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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9/03 10:07:55
Name 퐁퐁퐁퐁
Subject 어제 납치당했던 것 같은 이야기
  집에 들어갈 때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요. 아버지 한 번, 어머니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두 분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공평하게 한 번씩 해야 하죠. 그러니까 같은 공간이라는 게, 안방에서 건넌방 같은 거리를 말하는 건 아니에요. 거실 쇼파에 왼쪽 오른쪽 3센티미터 사이로 앉아계실 때도 꼭 한 번씩 해 드려야죠. 아부지, 아니면 삐지시니까요.

  어제 집에 들어갈 때 참 졸립더라고요. 연 이틀 파이널판타지 하느라 늦게 잤더니, 안 그래도 피로가 쌓인 상태였어요. 일단 들어와서 “다녀왔습니다.” 하고 슥 봤어요. 어머니는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계시고, 아버지는 인터넷을 하시다가 어서오라고 대답해주시더라고요. 이게 웬일. 한 번에 인사가 끝났길래 저도 씻고 얼른 누웠죠. 뒤척거리다 잠에 겨우 들었는데, 핸드폰 진동 소리가 윙 하고 들려요. 이 시간에 도대체 누가 전화하는 거야 싶어서 봤더니 아부지. 응? 핸드폰 잘못 눌렸나 싶어서 얼른 받았어요. 어물어물 잠 덜 깬 목소리로 여보세요 했더니 아부지 목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디야?”
  이건 또 뭔 소리래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제가 뭘 잘못 들었나 싶어서 주위를 봤는데 아무 것도 없어요. 도둑이라도 들었나. 갑자기 잠이 확 깹니다. 근데 그런 거 치곤 집안이 되게 조용해요. 부시럭 소리 하나도 안 들리고요. 도둑이 들었으면 고양이라도 짹짹거릴 거 같은데. 혹시 저기 옷장에라도 숨었나? 긴장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저 바로 옆방에 있다고요. 여차하면 경찰서에 신고하려고 긴장 딱 하고 있는데 아부지가 갑자기 막 웃으시네요.

  “집에 있었어? 난 아직 밖에 있는 줄 알고. 무슨 일 있나 했지.”

  긴장이 탁 풀리더라고요. 아부지, 아까 대답까지 다 하시고는. 투덜투덜 하고는 잤어요. 다음날 아침에 밥 먹다 보니 아부지가 멋쩍은 얼굴로 그러더라고요. 내가 대답했었나. 그럼요. 제가 똑똑히 들었는데. 인터넷에서 뭔 재미있는 걸 보셨는지 아무튼 대답한 기억은 안 나시고. 따박따박 잘 들어오던 딸내미가 안 들어오니 걱정은 되는데. 전화를 걸어보니 굉장히 안 좋은 목소리(자다 일어난 목소리였으니까 좋을리가 없잖아요!)로 대답하길래 납치당했나 무슨 일이 있나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셨다는 거죠. 아부지, 딸내미 아까 들어와서 옆방에서 쿨쿨 자고 있었는데…….

  아침에 낄낄거리면서 이야기하니까 웃기긴 했는데, 어젯밤엔 진짜 놀랐어요. 무슨 집 안에 도둑이 들어서 아부지가 몰래 통신을 한 줄 알았다니까요. 내가 더 놀랐다, 아니다 내가 훨씬 놀랐다 이런 입씨름를 한참 하고 있자니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면서 지나가더군요. 아마 어이구 저 진상들. 그러셨을 거예요. 뭐, 아무 일 없이 잘 끝냈으니 그래도 다행이죠. 별 일 아닌데 생각해보니 은근히 웃겨서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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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아들
15/09/03 10:10
수정 아이콘
따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대단하신 거 같네요. 인사 2회.....허허
퐁퐁퐁퐁
15/09/04 09:13
수정 아이콘
나이가 들어가실 수록 갈수력 여려(?)지십니다. 흡
15/09/03 10:12
수정 아이콘
여초사이트에서 고생하시는 얼마 안되는 남성 회원님들, 화목한 가정에서 잘 살고 계신 여성 회원님이 여기 계십니다!!!

는 진담이고(?), 훈훈한 얘기네요. 항상 행복하세요 :)
퐁퐁퐁퐁
15/09/04 09:1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
cottonstone
15/09/03 10:23
수정 아이콘
귀여운 글이에요..
저는 옛날에 가족끼리 어디 놀러간다고 동네 친절하신 분이 봉고차 가지고 오셔서 식구들이 차에 같이 탔어요. 저랑 남편이랑 제일 먼저 맨 뒷쪽으로 들어가 앉아 있었거든요. 저희 앞에 친정어머니 타시고.. 아버지가 좀 있다 가장 앞쪽 조수석에 앉으시더니 내리시는 거예요. 그리곤 차 앞을 두리번 두리번. 좀 더 멀리 걸어나가셔서는 다른 동네차도 힐끔 보고 서성거리시더라고요. 그렇게 다들 한참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결국 조수석에 다시 타셨어요. 그런갑다 하고 가다가 좀 있다 엄마가 '왜요' 물으셨어요. 저희들 찾으셨다고..
퐁퐁퐁퐁
15/09/04 09:15
수정 아이콘
아버지들은 다 그런 데가 있는 건가요? 크크크.
요기조기 두리번거리는 아버지 모습 생각해보니까 무척 재밌네요.
cottonstone
15/09/04 09:52
수정 아이콘
이런 글 올라오니까 여기 분위기가 화사해지는 것 같아요.
종종 귀여운 일상이야기 올려주세요..
아이고 의미없다
15/09/03 10:31
수정 아이콘
어제 자게에서 심한 피로감을 느꼈는데 이 글로 좀 환기가 되네요. 결혼하면 꼭 딸래미 낳고 싶어요.
15/09/03 10:34
수정 아이콘
저도 잠시 10년전의 (추억보정 된) 피지알 자게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고 의미없다
15/09/03 10:44
수정 아이콘
Orbef님의 글도 피지알 자게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아들래미 이야기좀 더 올려주세요.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근데 그래도 전 딸래미가 더.. 흐흐
15/09/03 10:46
수정 아이콘
언제 시간 되면 아들래미랑 동물보호소에서 개똥 치우는 얘기를 올려보겠습니다 ^^;;; 근데 마님이 제가 피지알에서 아들 얘기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지라...
아이고 의미없다
15/09/03 10:55
수정 아이콘
동물보호소에서 봉사하고 싶었는데 동물털 알러지 같은게 생겨서 접었던 기억이 나네요. 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사견으로 피지알에서도 신상에 대한 내용은 최대한 배제하는게 좋을것 같긴 한데 사모님이 싫어하시는 이유랑 같은지는 모르겠습니다.
15/09/03 10:57
수정 아이콘
예 바로 그 이유때문에 싫어합니다 ㅠ.ㅠ;;; 사실 그래서 아이도 얼굴이 직접 나온 사진은 올리지 않고 있어요.
아이고 의미없다
15/09/03 11:03
수정 아이콘
세상엔 너무 다른 사람들이 많기에 사모님 심정이 이해가 가네요..
퐁퐁퐁퐁
15/09/04 09:15
수정 아이콘
아이고, 환기가 좀 되었다면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개똥 치우는 이야기도 무척 궁금해요.
천무덕
15/09/03 10:44
수정 아이콘
겉으로 볼 땐 무심해보일지라도 속으로는 누구보다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게 아버지들이지요.

해결불가능한 큰 일이 터지면 남친은 떠나갈 수도 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붙잡고 가지요.(모든 부모가 그런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만트리안
15/09/03 11:11
수정 아이콘
모든 남친이 다 떠나가는것도 아닙니다 크크 주륵
천무덕
15/09/03 11:24
수정 아이콘
댓글에 어폐가 좀 있었네요.(..) '떠나갈 수도 있다'라고 정정해야겠네요.

사실 떠나가지 않는 남친/여친 있으면 결혼해야죠. 그거슨 진리..
퐁퐁퐁퐁
15/09/04 09:16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어렸을 때 절벽 비슷한 데서 떨어졌는데, 뒤도 안보고 뛰어내려서 구해왔다는 어머니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전 아기 때라 기억이 안 나지만. 잘 해드려야겠네요. 하하.
15/09/03 11:48
수정 아이콘
이런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와이프를 얻고 싶습니다.
하지만.. 난 안되겠지.... 흙~흙~
퐁퐁퐁퐁
15/09/04 09:17
수정 아이콘
따뜻한 봄날이 오면 좋은 분 만나실 거예요.
가...가을이라 그런 걸로 칩시다!
15/09/04 09:21
수정 아이콘
시간 괜찮으시면 시집 오실... 아닙니다!!!
15/09/03 12:24
수정 아이콘
아버님도 그렇지만 따님이 더 좋은 분이시네요.
부럽습니다. ^^
퐁퐁퐁퐁
15/09/04 09:18
수정 아이콘
전혀 안 좋은 딸입니다, 크크.
버디홀리
15/09/03 13:56
수정 아이콘
이런 소소한 얘기 좋네요.
퐁퐁퐁퐁
15/09/04 09:1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15/09/03 16:50
수정 아이콘
납치당했던 것 같은 건 무슨 말일까 싶어서 들어왔는데 정말 그런 일이었네요. 크크크
퐁퐁퐁퐁
15/09/04 09:19
수정 아이콘
저도 모르게 용의주도하게 납치당한(?) 것 같은 일이었네요.
15/09/03 16:55
수정 아이콘
저는 주무시길래 조용히 들어와서 방에서 자면 자다가 어머님께 가끔 전화옵니다. "이시간에 아직도 안들어오고 너 어디니??" 그럼 문 열고 나가 "저 여기요" 합니다 크크크
퐁퐁퐁퐁
15/09/04 09:19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옆에 있는데. 들어오면 들어왔다는 팻말이라도 걸어놔야 하려나요.
15/09/04 11:25
수정 아이콘
크크 본문하고 댓글보다 웃겨서 달아봅니다.
저는 예전에 언니가 같은 집 안에서 문자 한 적 있었죠. 어디야? 라면서요. 크크
누가 보면 집이 되게 큰 줄...

그리고 일전에는 엄마가 어디야 왜 집에 안 와 라면서 문자가 왔었죠. 엄만 밖이고 제가 집인데 말이에요. 훼이크를 거셨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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