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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2/18 05:33:16
Name 에디파
Subject 구멍 뚫린 시트의 사례 - 살만 루슈디에 대하여
너무나 놀랍고 당혹스럽게도 욕망이 된 대상에서 내뻗치는 손은, 예를 들면 붉어지는 엉덩이일 수 있다. 나는 살만 루시디의 [한밤의 아이들]에 나오는 가장 원형적인 장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 아지즈는 의사가 되기 위해 독일에서 공부한 뒤, 인도로 막 돌아왔다. 그는 한 지주의 딸을 진찰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가 그 집에 도착하여 딸을 보자고 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낯선 남자에게 몸을 보여주지는 않는 요조숙녀라고 설명한다. 젊은 의사는 어느 방으로 안내를 받는데, 그곳에는 프로레슬러 같은 체격을 한 두 명의 여자가 거대한 흰색 시트의 한 모서리를 각각 잡고서 뻣뻣하게 서 있다. 시트의 정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은 약 7인치 직경의 원이다. 의사는 이 구멍 뚫린 시트를 통해서만 환자를 진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며, 그 숙녀의 어떤 부위를 진찰하려 하는지 지정해 달라고 친절하게 요청받는다. 그렇게 해서 의사가 그의 환자와 사랑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삼 년 절차가 시작되었다.

그 기간 동안, 지주의 딸은 엄청난 수의 사소한 질병에 걸리며, 의사 아지즈의 방문은 거의 주말행사가 된다. 매 경우마다 그는 구멍 뚫린 시트를 통해, 그 어린 여인의 몸의 각각 다른 7인치 원에 대한 일별(一瞥)을 허락받는다. 지주의 계획이 놀랍도록 효험을 발휘한다는 것과 오직 부분부분으로만 알고 있는 지주의 딸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의사 아지즈에게 일어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진찰하도록 요청되는, 또는 오히려 허락되는 부위들은 갈수록 민감한 곳이 된다. 따라서 욕망은 분명 거기 있는데, 그렇다면 사랑은? 의사 아지즈가 (넓적다리 뒷부분에 근육이 당긴다는 구실로) 진찰을 요청받은 마지막 부위는 지주 딸의 엉덩이였다. 그리고 그것을 만지기 위해 손을 내뻗을 때 그는 그 엉덩이가 '수줍지만 고분고분하게 붉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녀의 엉덩이가 붉어진다! 이 순간 그는 사랑에 빠진다. 말하자면 엉덩이가 당신에게 윙크를 한다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보고 있는 대상이 갑자기 거꾸로 당신을 보고 그리하여 부인할 수 없는 주체화의 효과를 산출한다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도망치거나, 아니면 사랑에 빠진다, 즉 상응해서 재주체화 된다.

- 알렌 카 주판치치 '구멍 뚫린 시트의 사례' 중에서-

이 글의 제목 '구멍뚫린 시트의 사례'는 보시다시피 제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지젝이 편집한 라캉의 강의록에 실린 알렌 카 주판치치의 글이지요. 제가 자주 가는 블로그에 옮겨져 있어 재미있게 읽었고, 작가 살만 루슈디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흥미로울 것 같아 일부만을 옮겨 왔습니다. 라캉이 주판치치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듯이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다분히 희극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의 희극성은 정작 이야기속의 인물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지요. 작가는 묘사를 통해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를 이루어내고 작가의 '의도적 거리두기'는 독자에게 전체와 부분을 조망하는 쾌감을 선사합니다. 몰입하기의 비극성과 거리두기의 희극성을 발견하는 것은 오직 독자의 몫인거지요.

저는 오랫동안 소설의 독자로 살아왔습니다. 이런 뜬금없는 고백도 다소 희극적으로 들리는군요. 기민하지 못하여 다른 오락거리에 눈돌리지 못한 탓입니다. 정보의 업데이트도 매우 늦지요.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그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은둔자적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정보를 모으는 것은 명령을 모으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또한 들뢰즈의 아주 강력한 말을 인용하지요.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미디어의 익명성 아래에 감추어져 내게 별로 필요없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소설의 독자로 살기를 참 잘했다 생각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사사키 아타루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또는 저처럼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로 살기도 어렵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정보에 둔감하다는 것은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말과 상통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돌아와서, 누군가 이러한 '의도적 거리두기'를 가장 자유롭게 해내는 작가를 묻는다면 저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살만 루슈디를 떠올릴 것입니다. 익살맞고 능청스럽고 노련한 변사처럼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잘도 떠들어대다가 갑자기 "이봐, 이봐, 당신! 당신 지금 이야기를 읽고 있어. 너무 빠져들지 말라고." 하듯이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어느새 카메라를 줌인 하듯 사건에 뛰어들어 이야기를 계속 해나갑니다. 주판치치가 '사랑에 빠지는 행위'의 희극성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 '구멍뚫린 시트의 사례'는 살만 루슈디의 소설 [한밤의 아이들]의 주인공 살림 시나이의 할아버지인 아담 아지즈가 할머니 나심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지요. 성경에 등장하는 첫번째 인물인 아담을 빗대듯이 할아버지의 이름은 아담입니다. 성경에서 예수가 신약의 마태복음쯤 되어서야 수태고지를 받고서 등장하듯, 살림은 소설의 중반이 다 넘어가도록 태어나지도 않습니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 정치성, 그리고 인종과 문화의 문제는 한 번에 다 꿰뚫어보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마치 작가는 독자가 여러 분야의 전문가라도 되어 이 모든 문제를 모두 알아채리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듯하지요. 수많은 등장인물과 거기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은 양탄자의 무늬처럼 현란합니다. 여기서 의심많은 독자에게 드는 한가지 걱정거리라면, 이렇게 많은 사건과 사고로 점철된(?) 소설들은 자칫 작가조차 중심을 잃고 작품내에서 의도치 않은 기류를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마리오네트를 움직이는 사람이 손이 바빠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고 널부러진 한구석의 인형처럼요. 예를 들면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항상 침대옆에 두고 읽고 싶을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을 정도로 좋아합니다만, 정작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내 이름은 빨강]에 비해 유기적으로 균질한가 하면 고개를 갸웃합니다. 그러나 살만 루슈디는 그보다 몇 수는 더 위지요. 의도적으로 병렬시킨 요소들과 배타적으로 병치시킨 요소들이 마치 씨실 날실처럼 엉켜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움직인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제 이 소설에 대한 상찬은 여기서 그치고자 합니다. 혹시나 제 글을 읽고 이 책을 읽어보고자 하는 분께 누가 되기 싫기 때문입니다. 검색을 해보면 이 소설을 읽고, 또는 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무어의 마지막 한숨]을 읽고 현기증과 구토증을 호소하는 독자들을 여럿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영어권 독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아마존을 검색하면 살만 루슈디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각종의 연구서들이 많이 출판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무어의 마지막 한숨]은 절판되어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헌책을 새책보다 비싸게 사실 의향이 있다면 몰라도요. 저는 한 차례 도서관에서 빌려읽고, 헌책을 비싸게 사는 것이 억울해서 출판사에 문의를 해보았으나 다시 찍을 계획이 없다고 해서 원래 가격의 약 두배를 지불하고 구입했습니다.

정보에 둔하다보니 살만 류수디에 대한 단순한 선입견으로 그의 책을 비교적 늦게 만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살만 루슈디는 그의 책 [악마의 시]로 인하여 이슬람교 모독죄인 '파트와'를 선언받고 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해왔지요. 저는 단순히 그 사건을 '고향 떠난 글쟁이가 서구적 시선으로 모국의 종교와 문화를 비웃은' 그러므로,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는 작가가 일으킨 단순한 소란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정보에 둔하면 이렇게나 어리석어 집니다. 그러다가 몇해전, 아마도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이 막 출간될 무렵, 책을 빌리러 자주 들르는 종로도서관에서 신간을 살피다 두 권으로 나누어 펴낸 [한밤의 아이들]의 첫 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는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했던 카프카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이 책이라면 카프카의 엄격한 기준은 맞추고도 남음직하다 싶었습니다.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더 깊이 있게 보고 싶은 마음에 며칠 전 교보문고에 들러 책 한권을 구입했습니다. [살만 루시디와 자정의 아이들]이라는 책입니다. 영어원서를 막힘없이 술술 읽는 실력이라면 이 책을 사지는 않았겠습니다만, 어쨌든 책의 앞부분에 살만 루슈디가 '파트와'를 선고받은 정치적 배경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요약해 보자면, 살만 루슈디는 그의 네번째 소설 [악마의 시]를 1988년 영국(런던)에서 처음 출판하였습니다. 이 소설은 영국으로 이주한 지브릴 파리슈타와 살라딘 참자라는 인도계 두 이주자의 삶을 주로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하마드(Muhammad)를 문학적으로 육화한 마훈드(Mahound)라는 인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죠. 이 인물은 작품 속에서 상당히 조롱거리가 되는데, 예를 들면 마훈드의 필경사는 유곽의 아홉명의 유녀들에게 예언자 무하마드의 아홉 아내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고, 종교적 신념보다 정략적으로 행동하는 예언자는 자신의 교역(religious work)을 필경사에게 받아쓰게 하는데, 예언자의 말을 잘못 이해한 필경사는 신정한 경전(쿠란)에 일탈된 내용을 창안해 넣기도 합니다. 더욱이 '마훈드'라는 이름은 중세시대 이슬람교에 비우호적이었던 기독교 신학자들이 사용한 예언자 무하마드의 변형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사실 [악마의 시]는 어떻게보면 악의적일 정도로 익살스럽고, 끈덕지게 풍자적이며, 동서양의 고대 신화와 고전, 대중문화를 마구잡이로 넘나드는 작가의 해박함에서 비롯된 쉴 새 없는 비유때문에 누가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지 따위 신경쓰이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슬람교의 지도자보다 무식한 독자가 조롱거리가 되었으면 되었다 말할 수 있을 정도지요. 지브릴과 살라딘이 비행기가 두 동강이 나는 바람에 안착하게된 영국과 영국인들은 어떻구요. 작가가 풍자의 재료로 삼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루슈디가 '파트와'를 받게 된  과정입니다. 영국에서 이 소설이 처음 출판된 직후 이슬람교도나 기독교도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인도의 국회의원이었던 시에드 샤하부딘이었다고 합니다.

샤하부딘의 요청에 따라 인도 정부는 1988년 10월 5일에 [악마의 시]를 금서조처하게 됩니다. 이 소동은 이제까지 아무 관심이 없었고, 소설을 읽어보지도 않은 여러 이슬람 국가로 퍼져나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인도네시아를 거쳐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요크셔의 한 마을인 브래드퍼드에서 이슬람교도들이 이 소설을 불태우는 집회를 가지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 시위가 텔레비젼으로 방송된 후에 갑자기 이슬람교도들의 시위가 그야말로 불처럼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네요. 방송만 안되었어도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디에서나 부화뇌동하는 무리들이 문제인 것이지요. 인도의 한 대학에서는 살만 루슈디의 '파트와'를 집행하기 위한 모금을 하기도 했다는군요.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샤하부딘 의원과 파트와를 선언한 호메이니를 포함한 '루슈디 사건'과 관련된 대부분의 당사자는 [악마의 시]를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파트와'는 이란 정계에서 보다 보수적인 세력과 보다 진보적인 양 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호메이니는 이란 사회의 개방과 개혁을 원하는  반대세력에게서 그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고자 종교적 칙령을 공론화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호메이니 진영이 '파트와'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그 한계가 불분명한데, 그 이유는 이슬람교는 기독자의 성직자 계급구조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모든 이슬람교도들을 구속할 수 있는 한 사람의 권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호메이니는 루슈디를 대중적이고 성공적인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데 이용한 것이지요.

[한밤의 아이들]이 거둔 문학적 성과에 대해서는 길게 적지 않겠습니다. 저보다 구글이 더 잘할테니까요. 이 작품에 빠져있는 동안 왜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들고 읽으며 낄낄거리지 않을까 이상하게 여겨진 적도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은 재미있습니다. 사실 가르시아 마르케즈의 [백년의 고독]이나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도 이만큼 재밌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어떤 작품, 예를 들면 이스마엘 카다레의 [H서류], 귄터 그라스 [양철북],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 등등...어떤 작품과 비교해도 [한 밤의 아이들]은 압도적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의 창조자이다. 예술은 드러내고, 예술가는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표이다... 아름다운 것에서 추악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형편없는 타락자이며, 그것은 잘못된 행위이다.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교양인이며, 그러한 인물에게는 가능성이 있다.'라고요. 오스카 와일드의 입을 빌리자면, 예술가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교양인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습니다. 작가가 작품에 감추어 놓은 것을 찾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많이 숨기면 다 찾는데 좀 오래 걸릴 것 같긴 합니다.

살만 류슈디의 사진을 보시면 눈이 약간 이상하다 싶으실 겁니다. 알고보니 그는 안검하수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눈꺼풀을 움직이는 근육의 이상으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는 병이라는데 지금은 수술을 받은 상태지만 심하면 실명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제발 그런 일은 없길 바랍니다.'파트와'를 피해 은신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그는 수많은 불행한 일들을 겪습니다. 아내가 그를 비난하며 떠나기도 했고, 두려움에 [악마의 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가 몇 주 후에 이를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가 죽음을 당했지요. 공식적으로 살만 루슈디의 '파트와'는 철회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과격론자들은 그를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가한다고 합니다. 천재들이 살아생전 환영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권해드리고 싶은 분들은 아래 다섯 가지중 한 가지만 해당하면 됩니다. 별로 엄격하지 않습니다.

1. 마술적 리얼리즘의 깊은 맛을 보고자 하는 독자
2. 탈식민문학의 진수가 무엇인가 궁금한 독자
3. 서사에 자질이 없는 작가들이 쓴 자의식과잉의 일기장 소설때문에 지루해서 하품을 했거나, 손발이 오그라든 독자
4. 작품에 대한 주례사 비평에 여러번 속아 비평가의 비평에 대한 의심이 하늘을 찌르는 독자
5. 그 외에 아직 살만 루슈디를 읽지 않은 모든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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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손을 잡으
14/12/18 09:36
수정 아이콘
오. 색다르게 읽었습니다. 단순히 기사로만 접해 잘못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네요.
에디파
14/12/18 10:23
수정 아이콘
색다르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회원가입을 하고 가만히 이런 저런 글들을 살펴보았는데 기억에 남는 닉네임중 하나가 '가만히 손을 잡으'님이었어요.
잡으...까지 써놓으니까 그 뒤에 어떤 말이 이어질까 자꾸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제 강박입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4/12/18 10:26
수정 아이콘
흐흐흐. 오래된 연인은 때로는 손만 잡는 것으로 어떤 행위보다도 감정을 잘 전달할때가 있습니다.
에디파
14/12/18 10:27
수정 아이콘
그래도 그녀는 벗겨야 제맛...흐흐흐
swordfish-72만세
14/12/18 10:19
수정 아이콘
이슬람 풍자를 피하게 된 가장 큰 사례가 악마의 시인데
저도 안 앍어봤습니다.
에디파
14/12/18 10:25
수정 아이콘
심각성을 몰랐습니다. 단순한 필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5번에 해당되시는군요. 흐흐
Leeroy Jenkins
14/12/18 11:59
수정 아이콘
군대에 있을 때 악마의 시를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소설들이 유행할 때였는데, 완전 다른 세계였죠. 한번 더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에디파
14/12/18 14:24
수정 아이콘
오! 드디어 동지를 만났군요. 반갑습니다.
소설에 덧씌워진 모든 자잘한 의미들을 다 제거하더라도 [악마의 시]는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죠.
14/12/18 16:02
수정 아이콘
저도 대학때 악마의 시가 화제인적이 있어 2003년? 2004년이었나?

사서 읽어봤습니다. 흥미롭게 읽긴 했습니다만, 좀 어렵기도 하더라구요.
에디파
14/12/18 17:36
수정 아이콘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고 재미는 있지만 좀 어렵게 느껴지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한 철학자는 사냥한 야생동물의 목을 지그시 누르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라고 했지요. 목을 따든지, 길을 들이든지 하시지요. 흐흐
구밀복검
14/12/18 19:50
수정 아이콘
살만 루슈디의 팬으로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굳이 찬사를 덧붙일 필요가 없는 위에 거론된 작품들 이외에도 [베니스의 여마법사]도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분노]는 좀 별로였습니다만...

저는 사실 문필가들을 경시하는 편입니다. 물론 재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저에 비하면 특출난 사람들이지만, 직업적 전문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진입장벽의 측면을 놓고 보면 문학만큼 허술하고 빈약한 분야가 없으니까요. 출판 시장에서의 경쟁은 있을지언정 작업 과정에서 누군가와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인지부하도 거의 받지 않고, 많은 정보와 지식들과 데이터를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게끔 빠릿빠릿하게 암기하고 있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숱한 오판에서 나오는 졸문들도 여유있게 수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문필가들 스스로 PT를 받는 것처럼 글쓰기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화된 표준 트레이닝을 소화하는 것도 아니고...예컨대 0.001초 단위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합한 행동을 막힘없이 취해내지 않으면 그네들의 무대에서 생존할 수가 없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라든가, 100수 200수를 미리 내다볼 수 있어서 발로 두어도 아마추어들에게 질래야 질 수가 없는 프로 바둑기사들, 한 음 한 음의 소리가 그 자체로 미적 대상이 되어야 하며 약간의 음이탈에도 명망이 곤두박질 치곤 하는 뮤지션들, 직업적 전문성의 밀도가 가혹할 정도라는 것이 잘 알려진 의사들이나 법관들, 혹은 이렇게 거창하지 않을지언정 간단한 작업 하나에도 의외로 창조적인 노하우와 유연한 판단을 요하며 경력에 따른 숙련도 차이가 명확한 육체 노동자들 등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의 솜씨에 비하면 프로 문학인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들은 아무리 해당 분야 내에서 말석에 위치하는 이라고 하더라도 문외한이 그가 가진 역량의 미미한 편린이나마 직접 접할 경우 경도될 수밖에 없는 경이적인 정교함을 보여주는 반면, 문학의 경우 명성이 드높은 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범인들의 문장 구성력으로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인지 의문스러울 따름인 시시한 작품을 써내는 경우가 흔하죠. 일전에 테리 이글턴이 '정치철학자가 쓴 소설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소설가가 쓴 정치철학서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정말 깊이 공감이 가더군요.

소설에서는 재기발랄하게 문재를 뽐내던 이가 논픽션이나 사설에서 격 떨어지는 태문을 쓰곤 하며, 인터뷰 같은 자리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눌변가로 전락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경우들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테고요. 물론 이에 대해 말과 글이 다르다고 둘러댈 수 있지만, 사실 구어와 문어가 다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지요. 구어는 대화 상대방을 반드시 납득시켜야 한다는 강한 제약이 있으며 문장을 구성하는 데에 지체가 없어야 하고 빠른 속도로 처리해야 반면, 문어는 모든 상대를 납득할 수 없는 한정적인 텍스트를 썼다고 하더라도 '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내 글을 읽어줄 불특정한 일부 독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쓴 것이다'라는 식으로 핑계를 댈 수 있으며, 문장을 구성하는 데에 한참 숙고해도 되까요. 즉, 구어는 상대방의 이해에 기대하고 의존할 수 없으며 자신이 스스로 자구적인 발화를 신속하게 해야하는 반면, 문어의 경우에는 나태함과 더불어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오만함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구어와 문어가 다른 이유는 구어 쪽이 훨씬 난이도가 높기 때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지요.

같은 맥락에서 교양 있는 지식인들의 언어 구사력은 상당 부분 거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발화는 대개 지식인 세계 특유의 언어관행을 습득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와 용법으로 구성되어 있곤하죠. 즉, 지식인 카르텔의 컨센서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를 두고 땅 짚고 헤엄치기며 온실적인 발화라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상대의 이해 수준이 높아야만, 더불어 상대방이 의사소통에 쓰이는 약호를 알고 있어야만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자신의 언어를 남에게 전달하는 데에 있어 통역이 필요한 이는 결코 좋은 발화자라고 볼 수 없겠지요. 지식인 집단 내에서는 '현명한 이와 대화하는 것은 즐겁다'라는 식으로 정교한 논변을 해내는 이가 해당 집단 밖의 일상생활에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곤 하는 것 역시도 그래서일 테고..

그러나 이러한 경시적인 관점에서도 예외가 될 수 있는 문필가들이 드물게 있을 것이며, 만약 그런 문필가들의 명단을 작성한다고 할 때, 그 누가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살만 루슈디는 최상단에 위치하는 이 중 하나겠지요. 이 정도면 그에게 보내는 경의로서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디파
14/12/18 20:22
수정 아이콘
백번천번 동의합니다. 되도 않는 소설들이 되도 않는 비평을 앞세워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요. 그래서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고전을 찾는 것일텐데, 고전은 아무래도 문턱이 높지요. 그런 의미에서 살만 루슈디는 두말이 필요없는 작가구요. 테리 이글턴의 문예이론이 격조있다 들었는데 읽어보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추천해주신 작품들도 다 읽어보겠습니다.
14/12/19 21:32
수정 아이콘
와~ 많이 와닿는 글입니다. 어렴풋이 느끼던 건데... 입이 딱 벌어지게 잘 이야기 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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