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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7/27 10:42:58
Name Timeless
Subject <일상생각> 죄책감의 소비
대학원을 인문사회의학 통합과정(전공은 그 중에서 의학교육학이지만)을 하면서 깊이는 얕지만, 여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실천은 쉽지 않아 이렇게 글로 남겨 고민을 시작해봅니다. 어떤 의견이든 환영합니다!

<죄책감의 소비 1>

연인이 화를 냈을 때 사과를 하는데도 풀리지 않으면, 점차 내면에서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그러다 화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외면으로 표출되며 답없는 다툼이 시작된다.

죄책감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이 담고 있는 죄책감의 크기는 유한하고, 유쾌한 감정보다 그 바닥이 얕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그릇이 큰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죄책감의 소비에 의해 쉬이 바닥이 보이고 마는 그릇을 지니고 있다.

바닥이 드러난 죄책감의 아랫면에는 분노, 우울 등 더 부정적인 알갱이들이 깔려있다. 이 알갱이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이것들을 터뜨리면 카타르시스란 달콤쌉싸름한 맛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죄책감이 남아 있을 때, 즉 아직 부정적인 알갱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반성의 기회와 용서가 필요하다.

극단까지 내몰게 되면 죄책감은 모두 소비되어 내면의 갈등을 종결 짓고, 더 한 형태로 표출되고 만다. 연인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극단적 상황이 되기 전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또 노력한다.

만인에게 만인의 연인이 되어 갈등을 조기에 해소하길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큰 바람인가? 인류애의 달성은 구름조차 멈춰선 어느 무더운 날 불지않는 한줄기 바람인가?



<죄책감의 소비 2>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이 담고 있는 죄책감의 크기는 유한하고, 유쾌한 감정보다 그 바닥이 얕아서 소비에 의해 쉬이 바닥이 드러난다. 그리고 바닥이 드러난 죄책감의 아랫면에는 분노, 우울 등 더 부정적인 알갱이들이 깔려있다.

의사가 환자를 보다보면, 부족한 능력이나 실수에 의해서 그리고 꼭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움도 때로는 자책으로 이어져 죄책감을 소비하고 만다. 특히 말기 환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의사, 불가항력으로 기대 여명에 한참 못미친 그 어느 날 환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의사 등은 죄책감의 소비가 그 누구보다 심하다.  그리고 소속 집단 또는 구성원의 잘못된 행동도 비록 내가 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죄책감 소비로 이어지곤 한다.

직업적 소명을 다 하려면 직업적 만족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족한 능력에는 평생 공부의 즐거움으로, 어쩔 수 없는 일에는 죄책감이 아니라 연민으로, 좋았던 날에는 보람이란 감정으로 죄책감 그릇을 가득 채워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집단적 죄책감 소비도 의식적으로 분리해서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맨 바닥의 부정적 알갱이에 닿게 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닿게 되기 때문이다. 감정과 관련된 자기조절은 나이가 든다고, 또는 경험이 쌓인다고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 내면을 통찰하고, 성찰해야 도달할 수 있는 지난한 과제이며, 의사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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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less
16/07/27 10:43
수정 아이콘
"고민은 질게로"라는 댓글도 저의 죄책감을 소비할껍니다!
-안군-
16/07/27 10:49
수정 아이콘
일단, 맨 마지막 문단에 물음표가 안 붙었으므로, 질게글은 아닙니다?
Timeless
16/07/27 11:18
수정 아이콘
죄책감을 덜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흐흐
홍승식
16/07/27 10:48
수정 아이콘
죄책감으로 인해 물건 사는 이야기인줄 알고 들어왔네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내로남불의 동물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자기합리화를 하죠.
Timeless
16/07/27 11:19
수정 아이콘
자기합리화는 중요한 자기방어 기제라서 필요한 상황에서는 꼭 작동되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개인적으로는 우울하거나 폭발하는 등 불행한 일이 생기죠. 과도한 자기합리화는 별개이구요.
슈퍼집강아지
16/07/27 11:02
수정 아이콘
음... 죄책감이 소비된다는것이 잘 이해가 안갑니다.. 죄책감이란 사람에게 한정적인 감정이고, 이걸 동력으로 무언갈 하려면 금새 밑천이 드러난다는 이야긴가요?
제가 이해한 바대로 댓글을 적어보자면, 자기 욕망은 도외시한 채, 타인을 위해 헌신하려던 사람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패턴 같습니다. 특히 저는 사회복지쪽을 공부 중인데 이 분야에서 이직이 잦은건 박봉에 힘든 것도 있지만, 이런 환경을 지적하면 마인드가 없다, 너무 냉정하다 이런식으로 반응하는데요. 그러다보니 복지기관에 가서 힘들더라도 버틸만한 동력을 찾기 어려워하는 주변 친구들을 많이 보네요.
Timeless
16/07/27 11:17
수정 아이콘
소비된다는 것은 곧 아낄 수 있다란 의미에서 붙여봤습니다. 말씀하신 사회복지 영역도 비슷할 것 같은데 의사 중에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까지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죄책감이란 감정을 이렇게 정의해보면 일종의 방어적 도구로 아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연인이나 사람들이 다투는 과정에서도 죄책감을 사과하고 또 사과해서 다 소비해버리면 폭발하는 과정에까지 생각이 닿아서 정리해봤습니다.
슈퍼집강아지
16/07/27 11:36
수정 아이콘
음, 그렇게보면 죄책감은 문제해결하려는 것을 위한게 아니라 방어적인 도구일 수 있겠네요. 가령 여친과 약속에 30분이 늦어서 미안하다며 죄책감을 느낄때는,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선까지만 미안한것이겠죠. 자꾸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안받아주고 삐지면 본문에 이야기해주신것처럼 정말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겠네요. 소비라는 단어가 재밌습니다 흐흐.
포도씨
16/07/27 11:05
수정 아이콘
'그래서 뭘 어쩌라는건지?' 로 죄책감 사드리죠. 크크
죄책감을 느낀다는것 자체가 의롭다는 반증이죠. 한 번사는 인생 막살아갈테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죄책감 안느껴요.
Timeless
16/07/27 11:24
수정 아이콘
정말 병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죄책감은 느낍니다. 살아오면서 이미 다 소비하고 채우지 못한 상황이겠죠. 인간에 대한 믿음은 이런 부준의 회복 가능성에서 오는 것 아닐까요. 지금 극렬한 사회 현상들은 애초 의롭지 못한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의로움이 다 소비된 사람들의 일로 봐야 해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포도씨
16/07/27 11:28
수정 아이콘
안느낌 -> 잘 못느낌으로 수정하도록하죠. 저도 탐리스님과 같은 생각이니까요. 그런데 병적인 상황인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는...
Timeless
16/07/27 11:31
수정 아이콘
병적인 상황은 죄책감을 담당하는 뇌영역이 파괴되었거나 작동하지 않는 질환이 있습니다. 나머지는 되돌릴 수 있겠죠.
-안군-
16/07/27 11:12
수정 아이콘
간혹... 작은 잘못을 가지고도 일벌백계(...)의 원칙을 고수하며,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대상이 유명인인 경우도 있고, 자기 자식인 경우도 있고, 형제간, 친척간... 등등 많죠.
처음 한두번까지는, 죄책감을 자극해서 각성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그 죄책감이 다 소모되고 나면 그 다음에 남는건 반발심 뿐이죠.

요즈음 한창 핫한 이슈도, 한두번까지는 받아줄 수 있었으나, 이젠 그 임계점을 넘어버린 사람들의 반발심, 분노 등이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봅니다.
"니네 잘못이다." -> "그래, 우리가 잘못한게 없진 않지." -> "그러니까 니네가 가해자다." -> "그건 좀..." -> "다 죽어라!" -> "어쩌라고?!!"
Timeless
16/07/27 11:21
수정 아이콘
맞아요. 그 끝에는 '다 망해라!' 10cm의 노래 가사로 귀결되죠.
-안군-
16/07/27 11:27
수정 아이콘
분노와 우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너 죽고 나 죽자"가 결론이 되죠.
사회 구성원들간의 관계가 여기까지 치달으면, 최악의 결과가 나오게 되고... 여기까지 가는건 어떻게든 막아야 할겁니다.
Timeless
16/07/27 11:32
수정 아이콘
그것을 막을만한 동력이 뭐가 있을까요? 강력한 종교나 모범적인 지도자? 사회적 합의나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기가 참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허허실실
16/07/27 11:56
수정 아이콘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만한 것도 없다. -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겠지요. 말씀하신 권위는 돈 없으니까 쓰게 되는 거고.
Neanderthal
16/07/27 11:43
수정 아이콘
Timeless 님이 본문의 내용을 출력해서 모 게임회사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분들에게 나눠주면서 지나친 죄책감의 강요가 불러올 수 있는 역효과를 설명하려고 하면 그분들이 무언가 특정구호를 Timeless님께 외치고 그 바람에 Timeless님의 죄책감은 다 소비되어 맨 바닥의 부정적인 알갱이가 노출되어 그만...--;;

날씨가 더우니 자꾸 이상한 댓글을 달게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Timeless
16/07/27 13:38
수정 아이콘
본문 글 아래 "사실 이것은 네덜란드님의 머릿속을 스캔한 것"임을 삽입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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