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것이 허무한 이별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정돈되지 않은 누추함에 이별이라는 거창한 옷을 벌써부터 입혀도 되는건지 고민이 되었다.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허무한 이별이란게 있기나 한걸까. 남겨진 사람만 허무할 뿐 떠나가는 사람에겐 상관 없는 문제가 되어버리는게 아닌가.*
한 사람을 떠나보내었고 마음은 이리도 텅 비었건만, 이것이 허무하다고 못하겠고 이별이라고 올바로 확신하지도 못하겠다. 무어가 무언지.
참, 담배가 늘었다. 꽤 많이. 돌려받아야할 라이터가 있다. 가스가 절반쯤 남은 빨간색 불티나. 이것은 확실하다.
#2
슬픔을 치료할 수 있을까.
슬픔에도 무게가 있다면, 아니 슬픔을 이겨내는데에 드는 힘에도 무게나 길이나 크기 따위의 어떤 범위와 범위 내의 판단력이 있을 수 있다면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법한 슬픔을 정해 하루에 세번씩 식후 30분 따위의 간편한 약속 같은걸 지어놓고 차근차근 스스로 망가지지 않을만큼
무리없이 그렇게 고통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고통만 신경쓰기에도(슬픔을 온전히 괘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름의 고충이 있건만,
도대체 나는 지금 얼마나 아픈건지, 나아질 수 있는지, 나아질수 있다면 얼마나 더 아파야할지 모른다는 사실들이 오히려 더 아플수도 있지 않을까.
슬픔을 온전히 치료하고 싶단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러고보니 세상은 그다지 반기는 기색이 없다.
이리 불평하는 나조차도 누군가 어디가 아픈줄 물어준다면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3
사실 세상에 너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 내세울만한 게 무어 있겠느냐고 생각해보면 굳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만은 아닌데,
그것이 어떤 여자가 너를 좋아할 이유가 되지 않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사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문제라는 생각이 문제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면, 글쎄 아무튼 세상에 너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 어제라면, 한달 전이였다면, 30분전이였다면
글쎄 아무튼 지금,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 아니, 없어졌다.
누군가를 비난한다고 달라 질 수 있는 문제일까. 나를 남겨지게끔 한 너의 떠남을 나는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일까.
어쩌면 지금의 이것들은 지난 날 어떤 즐거움이랄까, 유열 같은 것의 영수증으로 내게 청구된 응당의 댓가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도저히 비난할 자격 같은걸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찾아서도 안될 사람이 아닌가.
문득 시간이 지나고나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예전의 어떤 것들을 그리워하듯, 지금의 어떤 것들도 그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 때문에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비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 모르겠다. 담배나 펴야겠다. 내가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언젠가 담배를 피게 될 것이고 그것을 서로가 납득할 수 있을 때
그때에야 돌려줄것이라며 새초롬하게 뺏어갔던 나의 라이터는 돌아올 길이 없다. 라이터와 함께 사라진 것들은 물음표가 되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쁜 년.
http://youtu.be/4efvTWFR084
* 김지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강민경 『병원에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