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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2/14 20:34:18
Name 깔치
Subject [일반] 나는 백수다
나는 백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15시간 15분 후에 백수가 되는 예비 백수다.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졸업식이 찾아온다. 대학에 입학한 지 어느새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화석을 넘어 우주의 탄생과 같은 레벨이 되었다. 내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땐 네이트온으로 팀플 회의를 했었는데, 이제 신입생들에게 네이트온은 거의 뗀석기 급의 유물인 것 같다. 하긴...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데. 내일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이제 정말 소속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다시 우울함이 찾아온다.

백수의 삶은 딱히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이다. 누군가 요즘 사는거 어때? 라고 물어보면 아 그냥 숨은 어떻게 쉬네.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정신 질환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차있다가도 갑자기 찾아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새벽 3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는 걸 보며 내가 조울증이 오나... 라는 생각도 든다.

왜 백수의 삶은 이리도 힘들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아주 간단한 문제다. 몸 담을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불안감, 과연 내가 취직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다른 친구들은 이미 다 자리 잡고 일하고 있는데 나는 뭐 하고 있는거지 하는 열등감. 마치 원피스에 나오는 삼대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중 가장 힘든 걸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열등감을 고르겠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도 물론 힘들지만, 친구들이 어디에 합격했다더라, 성과급이 얼마라더라 하는 얘기를 들으며 나와 비교하게 되는 게 가장 나를 힘들게 한다.

우울함과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구를 만난다. 한두달에 한 번 정도 만나 술 한 잔 하는 친구가 있다. 만나서 어떻게 살았냐, 물으니 해외 여행을 다녀왔단다. 아, 교사는 저런 점에선 정말 좋은 직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분 탓인지 술이 더 달게 느껴진다. 술이 들어가고 살짝 기분이 들뜨려는 그 때, 친구가 말한다. "내 올해 소원은 너 취직하는거다. 이제 내 주위 친구들 다 가고 너만 남았어.". 나도 들어가고 싶지, 나라고 안 그렇겠니? 라는 말을 술잔에 눌러담아 삼키고, 웃으며 고맙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나에게도 최면을 건다.

집에 돌아와 내 방에 걸린 정장을 보고 있자니 또 다시 불안감이 찾아온다. 왜 면접은 도통 통과하지를 못하는건지, 내가 그렇게 가치 없는 인간인지 하는 고민이 고개를 든다. 면접에 간다고 말했을 때 엄마의 기대하는 눈빛이 떠오른다. 아들이 우울해할까봐 결과도 못 물어보고 기다리고 계시다가 넌지시 연락은 안 왔냐는 말을 건네시는 아빠 모습도 떠오른다. 이제 나이도 어느정도 먹었으니 뭐라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답답할 뿐이다.

예전에 한 친구가 취준을 '1승만 하면 끝나는 게임'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 1승만 하면 끝나지. 근데 대체 난 언제쯤 그 1승 거두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치트키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THERE IS NO COW LEVEL. P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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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온
17/02/14 20:37
수정 아이콘
화이팅입니다..저도라서..
17/02/14 22:23
수정 아이콘
화이팅해요! 다시 글 쓸땐 좋은 소식으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10년째학부생
17/02/14 20:40
수정 아이콘
7년이 우주의 탄생이라니 크흠...
좋아요
17/02/14 20:43
수정 아이콘
닉네임이..
17/02/14 20:44
수정 아이콘
헐 저도 대학 10년만에 졸업했었는데.....
17/02/14 22:24
수정 아이콘
크..크흠..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_ _)
요새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할뿐 저흰 아직 청춘입죠. 네.
Essential Blue
17/02/14 20:44
수정 아이콘
7년후 1승만 해야 하던 게임이 3년이 더 지났는데도 아직 이기질 못하더군요......................
17/02/14 22:25
수정 아이콘
엄청난 인내심과 끈기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부디 올해는 좋은 소식 있으시길 바랄게요.
취업하고싶어요
17/02/14 20:45
수정 아이콘
화이팅입니다.. 저도입니다..
17/02/14 22:25
수정 아이콘
닉네임에서 진심이 느껴지네요... 같이 화이팅해요.
톨기스
17/02/14 21:11
수정 아이콘
화이팅입니다.
17/02/14 22:2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화이팅입니다!
사신군
17/02/14 21:32
수정 아이콘
29살 올래 졸업했습니다 백수입니다..힘내세요
17/02/14 22:26
수정 아이콘
졸업 축하드립니다. 곧 좋은 곳에 자리 잡으실거에요. 같이 힘내요.
17/02/14 22:12
수정 아이콘
10년 지나서야 저도 졸업했죠. 그간 이것 저것 좋은 자리를 바라며 스펙을 준비했는데 원하는 자리에 번번히 떨어졌고..

그런 상태에서 맞이하는 졸업식은 정말 씁쓸 그 자체였습니다. 취업하지 못한 채로 맞이하는 졸업식은 정말 쓰디 썼습니다. 시끌벅적하게 웃는 사람들, 축하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학사모를 쓰고 가운을 입고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 이들. 삼삼오오 중국집이며, 음식점이며 향하는 무리들.. 예전 선배들이 졸업하면 으레 데리고 가던 중국집 어디쯤엔가 저도 가 있을 줄 알았는데, 시원스레 지갑을 맡기며 한턱 크게 쏴주는 멋진 졸업생의 모습이 될줄 알았는데. 동기들은 다 졸업했고, 같이 와 준 어머니에게도, 동생에게도, 여자친구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자리였습니다. 제대로 된 자리도 못 구한채로 서른 살이 되서 맞이하는 공식적인 백수의 날은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 악물고, 어떻게 준비하다 보니 그 해 7월에 취업이 됐습니다. 원래 바라던 곳 보다도 훨씬 좋은 곳에 되서 만족스럽게 다니는 중입니다. 물론 감사가 다가오는 지금 8시~22시 퇴근이 일상이 되다 보니 그 감사함은 사라진지 오래지만요.

아무튼.. 화이팅입니다. 27살의 공식백수는 그렇게 비참한 삶은 아니에요.
17/02/14 22:28
수정 아이콘
시원스레 지갑을 맡기며 한턱 크게 쏴주는 멋진 졸업생의 모습이 될줄 알았는데... 정말 동감입니다. 졸업은 축하받아야 할 일인데 씁쓸한 일이 되어버렸네요.
그래도 좋은 곳에 자리 잡으셨다고 하니 다행이고, 부럽습니다. 힘내서 될 때까지 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휴면계정
17/02/14 22:42
수정 아이콘
끝도없는 어두운 터널 지나고 있는 29살 백수입니다. 저같은 사람 한둘이 아닌것에 위안을 삼으시되 열심히 하시는 것이 좋아보여요. 조언을 드리면 점심 때 햇빛쐬는 일광욕을 꼭 하시라는.. 불면증 조울증이 개선되거든요. 저도 모레 면접이 하나 잡혔네요 다같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17/02/14 23:04
수정 아이콘
취직해도 박봉이면 솔직히 그 열등감은 여전합니다.
공무원에 대기업에 결혼에 애놓고 잘 사는데 나는 이 연봉으로 뭐하지싶어지고, 어릴때 비교당하는거 싫어했는데 제가 먼저나서서 누구랑 비교질하고있으니 씁쓸해져요...
스웨트
17/02/14 23:42
수정 아이콘
꿈을 잃지 마세요. 그리고 노력하세요. "나는" 잘될거야 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노력안하면 죽는다 생각하세요.
제가 그랬어요. 매사 이력서 죄다 떨어지고 그러면서도 "나는"잘될거야.. 나는 잘될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그래서 잘됬어요? 아뇨 잘 안됬어요. 다른사람은 몰라도 나는 잘되겠지. 라는 생각은 버려야되요.

전 나이 서른 넘어서 백수에서 탈출했어요.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이제 1년 되었어요.
남들은 이정도 쯤 되면 자리잡고 그런다던데, 저는 1년 내내 야근하고 야근하고, 또 야근해요. 그렇다고 돈을 많이 주는것도 아니고
업무가 회계총무니까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아요. 성격이 싹싹하거나 깡다구있는것도 아니어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살죠.

백수인거 나쁘지 않아요. 그렇다고 타협하지 마세요. 노력하시고 계속 이력서 쓰고 도전하세요.
똑같은 야근 하고 살거면 돈많이 버는곳으로 가세요. 제가 예전에 취직안될때 이런글 쓰면 꼰대xx 내가 그걸 모르냐 그게 안되는데 어떡하라고 그랬는데
이제 와서야 느껴요. 진짜 백수인거 정말 힘들고 그런데, 그래도 노력하셔야되요. 노오오오오력 이 아니라 진짜 노력이요.
쿠페라
17/02/14 23:46
수정 아이콘
저는 올해 30살 됐습니다... 발전소에서 일하고 싶어서 늦었지만 컴퓨터 전공하다가 전기로 과를 바꿔서 2년전에 편입해서 이번 달에 졸업하네요. 공대지만 요즘 불경기라 불안감이 해소되진 않는것 같습니다. 곧 다가올 상반기 공채 준비중인데 일단 해볼수 있는데까진 해봐야겠지요. 글쓴이님도 같이 힘내요!
17/02/15 01:14
수정 아이콘
스물 아홉이었던 작년 봄에 졸업했습니다. 학부를 8년 다녔지요.
그 때의 저는 취준생이라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아무것도 해놓은게 없는 쌩 백수였기에, 졸업식을 가지도 않고 그냥 집에서 잤어요.
그날 밤에 과후배도 아니고(제가 저희 과 마지막 학번이었습니다. 후배가 없었지요) 같이 교내 알바하던 동생들이 케익이랑 꽃이랑 와인이랑 사들고 저희집으로 와줬는데 그게 민망하면서도 얼마나 고맙던지... 그 친구들은 정말 잊지 못할거 같아요.
17/02/15 03:01
수정 아이콘
덜 괴로워서 그래요 좀더 괴로워져야 면접에 통과합니다
직장이란곳은 원래 그런곳이거든요
실론티매니아
17/02/15 08:51
수정 아이콘
첫 단추가 네임밸류가 있는 회사가 아니어도 다니면서 경력쌓고 시야를 넓힌 후에 중고 신입으로 나름 괜찮은 회사를 노려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좋은 곳에서 시작하는게 베스트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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