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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3/06/08 16:05:17
Name 신불해
Subject 병자호란의 원인에서, '청나라' 의 입장 - 전쟁은 오직 조선 때문이 일어난 것인가?


역사적인 사건은 항상 여러 각도에서 살펴봐야 하고, 게중에 '전쟁' 같은 거대한 흐름의 이야기는 이에 얽힌 속사정이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또한 전쟁은 '공격하는 자' 과 '공격 당하는 자' 이 있기 때문에, 그 서로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지 않으면 그 동기와 전개 과정을 모두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병자호란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모든 전쟁은 공격하는 국가와 공격 당하는 국가, 양측의 입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국내 역사에 있어 유명한 전쟁들 ─ 이를테면 고수전쟁, 고당전쟁, 임진왜란 등의 전쟁은 모두 양측의 입장이 고려되며, "왜 전쟁이 일어났나" 라는 질문에 당시 국내는 물론이고 상대국의 입장도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병자호란은 아닙니다. 물론 전문적인 학술 논문이라면 다른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인터넷 상에서 병자호란의 동기에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모든 이야기들은 조선 중심적인 이야기입니다.



간단한 이야기 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병자호란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때 등장하는것은 광해군, 인조, 제조지은, 중립외교 등 입니다. 즉, "조선이 이렇게 하였기에" 전쟁이 일어났고, 만일 "조선이 이렇게 했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식입니다. 소위 말해서,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조선이 개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정작 공격하는 쪽은 청나라고 공격을 당한 쪽은 조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쟁의 원인에 있어 주체적인 입장은 청이라기보다 조선에 있게 됩니다. 반면에 청나라는 조선이 내린 결정에 끌려다니는, 이상한 모습이 연출됩니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이렇습니다. 전쟁의 원인에 있어 중요하게 살펴야 할 요소는 침략국과 침략을 당하는 나라 양측에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일반적인 경우라면 침략국을 더 살펴봐야 합니다. 인터넷 상에서 병자호란에 대한 "떡밥" 이 언급될 때는 그 가장 중요한 침략국의 사정은 전혀 언급이 되지 않고, '침략을 당하는 나라' 의 입장으로 모든것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그 문제의 "침략국" 의 사정은 어떠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조선사' 가 아닌 '청사' 의 흐름을 살피는 입장으로 이 전쟁을 본다면, 중요한 문제는 조선의 외교정책 보다는 오히려 경제적 요소 입니다.



보통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기에는, 만주에서 거대하게 세력을 일군 청나라는 당시에 이미 천하의 대세를 결정지은 셈이나 다름없고, 병자호란의 시점에 이르면 이미 청나라가 중국을 근시일 내에 지배하게 되는것은 당연한 사실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릅니다.



요동에서 명나라의 군사력이 완전히 괴멸되는 시기는 1641년에 이르러서 입니다. 이때의 싸움에서 명나라는 홍승주가 이끄는 10만 이상의 군대가 괴멸 당하고, 산해관에 남아있는 오삼계의 군단을 제외하고는 요동의 모든 병력이 일소되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는 1636년까지는 아직 명나라의 군사력이 요동에서 건재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 만주족 정권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경제적 곤란 이었습니다. 보통 만주족에 대해 막연히 '유목민족' 처럼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여진 ─ 만주족은 '수렵민족' 에 가깝습니다. 수렵으로 얻은 물건을 교역을 통해 팔고 필요한 물품을 사서 생활을 하는게 중요했는데, 만주 정권의 누르하치가 단시일 내에 거대 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요동의 제왕이었던 이성량이 뒷배를 봐주며 무순, 청하, 관전, 애양의 4개 관에서 맹렬하게 교역을 할 수 있었던 점도 있었습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후금 정권이 명나라와 적대하게 되면서 이러한 대중국 교역은 거의 끊기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해 당장 만주 정권에게 닥쳐오는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누르하치 시절부터  농업 경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당대에는 전쟁이 계속 되었던데다가, 여진과 한인의 공존 문제도 있고 수도도 요양에서 심양으로 옮겨가는등 여러모로 불확실한 면이 많아 농경에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1625년 이래로 요동 한인 인구의 개편, 몽고의 귀속에 따른 대규모 인구 증가, 더구나 기상 악화까지 더해 흉작이 겹치면서 후금의 경제상황은 위풍당당한 군사적 면모와는 달리 꽤 곪아가고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관련 기록 중에는 이런 언급도 있습니다.





 "나라가 굶주려 곡식 한 승(升)에 은 8량 값이나 되었다. 이 나라에 은은 많았으나 무역할 곳이 없어서 은의 값은 싸지고 여러가지 재화의 양은 비싸졌다. 좋은 말 한 필에 은 300량, 좋은 소 한 필에 은 100량, 무늬있는 비단 한 필에 은 150량, 도둑이 만연하여 사람을 죽이고 혼란스럽게 되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 영원성 전투까지 막 실패한 참이었기에,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太宗文皇帝實錄 권2 에서는, 1627년 즉위 직후 홍타이지는 원숭환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막대한 양의 예물을 요구했습니다. 여기까진 흔한 으름장으로 여길만하나 몇달 후 곧 액수를 반으로까지 줄이면서 또다시 예물을 요구했습니다. 처음의 요구는 금 십만량, 은 백만량, 비단 백만필을 주고, 화의가 성립된 이후에는 금 일만량, 은 십만량, 비단 10만필 등을 바칠 것을 요구했으나, 이후 이런 소리를 공연히 덧붙였던 것입니다.


 "귀국이 (예물을 보내기에) 힘이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면, 처음 화의를 맺는 예로서(예물 액수의) 반을 덜어도 됩니다."



당대 혼란에 대한 학술 논문의 묘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




人蔘과 疆域 : 后 金 - 淸의 강역 인식과 대외 관계의 변화 - 김선민 中



다음으로는 이 부분에 대해 관련된 소위 신청사(新淸史) 학파로 분류되는 외국 학자의 언급을 일부분 보겠습니다.



"누르하치가 국가 통합과 궁극적으로 명의 정복을 위해 전쟁 기계들을 건설하기 시작하자마자, 물류상의 병목현상은 극심해진다. 그가 경쟁하던 씨족 지도자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기' 로 통합했을 때, 그는 이 군대에 대한 보급 책임에 직면하게 된다. 가장 쉽게 새로운 보급 자원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인접한 조선과 랴오둥의 민족들이었다."

(중략)

"그러나 1621년의 랴우동 정복으로 사실상 만주족과 한인 사이의 갈등이 더 극심해지고, 더 심각한 생존 위기로 어이졌다. 불평등한 대우에 항거한 한인들의 반란도 식량 공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만주족은 이웃한 한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는지 걱정하고 돼지고기, 소금, 가지, 닭 등의 생산물을 먹을 때 조심해야 했다 …… 만주족은 1621년부터 162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동안 먹을 곡식이 없어서 곡심을 숨기려는 한인들에게서 짜내야만 했고, 긴급 구호 방편으로 전면적인 식량 배급을 시행해야 했다."

(중략)

"경제적 압박 아래에서 만주족은 자기네 가구의 한인을 착취했고, 이들을 노예로 다루면서 재산을 탈취했다. 1623년 랴오둥의 한인들은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건물에 불을 놓고 만주족 이웃을 독살하고 창고에서 곡물을 훔쳤다."


(중략)


"그러나 1627년 만주 국가는 '경제적 재앙' 의 문턱에 있었다. 1626년 처음으로 주요 전투에서 명의 군대에 패배한 것은 국가의 취약성을 심각하게 드러냈다. 한계에 달한 만주 경제는 늘어나는 인구를 가까스로 부양할 수 있을 뿐이어서, 군사 원정에 나선 대군을 보급하자면 그 군대가 승리 후 전리품을 모아야 했다."

(중략)

"1627년의 식량 위기는 가장 격심했는데, 곡물값이 만주 신(1.8석)당 여덟 냥, 즉 1623년의 여덞 배로 올랐고, 사람을 잡아먹고 강도 질을 한다는 흉문이 돌았다. 새로 항복한 백성들에게 줄 양식이 없었고 곡식 창고는 비워 있었다. 게다가 새로 이주해온 한인들에게 줄 땅도 없었다. 1635년과 1637년에 또 식량 위기가 닥쳤다. 군대의 보급 부족은 만주의 군사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말은 너무 지치고 약해져 적을 추격하지 못했다."


"랴오시에서 농업 생산을 늘리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부유한 지주들에게 가난한 이웃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라고 권고해도 대체로 우이독경이었으며, 만주족은 그들이 떨어져 나갈까 봐 저가에 곡식을 팔라고 강제할 수도 없었다. 조선은 다시 한번 매력적인 목표가 되었다."


(중략)

"그러나 약해지는 그의 군대가 (산해)관을 지키고 있는 중국의 사령관 오삼계에게 공격 받았고, 그는 오삼계의 군대를 이겨낼 수 없었다. 그는 단지 1644년의 행운으로 구원을 받았다. …… 그때 심각한 물자 공급의 제약으로 만주 국가는 거의 무너질 뻔했다."

─ 피터 퍼듀, 중국의 서진China Marches West: The Qing Conquest of Centural Eurasia 中



이러한 언급을 보면, 당시 만주족 정권의 경제적 위기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병자호란의 승리 이후 청나라가 조선에 요구한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게중에서도 온갖 자질구레할 정도의 생필품의 목록들을 일일히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조선에 요구했던 점이, 그 당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점으로도 보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병자호란은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침략전쟁' 입니다. 그런데 여러 매체의 언급을 보면 '내부의 비판' 에 치중한 나머지(게다가 가장 최악의 접근법으로, 현실 정치를 어거지로 당대에 맞춰 이에 맞게 입맛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조선이 ‘자초한 전쟁’ 이라는 식으로만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쟁은 서로의 상이한 입장이 충돌하여 발생하는 것이니, 한쪽의 입장만을 전제하고 본다면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참조

정묘, 병자호란과 동아시아 ─ 한명기
김한규 한중관계사 2권, 719~720쪽
人蔘과 疆域 : 后 金 - 淸의 강역 인식과 대외 관계의 변화 - 김선민
중국의 서진China Marches West: The Qing Conquest of Centural Eurasia - 피터 퍼듀
청(淸)과의 외교실상과 병자호란 ─ 오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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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8 16:09
수정 아이콘
글 잘 봤습니다..
이전에 있어서 임진왜란과는 달리 병자호란은 너무 조선의 일방적인 입장에서만 그려져 있어서 왜 그럴까 생각은 해보았는데
이러한 의견을 보니 아!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온니테란
13/06/08 16:20
수정 아이콘
임진왜란 얘기를 보니~ 조선중기때는 사림 중심이니 너무 내적인것만 강조했던게 결국 군사력을 늘리는데는 신경을 못쓴게 아쉽네요.
주변나라들은 계속 군사력을 키웠던 상황이였고.. 결국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조선의 고통이 시작된거 같네요.
13/06/08 16:11
수정 아이콘
흐엌 여기서 신불해님을 보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모 갤러리에도 글 좀 자주 남겨주세요 크크. 글쓴이부터 눈에 띄어서 선리플 후감상합니다.
홍승식
13/06/08 16:25
수정 아이콘
저도 신불해님 닉네임을 보니 정말 반갑네요.
피지알 자게가 점점 풍성해지는 것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신불해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릴게요. ^^
온니테란
13/06/08 16:16
수정 아이콘
중립외교에서 친명배금으로 정책이 변화되었고 금이 청으로 됐기때문에 청을 무시하는 태도를 계속 유지하다가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났다고
알고있었는데, 청나라입장에서 보니 경제적인 어려운상황을 극복하려고 전쟁을 했다는 말도 맞는거같네요.
순두부
13/06/08 16:28
수정 아이콘
사실 생각해보면 조선이 개겨서 전쟁이 난거다 조선이 잘못했다는 시각이 좀 웃긴거죠

학교 짱이 시비를 걸고 빵사오라고 해서 싫다고 했다가 얻어맞았는데 때린놈보다 맞은놈이 개긴게 잘못이라고 하니.....
대통령 문재인
13/06/08 16:28
수정 아이콘
청이 조선에 요구했던 목록들 보면서 쪼잔하다고 느꼇었는데 나름 사정이 있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더미짱
13/06/08 16:29
수정 아이콘
이런 각도에서 봐도 재미있군요.
작년이었나 발표회에서 병제사 공부하시는 선생님께서 전력만 놓고 보면 명이 산해관을 뚫릴 것이 아니었다. 라고 이야기하셔서
우리는 생각보다 명을 약하게, 청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 오타 몇개만 지적하면 제조지은->재조지은, 김선민 선생님 논문 后金->後金 이 있네요.(이런거 지적안하는데 아무래도 학술용어다 보니 눈에 잡히네요 ㅠㅠ)
市民 OUTIS
13/06/08 21:25
수정 아이콘
한자 后는 약(略)자로 같은 거(后=後)로 알고 있습니다.
펠릭스
13/06/08 16:32
수정 아이콘
반갑습니다. 피지알에서 뵙다니 영광입니다.
후란시느
13/06/08 16:35
수정 아이콘
빨리 치고 빠진게 명나라의 견제도 견제지만 그냥 전쟁비용 아끼려고 였을수도 있겠군요...
Je ne sais quoi
13/06/08 16:4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재밋네요
알리스타
13/06/08 16:43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다.. 글쓴 분의 의견에 덧붙이자면
애초에 인조의 친명배금정책 -> 청을 자극함. 이 논리부터가 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은 1. 반정 정당화를 위한 내부적 프로파간다 2. 반정 승인을 위한 대명 외교용 정책 의 관점에서 쓰인 정책이고
실제 대후금관계의 실무적 측면에 있어서는 광해군대의 정책에서 그다지 바꾼 점이 없습니다.
당시 비변사의 대신들부터가 조선이 후금과 맞붙으면 승산이 별로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죠.
눈시BBbr
13/06/08 16:53
수정 아이콘
이런 걸 알아가면서 병자호란은 필연이었다는 쪽으로 기울게 되더군요. 광해군이 계속 있었다 하더라도 전쟁 안 벌이려면 뜯길대로 뜯기고 황제국으로 알아서 섬겨줘야 가능했을 수준... 아마 그렇게 됐다면 중립실리외교는 무슨 아예 나라를 갖다바쳤다는 쪽으로 욕 먹고 있겠죠.
아무튼 신불해님 정말 반갑습니다 ( __)!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인사는 처음 드리네요.
Siriuslee
13/06/08 17:02
수정 아이콘
쌍령에서 모랄빵. . . .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조선군이 후방견제만 제대로 했으면

제2의 살수대첩이었을수도 있지만

쌍령과 강화도함락의 크리티컬이 터지면서
13/06/08 17:19
수정 아이콘
홍건족도 배고파서 압록강을 넘었지만 최영 이방실 이성계등에 격파되죠 홍건족의 난급으로 끝날게 병자호란 급이 된거에 집권세력의 책임이 없을 수는 없죠
눈시BBbr
13/06/08 17:25
수정 아이콘
없을 순 없죠. 다만 조선의 외교 실패라기엔 청의 사정이 너무 크죠. 뭐 그 과정에서 실책은 있지만 광해군 중립외교 오오와 함께 인조가 전쟁을 불렀다 이런 수준의 주장이 문제인 거고 본문도 그걸 짚는 것이구요. 전쟁 발발 원인보단 대비나 전쟁 중의 실책을 더 따져봐야 될 부분입니다.
그리고 홍건적과 병자호란은 많이 다르죠 = =;
13/06/08 18:47
수정 아이콘
병자호란은 원오브뎀이 아니죠 단군이래 이런 난리는 없었습니다 명은 이자성이 멸망시켰죠 자멸하고 무주공산이었죠 청은 만리장성도 끝내 넘지 못했죠 오삼계가 열어주죠 홍건족이 세운 나라가 명나라죠 다를 것도 없습니다 생필품도 부족한 적들에게 병자호란으로 병자호란이 되게끔 한 이유가 청에 있다고 도저히 생각 안됩니다 조선이 하기에 따라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눈시BBbr
13/06/08 19:00
수정 아이콘
http://blindbard.egloos.com/459249
단군이래 이런 난리라 하면 오히려 나올 건 몽고의 침략일 겁니다. 수십년 동안 나라가 초토화되고 지배층은 그 동안 강화도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니까요. 인조도 정묘호란 때부터 이러고 한반도의 일은 세금만 거두고 무시했다면 삼전도의 굴욕은 없었겠죠
오히려 병자호란은 홍타이지가 정말 머리를 잘 쓴 전쟁입니다. 이전의 한반도 침공과 비교해서 이 정도로 정교한 작전이 나온 건 나당, 여요전쟁과 비교해도 원오브뎀입니다. 이게 그저 우연히 나온 결과일 순 없는 거죠. 당장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하지 못 한 건 거의 하루도 안 된 차이였습니다. 그 하루차이도 극복하지 못 한 걸 문제삼을 순 있지만, 이전의 역사에서 이 정도 여유도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전쟁 발발부터 전쟁의 진행까지, 막고 대비하고 싸움에 있어 실책을 탓할 수 있을지언정 이전 역사와 비교해서 여유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막을 수 있더라도 그 난이도가 너무 높았어요
나이트해머
13/06/08 20:14
수정 아이콘
단군이래 이런 난리요? 거 요나라 서러운 이야기 하지 맙시다. 몽골은 더 먈할 나위도 없고요.
13/06/08 17:33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분석이군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swordfish
13/06/08 17:59
수정 아이콘
정말 오삼계는 세상을 바꾼 인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Practice
13/06/08 18:43
수정 아이콘
크 그러잖아도 피지알 자게가 역사를 사랑하시는 분들로 인해 풍성했는데 그 인명의 목록에 중요한 하나의 이름이 추가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루호도 류이
13/06/08 20:25
수정 아이콘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 침략전쟁이라고는 해도 애시당초 수십만에 이르는 '군대' 가 원정을 가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잖아요. 더군다나 전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였구요. 그렇다면 청의 입장에서 조선을 치는데 드는 '비용' 과 조선을 침략함으로서 얻어지는 '이득' 중 뭐가 더 큰지도 비교해야 정확한 분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의 일을 제한된 사료만 가지고 추측하는것이 절대로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전쟁도 일종의 '사업' 으로 생각한다면 비용-편익 분석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3/06/08 20:52
수정 아이콘
전쟁은 '생각보다는' 편익이 비용보다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수많은 정복 국가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거겠죠.
나이트해머
13/06/08 21:45
수정 아이콘
근대와 근대 이전의 군대의 차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근대 시기 군대와 이전시대 군대의 최대 차이점은 바로 군대가 전투를 위해 필요로 하는 물자가 급증함과 동시에 현지에서의 보급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즉 비용의 크기가 커진 거지요. 이는 반대로 말해 근대 이전의 군대의 비용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현지에서의 보급 충당도 가능하고. 반면 편익은 근대와 근대 이전이 크게 차이가 없고요.

즉, 근대 이전 시대에는 먼저 강력한 군대를 구축하고, 그 군대로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전쟁을 수행하어 그 편익으로 군대를 유지하면서 차익으로 국가까지 발전시킨다는 식의 운영이 가능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케이스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이지만, 그외에도 여럿 존재하죠. 고구려 광개토대왕도 이런식이 아닐까 생각되고요.

물론 이런식의 국가 운영은 외줄타기와 같아 한번이라도 전쟁에 실패한다거나 정상적인 국가로의 전환 타이밍을 놓치면 나라가 망하죠. 대표적익 케이스가 아틸라의 훈족이 있겠군요. 체제 전환 이전에 아틸라가 죽고 전쟁이 멈추자 훈족 및 종속 부족들의 군대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바람에 자멸하고 말았죠.
루크레티아
13/06/08 20:36
수정 아이콘
애초에 전쟁의 목적 자체가 '말 안 듣는 놈들 버릇을 고쳐주자' 보다는 '삥을 뜯자' 에 더 집중이 되어 있었죠.
市民 OUTIS
13/06/08 21:15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때문에 엠팍에 가입했는데... 이곳에서 보게 되네요. 잘 읽겠습니다.
Zenosblead
13/06/08 21:27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옛날 알고 있던 지식과 대입해봐도 설득력이 있네요. 그러면 산대적으로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는 타격이 있지 않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어차피 인조대에서든 광해군대에서든 전쟁이 '필연적'이었다면 상대적으로 외교정책으로 재평가받아왔던 광해군의 입지가 조금은 좁아지비 않을까 싶은데요.
나이트해머
13/06/08 21:48
수정 아이콘
사실 광해군에 대한 평가(광해군 외교 짱! 은 일제시기부터 90년대까지의 통설에 가깝습니다.)는 2천년대부터 이미 슬슬 부정적으로 전환되는 느낌이죠.
빅토리고
13/07/12 19:58
수정 아이콘
반대로 2천년대 들어서 급격하게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이 많지 않나요?? 영화 광해가 개봉하기도 전부터 2천년대 이후 광해군 재평가라고 하면서 글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빅토리고
13/07/12 19:57
수정 아이콘
이런점을 감안해도 광해군의 외교적 판단은 정확했다고 봐야죠. 광해군이라면 어쨌든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봤으니 공물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병자호란 발생후에 강화도로 도망갈 생각만 했다가 그것마저 간파당해서 도망가지도 못한 인조를 생각하면.....
몽키.D.루피
13/06/08 22:15
수정 아이콘
마치 골드버그가 wwe에 데뷔한 느낌이랄까..
키루신
13/06/09 00:20
수정 아이콘
저도 고등학교때 떠오르는 태양 청나라와 지는 해 명나라, 그리고 광해군은 그 중에 실리를 잘 택했다고
배운 기억이 나네요. 오삼계 같은건 안 알려주고, 명나라는 청에 의해 멸망했다고 역사왜곡 -_ -;
내일은
13/06/09 01:44
수정 아이콘
그런데 중국 역사를 보면 유목민족이 너무 강력해져 한족이 이를 못막고 유목민족에게 정복당했다기 보다는
이미 내부적으로 병크가 너무 심한 상태라 유목 민족이 커지는 걸 막지 못하고 정복 당하는 수순입니다.
한족 통일 국가가 세워지면 사실 그 규모나 경제력으로 유목 민족의 노략질 수준이라면 모를까 지속적인 침입 막지 못할 수준은 아니고, 워낙 경제력 차이가 커서 유목민족한테 몇 번 지더라도 계속해서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이 있습니다. 정 못이길 것 같으면 장벽 쌓고 버티면서 이이제이 정책으로 서로 싸우게 만드는 방법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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