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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8/03 18:22:47
Name 스타슈터
Subject [일반] 내려놓음, 그리고 가진 것의 소중함

제 취미는 사진입니다.
실력은 어디가서 명함 내놓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장비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을 카메라 컬렉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름신의 가호가 오오)
렌즈도 광각부터 망원까지 빵빵하고, 단렌즈도 수두룩하지만,
정작 요새 행보를 돌아보면 가장 즐겨쓰는 카메라는 폰 카메라입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기가 귀찮아 진 걸까?"
"열정이 떨어진 걸까?"
뭔가 내 취미생활에 투자했던 것들이 점점 무용해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는지,
약간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점점 이 취미를 잃어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폰카를 꺼내들때마다의 상황을 생각해보니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 카메라를 가져왔다면 더 멋지게 찍었을텐데!"
라는 후회를 항상 하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카메라 없으면 찍지도 않았을텐데요.



그러고 보면 사람은 항상 후회부터 합니다.
내가 조금 더 준비되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내가 조금 더 신경썼더라면 더 나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타이밍만 조금 더 좋았으면 더 훌륭한 성과를 얻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 아쉬움을 삼키기에 앞서, 난 또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을까?"
가 바로 제가 제 자신에게 항상 되묻는 문제입니다.

과연 나는 그런 후회를 하기 전에 최소한의 노력을 해보기는 했을까.

폰카로는 최고의 광경을 담을수 없어서 포기했던 아름다운 풍경들도,
최선을 다하여 담으려고 노력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소소한 깨달음을 조금씩 얻어갔습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내 곁에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며,
그런 카메라에게 내 기대를 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폰카면 어떠합니까. 내가 본 풍경을 담을 유일한 카메라인데.
찬스는 항상 두번 오지 않습니다. 단 한번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잡는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음에 카메라를 가지고 이곳에 돌아와야지"
라는 생각 또한 정말 부질없는 생각이였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은 곳이 더 많았고,
최고의 사진들중 폰카만이 담아낼수 있었던 사진들 또한 존재했습니다.

내 곁에 있지 않은 것에 기대를 걸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역으로, 카메라를 정말 필요할때가 아니면 가지고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진들을 찍는것,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무게를 덜어냄으로써 더욱 그 순간에 집중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것 또한 못지않게 가치있는 일입니다.


이런 계기들을 거치고 나서,
저는 조금 더 내려놓게 되고, 마음을 비우게 되고,
가는 모든 곳의 풍경을 주의깊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속에 숨겨진 그림들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든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거리를 걷다가 멈춰서서 유별난 각도로 폰 카메라를 꺼내들기도 합니다.
간혹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수도 있겠지만,
예전에는 주 카메라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쳤던 풍경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오고자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야 가능한 변화였습니다.

이것은 사진 뿐만이 아니라,
일상속에 일어나는 일들과도, 사람들과의 관계와도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질수 없는 기억속에 것을 항상 그리워하기 보다는,
조금 더 가진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슬슬 연초보다는 연말이 가까워지는 시기입니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보다는, 앞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할 시기인것 같습니다.
연말까지 이루고자 하며 이루지 못한것들이 있다면,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려놓고 새로운 풍경을 찾는게 더욱 의미있는 일입니다.


연초의 자신에게 참 많이 노력했다고 말해주고, 이제는 새로운 풍경을 찾아 나갈 시간입니다.
예상한 것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멋진 목표를 이뤄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의 햇살을 놓쳤다고 낙심할것 없습니다. 오늘의 햇살을 담을 최고의 여건이 되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오늘의 해와 내일의 해는 다르지만, 충분히 매일의 해는 의미가 있고,
최고의 모습으로 담지는 못해도, 담았다는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으니까요.
힘이 빠질법한 연중 시기지만, 오히려 연초의 목표들을 재정비하기 좋은 시간 같습니다. :)

p/s: 써놓고 보니 감성 충만해서 쓴 뻘글같은데, 돌은 던지지 말아주세요. 크크;
폰카가 주제인만큼 폰카로 찍은 사진들만 첨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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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캐리어
15/08/03 18:29
수정 아이콘
장인은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장인이라고 장비질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더라..

마지막 사진 구도 좋네요.
스타슈터
15/08/03 18:42
수정 아이콘
장인은 장비질을 많이 해보고 나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죠. 크크크
아 장비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구나...하고요.

마지막 사진 찍을때 주변분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더라구요 ㅠㅠ
물가 코앞에서 카메라 눕히고 이상하게 서있으니...크크
15/08/03 19:21
수정 아이콘
사진이 좋네요.

글귀는 사진보다 더 좋구요.

내려놓고나면, 그제서야 평범한 일상은 더 없이 소중해지죠.
스타슈터
15/08/03 19:27
수정 아이콘
저는 사실 사진보다 글을 더 좋아합니다. 흐흐
무무반자르반
15/08/03 19:25
수정 아이콘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러리스와 소형 고급똑딱이를 선호합니다

폰카처럼 늘 가지고 다닐 수 있죠

휴대성이 사진기의 최우선 덕목이 되더라구요
스타슈터
15/08/03 19:28
수정 아이콘
그런것 같아요. 크크
하지만 그래도 작정하고 나갈때를 대비해 주 카메라는 항상 잘 챙겨두고 있습니다!
1일3똥
15/08/03 19:43
수정 아이콘
요즘엔 하이엔드를 들고다녀도 폰카가 더 편하더라구요.
맘먹고 카메라로 찍으려고 해도 M모드보다 S, A모드를 더 사용하게 되구요.
그러고 보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무무반자르반
15/08/03 19:45
수정 아이콘
폰카가 잴.편하긴한데

사실 화질이 만족이 ㅜ ㅜ
15/08/04 11:06
수정 아이콘
실례가 안된다면 모델명 좀 알려주실수 있나요??

얼마전 멋진 일몰을 봤는데.. 폰카로 너무 아쉬웠습니다.
글쓴분 처럼 카메라를 가져올걸 후회했습니다.
리듬파워근성
15/08/03 19:45
수정 아이콘
사진도 글도 너무 좋네요. 저도 카메라 처박아두고 마지막으로 꺼낸 게 대체 언제인지...
그러면서도 신제품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살 궁리를 하고 있다니..
어? 잠깐, 벌써 8월이라구요???
스타슈터
15/08/03 23:25
수정 아이콘
저도 장비 욕심 그만내야지 하면서도 혹하며 중고 장터를 둘러보곤 하죠 ㅠㅠ

근데 정작 찍는 사진은 폰카가 더 많고..
15/08/03 20:38
수정 아이콘
저도 DSLR 다 팔고 하이앤드 똑딱이로 갈아 탔는데 좋더라구요. 크크

사진 감성적이네요
스타슈터
15/08/03 23:27
수정 아이콘
원래 저는 감성 빼면 글에도 사진에도 남는게 없습니다 ㅠㅠ
15/08/03 21:47
수정 아이콘
풀프레임을 들이고나서 셔터수가 급격히 줄어든걸 보면 격하게 공감되는 글입니다. 사진이 참 좋네요^^
스타슈터
15/08/03 23:28
수정 아이콘
저는 아직 크롭입니다. 흐흐
다만 렌즈가 참 다양하게 있네요.
하지만 풀프레임 욕심은 많이 사라진듯 해요!
15/08/04 02:06
수정 아이콘
크롭에 렌즈가 많으시다면..혹시 펜탁시안이신가여 크크
스타슈터
15/08/04 08:59
수정 아이콘
소니 미놀마운트 유저입니다 ㅠㅠ
곧 죽어가는 마운트라 곧 이동을 해야하긴 할것 같아요..
Alsynia.J
15/08/04 01:26
수정 아이콘
좋은 글과 좋은 사진이네요.. :) 추천게시판에 갔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스타슈터님의 자세와 말씀도 와닿습니다.. ;)
스타슈터
15/08/04 09:00
수정 아이콘
어이쿠... 추게는 과분합니다..
좋아하셨다면 제가 감사합니다.
사계절 치킨
15/08/04 05:01
수정 아이콘
G4...G4를 사자;;
멋진 사진과 좋은글 감사합니다.
스타슈터
15/08/04 09:01
수정 아이콘
G4 가 제 폰카보다 뛰어난건 확실하지만,
제 사진들은 G4 로 찍은건 아닙니다... 흐흐;
Htc one m9 사용중입니다.
종이사진
15/08/04 09:56
수정 아이콘
사진 정말 잘 찍으시네요.

얕은 심도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폰카도 요즘 좋더라구요.
즐겁게삽시다
15/08/04 12:45
수정 아이콘
와.... 쩌 쩐다
스웨트
15/08/04 14:13
수정 아이콘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진들이네요 왜 같은 폰카인데 저랑 찍으신게 누구는 작품이고 누구는 하품이 나오는 걸까요 ㅠ
멋진 사진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중년의 럴커
15/08/12 20:02
수정 아이콘
참 좋은 사진이라 제 마나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허락도 안구하고 그림으로 그렸다고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림 링크는 http://m.blog.naver.com/dolane/220448778604

입니다
스타슈터
15/08/12 20:11
수정 아이콘
어이쿠 감사합니다. 이런 맛에 사진 찍죠. 흐흐
저도 이 영예를 지인들과 페북에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출처는 꼭 표기할께요.
중년의 럴커
15/08/12 20:21
수정 아이콘
아이고 물론입니다. 마나님도 고맙다고 전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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