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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1/22 21:34:50
Name 캐리건을사랑
Subject 일코
1. 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면 분명 난 흔히 말하는 보통 남자는 아닌 것 같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게임을 하고 싶고 게임을 해야 즐겁고 게임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 물론 게임을 못하면 욕구불만과 스트레스가 쌓인다. 술을 싫어하는 건 술에 취해 게임을 하면 맘 먹은 대로 컨트롤이 안되 승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차 따윈 없어도 좋았고 고급 시계보단 플스 4가 더 끌렸으며, 고급 식당에서 먹는 음식보다 피시방에서 먹는 라면이 더 좋았다.
내 또래 절반이 겨우 넘는 월급에도 불구하고 하루 여섯시간 이상 게임을 할 수 있는 여가시간을 보장해주는 회사는 나의 평생 직장이었다.

2. 여자친구는 끝까지 나를 좋아해주었고 긴긴 연애의 끝은 결혼이었다. 여자친구가 나에게 프로포즈 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의 달콤함과 함께 드는 생각은 '게임을 이제 얼마나 못하게 되는 걸까' 였다

3. 박봉에다 게임하고 남은 돈을 저금해왔던 나는 우리가 살아야 할 집 마련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문득 최소한 마누라가 된 그녀에게 무능력한 사람으로 남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이직을 했다. 살인적인 업무량과 퇴근시간에 다른 동기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동안 난 살아남았고 어느새 내 연봉은 예전 회사 부장보다 높은 수준이 되었다.

4. 게임을 못하게 되었다. 여섯시에 나가서 열한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토요일은 당연히 출근했고 마누라는 연애 전보다 더욱 애틋한 둘만의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을 원했다. 손때로 반들반들했던 콘솔 패드와 키보드에는 먼지가 가라앉았고 정말 어쩌다 운좋게 게임을 하는 기회가 생겨도 엉망이 되버린 나의 실력에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렸다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5. 어느새 큰차를 사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파트 분양을 받고 마누라는 임신을 하고 나는 소처럼 묵묵히 일을 하고 마누라의 친구들은 성실하고 능력 좋은 남편을 부러워하고 나의 친구들은 네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나는 게임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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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known Verses
16/01/22 21:47
수정 아이콘
추천하고 갑니다. 행복하신거였으면 좋겠습니다.
미고띠
16/01/22 21:47
수정 아이콘
완전 공감합니다. (아직 결혼은 안했지만...)
마스터충달
16/01/22 21:48
수정 아이콘
ㅠ.ㅠ 왜 겜덕이라고 말을 못 해!
WeakandPowerless
16/01/22 21:51
수정 아이콘
아 이거 정말... 눈물이 날 정도의 글입니다.... 조용히 추천하고 갑니다... ㅠㅠ
영원한초보
16/01/22 21:54
수정 아이콘
유지해야 될 생활이 늘어나다보면 게임을 포기해야 될때가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할 일 없게 될때 노인을 위한 게임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게임을 즐기고 싶어요
16/01/22 22:02
수정 아이콘
전 어제 건 10년만에 베틀넷에서 스타를 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16/01/22 22:04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눈물이 나는 글이네요.
16/01/22 22:06
수정 아이콘
이야~이거 얼마전에 다시 읽은 하이스코어 걸 만화책을 다시 읽는 느낌이...(응팔과도 비슷한...)
저도 님과 비슷할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고 아직은 게임을 큰 아쉬움 없이 즐기고 있지만..자녀가 생긴다든지 하면 님처럼 거의 게임을 접는
상황을 맞이하리라 예상합니다. 그런 예상때문에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체에 아련함을 느끼고있고요.
어쨌든...인생 마지막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자 합니다. 다행히 아직까진 큰 테클은 없지만...
(결혼후에도 마눌님이 게임한다고 뭐라 안하는 것에 대해선 스스로도 예상밖이라고 생각합니다.안 그런 친구들도 많아서...하하;;)
iAndroid
16/01/22 22:14
수정 아이콘
.
덱스터모건
16/01/23 10:50
수정 아이콘
제 얘기하시는줄...
스키너
16/01/22 22:15
수정 아이콘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진지하게 생활이 가능하신가요...? 피곤을 대체 어떻게 푸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주6일 근무 시작하고나서 지금 온몸이 소리지르거든요. 7시에 기상하는데 9시반만되면 졸려서 헤롱헤롱하구요.
16/01/22 22:21
수정 아이콘
으으.. 눈물이 난다...
스웨트
16/01/22 23:28
수정 아이콘
진짜.. 이게 남자의 삶인가.. 삶의 즐거움이란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ㅠ
껀후이
16/01/22 23:42
수정 아이콘
전 이래서 결혼을 포기하려고요...ㅠㅠ
캐리건을사랑님 인생에 어서 행복이 깃들기를 같은 남자로써 기원합니다 에효...ㅠ
지나가다...
16/01/22 23:45
수정 아이콘
마지막 한마디에 감동했습니다.ㅠㅠ
이름없는자
16/01/23 00:04
수정 아이콘
와 진짜 개공감.. 전 지금은 비씨즌이라 괜찮지만 씨즌 중에는 진짜 너무 힘든데 그 때 여친생각 술생각 다음으로 강한 게 게임생각.. 야근 뺑뺑이 돌고 오늘도 야근이라고 여친한테 뻥쳐놨다가 무심결에 전화 받아서 사운드 때문에 들켜서 혼쭐난 적 있어요 근데 그 다음순간에 삐진 여친 챙기는 것보다 먼저 든 생각이 아 이제 게임 어케 몰래하지 하는 생각 크크크크크
16/01/23 00:20
수정 아이콘
모든 게 행복하시진 않겠지만 정말 서로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하신 것 같아 어떤 면으로는 부럽네요. 앞으로 일이 잘 풀려서 필요한 행복을 다 가지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6/01/23 00:28
수정 아이콘
음 저도 나름 성실하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원글자분에게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진짜 성실하시네요. 빨리 돈 모아서 은퇴 후 게임합시다 ㅠ.ㅠ;;
16/01/23 00:38
수정 아이콘
부끄럽네요. 제가 너무 게으릅니다 ㅠㅠ
도망가지마
16/01/23 00:56
수정 아이콘
...
베스킨라
16/01/23 00:57
수정 아이콘
아...진짜...슬프다...제가 친구들 중에 그래도 돈을 잘 버는 편이지만 이래서 제가 연애를 안합니다?? 게임 하고 싶다! 잘 하고 싶다!!
Redpapermoon
16/01/23 01:0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오마이러블리걸즈
16/01/23 01:35
수정 아이콘
게임하고 싶다... 게임하고 싶다....
추천... 누르고 응원하고 갑니다.
16/01/23 01:45
수정 아이콘
추게로~
16/01/23 02:17
수정 아이콘
눈물이 왈칵
주여름
16/01/23 04:04
수정 아이콘
5번은 정말 긴 한 문장인데.. 뭔가..한 눈에 모든게 다 그려지네요..
16/01/23 04:13
수정 아이콘
지금부터 아침 7시까지 게임 하려고 컴퓨터 켰는데 (요즘 아캄나이트 달리고 있습니다)

왠지 죄송스러워지네요.


마누라랑 애는 안방에서 잡니다.

제가 캐리건을사랑님 몫까지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16/01/23 08:06
수정 아이콘
주륵....
저수지의고양이들
16/01/23 08:17
수정 아이콘
아 5번은 진짜......
추천 누르고 갑니다 무슨 할말이 있겠나요....
보로미어
16/01/23 08:47
수정 아이콘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일코라는 제목이 무슨 뜻인가 궁금해서 사전을 검색해보니
일반인 코스프레라고 나오네요.
아....
켈로그김
16/01/23 09:00
수정 아이콘
성실하게 산 자만이 쓸 수 있는 글..
제대로 된 일코조차 게을러서 잘 못하고 있는 1人 입니다 ㅜㅜ
어묵사랑
16/01/23 09:10
수정 아이콘
아.... 나의 미래인가 ㅜㅠ 핸드폰 게임 말고는 못하는게 슬픕니다
가지않은길
16/01/23 09:21
수정 아이콘
와이프님이 좋은분이신것 같네요.
게임을 좋아하고 돈을 잘 벌기전 부터 좋아해주시던 분이니 좋아하는 것을 좀 포기하고 돈버는 보람이 있으시겠습니다.
물론 추천은 5번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이 앞을 가려 박은것 입니다만..
16/01/23 10:09
수정 아이콘
누구를 위한 삶인가!!
다리기
16/01/23 10:43
수정 아이콘
이럴까봐 결혼하기 무서워요. 진심으로요.
16/01/23 11:06
수정 아이콘
정말 공감되고 슬픈 글이네요 ㅜㅜ
테네브리움
16/01/23 11:22
수정 아이콘
울었습니다..
퀴로스
16/01/23 11:54
수정 아이콘
말없이 추천 하고 갑니다.
Real Ronaldo
16/01/23 12:09
수정 아이콘
추천드립니다
교리교리
16/01/23 12:14
수정 아이콘
눙물이 납니다.... 저도 빨리 애가 커서 엄마랑 둘이서 알아서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ㅜㅜ
하쿠나마타타
16/01/23 13:10
수정 아이콘
눙물나네 진짜...ㅠ.ㅠ
헥스밤
16/01/23 14:11
수정 아이콘
어이쿠 이런 추천하려고 눌렀는데 어제 이미 추천한 글이네요..
질럿퍼레이드
16/01/23 14:27
수정 아이콘
이 분 답글을 확인하실 시간도 없으실겁니다 ㅠㅠ
건승하세요 ㅠㅠ
16/01/23 15:03
수정 아이콘
추게로...ㅠㅠ
바보미
16/01/23 18:01
수정 아이콘
하....주말에 울컥하네요
돌고래씨
16/01/23 19:33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ㅠㅠ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16/01/23 20:36
수정 아이콘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떠올리게 하는 명문입니다 ㅠㅠ
김포숑
16/01/24 10:04
수정 아이콘
아직은 집에계신분이 허락하셔서 주말이면 패드를 잡고있지만.. 이것도 애가 생기면 못하겠지 라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듭니다. ㅜ.ㅜ 저의 미래를 서술한 예언서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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