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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19 02:51:33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일반]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이번 시즌에는 들르지 못했지만 종종 야구장에 간다. 목동이 홈이지만 티켓값이 너무 비싸 잠실 원정 경기를 주로 간다. 경기는 6시 반에 시작할 때가 많은데, 그 전에 시구 시타와 함께 하는 행사가 하나 있다. 전부 일어나 한곳을 보고 같은 자세를 취하는 시간이 있다. 나는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보이콧한 지 몇년 되었지만 군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입대하고 그 안의 각종 행사들을 치르면서, 혹은 제식을 배우면서 나는 몇 번씩 충격을 되새겨야 했다. 12년에 걸친 공교육 시스템 하에서 배운 것들이 조금 더 엄격한 형태로 거기 그대로 있었다. 앞으로 가, 좌우로 나란히, 앞 사람 뒷통수만 봐, 눈 돌리지마 새끼야.

글을 쓰면서도 곰곰히 생각한다. 대체 초등학생들을, 중학생들을, 고등학생들을 나란히 줄 세워 맞추고 차렷 자세 시킨 뒤 연설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는 매주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 모여서 무얼했던 것일까.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일본 아니메나 영화를 볼 적에 느꼈던 이질감 ㅡ 기립, 차렷, 경례에서 느끼는 그 감정을 다른 이들은 우리를 보면서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들.

반지의 제왕을 찍을 적에 오와 열을 맞춰 걷는 엘프 군대는 현지 고등학생들을 불러다가 찍었다고 들었다. 줄 맞춰 걷게 하는 데에 큰 고생을 했다는 얘기도 같이 들었다. '우리나라였으면 엄청 쉽게 찍었을 거다'라고 낄낄대다가 문득 서늘했던 것은, 다시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옆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고졸 출신 어린 하사는 줄 서고 줄 세우고 사격자세를 시범 보이는 데에 아주 능숙했다.

황지우가 시를 썼던 시절, 내가 아직 살지 않았을 그 때에 영화관에서는 모두가 일어서는 시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거기에서 크나큰 이질감을 느낀다. 어제도 나는 줄창 재미없는 광고를 보다가 그대로 앉아 영화 본편을 마주했었다. 그럼에도 야구장에서, 우리는 또 다시 일어나고 나는 일어나지 않고 누군가는 그러한 나를 종종 째려볼 것이다.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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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14/09/19 03:00
수정 아이콘
저는 그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옵니다. 저는 야구장을 거의 혼자서 가는데, 다행히 요즘은 좌석제라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도 옆사람에게 자리 부탁할 일이 없어서 좋네요.
그러고 보니 극장에서도 애국가+대한늬우스를 봐야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네요. 뭐, 오후 5시만 되면 전 국민이 얼음땡을 하던 시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요.
14/09/19 03:14
수정 아이콘
저는 참 삐딱선을 탔던 사람이고
그래서 언론사에 몸 담았었지만..(단언컨데 직장인 중에서 제일 삐딱선이 많이 모이는 그룹이라 확신합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저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뿌듯함을 느꼈고, 이걸 지키기위해 싸운 호국영령들께 감사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누가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거기서 프라이드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yangjyess
14/09/19 03:17
수정 아이콘
흠... 저도 국기에 대한 경례가 불편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호국영령까진 모르겠고.. 살면서 정말 잠깐이잖아요. 그정도 시간정도는 잠시 엄숙하게 자신이 살고있는 나라를 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거 같습니다.
헥스밤
14/09/19 03:19
수정 아이콘
저도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갑네요. 현충일이라거나 호국 영령을 위한 자리에 굳이 참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도 그냥 대충 하는 척 합니다만, 야구장에서 그걸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올라갈팀은올라간다
14/09/19 03:27
수정 아이콘
이게 외국에서 야구경기 볼 때는 좀 더 와닿더라고요. 참 애매한 기분입니다.
황금사과
14/09/19 03:42
수정 아이콘
별 생각은 없었는데 하라니까 더 하기 싫어지긴 했었네요. 뭐 애초에 중고딩 때 시킨다고 진지하게 하는 놈은 거의 못 봤지만...
네로울프
14/09/19 04:24
수정 아이콘
프로야구 직관할 때 마다 짜증이 납니다
야구 보러 와서 왜 애국 타령을 해야 하는 건지.
무슨 국가 대항전도 아니고.
어쩌다 시간이 돼서 일주일 내내 6게임을 다 보러가면
애국가 타임을 6번이나 해야되는 거잖아요
야구보러 와서 내가 왜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일깨워야하나요?
호국영령들께 야구 보게 해주셔서 감사해야 하는건가요?
그 것도 야구장 갈 때 마다 매일 이면 매일?
전 롯데팬인데 차라리 부산찬가를 부르자고 하면그러려니 하겠습니다
전 야구 시작하기 전 애국가 나오는 시간에 앉아서 치킨 뜯어요.
14/09/19 06:09
수정 아이콘
저는 이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불편하지 않습니다. 뭐 추상적인 애국심 이런 건 아니고, 그냥 현재의 안정된 사회가 있기 까지 막연하게 '내 새끼는 나보다 잘 살아야지! 하고 열심히 일하고 싸운 앞세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지라.
Broccoli
14/09/19 08:39
수정 아이콘
저같은 경우엔 예전에는 뭔가 모호하지만 하라는대로 하라는 느낌이랄까요? 그런게 있어서 별로였는데, 문구가 바뀌고나선 그런 거부감이 덜하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국내리그도 다 애국가연주하나요? 축구는 가끔가고 딴건 안가봐서 잘모르겠네요.. 그것도 영리목적행사라서 틀면 사용료개념이 있다고 들었던것같은데..
레지엔
14/09/19 09:14
수정 아이콘
국가주의가 꽤 힘을 가진 나라라서... 저는 뭐 지금은 할 일 있어도 안하긴 합니다. 시스템따위 날 길들일 수 없어!(..)
탄산수
14/09/19 09:21
수정 아이콘
https://www.pgr21.com/pb/pb.php?id=freedom&no=16281
https://www.pgr21.com/pb/pb.php?id=qna&page=3&divpage=5&no=28
예전에도 야구장에서의 애국가에 대해 여러번 비슷한 주제의 글과 질문이 있었어요.

전 개인적으로 애국가를 틀든 말든 상관없는데, 저같이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에게 안 좋은 시선을 보내는 게 싫어서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애국심이라니, 아마 제가 그들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을텐데 말이죠. 안하면 눈총받는 전체주의 느낌이 나요.
14/09/19 10:27
수정 아이콘
근데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애국심이 크신데 국기에 대한 경례는 왜 안하시는거예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건지.
탄산수
14/09/19 11:04
수정 아이콘
애국심이 있다/없다와 국민의례를 한다/안한다는 상관이 없으니까요. 세금 제대로 안내고, 군대 억지로 빼면서, 국민의례 잘하는 사람도 있듯이요. 안하는 사람 눈치주는 게 싫습니다.

저도 A매치나 국가에서 주관하는 공식행사에서는 국민의례합니다. 야구장에서 해야 할 이유와 명분이 부족하단 거죠.
사과씨
14/09/19 09:23
수정 아이콘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군요. 시인과 동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영화관에서 대한늬우스를 보고 싸이렌과 함께 길바닥에 못박혀서 멀거니 국기를 바라보던 유년 시절이 생각납니다.
14/09/19 09:52
수정 아이콘
저도 보이콧입니다. 국가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심장에 손을 얹는 경례는 너무 과도한 것 같아요. 국기에 대한 경례의 규칙이 변하기 전에는 심지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다고까지 했죠. 지나친 국가주의 같아서요. 삐딱선이지만 그 의식은 한다는 분도 있는데 저는 반대로 나름대로 한국 좋아하고 애정을 갖지만 경례는 하지 않습니다.
14/09/19 10:26
수정 아이콘
이게 불편한 분들이 많군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런거라도 없다면 더 후세대는 실낱같은 애국심마저 많이들 사라질겁니다.

그리고 축구 A매치 경기도 다 합니다, 유럽 미국 안가립니다.
뭐가 문제인가요?
마일스데이비스
14/09/19 12:07
수정 아이콘
애국심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죠. 우리나라가 사랑받을 나라면 경례고 뭐고 이런거 굳이 안해도 어련히 사랑받을겁니다
저는 한국을 정말 사랑하고(한국음식이 없으면 못살만큼!) 제가 사는 동네도 좋아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는 정말 최악인 것 같습니다. 국가는 좀 구려도 걍 틀면 듣겠는데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나라에 충성하라마라 하니깐 정말 싫더군요. 애국심은 그냥 큰 범위의 지역감정이나 다름없습니다.
안알랴쥼
14/09/19 13:15
수정 아이콘
리그 경기는 안 합니다. 유럽 역시요.
14/09/19 10:37
수정 아이콘
We the People!

국기에 대한 경례는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 어쩌고도 별로 불편하진 않아요.
정부수반 혹은 집권내각과 국가를 동일시 하는게 불편할뿐이지...
abyssgem
14/09/19 10:51
수정 아이콘
군은 국가를 보위하는 마지막 보루이며 명분에 살고 죽는 집단이므로 국가에 대한 충성 의례가 강조되는 것이 이상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공교육이나 국가의 이름 하에 치뤄지는 공식 행사에서의 국민 의례 역시 어느정도 이해가 가고요.

그런데 프로야구 경기 시작할 때마다 선수 심판 스탭 관중 할 것 없이 몽땅 국민의례 시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프로야구는 여러 기업과 개인들의 이권이 개입된 스포츠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저 엔터테인먼트 광고 산업의 영역인데요. 또 선수 스탭은 그렇다치고 관중은 자기 돈과 자기 시간 투자해서 즐기러 온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확인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이런 재밌는 놀이를 벌이고 또 관림할 수 있게 해주니 국가에 감사하란 건가?
사상최악
14/09/19 11:45
수정 아이콘
이스포츠 경기 전에 국민의례하면 어색하겠죠?

영화관에서 할 필요가 없다면 사실 야구장에서 할 필요도 없죠.
누가 앞장서면 금방 없어질텐데 요즘 그런 짓 했다가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니.
tannenbaum
14/09/19 15:04
수정 아이콘
잠실에서 야구 볼때 친구랑 투닥거렸습니다
크크크크
전 안 일어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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