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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27 01:18:39
Name Love&Hate
Subject [일반] 삼국지 뒷이야기 - 천하인과 폭군
원래 선비족이야기 하면서 남북조시대의 북제나 북주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5호16국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진도가 잘 나가지가 않아서 삼국지 뒤로 부터 5호 16국 이야기를 한번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삼국지 다음이야기라는 책이 있기에, 제목을 패러디 해서 뒷이야기로 5호 16국 이야기를 간단하게 써볼게요. 간단하게 쓴다해도 얼마나 간단해질지 의문이지만요. 읽기전에 먼저 앞에 쓴거 보시는게 낫습니다.


https://www.pgr21.com/?b=8&n=53942 1편 서진의 멸망과 두개의 태양



그나마 1편이 삼국지와 접점이 많고, 후삼국지가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그래도 몇몇 부분은 비슷하게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잘 알려진 부분이고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이걸 간단하고 재미있으면서 전체를 아우르게 쓰기가 어렵네요. 뭔가 다 짚고 넘어가면, 인물이 너무 많이 나오면서 복잡해지고 딱딱해지고 정신없어지면서 재미가 없고, 그렇다고 빼고 가자니 전체가 한눈에 안들어오고 말이죠. 고우영 화백의 고민에 절실히 공감갑니다. 1편보다 재미있게 읽으시기 어려워지실겁니다. 아마 점점 어려워지겠죠. 저도 걱정이 많이 됩니다.





이야기를 하기전에 중국 지도보면서 지역명칭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중국전도는 참고하시면서 설명을 봐주세요.




먼저 황하 입니다. 지류중에 웨이수이강은 마초와 조조가 한판 붙었던 위수입니다. 황하를 기점으로 북쪽을 하북, 남쪽을 하남이라 부릅니다. 근데 남쪽에는 또 다른 강들이 있어서 하남은 보통 황하 바로 밑에 허난성 지역근처를 부르는 말로 좁게 쓰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양쯔강입니다. 독음은 장강입니다. 장강을 기준으로 윗쪽을 강북 아래를 강남이라 부릅니다. 이 지도로 보면 나오는 한수이강이 양양 북쪽으로 흐릅니다. 독음으로는 한수라고 하죠. 관우의 번성공방전 무대였던 강이 바로 한수입니다. 그리고 동쪽의 난징위로 마치 지류처럼 보이는 강이 있는데 이름은 안나오는 강 보이시죠? 그 강은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난징이 건업, 우한근처가 강하 입니다. 우한 서남쪽에 위안장강이 장강에서 갈라지는 부분쯤에 적벽이 있습니다.



장강의 지류 처럼 보였던 이 강은 화이허강 입니다. 독음으로 따지면 회수 입니다. 나름 중요한 강입니다. 이 강을 기준으로 북쪽을 화북, 남쪽을 화남이라 부릅니다만 주로 화북이란 말을 쓰죠. 회수 바로 아래부분에서 화이난(회남)시 근처부분을 회남이라 부릅니다. 지도의 허페이가 그 유명한 합비!





랴오허 강입니다. 독음은 요하지요.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라 부릅니다. 요동반도 때문에 유명하지요.




산시성과 허베이성의 경계인 태행 산맥입니다. 태행산맥 동쪽을 산동, 서쪽을 산서라 부릅니다. 산시성이 독음이 산서성(山西)이고 산둥성은 산동(山東)성이죠.





고비 사막입니다. 사막윗쪽은 몽고인데 몽고는 다분히 중국중심으로는 외몽고라고 부르고요. 몽고에 붙은 아래쪽은 중국내부에 있어서 내몽고라 부릅니다. 사막 윗쪽은 사막 윗쪽이라 막북, 아래쪽은 막남이라 부릅니다.





중국의 관들입니다. 관의 동쪽은 관동 관의 서쪽은 관서라고 하는데요. 그냥 특별한 설명없이 관동,관서라고 하면 삼국지와 그 뒷세대 당시에는 장안(지도의 서안)의 입구이던 함곡관 동쪽을 관동 서쪽을 관서라 부르고 함곡관 및 관으로 둘러싸인 안쪽을 관중 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산해관 동쪽을 주로 관동지방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자 이제 관중이니 막북이니 화북이니 강남이니 하는 지리 명칭에 좀 익숙해지셨을거라 봅니다.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그럼에도 잘 모르는 부분을 위해 지도는 두장 가져올테니 보면서 중간중간에 지난번처럼 참고해주세요




우리에게 익숙한 코에이 지도와



그걸 실제 지도 위에 표기한 지도 입니다. 주의 기준은 삼국시대 그러니깐 후한말 입니다. 서진의 주 체계는 거의 비슷하나 아주 조금 다릅니다. 준비과정부터 만만치 않네요. 안그래도 복잡한데 왜이리 지도가 많냐면, 그나마 지도라도 보면서 해야 이해가 쉽게 됩니다. 가보겠습니다.






1. 천하인에 가까웠던 남자 석륵과 폭군 석호

지난 이야기를 한번 복습해보겠습니다. 서진이 팔왕의 난으로 어지러운 상황에 흉노족 유연은 한을 세우고 화북을 유린합니다. 이걸 영가의 난이라 부르고요. 서량에는 후일 전량이 되는 독립세력이 서촉에는 이웅이 성나라를 세워 차지 합니다. 서진은 멸망하고 한나라가 화북을 차지했으나 한나라 내부는 유요, 석륵등이 지방군벌화 된 상태였죠. 전 황제의 장인이던 근준이 한나라를 찬탈하자, 독립세력인 유요와 석륵이 근준을 토벌하고 각각 나라를 세웠는데 둘다 조나라라서 유요의 나라를 전조로 석륵의 나라를 후조라고 부릅니다. 전조와 후조는 천하를 놓고 한판 붙었고, 후조가 승리하면서 화북지방은 대부분 석륵의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전조가 망한 기념(?)으로 연표 한번 봐봅시다. 전조의 연표입니다. 대수에 표시가 없는것은 황제가 아닌 왕이었던 시절이거나 추존입니다.




329년 석륵은 상규(삼국지 지도에서 장안 서쪽의 천수)를 점령함으로 유요의 아들인 마지막 황제 유희 중심의 마지막 전조의 잔당들을 일망타진합니다. 화북 대부분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죠. 전조에 복속되어 있었던 저족의 포홍과 강족의 요익중도 후조에 항복했습니다. 이로서 석륵은 서량(전량이 있는곳) 지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화북지방을 손에 넣었습니다. 물론 변방에 복속시키지 못한 무리들이 있긴하지만 말이죠. 적벽대전을 일으키기 전의 조조정도의 업적은 이룬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330년에 천왕이라 자칭하고 곧이어 황제에 오릅니다. 노예로 팔려가서 황제까지 오른 천하인에 가까웠던 첫번째 남자였습니다.





329년의 형세



석륵의 인물된을 알려주는 여러 일화들이 있습니다. 석륵은 글을 몰랐으나, 식견이 떨어지는것은 아니었습니다. 석륵이 한의 군단장이던 시절에, 군자영이라는 시설을 설치하여 널리 인재를 모았고, 그때 들어온 인재가 장빈이었습니다. 그 장빈 덕분에 석륵이 대업은 달성가능했죠. 석륵은 글을 모르지만, 신하들에게 글을 읽게 해서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하루는 초항쟁패시기의 이야기를 하는데 역이기가 유방에게 항우와 대항하기 위해 각 나라의 왕족들을 봉해서 육국을 부활시켜서 항우를 대항해보자는 책략을 내고 유방이 받아들였을때, '그말대로 하면 유방이 반드시 패한다. 어떻게 이겼지?' 라고 말하는 식견을 보여줬습니다. 신하들이 그 뒤 장량이 간해서 역이기의 책략을 철회시키는 대목에서 '아 장량이 있어서 유방은 천통을 할수 있었구나' 라고 이야기 했었죠. 또한 석륵은 유방을 만났다면 자기가 신하가 되고, 유수(후한 광무제)를 만났다면 자기가 천하를 놓고 한번 붙어볼만했으며, 사내가 조조나 사마의 같이 고아나 과부를 겁박하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할정도로 호탕한 남자였죠. 식견남다름, 용맹 뛰어남, 성격 호탕함 그야말로 노예에서 황제까지 올라갈만한 인물이었던거죠.





석륵의 가계도. 까만 화살표는 아버지 → 자식 입니다. 숫자는 황위에 오른 사람의 대수입니다. 몇대 황제냐는거죠.



그런 석륵에게도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후계자문제 입니다. 석륵에게는 조카가 있었는데 석륵의 어머니 왕씨와 함께 병주자사 유곤에게 인질로 잡혀있었다가 돌려받은 그 석호 맞습니다. 석륵이 노예가 될때 어머니와 헤어졌는데 어머니는 석호가 돌보고 있었던거죠. 재회한 뒤로 석륵을 따라 전쟁터에서 많은 공훈을 세웠고, 후조가 화북을 평정하자 석호 역시 실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전쟁에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 성격이 지나치게 포악하고 잔인했습니다. 후조의 여러 중신들은 석륵의 사후를 대비해 석호를 미리 제거하여야 한다고 했지만, 석륵의 어머니 왕씨가 반대해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석호도 석륵이 살아있을때는, 전쟁에 어느정도 능력이 있었고 도움이 되는 장수였지만 333년 석륵이 몸져 눕게 되자 그때부터 이빨을 들이대기 시작하죠. 석호는 궁을 장악하고 아무도 석륵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조서를 마음대로 고쳤습니다. 석륵이 세상을 떠나자, 태자 석홍을 황위에 올렸으나, 사실상의 실권자는 석호였죠.





석륵의 자손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앞서 유요와 대립때 낙양을 지키던 석생, 바로 그 석생이 반란을 일으켜서 석호에 대항하지요. 석륵의 아들인 석생은 낙양과 관중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석호가 직접 반란을 진압한뒤, 힘을 합쳐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관중 관서 지방에 살고 있던 저족과 강족 수십만명을 수도인 업 부근의 관동지방으로 강제이주 시켜버립니다. 저족의 수장 포홍과 강족의 수장 요익중이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포홍과 요익중 세번째로 나오네요. 나름 중요 인물들입니다.




강족과 저족의 민족 대이동, 강족이 옮겨간곳은 섭두 저족이 옮겨간곳은 방두. 둘다 수도인 업 근처입니다.




334년 석홍은 석호에게 선양할 뜻을 비추지만, 석호는 '석홍이 아둔하여 상중에도 예의를 차리지 못했으니 폐위하는것은 당연한데 어찌 선양을 한단 말이오' 라고 이야기 하며 폐위는 시키지만, 선양은 받지 않겠다고.......합니다. 황제자리가 비어버린거죠. 석호는 석륵이 황제가 되기 전에 칭했던 천왕의 위치에서 사실상 황제노릇을 하고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석홍과 석륵의 자식들을 죽이거나 거세시켜 버립니다. 석홍은 폭군들의 중요요소인 토목공사, 무리한 전쟁, 사치와 향락, 잔인한 숙청 사관왕을 달성하며 349년 까지의 15년의 세월동안 백성들과 신하들을 벌벌떨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수도이전도 빼놓을수 없군요. 그리 멀진 않지만 양국에서 업으로 수도를 이전합니다. 다만 군사적 재능은 건재해서 장강이북을 대부분 점거해서 동진을 압박했는데, 북쪽으로는 탁발부, 모용부 등의 선비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이때부터 모용부가 만만치 않은 세력을 과시하며 후조와 대립하였고, 서량의 전량은 워낙 험지라 이길때도 있었지만 결국 영향력 아래 놓지는 못했습니다.





석호를 벌벌떨게 한것은 백성 신하뿐만 아니고, 석호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들이 후계자 분쟁으로 반란을 일으켜도 아들의 일족 그러니깐 손주들까지 참혹하게 처형했습니다. 태자 석수가 석호를 죽이고 황제가 되려고 먼저 반란을 일으켰다가 일족을 멸했고, 그 다음 태자로 세운 석선이 석호가 총애하는 아들 석도를 살해하자, 석선과 그 일족을 죽이고 동궁(태자궁) 수비군들을 양주(凉)로 유배시켜 버립니다. 양주의 깊숙한 곳에는 전량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천수(삼국지 지도의 위치참조) 근방에 유배된거죠. 문제는 석호가 말년에 손주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 손주가 석선의 일족이었던거죠. 말년에 귀여워 하던 손자가 석호 눈앞에서 자그맣지 갈아버렸다고 합니다. 평소 석호가 사람죽이던 방식대로 죽여준거죠. 이때부터 석호가 좀 충격을 받고 기력이 쇠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유배시킨 수비군들은 양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한때 기세가 관중을 장악하고 업까지 진출합니다. 이전에 석호가 관중의 이민족들을 대거 업근방으로 이주 시켰었죠. 이럴때는 또 도움이 된것이 반란군이 강족 수장 요익중에 의해서 진압당합니다. 다만 석호는 각지의 반란과 충격등으로 와병하여 삶의 에너지가 점점 꺼져나갑니다.





석호는 스무살만 넘으면 아버지에게 대든다고 나이 많은 태자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으니 어린 태자를 삼는데요. 11살의 어린 아들 석세를 태자로 삼습니다만, 어린 태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본인 사후가 문제죠. 석호의 삶의 촛불이 꺼져가는 와중에 11살의 태자, 매우 불안한 조합이 후조의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 Carrier has arrived!

자 그럼 그동안 동진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안봐도 뻔하게 아마도 드라군으로 찌질대다가 캐리어 가겠죠. 맞습니다. 장안에서 민제의 사후 건강(건업)에 있던 낭야왕 사마예가 황위를 물려받았고, 그가 5대 황제 원제이고 그때부터 동진이라 불립니다. 낭야는 서주에 있는 지역으로 제갈량의 출생지로 유명하죠. 동진의 지역은 삼국시대 오나라때도 호족들의 입김이 드센 지역이었는데, 중원에서 도망쳐온 왕족이 세운 나라에서는 오죽했을까요. 원제는 황제가 될때도 승상 왕도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동진 황제의 계보. 대수는 서진시대부터 친겁니다. 서진이 황제가 4명입니다.




원래 분봉지가 낭야(삼국지 지도의 하비 근처)였기에 왕도, 왕돈등의 낭야 호족, 낭야 왕씨들의 도움을 받아 강남의 호족들과 연계하여 그래도 나라가 안정을 점차 되찾습니다. 이 시기에 호족이 귀족화가 되어서 가장 유명한 성씨가 이 낭야 왕씨입니다. 글씨로 유명한 왕희지도 바로 이시기의 낭야 왕씨죠. 귀족이 힘이 강해지면 반란이 일어나기 쉽죠. 낭야왕씨의 실력자중 한명인 병권을 쥐고 있던 대장군 왕돈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오히려 사촌인 역시 낭야 왕씨의 실력자였던 승상 왕도가 제압하고 왕도가 동진의 기틀을 바로 잡습니다. 다만 황제들이 나이가 조금만 차면 죽어버려서 재위가 길지 못했습니다. 자료 참고해주세요. 그래서 암살 의혹이 있다네요. 여튼 진나라 7대황제 (동진3대) 성제의 시기에 석륵이 화북을 통일(329)하였고 석호의 치세(334~349)가 이어지던 중이었습니다. 석호의 치세동안 황위는 성제, 강제를 지나 목제에게 이어졌습니다.




흔히 서진이 막장이라서 동진도 막장이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동진도 막장입니다. 이 시기 나라는 일단 다 막장이에요. 다만 동진은 서진 정도는 아닙니다. 귀족중심이라 동진내부의 암투와 반란 찬탈시도야 있었으나, 북조와 대립할때는 어느정도 힘을 쓰던 시기입니다. 언제부터 그랬냐면 바로 환온이 등장하면서 부터입니다. 드라군으로 찌질대다가 캐리어가 나왔는데 그 캐리어가 송병구의 캐리어였던 것이죠. 환온은 이시기에 황제가 아닌 인물들중에는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서부군 군단장의 계보


때를 살짝 거슬러 동진의 두번째 황제(진 6대) 명제 시기에 도간이라는 장수가 형주에 부임합니다. 당시 동진 역시 군권을 지닌 사람의 반란으로 골치가 아프던 시절이었는데요. 도간은 청렴하고 충성된 신하였습니다.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형주에 부임해서 형주를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합니다. 동진 그러니깐 오와 영토가 비슷한 시점에서 형주는 강남의 서쪽이죠. 그래서 도간이 조직한 군대를 서부군이라 부릅니다. 이 서부군의 다음다음 책임자가 환온입니다. 환온은 젊어서 부터 아버지의 원수를 상가집에 찾아가서 일족들과 함께 있는것을 도륙할정도로 용기백배인 인물이었다고 하네요. 환온은 제갈량과 비슷하게 지방의 군권을 맡았고, 똑똑하고 용병에 능했으며, 제갈량과는 성격은 진짜 좀 정반대였던것 같습니다.





346년 환온이 표를 올려 동진의 황제에게 성한을 정벌하자고 이야기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아직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내치를 다지자는 신하들도 많았지만 목제는 이를 허락합니다. 그즈음에 성한도 반란과 권력다툼끝에 이수가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요. 이수는 후조가 잘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후조의 황제...석호를 벤치마킹하기로 합니다....무리한 토목공사와 잔인한 형벌을 후조 처럼 잘 나가보자는 생각에 성한에도 도입하는데요.  이로 인해 한의 국력은 급격히 쇠퇴하였습니다. 역시 이름부터 뭔가 안좋은 일을 해볼거같은 이름이었는데.. 343년 이수가 죽고 이세가 즉위한 시기 그때 환온이 서촉정벌을 시작한 것입니다.






서부군과 북부군. 주황색 화살표는 환온의 진격



환온은 빠른 진격에 능한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만큼 보급이 부실했긴 합니다. 그럴때 환온은 한신을 본받아 더 위급한 상황으로 병사를 내몰았습니다. 서촉땅으로 빠른 진격을 하던 환온은 결사의 각오를 가지기 위해 3일치 양식만 가지고 성도로 진격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모두가 실패할것이라 내다 봤지만, 신하중에 유담만이 환온이 성공할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환온이 원래 도박이나 내기에 강한 스타일이었고 지는 도박은 하지 않으며, 유담이 많이 졌던것같습니다. 성한의 요격군은 때마침..환온과 길이 엇갈려서 환온은 바로 성도 앞에 다다를수 있었습니다. 다만 성한의 저항도 거셌습니다. 성도밖에서 요격한 성한군의 매서운 저항에 지휘관 환온까지 화살에 맞을뻔한 상황에 도달하자 일시 퇴각을 결심합니다. 퇴각명령을 내리자 퇴각의 북을 치려고 했는데, 북을 치는 사람이 실수해서 진격 북을 칩니다. 그리고 환온과 환온의 장수 원교가 이왕 이렇게된거 죽을 각오로 병사를 독려해 이세의 병사에게 큰 승리를 거둡니다.






성한이 망한 기념으로 성한의 연표. 대수에 표시가 없는것은 왕이던 시절이거나 추존입니다.



성한의 시초중에 하나인 이특이 촉나라 땅에 처음 들어올때 촉땅의 험한 지세를 보고는 '이 같은 땅을 두고 타인에게 항복하다니, 유선의 재주 알만하구려' 라고 디스했지만, 성한의 후예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성한은 5대 44년의 짧은 역사를 끝으로 동진의 환온에게 멸망합니다.







3. 모용세가의 선조들



서진의 주와 선비족들의 영향권. 몇몇 주가 후한과는 다르니깐 봐두시는게 좋습니다. 일단 양주가 두개였는데 세개가...되었네요.




주요 선비족들의 위치를 다룬 또 다른 지도. 모용부 우문부 탁발부 단부 걸복부 외에 독발부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후조를 살펴보고 다시 동진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눈을 요서를 향해서 북방을 살펴보겠습니다. 선비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겠는데요. 선비족은 서진말기에 우문부, 모용부, 탁발부, 단부, 걸복부의 5부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중 모용부와 탁발부가 강력했습니다. 탁발부는 315년 진왕조를 도운 공로로 대왕에 봉해집니다. 그래서 사실 315년 이후로는  탁발부를 대나라로 표현해도 되는데 이름은 나라이지만, 부족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도에 따라서 탁발부로 표현하기도 하고 대국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대나라는 16국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탁발부 역시 내전에 들어가서 329년 석륵에게 인질을 보내고 사실상 복속합니다.





부여를 털고 계시는 모용외.



탁발부는 후조에 복속했으나, 모용부는 요동을 중심으로 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일단 지리적으로도 직접적으로 석륵과 맞대지 않아서 마주칠일이 적었습니다. 우문부, 단부, 탁발부가 후조에 복속될때 모용부 만은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죠. 그리고 당시의 지도자였던 모용외가 후조와 석륵에게 매우 적대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33년 모용외가 죽자 상황이 좀 급박하게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모용외의 가계도



모용외의 세자였던 모용황, 모용황의 동생 모용인, 모용외의 서자 모용한이 각각의 세력을 갖고 권력다툼을 시작합니다. 모용황이 모용외를 이었지만 곧 모용인이 독립하여 요동일대를 석권합니다. 모용한은 단부에 망명해서 모용황을 노리고요. 유성 을 공격하던 모용한과 단부, 그것을 구원하던 모용황은 모용한에게 크게 패해서 모용황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모용한에게 심경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외부세력에 의해 모용부가 멸망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용한이 단부를 제지하게 되고 단부와 모용한이 틀어지는 사이에 모용황은 겨우 수습을 시도하게 됩니다.






모용부의 세력



세력을 수습한 모용황은 반격을 시도해서 334년 모용인을 공격해 양평(삼국지 지도 요동에 나오는 도시입니다.)을 함락시키고 모용인의 세력을 크게 약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336년 발해만이 3년 연속 얼어붙은 기현상을 이용해 모용인의 방어선을 우회해서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 모용인을 일망타진합니다. 이제 총구를 단부에게 돌리죠. 337년 모용황은 연왕을 자칭하고 전연을 건국합니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단부를 공격합니다. 이때 후조는 석호의 치세였습니다. 전연은 16국중에 하나입니다.








연은 단부를 멸망시키기 위해 후조의 석호와 손을 잡는데, 모용황은 후조와 단부가 싸우는 틈을타 단부를 노략하고 돌아가버립니다. 이에 화가난 후조의 병사들이 연을 공격하는데 이때 모용황은 또 큰 위기를 맞아 영토의 대부분이 점령당했고, 수도가 포위됩니다. 수도를 버리고 도망갈까 생각을 합니다만, 제장들의 만류로 치열한 농성전을 시작해 결국 조의 군사가 퇴각하면서 끝이 납니다. 이때 모용황의 반격에 후조의 병사들은 대부분 산산히 부서졌고, 오로지 석씨 일족의 석민이 이끄는 군대만 온전히 퇴각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나오는 석민 중요인물입니다. 후조에게 털린 연의 영토를 수복한것은 말할것도 없고요




340년 다시한번 후조와 연이 붙어서 연이 대승을 거둡니다. 더이상 연은 후조의 변방에 있는 무시할수있는 세력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342년 수도를 용성으로 옮긴 모용황은 배후를 대비하기 위해 부여와 고구려를 털어버립니다. 고국원왕이 미천왕의 시신과 왕모, 태후를 전연에 빼앗기게 되는 때가 이때입니다. (고국원왕은 다시 백제에 또 털리죠) 348년 모용황이 죽고 아들 모용준이 2대 연왕으로 즉위합니다.



얼굴만 봐도 원통해 보이는 고국원왕






4. 후조의 몰락




다시보는 석륵의 가계도

349년 후조 석호의 숨이 꼴까닥 넘어가기 전에 동진에서는 성한을 병합하고, 환온의 위세가 등등했으며, 북방에서는 전연의 초대 왕 모용황이 죽고, 모용준이 막 즉위를 한 시기였습니다. 석호는 병석에서 태자 석세의 나이가 어린것이 걱정되어 석세에게 힘을 주기 위해 팽성왕 석준을 요직에 임명해 업으로 불러들입니다. 태자의 모후 유씨는 석준이 석세를 밀어낼것을 두려워해 석준을 속여 관중으로 보내버립니다. 마침내 석호가 죽고 태자 석세가 황제에 즉위했을때 태후가 된 유씨가 섭정을 시작했고, 신하 장시와 더불어 정권을 장악합니다. 장시, 장거, 이농은 석호가 석세를 보좌하기 위해 태자로 임명하면서 붙혀준 신하들인데, 정권을 잡고나자 셋이서 분열해서 싸우기 시작하고, 다툼에서 밀린 이농은 광종으로 달아나 반군을 조직했고 장거가 이를 토벌하기 위해 도착합니다. 이 시대는 이런 막장이 코드입니다.





관중을 향하던 석준은 하내에서 석호의 사망소식을 듣게되고 마침 반란을 제압하고 귀환중이던 강족의 요익중, 저족의 포홍, 그리고 전연과의 전투에서 유일하게 잘 퇴각했던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석민을 만나게 됩니다. 요익중, 포홍, 석민과 석준은 군사를 몰아 그대로 업으로 향합니다. 수도 업은 이농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텅텅 비었고, 석준은 무혈입성하게 됩니다.





석세는 33일만에 석준에게 폐위 살해되고 석준이 황위에 오릅니다. 석준이 황위를 차지하는데 가장 큰 공신은 석민이었는데 석민은 원래 이름은 염민이었고 한족이었습니다. 석호의 총애로 인해 석호가 양자로 들였던 인물입니다. 석준이 황위를 차지하면서 황태제 자리는 석민에게 준다고 했으나, 사실 양자라서 황태제가 되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황태제에 임명하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할일을 하고있었지요. 석준이 황위에 오르자 각지에서 황족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이것 역시 군재가 뛰어난 석민이 진압합니다.




석준은 이런 석민을 두려워 제거할 계획을 세웠는데 의양왕 석감이 배신하는 바람에 들통나게됐고, 석민은 석감을 황제로 옹립했으며 석준은 폐위 살해되었습니다. 석준은 고작 반년정도 황위에 올랐을 뿐이죠. 석감이 황위에 오르고 석민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자 이제 신흥왕 석지가 저족의 포홍, 강족의 요익중과 연계해서 석민을 제거하기 위해 양국(석륵시절 수도)에서 거병합니다. 석민은 이를 진압하기위해 수도 업에서 출진하는데, 석감은 이런 석민을 암살하려고 시도하다 실패하고 신하에게 황제가 항복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앞서 말했듯 이 시대는 이런게 트렌드죠. 반면교사의 향연. 이때 석민은 뭔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성안의 갈족들을 몰살시키기로 결정합니다.




호족(이민족)의 목을 베는 사람에게는 문무관 모두에게 특진을 약속하고, 한족관리들은 사람들을 조직해 호족들을 사냥하기 시작합니다. 한족중에도 외모때문에 호족으로 오해받아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이때 약 20만명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이일로 사실상 수도에서 갈족 세력은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50년 석민은 석감을 폐위하고 본인이 황제에 오르고, 본인의 이름을 염민으로 다시 고치고 나라 이름을 위나라로 고칩니다. 이 나라가 바로 염위입니다. 16국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중요한 나라입니다. 염민이 위나라 황위에 오르자, 양국의 석지는 스스로 후조의 황제에 오릅니다. 업과 양국에서 염위와 후조의 공방전이 벌어집니다.






5. 후조가 떠난 뒷자리

후조의 양국과 염위의 업은 직선거리로 겨우 70km 떨어져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양국의 수도가 매우 가까웠죠. 서울 대전보다 더 가까운 거리였는데, 사실 우리나라도 대립하는 두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가까운 경우가 없었는데 땅넓은 중국이야 오죽했을까요. 원수가 되버린 두 나라가 근거리에서 치고박고 하기에 지방에 대한 장악력을 사실상 상실합니다. 저족의 부홍, 강족의 요익중, 모용외의 전연이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하면서 자기 세력을 키워나가며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시보는 강족과 저족의 민족 대이동, 원래 살던곳으로 이제 다시 돌아가려는중. 양국과 업의 위치도 확인 가능합니다.



저족의 포홍과 강족의 요익중은 모두 관중 관서지방에 살다가 석호에 의해서 강제이주 당했었죠. 이 틈을 타서 관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돌아가기전에 누가 돌아갈것인지 한판 붙는데 여기서 포홍이 이겨서 저족이 돌아가는것으로 결정되고 강족은 다시 좋은 자리 찾아 유랑에 떠납니다. 이당시 포홍은 도참사상을 믿었는데요, 포보다는 부가 좋다고 해서 성을 부로 고칩니다. 지금부터 포홍을 부홍이라 부르겠습니다. 부홍은 관중지방을 향해 돌아가던중,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아들인 부건이 부홍의 뒤를 이어 저족들을 잘 이끌고 관중지방에 도착해서, 관중지방과 하남일대를 장악하고 351년 스스로 삼진왕이라 칭합니다. 이 나라가 그 유명한 전진입니다. 우리에게 불교를 전파해준 나라기도 하죠. 16국중에 들어갑니다.





컴백하는 저족과 유랑하는 강족





351년 염위의 염민은 후조를 드디어 멸망시켰는데요. 두 나라 다 이미 막장으로 치달은 상황이었습니다. 수도 근방의 근접격투기에 두나라는 이미 빈사상태였구요. 양국을 점령하고 후조를 멸망시킨 염민은 군량이 부족해 근처를 전전하며 군량을 약탈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모용외는 전연의 명장 모용각을 보내서 염민을 상대하게 됩니다. 명장대 명장의 불꽃튀는 접전 끝에 10차례 싸워서 10번을 염민이 이겼으나, 이미 둘의 상황 차이가 심각했습니다. 모용각은 숲으로 염민을 유인해 단 한번의 싸움으로 염민을 사로잡게 되죠. 염민은 혼자서 300명을 도륙하는 무용을 뽐냈으나 별수 없었습니다. 후조가 멸망한 351년의 다음해인 352년에 염위는 건국 3년만에 망했습니다.




후조 멸망 직후의 형세





후조 망한 기념 후조 연표. 대수에 표시가 없는 것은 왕이던 시절이거나 추존입니다. 석호가 석륵의 조카라서 석호 앞에도 추존했네요.


당시 동진을 무엇을 하고 있었냐면, 캐리어가 너무 강해서 견제하느라 캐리어를 안쓰고 있었습니다.  동진은 형주의 군대인 서부군을 견제할 수단을 찾던중, 환온의 어린시절 친구 은호를 키워주기 시작합니다. 은호에게 양주의 군대 북부군을 맡기게 됩니다. 북조가 혼란인 시기에 환온은 북벌을 하자고 요청하지만, 동진은 북부군에게 북벌을 맡깁니다. 이때 강족의 요익중은 부홍에게 패하고 여러곳을 전전하다가 요익중이 죽고, 요익중의 아들 요양의 인도하에 산동지방에 머물다가 동진의 초성에 도착했습니다. 동진은 요양의 세력을 이용해 북벌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352년 은호의 북벌이 시작되고 요양을 앞세워 북부군이 출동했는데, 정작 하남에 있던 군웅들이 전진에 투항해버린 뒤였습니다. 군웅들의 저항은 거세고, 전진의 승상 부웅의 구원군에 북부군은 대패하게 됩니다. 이때 수습을 한건 오히려 강족의 요양이었죠. 요양은 이때 동진은 믿을게 못되는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보는 고향 반대방향으로 유랑하는 강족





다시보는 서부군과 북부군. 지도는 성한 멸망전이고 지금은 성한이 멸망한 뒤라는것은 좀 다릅니다.




강족이 북부군을 얕잡아보고 딴마음을 품을까 할때, 동진의 북부군 은호 역시 요양의 힘이 북부군보다 강한것을 알고 경계하게 되죠. 그래서 여러차례 자객을 보내어 요양의 암살을 노리나 실패합니다. 요양 역시 은호의 사주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353년 동진은 두번째 북벌을 북부군과 요양의 강족이 연합해서 출동시킵니다. 결과는 안봐도 뻔하죠. 밖에 나가서 둘이 한바탕 싸웠습니다. 요양은 하라는 북벌은 안하고 매복해있다가 은호를 박살을 내버립니다. 그리고 동진 조정에 돌아가서 은호가 자신을 죽이려 해서 그런것이라며 사과를 하며 어느정도 무력시위도 하면서 사과도 하면서, 의사표현을 해두고 돌아갑니다. 동진은 요양을 어떻게 할수가 없었습니다.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육성된 은호는 이것으로 인해 실각하게 됩니다. 환온의 상소로 인해 멀리 유배되게 되죠. 환온은 과거를 회상하며 은호에 대해 코멘트를 합니다. "은호랑 어릴때 대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놀았는데, 그때도 은호는 내가 놀다가 버린 말 주워서 놀곤했지. (그때도 내 따까리 였으니)지금도 나에게 상대가 안되는건 당연한 일이다." 이게 죽마고우 라는 말의 유래입니다. 실제로 어릴때 부터 함께해서 너무 친해서 나온말이 아닌 것이죠.





자..은호도 실각하고 이제 동진의 최대 병기 캐리어 환온의 서부군이 북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건은 승상 부웅을 통해, 이를 막아내보려고 하고요. 전진의 승상 부웅의 아들이 바로 부견입니다.
















지난 글에서 전조(흉노), 전량(한족), 성한(저족), 후조(갈족)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이번에는 전연(선비), 전진(저족) 두나라가 나왔네요. 16개국중에 6개가 나왔습니다. 전조와 후조 성한 은 이미 멸망했군요. 참고로 갈족은 흉노의 일파 정도로 보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석륵 이후로는 갈족은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염민의 대학살 한방에 갈족은 이제 힘을 못쓰는 상황이 됩니다. 너무 기네요. 끊어가겠습니다. 세편에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택도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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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뭐함
14/09/27 01:51
수정 아이콘
'이 같은 땅을 두고 타인에게 항복하다니, 유선의 재주 알만하구려'
크크 역사는 반복되는군요.
바스테트
14/09/27 02:16
수정 아이콘
저 동진의 황제 암살의혹이 일수밖에 없는게
나라는 기본적으로 귀족중심 그리고 그 귀족의 권력이 막강했었는데
항상 짧게 죽는 황제들은 대부분이 황권을 반석위에 올려놓을 만한 업적을 이루거나 그와 비등할 정도로 지위를 누릴떄쯤에 죽어버립니다.
그에 비해 혼자서는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먹는 것도 혼자 못먹으며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도 못하는 황제는 진나라 역사상 가장 오래동안 제위한 황제중 한명이 되고(..)
14/09/27 02:56
수정 아이콘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초반에 지도가 약간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네요.
그러고보니 대략 50년 동안의 내용인데 왜이리 나라가 자주 망하는 것인지 ㅜㅜ
일본 전국시대가 막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역사!하면 중국인가 봅니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볼 수 있으니 ;;
14/09/27 04:57
수정 아이콘
이시기가 유독 막장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배층이 오석산에 미쳐살아서 그렇다는 소리도 들었는데..-_- 잘 읽었습니다. 이글 읽고 소개팅 가서 5호 16국시대 썰을 풀어야겠네요
일찍좀자자
14/09/27 14:11
수정 아이콘
피지알스런 결과가 나올까 우려됩니다
Love&Hate
14/09/27 15:48
수정 아이콘
트렌드라고 생각합니다
황제의 권위가 무너지고
한족이 아닌 이민족이 대거 유입되어
힘이 있으면 찬탈하는게 트렌드가 되어 버렸죠
그러다보니 살얼음판이라 비정상적인 상황이 많이 벌어지고

5호16국 시대도 분열기 답게 명장이많은데
회자되지않는건
명장은 대부분 군주가 되버렸지요
Je ne sais quoi
14/09/27 09:17
수정 아이콘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14/09/27 11:16
수정 아이콘
시기가 정신이없어서 재미있게 썰풀기가 어려운데 수고하셨습니다
이때 코드는 역시 막장이죠 .
일본의 윤아
14/09/27 12:26
수정 아이콘
지도가 깔끔해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모여재
14/09/27 14:43
수정 아이콘
외쳐 석호! 석수!
석수는 정말 희대의 싸이코였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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