한 승리가 굴러들어 올 판이었습니다. 좀더 루프레히트에게 공격을 하게 할 것인가 아닌지에
대한 고민. 그게 그당시 몰트케가 하고 있었던 고민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급변하는 상황을 살피는 것은 상대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프랑스-독일국경에 대한 전면 공격을 택하게 됩니다.



한편 두명의 프랑스 사내들은 루프레히트의 무자비한 공격의 한계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명은 참모총장 조프르였고 다른 한명은 평생 육군대학에서 교육을 맡다고 자기 동기들 휘하의 군단장으로 마지막 군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노장 페르낭 포슈 장군이었습니다. (포슈, 듀바이, 카스텔노 모두 1851년생)


그는 이시기 카스텔노 밑에서 20군단을 맡고 있는데 그는 카스텔노가 재앙을 당할 무렵 반격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이 상황을 타계하는 방법은 달랐는데 야전군을 움직일 수 있는 조프르와 1개 군단 병력 밖에 없는 포슈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움직인 건 조프르였는데 그는 북부의 3군과 4군에게 아르덴느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합니다. 아직까지 플랜 17을
믿고 있었던 그는 루프레히트의 공세 종말은 예측하고 있었지만 북부의 다른 독일군에 대해 무지한 듯한 명령을 내린 것이죠.
21일부터 시작된 상브르와 아르덴느 전투의 시작이었는데 이 역시 프랑스에게 재앙이었습니다. 여기에도 독일군 대군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 군대는 독일 5군으로 독일 황태자가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뷔르템베르크 공의 4군 역시 이 황태자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들의 고난은 나중에 서술하기로 하고 한편 포슈의 8월 21일부터 한 작전은 거의 예술적인 지휘였습니다. 그는 정확히 루프레히트의 약점
을 파고들었고 전면 후퇴하는 카스텔노의 2군의 후위를 완전히 방어 하면서 패주하는 2군의 전면 붕괴를 막아 버렸습니다.
물론 피해는 많은 편이었지만 당시 2군은 완전 붕괴인 상태였고 그의 20군단을 지원해줄 어떠한 부대도 없는 상태에서 그는 이러한
기적을 달성했습니다. 여기에 루프레히트가 조급한 공세 역시 2군에게는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세를 통해 로렌을 점령하려는 프랑스의 전면 공격은 대 참사로 끝나고 2개 야전군 모두 프랑스 영내로 후퇴하면서
로렌 전투는 끝나게 됩니다.

그나마 낭시와 모젤강을 바탕으로 방어선을 다시 구축할 수 있었던 루프레히트의 설익은(?) 공세와 포슈의 지휘 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60만의 2개 프랑스 야전군이 34만의 독일군에게 박살이 났고, 독일군은 총 6만. 프랑스군은 사상자까지 알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덧붙이면 로렌에서 뿐만 아니라 아르덴느와 샤를루아에서도 같은 기간 프랑스 군은 큰 재앙을 당하고 있었고 여기에 더해 동부전선에서는
탄넨베르그 전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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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7 21:36
수정 아이콘
매편 잘보고 있습니다.
코레아니쿠스
14/09/17 23:01
수정 아이콘
정말 재미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 대몰트케는 보불전쟁에서 활약했고 소 몰트케는 1차 대전에서 활약했나요? 대몰트케가 오스트리아 2주만에 점령한 사람 맞죠??
요정 칼괴기
14/09/17 23:23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14/09/17 23:03
수정 아이콘
잘 보고 있습니다
쿨 그레이
14/09/18 00:04
수정 아이콘
존 키건의 1차세계대전사를 다시 읽어보고 와야겠네요. 뭐라고 막 댓글을 적으려다가, 중간에 기억이 구멍난 부분이 너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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