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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19 21:23:53
Name 요정 칼괴기
Subject 1차 대전사(8)- 패주
그전 편들
https://www.pgr21.com/pb/pb.php?id=freedom&ss=on&sc=on&keyword=1%EC%B0%A8+%EB%8C%80%EC%A0%84%EC%82%AC

(1) 위기의 프랑스
24일 이후 프랑스는 암울 그자체의 상황이었습니다. 국경에서 모든 전투에서 패배하고 모든 병력들은 프랑스
영내로 퇴각 중이었습니다. 거의 프랑스 수뇌부는 맨붕 그자체였는데 딱 한사람 빼면 막강한 독일군을 막을
어떠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딱 한사람]은 그렇지 않았고 이때문에 그의 능력이 출중하든 말든 이 때문에 그를 중심으로 독일을 침략을 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 한 사람은 프랑스 참모총장 조프르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국경전투에서 프랑스 패배의 1등 공신 급이었습니다. 물론 한정된 정보와 독일군에 비해 부족한 전력이라는
핑계가 있을 수 있지만, 부족한 정보에도 확신성을 갖고 병력을 꼴아 박았고 장군들에게 무리한 공세를 지시해서 오히려 독일군에게
일방적으로 쥐어 터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그거 옳든 그르든 판단력이 빨랐으며, 마지막으로 절대 깨지지 않는 맨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이 시기 나름 옳든 그르든 몇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1. 그나마 나은 로렌의 두개 군 (듀바이와 드 카스텔노가 지휘하는 1,2군)에서 병력을 빼내 모누리 장군을 지휘관으로 하는
6군을 편성합니다. 그리고 이를 취약한 영국군과 프랑스 5군이 있는 좌익에 배치하면서 그나마 독일군과의 전력비를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2. 그리고 독일의 공세 한계점이 빨리 도달하도록 계속해서 지연 전략을 사용하면서 최대한 많은 예비대를 모아 보불전쟁 당시
통한의 패전인 스당 기념일(9.2)에 독일군에게 한방 먹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냉철하고 빠른 판단으로 비록 패하고 있지만 프랑스 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용감하게 독일 침략자에 맞서기 시작했
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더 물러나면 답이 없이 침략자 독일에게 다시 치욕을 맛볼 수 있다는 것 역시 프랑스군의 분전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퇴각은 참담했고, 보불전쟁 당시 패전의 굴욕까지 맛보았던 그 스당까지 독일군 손에 들어가게 되면서 프랑스군의 자존심
은 심대한 상처까지 냈습니다.

프랑스군에게 이 동안 몇개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전투 직전에 열심히 삽질을 하면서 참호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다수의 (전쟁전에는 쓸모없다는) 예비대가 일선 부대에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8월 26일 프랑스 내각은 대규모 인사 이동을 단행합니다. 이때 패전의 책임을 지고 국방장관 아돌프 메시미는 해임됩니다.


[아돌프 메시미 국방장관, 사임 후 소령으로 내려가 베르덩, 솜므 전투를 거치며 부상도 당하지만 계속해서 공을 쌓아
전쟁 종결 직전에는 사단장까지 간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전쟁초기 지휘는 그의 능력 밖의 난제 였습니다. 참고로 생시르 사관학교 출신]


이 즈음 파리가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조프르는 반격의 핵심인 프랑스 6군을 서둘러 파리 방어로 돌리면서 프랑스의 반격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독일의 몰트케는 당시 계속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계속해서 독일군 좌익(알자스-로렌의 루프레히트
의 병사들)에게 공세를 지속하도록 명했습니다. 문제는 이미 정신차린 프랑스군과 독일-프랑스의 험준한 산과 강 때문에 이런 공세는
무익하게 끝났습니다. 오히려 한정된 병력만 더 잡아 먹으면서 기세를 타고 있었던 독일 우익(파리를 목표로하는 클루크와 뵐로우의 부대)
을 약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미 그는 완승 직전이라는 상황에 눈이 멀어 있었고 이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몰트케의 이런 생각은 당시에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독일군은 거의 10일 남짓 백킬로가 넘은 길을 진군해야 했으며
보급은 거기에 따라오지 못했고 벨기에에서 분탕질과 통제를 위해 수개 군단을 남겨두고 왔고, 이를 보충할 사단들은 러시아나
다른 곳을 향했다 정도가 약점이었습니다.

이 때 그의 부하인 2군 사령관 클루크는 정신 없이 영국군을 쫓고 있었습니다. 이 때 영국군은 총 4개 사단에서 추가적인 병력지원을
받아 5개 사단 1개 여단 수준까지 올라 왔지만 전혀 의도하지 않게 전선 서쪽 맨끝이라는 중요 부위를 맡고 있었습니다. 원래 영국군
의 임무는 플랜 17에서 프랑스군의 보조였습니다.

이러다가 프랑스 6군이 파리 방어에 나서면서 영국군의 임무는 6군과 다른 프랑스 군의 연결다리 역으로 변화 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넓은 영역을 5.5개 사단으로 막아야 했는데 이게 실패한다면 파리랑 프랑스 6군은 고립될 위기에 처하게 될터였습니다.

문제는 영국 사령관 프렌치 경이었습니다. 그는 이름이 프렌치인 주제에 프랑스를 싫어했고 부하들을 지나치게 아꼈습니다.
이런 망할 나라를 위해 이미 진 전쟁에서 굳이 영국군을 희생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죠.


[존 프렌치 경, 이름은 French인데 프랑스를 싫어하는 다혈질의 용장. 하지만 퇴각 도중 그는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패배주의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부하들의 죽음에 울기까지 할 정도로 심약해져 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하게 변했습니다. [이 지옥에서 부하들을 온전히 보전해서 떠나겠다.] 그는 프랑스 군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변했고 열심히 병력을 뒤로 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몽스에서 랑레자크에게 당한 배신은 이런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 부하들의 마음은 그와 같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자존심이라는게 있었고, 명예로운 군인으로써 이런 비겁한 퇴주는 그들의
마음에 절대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령관의 마음을 모르는 듯 나를 최선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연합군 병사들을 미치게 만드는 건 8월 땡볕아래 백킬로가 넘게 행군하면서 싸우고 거기에 독일군 포탄까지 떨어지고 있었으며
그것도 진격이 아닌 패주 중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호간의 불협화음이 터진 사건이 바로 르카토 전투였습니다.

(2) 르카토 전투
8월 26일 르카토에서 드디어 클루크의 독일 1군은 영국군을 따라 잡는데 성공합니다. 이미 전쟁에서 마음이 떠난 프렌치 경은
2군단의 스미스-도리안에게 후퇴할 것을 명했지만 상황상 2군단의 후퇴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스미스-도리안은 과감히
프렌치의 명령을 무시하고 싸우기로 결정합니다. 뭐 거의 포위된 상황이라서 이는 선택의 여지가 적었습니다.

스미스-도리안은 패잔병과 피난민이 무질서하게 섞인 와중에 휘하 사단장들과 참모에게 싸울 것을 발표합니다. 이런 스미스-
도리안의 결정은 야전 사령관으로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상황을 잘 모르는 영국 사령부와 프랑스 참모본부에서는
이런 스미스-도리안의 행동을 만용이라고 파악하고 수차례 말리는 전령을 보냅니다. 하지만 스미스-도리안은 프렌치는 설득하지
못했지만 프랑스 참모본부에 나가 있는 영국 무관 해리 윌슨은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그대로 전투를 진행 시킵니다.


[헨리 윌슨, 포슈의 영국 친구이자 가장 충실한 이해자이며 친프랑스파 수장격인 영국 장군, 전쟁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영국군 참모총장이
되었고 후에 정계로 입문하여 여러 업적을 세웁니다. 하나 IRA의 암살로 생을 다하게 되죠.]


프랑스 예비군이 영국 2군단의 측면을 보호하면서 전투는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들은 영국군 정면에 독일군을 3개 사단으로
줄여 주었고 같은 3개 사단의 영국군은 독일군을 전통적인 영국의 자랑인 속사로 무너뜨렸습니다. 독일군을 어느 정도 무너뜨린 영국군
은 그대로 상대를 지연시키며 포위망에서 병력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고든 하이랜더 대대원 대부분을 포함한 영국군 5천명이
죽거나 다치고 2000~2500명이 포로 잡혔습니다. 독일군은 5천명을 잃었습니다.


[고든 하이랜더, 이 전투에서 그들은 소수를 빼면 전멸 당했습니다.]

스미스-도리안의 영국군은 프랑스군의 희생과 그들의 용기로 다수의 병력을 살려서 후퇴했지만 상부의 입장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프렌치는 전투를 회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기쁘게 상황 보고하려 온 스미스 도리안을 책망했고 스미스-도리안 역시 이런
상관에 대한 신뢰가 박살났습니다. 두사람 간의 관계는 갈때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정작 프렌치는 정식 보고서에는 스미스-
도리안의 공적을 인정하는 듯 써서 보낸 건 뒷이야기가 되겠네요.

프렌치는 이젠 확신했습니다. 영국군은 프랑스에서 손을 때야 하며 이 모든 잘못은 랑레자크를 비롯한 무능한 프랑스 장군들에게
있다고 말이죠.

한편 독일군 클루크 장군은 흥분에 빠져 있었습니다. 영국군에게 크게 이겼으며 그는 프랑스 5군이 전멸했다고 오판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파리가 눈앞이었고 방해물은 없어 보였습니다. 한방 발길질에 모든 연합군 사단들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뵐로브의
2군에 대한 지휘권 역시 갖길 원했습니다. 파리 입성의 영광이 그래야 자신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2군 사령관 뵐로브와 3군 사령관 하우젠의 심기를 나쁘게 만들었고 이는 독일군간의 상호 협조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모르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독일군 우익(클루크, 뵐로브, 하우젠의 3개 야전군)
의 병력은 독일-벨기에 국경을 넘을 때에 비해 전투 소모나 점령지 치안, 엔트워프 포위를 위해 무려 5개 군단이 빠져나가 있었습니다.
명목상 3개 야전군이었지만 실제 2개 야전군 수준에 머물렸고 이정도면 이 지역의 연합군과 크게 전력차이가 나지 않고 있었던 거죠.


(3) 프랑스 각 야전군 이야기
한편 험준한 독일-프랑스 국경에서는 드 카스텔노와 듀바이의 프랑스 군대와 루프레히트의 독일군이 혈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엄청난 병력이 6군으로 빠져 나간 공백이 있었지만 지형과 잘 요새화된 방어진지에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병력상으로 22만의 프랑스군이 35만의 독일군을 방어하는 형태였습니다. 비록 로렌전투에서 사상자가 많이 났다고 해도 기존 60만에
가까운 병력을 두사람이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많은 병력이 프랑스 우익에서 좌익(파리쪽)으로 빠져나갔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 1,2군 병사들은 로렌에서 패배를 이 전투에서 갚아 주었습니다. 애국심에 불타는 프랑스 병사들은 독일군을 완전히
막아 내었습니다. 특히 포슈의 지휘력은 놀라울 지경이었는데 이를 눈여겨 봤던 조프르는 이 노장을 서둘러 프랑스 좌익쪽으로
불러 들입니다.

한편 프랑스 3,4군과 프랑스 5군의 간격이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4군 사령관 드 랑글은 이 사이를 찌르러는 독일군을
한차례 저지 할 작전이었습니다. 스당 남부에서 유리한 지점을 장악한 드 랑글은 뷔르템베르크 공의 독일군을 3일 동안 막아 냈지만
그러나 여전히 프랑스 4군과 5군간의 간격을 늘어기만 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조프르는 신속하고 냉철한 결정을 합니다. 바로 포슈에게 프랑스 3군과 4군의 일부를 착출하여 새로운
분견대를 만들어 이 간격을 채우도록 명합니다. 이런 조치는 며칠후 재대로된 신의 한수로 평가 받게 되죠.

그리고 문제의 랑레자크의 프랑스 5군의 경우 덧없이 후퇴 중이었습니다. 심지어 죠프르가 서부로 이동중인 6군의 이동경로까지
위협받을까 두려할 정도로 이부대는 쳐져 있었습니다. 조프르는 이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즉각 랑레자크에게 방향을 돌려 생캉텡과
기즈를 공격하도록 명합니다. 문제는 이 당시 프렌치는 염전 의식 때문에 병력을 무조건 후퇴시키고 있었고 그 덕에 생캉텡쪽을 보호해
줄 어떠한 병력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랑레자크는 공격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죠프르의 명령이 너무 추상 같아서 시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죠프르가 얼마나
확고했냐면 랑레자크가 만약 명령을 거부할 경우 직접 쏴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명령서를 구두가 아닌 문서로 받는
요식행위를 거친 랑레자크는 자신의 군대를 움직입니다. 어느 정도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는데 성공하게 되지만 여전히 독일군은
강대했습니다.

패주 동안 나름 프랑스 군은 살아나며 독일군에 피해를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수도 파리는 위험에 빠져 있었으며
파리를 지키는데 중요한 두 인물- 영국의 프렌치와 프랑스 5군 사령관 랑레자크-은 패배주의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편 독일 1군 사령관 폰 클루크는 파리를 향한 최후의 일격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이 최악의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방법은 어찌보면
기적 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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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9 22:02
수정 아이콘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홍수현.
14/09/19 23:29
수정 아이콘
독일의 근현대문학을 배우는 중이라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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