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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7/05 22:46:35
Name daffodil
Subject 영화 소수의견: 영화가 현실을 보면, 힘이 세진다
* 스포일러가 없도록 신경을 썼지만, 영화의 초반부 스토리를 일부 다루고 있습니다.


윤변호사(윤계상 분)은 지방대를 졸업하고 경력도 그저 그런 국선 변호사입니다. 그런 그에게 사건이 배당됩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철거 현장, 경찰의 진압 작전 도중 의경 한명과 열여섯 어린 청년이 사망합니다. 경찰을 죽인 것은 청년의 아버지(이경영 분)이고, 경찰은 청년을 죽인 것은 현장에 투입된 용역이었다고 합니다. 체포된 아버지는 아이를 죽인 것은 용역이 아니라 경찰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윤변호사는 그의 말에 별 관심을 갖지 않다가, 열혈 기자(김옥빈 분)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이 심상치 않음을 느낍니다.

재판을 해야하는데, 검사측의 요청으로 윤변호사조차 경찰의 사건 기록을 열람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판사는 검사와 대학 동창인 막역한 사이입니다. 윤변호사는 경찰이 아이를 죽였으니,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론을 환기하기 위하여 국가에 100원을 청구하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소합니다. 또한 재판부를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제 이 사건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됩니다.

영화를 보면 용산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건의 얼개가 그렇고, 국민적 관심을 돌리기 위해 다른 연쇄살인사건을 부각시키라는 청와대의 지침이 있었다든지, 결정적인 순간에 무전이 공용주파수에서 보안주파수로 변경되었다든지 하는 디테일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처음 시작부터, 사건이 허구임을 밝히면서, 이 영화는 이를테면 “두개의 문”과 같은 용산참사에 대한 영화가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용산참사에 대한 영화가, 용산참사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두가지일 것 같습니다. 상업 영화로서 과도한 정치적 부담을지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이야기를 하나의 사건에 가두지 않고 보편화하고 싶어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이런 영화의 ‘거짓말’은 첫 번째에서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에서는 성공했습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영화가 실제 있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이른바 ‘핍진성’)은 이 영화의 모티브가 용산참사였다는 점이 아니라, 사건이 돌아가는 ‘꼬라지’가 너무나 ‘대한민국’스럽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인 ‘윤변호사’는 어딘지 전형적인 것 같은데, 막상 떠올려보면 기원을 찾기는 힘든 캐릭터입니다. 사법고시를 패스한 젊은 변호사인데, 구형 SM5를 몰 정도로 못나가는 데다가, 사법권력이라는 판검사들에게는 철저히 무시당하는 인물입니다. 돈을 좀 벌자, 국산 대형차를 뽑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캐릭터가 왜 없었나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통속 드라마의 성질날 정도의 얄팍한 ‘젊은 남자 변호사’ 캐릭터를 떠올려 본다면,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배우는 윤계상인데, 배우 본인의 이력과 배역이 어떤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 잘 어울립니다.

영화는 적어도 저는 근래에 보지 못한 잘 짜인 법정물입니다. 재판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는 상당히 ‘전문적’으로 보이고,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유머와 로맨스도 과하지 않게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스토리나 인물이나, 왠지모르게 어디서 본 것 같은 이미지인데, 막상 생각해 보면 잘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다른 배역은 배우가 배우이니 만큼 다 훌륭한데, 다만 김옥빈이 분한 열혈 기자역은 전형성이 지나치다 싶어서 좀 재미도 없고 연기도 다소 아쉽습니다.

한편 영화는 수년간 석연치 못한 이유로 개봉이 연기되면서, 영화 밖에서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메타서사)를 만들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 손아람 작가는 본인은 “종(種)으로서의 인간의 이야기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소설의 개별 이야기가 보편이 되도록 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가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유 때문에 제 때 개봉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니 이 이야기는 보편성을 가진 꽤 힘이 센 이야기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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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Suweet
15/07/05 23:08
수정 아이콘
지난 주 소수의견을 보고왔습니다.
영화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명확했는데, 영화자체의 짜임새는 완성도 높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윤계상씨의 연기는 쏘쏘였다고 생각하는데, 캐릭터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정의롭기만 한 전형성도 없었고, 실제 사람들이 그렇듯 한편으로는 정의감이, 한편으로는 입신양명을 위한 욕심이, 한편으로는 차를 바꾸는 데에서 나타나는 소소한 욕심들이 적절히 버무려진 캐릭터여서 너무나도 공감이 갔습니다. 조작된 증거, 살인사건 무마 등의 어두운 면들을 비추면서 이런 영화에서 나타나기 쉬운 이분법적 사고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 부분도 좋았구요.(다만, 검사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변호인보다 영화의 짜임새는 떨어졌지만, 현실성은 더 있었던 영화같습니다.
cadenza79
15/07/05 23:16
수정 아이콘
젊은 변호사가 구형 SM5를 몰 정도로 못나갔는데 돈 좀 버니 대형차 뽑았다는 내용이, 영화를 보신 분에게 느껴진 내용이고 감독의 메시지라면, 정작 법조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을 것 같네요.

이미 원작소설이 쓰여질 당시에도 젊은 변호사 상당수가 뚜벅이였고 지금은 더 많을 겁니다. 그게 가족들을 위한 용도가 아니라면, 지금 시대에서 국산 대형차 몰고 다니는 젊은 변호사의 모습은 뭔가 어색하네요. 혹시 개인사무소를 경영하는 개업변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대형차를 타 줘야 의뢰인들이 잘나가는 것으로 착각해 줄 수도 있으니까요.
BetterSuweet
15/07/05 23:19
수정 아이콘
현실성이라는 게 '현재 변호사들이 어떤 경제적 환경에 놓여있다'라는 사실 반영보단, '변호사'라는 전형성을 가진 캐릭터에게 '사람'이라는 속성을 부여했다는 데에 있는 거 같습니다.

지나치게 정의롭기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악인이기만 하지도 않은 사람 냄새나는 캐릭터가 되었다는 점에서요.
루시드폴
15/07/05 23:24
수정 아이콘
대형차 몰고 다니는 젊은 변호사의 모습이 어색한가요?
K7 으로 보이던데..
cadenza79
15/07/05 23:34
수정 아이콘
그걸 현실적이라고 보신 원작소설가와 감독과 관객분들의 느낌이 바로 현실과의 괴리입니다.
대형차 타고 다니기에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한다는 건 부차적인 문제고, 사실 현실은 차 타고 다니는 게 더 불편하거든요. 시놉시스상으로는 당연히 배경이 서울인데요. 법원 갈 때든 뭐든 업무상으로는 지하철 타는 게 제일 빠릅니다;;; 정 피곤하거나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도 택시 타는 게 낫지 차 몰고 못 다녀요. 일단 차를 대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거든요. 변호사가 업무상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면 기사가 딸려 있어야 현실을 반영한 게 되지요. 결국 업무상 차를 끌고 다니는 건 돈 잘 벌고 나이 좀 드신 변호사들이나 하시는 겁니다.
daffodil
15/07/06 00:06
수정 아이콘
영화에서의 있음직함이라는 것이 현실과 똑 닮아 있어서 느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실제 법조인들이 괴리감을 느끼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다수의 관객들에게 정말 저런 일이 있을 법하다고 느끼게 한다면 성공적인 묘사일 겁니다.
cadenza79
15/07/06 08:41
수정 아이콘
뭐 영화 기법상으로 그렇다는 건 인정합니다. 저야 글쓴분이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하신 데 대한 어색함을 지적한 것 뿐이거든요.
축생 밀수업자
15/07/05 23:23
수정 아이콘
윤계상씨는 한국영화계 좌파 발언 이후에 이쪽(?) 영화는 안찍을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daffodil
15/07/06 00:13
수정 아이콘
영화가 "이쪽" 영화라고 보기엔 좀 애매한 것이, 꽤 알려진 프로덕션에서 나름 괜찮게 투자 받아서 만든 영화거든요. 모티브가 용산참사일 뿐이지, 미드 뉴스룸이나 하우스 오브 카드 정도의 현실 반영이랄까요.
마술사얀
15/07/06 11:07
수정 아이콘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소한 정치적 입장도 쉽게 발언하지 못하는 한국 영화판에서 쉽게 선택하기는 힘든 영화인것 같습니다.
15/07/06 00:45
수정 아이콘
그 인터뷰 발언이 좌파를 제대로 나타내었던 것도 아니었죠...
그냥 자신에게 아이돌출신 같은 내용으로 배타적이었던 막힌 영화계사람들을
좌파라는 본인생각에 부정적인 단어로 특징짓기위해 가져다 썼던 것으로 보일뿐이었고..
본인의 좌파에 대한 개념이 부족함은 잘 드러내었는데...
그 막힌 사람들이 굳이 이쪽(?) 사람들이라는 근거는 없어보였죠...
마스터충달
15/07/06 04:40
수정 아이콘
[이 영화가 실제 있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이른바 ‘핍진성’)은 이 영화의 모티브가 용산참사가였다는 점이 아니라, 사건이 돌아가는 ‘꼬라지’가 너무나 ‘대한민국’스럽다는 점입니다.]

이 말씀에 정말 공감합니다. <소수의견>은 대한민국의 꼬라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정치영화죠. 이 영화가 정치영화인 이유는 정치적 이슈를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부조리를 고발하고 그러한 해석을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다리기
15/07/06 08:56
수정 아이콘
공감이 많이 되네요. 영화자체도 그럭저럭 재밌게 봤습니다만..
대한민국스러운 꼬라지라는 그 느낌적인 느낌을 많이 느꼈어요. 영화가 '너네도 이럴 줄 알았지? 근데 좀 뻔해서 안놀랍지?' 이런 얘길 하는 듯한.. 뭔가 보면서 뭐 하나 수가 나오면 그렇지 그럴거같더라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크크
도들도들
15/07/06 09:17
수정 아이콘
생각보다 흥행을 못해서 놀랐습니다. 변호인보다는 못해도 2백만은 들만 한 상업성을 가진 영화라고 봤는데요. 법정영화의 수요층이 그만큼 한정적이라는 걸까요.
유리한
15/08/22 10:54
수정 아이콘
보고싶어도 상영관이 별로 없었습니다.... 게다가 스크린에서도 빨리 내려졌죠.... 왜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대한민국스럽다고 해야할까요...
애패는 엄마
15/07/06 09:22
수정 아이콘
영화 만듦새는 너무 많이 찍어놓고 러닝 타임 한계로 많이 들어내다보니 기승전결에서 각 씬마다 기승이 다 빠진 느낌이랄까요. 시나리오상은 이보다 더 괜찮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원작이 소설이였으면 애초에 그냥 전결만 다 찍은 것일 수도 있겠군요.

현실에 대한 뼈저린 비판을 있음직한 일처럼 전달해 주는게 참 장점인 영화 같네요.
마술사얀
15/07/06 11:04
수정 아이콘
윤계상의 필모를 보면, 우연히 비주류(?) 영화를 계속 선택을 하는 건지. 본인의 어떤 철학이 있는건지 궁금해집니다.
'좌파' 발언을 보면 그 철학이라는걸 기대하기 힘들긴 하지만.
대왕세종
15/07/06 12:09
수정 아이콘
마지막 부분에 십자가 무너지는 장면이 인상깊더라고요.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DenebKaitos
15/07/06 16:49
수정 아이콘
보면서 한숨과 탄식이 푹푹 나오더라구요. 글쓴분께서 말씀하신 우리의 꼬라지와 너무도 닮아서요.
하늘달리기
15/07/07 07:20
수정 아이콘
국가배상 사건이라면 민사소송일텐데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다고 하니 현실성이 확 떨어지는데요 ;;
광고 카피도 "피고 대한민국의 유죄를 주장합니다"라고 하니 뭔가 어색한 것이...
도들도들
15/08/23 13:32
수정 아이콘
민사소송과 형사소송 두 개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삶의여백
15/07/07 13:18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습니다. '드라마따위는 현실에 없어!' 라는 느낌은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고요. 씁쓸한 느낌의 영화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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