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4/10 15:10:07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18세기 유럽 지식인들의 대표적인 지적 경향 - 중국, 그리고 중국 황제의 '이상화'

DYJnUEX.png



18세기의 유럽에서는 일반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 황제들에 대한 평판이 높았다. 중화제국은 무엇보다 차, 대황, 비단, 칠보, 벽지, 장식용 부채, 자기, 곡목가구曲木家具처럼 유럽의 중산층과 상류층이 높게 평가하는 물건들의 원산지였다. 천 년 이상 중국인에게 알려진 우두접종 기술은 유럽에서 천연두 백신의 발명에 영향을 주었고, 청조 황실의 관요에서 자기를 생산하는 방식은 조사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에게 대량생산을 위한 일괄작업을 발명하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또한 중국의 황제들을 정치적 덕목의 귀감으로 여기는 이미지도 생겨났다. '동양적 폭정'(압제적이고 잔인하며 배부른 절대 군주가 99% 신민들을 노예처럼 채찍찔하며 자신의 부귀를 누리는) 의 개념은 몽테스키외 이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정도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반면 중국의 군주들은 막연하게 합리적이며, 심지어 자비로운 통치자로까지 이해되었다. 그들은 거의 어떠한 이상도 적용시킬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점이 있었고, 건륭제 역시 그러한 역할로 칭찬을 받는 것에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1762년 올리버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는 개화된 중국 군주의 첩자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유럽 사회의 한심한 상황을 책으로 고발했다. (고도로 문명화되고 이성적 사고방식을 가진 중국인 첩자가 유럽을 정탐하러 와서 유럽인들의 구시대적 폐단과 어리석음을 보고 한심함에 치를 떠는 내용이었다.)


볼테르Voltaire는 유교의 합리주의와 심지어는 과학적 경향에 대해서까지 상세히 서술했다.  요컨대 그는 어떻게든 유교를 군주의 덕성 함양을 위한 처방전으로 묘사하려고 애썻다. 볼테르에 따르면 유교를 통해 덕성을 갖춘 군주는 정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중용을 갖추고 이타적이며 흔들림이 없었으므로, 아무리 탐욕스럽고 기생하는 귀족이나 위선적인 성직자라도 흔해빠진 값싼 유리처럼 황제의 발꿈치 아래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자연신을 숭배하면서도 교권의 개입에 반대하는 중국 방식의 접근법을 높게 추천했다.



그러나 볼테르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철인왕이 존재한다는 것에 관해 모호하고 가설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없었다. 사실 그는 당시의 청조 황제가 쓴, 같은 시대의 (무식한)유럽 군주들에게는 너무나 모자라 보이는 인덕, 학식, 인내, 총명의 덕목이 세세하게 스며든 서사시를 일부나마 읽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부라고 불린 이 작품은 청조의 건륭제가 쓴 원본 작품을 예수회 선교사인 아미요가 번역한 것이라고 볼테르는 믿었다. 



(중략)


파리에 거주하는 독자들은 1770년에 아미요가 번역한 『성경부』를 속독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아미요는 관점을 가진 번역자였다.  그가 번역한 부는 건륭의 글을 필사한 등록관의 붓끝에는 아무런 신세를 지지 않고 있으며, 자신의 철학적 방백과 분명한 기독교적 상상의 나래로 가득했다. 후대의 학자들은 전체 구절이 분명 번역자의 머릿속에서 비롯되었고, 원본의 정신이나 문장 구절에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아미요의 작품 번역을 혹평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과, 그의 작품 때문에 유럽에서 나타난 청조에 대한 망상을 비판하는 일은 너무 늦은 한 세대 뒤에 일어났다. 만주 지역의 목가적인 풍경, 아이신기오로의 조상이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주장, 건륭제가 품은 개화된 기독교적 정신(그리고 아마도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그의 프랑스어 실력)은 이미 그 작품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만주족의 역사,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中












당시 유럽의 주요 지식인 계층이 품고 있는 중국 황제에 대한 이미지들




GkTia5p.jpg



1. 종교적 신념을 가진 18세기 수도사(예수회 선교사 등)의 비친 중국 황제의 모습



"청나라 황제들의 조상은 처녀의 몸에서 잉태된 존재들이고, 그들이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통치를 하는데 자비롭고 관대하며 유럽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대한 아량과 믿음이 엄청남.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기독교적 군주들임 우왕 굳!"






cIleGD5.jpg



2. 회의적 합리주의를 가진 지식인 계층(볼테르 등)의 눈에 비친 중국 황제의 모습



"유럽 군주들이나 교황이니 수도사니 하는 것들은 쥐뿔도 없는것들이 무식하기만 한다. 여기에 중국 황제는 듣자하니 미친듯이 스스로가 철학자이며 쉬지도 않고 지식 흡수를 하고, 유교적 합리주의로 만인을 통치하는 진정한 계몽된 군주라고 한다. 우왕 굳!"





GguzrsN.jpg




3. 종교적 신념을 가진 지식인 중 일부(라이프니치 등)의 눈에 비친 중국 황제의 모습



"내가 주역을 대충 알아봤는데 말이야, 이게 2진법하고 비슷한거같아. (라이프니치는 2진법을 단순한 기수법이 아닌 하나님의 창조를 상징하는 기수법이라고 믿음)


그런데 이진법은 이게 보통 물건이 아니잖아? 그런데 주역이 2진법하고 비슷하다..... 야, 잘 생각해보니까 주역도 기독교 경전이네. 지금 보니까 중국인들은 4천년 전부터 하느님을 믿었네. 와 나 지금 소름돋음."




RDLRAoz.jpg



4. 돈 많은 유럽 졸부들의 눈에 비친 중국의 모습



"메이드 인 차이나! 최고 고급! 메이드 인 차이나 싸랑해요!"


















DN3Iibm.jpg


실제로 보게 된 것 - 다 늙은 황제와 문드러져가고 있던 제국.
 





pBPEyMH.jpg



앞서 소개된 이런 경항은 대체적으로 1793년 매카트니의 청나라 방문 - 건륭제와의 만남을 계기로 여론이 바뀌면서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제국' 으로서 청은 '무능' '부패' '탐욕' '뇌물이나 밝히는 관리들' '거만함' '전근대적' 이런 쪽으로 인식이 바뀌어가게 됩니다. 아편전쟁으로 청조의 허약함이 만방에 확실히 알려진건 좀 더 뒤의 일이었지만요.




당시에 청조와 청나라 황제들의 평가가 대단히 높았던 건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식자들이 '일단 워낙 멀리 떨어져 있고 따로 증명하기도 어려운' 중국을 일종의 자신들의 '이상향' 으로 삼아 미화하던 까닭이 있습니다. 직접 접촉이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서양인들인 예수회 선교사들은 청나라 황제들의 뛰어남을 강조해서 '이토록 뛰어난 황제들도 우리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는 식으로 본국의 왕들에게 어필을 하려 했으며, 낡은 체제에 불만이 많은 지식인들은 머나먼 중국을 일종의 '유토피아' 로 묘사해서 자신들이 살고 있던 현실의 체제에 비판을 가했습니다. 




두번째로는 당대 유럽에서는 '강희제' 의 평가가 정말로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그리고 머나먼 유럽 사람들로선 멀리 있는 중국 황제 '강희제' 를 별개의 인격으로서 '강희제 애신각라 현엽' 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막연하게 '중국 황제' 라는 대명사로서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많은 황제들도 강희제 수준이 보통일거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실제로 만난 사람은 강희제가 아니라 건륭제였습니다. 다음은 앞서 말한 매카트니의 건륭제의 만남을 다루는 책의 언급 중 일부입니다.






'...영국에서는 사절단 소속의 화가가 그린 그림책을 포함, 각기 다른 사람들이 쓴 여러 기록이 그 이후 수년간 출간된 반면, 중국에서는 사절단이 청조 엘리트들 사이에서 거의 관심을 일으키지 못했고, 매카트니 사절단에 대한 논평들도 거의 출간되지 않았다.


이것은 영국인들이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의 글을 통해 강희가 서양의 과학, 의학, 수학에 매료되었던 것을 읽은 것처럼, 그들은 건륭에게서도 그의 조부처럼 다재다능한 점을 발견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매카트니의 사절단은 자신들의 멋진 선물이 그에게 어떤 특별한 열광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음을 알게 되자 실망했다. 아무도 유럽에서 발전된 최신 비행기술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가져간 열기구의 조립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크 c 앨리엇, '건륭제' 중에서.




사실 건륭제 역시 꽤 발은 넒은 편이어서 서양의 여러 소식들, 이를테면 유럽의 지리학이라던지, 당대 유럽의 큰 소요사태 - 즉 프랑스 혁명 - 이나, 러시아의 궁전에서 펼쳐지는 암투 등에 대한 소식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정보를 얻어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강희제가 넘치는 호기심으로 결코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반면에, 말년의 늙고 자만심이 극도로 강해진 건륭제는, 그 호기심이 결코 자신의 (거드름을 피우는) 오만함을 넘을 정도는 아니었다... 고 저자는 평가하더군요. 



결과적으로 건륭제와 만난 매카트니 사절단이 당시 청나라의 낡고 부패하며, 잘사는 사람은 배 두드리며 잘살지만 못사는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지떼가 극심하던 중국의 현실, 그리고 기대했던 '철인정치' 의 실현자이자 더할 나위 없는 지식욕의 '현자' 로 생각했던 중국 황제(건륭제)의 실제를 보고 나서 엄청난 실망감에 빠졌고, 이들이 돌아와서 낸 논평, 회고록, 그림책 등이 유럽에서 큰 이슈가 되면서 앞서 말한 평가들은 반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세간에서 흔히 하는 서양이 동양을 역전한 시점 이런 흥미위주 이야기를 다룰떄, 다른 부분을 제하고 '서양인들의 인식에서' 역전된 시기는 그 무렵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만일....10001
17/04/10 15:17
수정 아이콘
괜히 천고일제가 아니네요. 간접적으로나마 강희제의 위엄이 드러나는게 인상적입니다.
보통블빠
17/04/10 15:40
수정 아이콘
와패니즈 따위는 우스운 중뽕의 역사란 크크...
타타리17
17/04/10 15:52
수정 아이콘
강건성세 라는 말처럼 실제로 건륭제가 강희제 클라스였다면 어땠을지 ...아편전쟁으로 상징되는 청나라의 몰락을 지연시켰을지 아니면 서구의 진격과 시회구조의 한계로 똑같이 몰락했을지..
보통블빠
17/04/10 15:59
수정 아이콘
서구의 진격에 박살 났을거에 한표를 겁니다. 나름 전성기 진행중이던 동남아 왕조들도 박살내는 서구의 힘이라면....
다만 양무운동이 좀 빨리 일어났겠지요
vanilalmond
17/04/10 15:55
수정 아이콘
강희제와 옹정제는 정말로 철인왕이라고 해도 대단한 왕이었고, 두 사람의 치세동안 청은 정말로 강성했으니 저 때의 중국뽕도 이해할만 합니다. 그리고 그 뽕에 취해있다가 본게 건륭제니 대비효과가 그만큼 컸을 것이고...건륭제가 지나치게 잘난 할아버지 아버지를 둔게 비극이라면 비극..?
17/04/10 16:36
수정 아이콘
원래 알고 있던 이야기인데도 재미있게 풀어 나가는 솜씨가 역시 신불해님이네요
루크레티아
17/04/10 16:37
수정 아이콘
건륭제가 삽 좀 과하게 푸긴 했지만 그래도 평타는 친 황젠데 하필 비교대상이 갓희제..
17/04/10 16:50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가 서양에 알려질 떄가 마침 세종대였으면 비슷한 느낌이었을까요??
동굴곰
17/04/10 18:35
수정 아이콘
강희-옹정이라면 인정...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118 [일반] 에스파 '드라마' 커버 댄스를 촬영했습니다. :) [10] 메존일각2937 24/03/09 2937 6
101117 [일반] 책 소개 : 빨대사회 [14] 맥스훼인3544 24/03/09 3544 6
공지 [일반] [공지]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게시판을 오픈합니다 → 오픈완료 [53] jjohny=쿠마 24/03/09 27638 6
101114 [일반] 드래곤볼의 시대를 살다 [10] 빵pro점쟁이3291 24/03/09 3291 22
101113 [일반] <패스트 라이브즈> - 교차하는 삶의 궤적, 우리의 '패스트 라이브즈' [16] aDayInTheLife2812 24/03/09 2812 4
101112 [일반] 밤양갱, 지독하게 이기적인 이별, 그래서 그 맛은 봤을까? [36] 네?!6062 24/03/09 6062 9
101111 [정치] 정부, 다음주부터 20개 병원에 군의관·공보의 파견 [152] 시린비10056 24/03/08 10056 0
101109 [정치] 요 며칠간 쏟아진 국힘 의원들의 망언 퍼레이드 및 기타 등.. [121] 아롱이다롱이9702 24/03/08 9702 0
101108 [정치] 역사교과서 손대나... 검정결과 발표, 총선 뒤로 돌연 연기 [23] 매번같은5916 24/03/08 5916 0
101107 [정치] 개혁신당 이스포츠 토토 추진 공약 [26] 종말메이커5001 24/03/08 5001 0
101106 [일반] 이코노미스트 glass ceiling index 부동의 꼴찌는? [53] 휵스5657 24/03/08 5657 2
101105 [일반]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후배들이 보내는 추도사 [22] 及時雨7276 24/03/08 7276 14
101103 [일반]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별세 [201] 及時雨10183 24/03/08 10183 9
101102 [정치] [정정] 박성재 법무장관 "이종섭, 공적 업무 감안해 출금 해제 논의" [125] 철판닭갈비8296 24/03/08 8296 0
101100 [일반] 비트코인 - 집단적 공익과 개인적 이익이 충돌한다면? [13] lexial3508 24/03/08 3508 2
101099 [정치] 의협차원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라고 지시한 내부 폭로 글이 올라왔습니다 [52] 체크카드10172 24/03/08 10172 0
101098 [일반] [내일은 금요일]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진다.(자작글) [5] 판을흔들어라1971 24/03/07 1971 3
101097 [일반] 유튜브 알고리즘은 과연 나의 성향만 대변하는 것일까? [43] 깐부3534 24/03/07 3534 2
101096 [일반] 의사 이야기 [34] 공기청정기6709 24/03/07 6709 4
101095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4) [8] 계층방정7457 24/03/07 7457 9
101094 [정치] 대한민국 공공분야의 만악의 근원 - 민원 [167] VictoryFood10815 24/03/07 10815 0
101093 [정치] [중앙일보 사설] 기사제목 : 기어이 의사의 굴복을 원한다면.txt [381] 궤변13951 24/03/07 13951 0
101092 [정치] 의대증원 대신 한국도 미국처럼 의료일원화 해야하지 않을까요? [12] 홍철5583 24/03/07 5583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