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6/03/09 22:08:25
Name 누구겠소
Subject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싸움이 나는 장면을 봤다. 장님과 잡상인 사이에 벌어진 싸움이었다.

잡상인은 화장실 세면대 하수구에 걸린 머리카락 및 이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긴 막대형태의 플라스틱 제품을 파는 사람이었고, 장님은 선글라스를 끼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왜 시비가 붙었는지는 모르나 잡상인은 장님이 사실은 장님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며 장님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장님은 자신의 눈이 진실로 멀었음을 강조함과 더불어 잡상인의 지하철에서의 허가되지 않은 판매에 대해 가열찬 비판을 가했다.

그 싸움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어떤 사람은 문득 장님이 정말 장님일지가 궁금해져서 참을 수가 없었나보다. 그래 갑자기 일어나서 장님을 향해 주먹을 뻗었더니 장님이 화들짝 놀라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싸움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등장한 공격자 때문에 모두 놀랐으며 곧 장님이 장님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잡상인은 의기양양해졌고 장님은 씩씩거릴 뿐이었다. 이제 싸움이 끝나나 싶었는데 궁금증을 해소해서 흐뭇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가던 공격자에게 어떤 할아버지가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소리를 했다. 가짜 장님은 갑자기 주저앉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이먹고 새파란 것들에게 별꼴 다본다는 거였다.

정말이지 비교적 젊었던, 장님에게 주먹질 하는 시늉을 했던 청년은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댁들이 장님의 고통을 아냐며, 우리 아버지가 진짜 장님인데 장님인척 하는 것들은 정말 참을수가 없다고 그러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 청년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여자가 아 씨발 정말 짜증나서 죽겠네, 다들 좀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하지 좀 말라고 씹어 뱉듯이 조곤조곤 말했다.

이제 지하철은 약한 냉방에 힘입어, 묘한 흥분의 열기로 가득찬 상태에서, 마찬가지로 묘한 몇초의 정적이 흘렀다. 무슨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몇몇은 벌써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 몇초를 틈타 마침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청년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았으니 이제는 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잠을 청하고 한시간가량 지나 신기하게도 내가 내릴 역에서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 아까의 그 싸움은 꿈이었는가 생각될정도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핏자국 같은건 없었으니 다행이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5-13 18:30)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누구겠소
16/06/05 17:08
수정 아이콘
주여름님, 초탈님, TheLonelyBiscuit님, 리나시타님, zenith님, 지앞영소녀시대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은 더욱 고맙습니다
누구겠소
16/03/09 22:09
수정 아이콘
글의 맛을 살리기 위해 반말로 작성하였습니다. 보기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서연아빠
16/03/09 22:11
수정 아이콘
되게 현실적이네요...논픽션이라고해도 믿을정도로요
누구겠소
16/03/09 22:22
수정 아이콘
예전에 지하철에서 잡상인이랑 장님이 마주쳤을때 묘한 신경전을 벌인다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16/03/09 22:13
수정 아이콘
가짜 장님일 거라고 윽박지르는 잡상인이나
장님흉내를 내면서 한푼벌려고 하는 가짜 장님이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할배나
누구겠소
16/03/09 22:23
수정 아이콘
씁쓸하지요
대문과드래곤
16/03/09 22:24
수정 아이콘
주먹을 내지른 청년도 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 기묘한 상황 기묘한 글이네요
사과씨
16/03/09 22:17
수정 아이콘
은유로 가득찬 우화를 읽은 느낌이네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누구겠소
16/03/09 22:23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클랜드에이스
16/03/09 22:22
수정 아이콘
느낌있는 글이네요. 필력이 좋으십니다 흐흐.
누구겠소
16/03/09 22:23
수정 아이콘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16/03/09 22:23
수정 아이콘
와 잘썼네요. 재밌어요.
누구겠소
16/03/09 22:24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으셨다니 마음이 좋습니다.
Jedi Woon
16/03/09 22:25
수정 아이콘
이게 픽션이라니 필력이 상당하십니다.
누구겠소
16/03/09 23:25
수정 아이콘
어유 감사합니다.
약팔러갑니다
16/03/09 22:46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군요 크크
누구겠소
16/03/09 23:26
수정 아이콘
총체적 난국인 상황을 (픽션에서는) 좋아합니다. 크크
파란아게하
16/03/09 23:02
수정 아이콘
앉은 사람이 승리자죠.
누구겠소
16/03/09 23:27
수정 아이콘
어떨땐 정말 간절하죠.
마티치
16/03/09 23:06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크크

예전에 잠실역에서 복정역으로 가기 위해 8호선 열차를 탔는데
타자마자 씩씩거리며 자리를 맡고 그 옆자리에 자기 노트 자리를 마련한 뒤
옆 자리(노트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에게 온갖 욕를 하던 분과
지하철이 출발하자마자 눕는다 - 일어난다 - 제자리 점프 - 다시 눕는다 를 무한 반복하는 분이 계셨죠.

글을 읽다보니 그 떄 기억이 나네요. 흐흐
누구겠소
16/03/09 23:27
수정 아이콘
정말 별별 사람이 많아요 크크
Break Away
16/03/09 23:10
수정 아이콘
왠지 비슷한 장면을 1호선에서 본것 같아
누구겠소
16/03/09 23:28
수정 아이콘
보셨을지도 모릅니다. 1호선이라면......
16/03/09 23:16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누구겠소
16/03/09 23:28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마스터충달
16/03/09 23:20
수정 아이콘
총체적 난국이네요 크크 (2)
잘 읽고 갑니다. 정말 생각이 톡톡한 글이에요.
누구겠소
16/03/09 23:29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르프세주
16/03/09 23:21
수정 아이콘
픽션이라면 아주 글을 잘쓰시는군요
누구겠소
16/03/09 23:3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도시의미학
16/03/09 23:43
수정 아이콘
저번에도 댓글을 썼었지만 글이 진짜 흡입력이 있어요. 단어 하나 허투로 넘기지 않고 집중에서 보게 됩니다.
뒷 끝이 씁쓸해 지는 글이지만 재밌게 읽었습니다.
누구겠소
16/03/10 00:24
수정 아이콘
칭찬은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피오라
16/03/09 23:45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을 쓰고싶어요. 잘 읽고 갑니다
누구겠소
16/03/10 00:25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리듬파워근성
16/03/09 23:58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겠소
16/03/10 00:25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드립니다!
16/03/10 00:07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누구겠소
16/03/10 00:26
수정 아이콘
재미있다는 평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16/03/10 00:17
수정 아이콘
글솜씨가 대단하시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누구겠소
16/03/10 00:26
수정 아이콘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gt. Hammer
16/03/10 00:17
수정 아이콘
그야말로 개이득!
재밌네요.
누구겠소
16/03/10 00:27
수정 아이콘
개이득 크크 감사합니다
적당히해라
16/03/10 00:2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 너무 좋아요
누구겠소
16/03/10 00:28
수정 아이콘
저도 단편을 좋아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피지알볼로
16/03/10 00:23
수정 아이콘
마치 우리나라의 상황 같네요 흐흐
누구겠소
16/03/10 00:28
수정 아이콘
그렇게 생각하니 좀 우울하네요 크크크
댓글 감사합니다.
구밀복검
16/03/10 00:43
수정 아이콘
이게 커뮤니티고 PGR이죠.
누구겠소
16/03/10 09:15
수정 아이콘
이래야 내 피지알이지 크크
감사합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6/03/10 00:48
수정 아이콘
예전 글들도 찾아봤는데 글솜씨 맛깔나네요.
누구겠소
16/03/10 09:16
수정 아이콘
예전 글까지 읽어주시다니 고맙습니다.
16/03/10 00:51
수정 아이콘
이야~글 잘쓰시네요.추천합니다.하하
누구겠소
16/03/10 09:1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Tristana
16/03/10 01:11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네요.
글 어렵게 쓰는 많은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합니다. 흐흐
누구겠소
16/03/10 09:18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tannenbaum
16/03/10 01:24
수정 아이콘
님 저랑 출판사 차려요.
이런 필력 위트 센스 필력 표현력.... 저 쫌만 주세요 ㅜㅜ
누구겠소
16/03/10 09:19
수정 아이콘
글로 돈을 벌기에는 실력이 역부족인거 같습니다ㅠㅠ 칭찬 감사합니다.
김퐁퐁
16/03/10 01:25
수정 아이콘
아 짧은 시간인데 정말 집중해서 봤어요. 앞으로도 글 많이 남겨주세요!
누구겠소
16/03/10 09:20
수정 아이콘
댓글 고맙습니다. 글쓰기에 큰 원동력이 됩니다.
작은기린
16/03/10 02:15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누구겠소
16/03/10 09:21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Nasty breaking B
16/03/10 03:39
수정 아이콘
지난 번 중고서점 글도 그렇고 이번 글도 그렇고 짧은 글이지만 몰입해서 읽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누구겠소
16/03/10 09:24
수정 아이콘
몰입하게 되는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16/03/10 04:05
수정 아이콘
글 잘 쓰시는 분들 부러워요 ㅠㅠ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누구겠소
16/03/10 09:25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드립니다.
네오유키
16/03/10 04:32
수정 아이콘
읽기는 가볍지만 생각은 길게 하게되는 글을 좋아합니다. 이 글이 그렇네요.
누구겠소
16/03/10 09:26
수정 아이콘
감상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16/03/10 08:35
수정 아이콘
지하철이 남녀노소 별의별 사람들이 참 많은거 같아요.
누구겠소
16/03/10 09:29
수정 아이콘
정말로요. 생각해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타는것일텐데...
16/03/10 08:50
수정 아이콘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그 상황이 그려지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누구겠소
16/03/10 09:2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곧내려갈게요
16/03/10 09:48
수정 아이콘
글 자주 써주세요. 굽신굽신...
누구겠소
16/03/10 10:09
수정 아이콘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tarscape
16/03/10 09:54
수정 아이콘
끝맛이 좋네요. 깔끔한 마무리예요(상황은 윗분들 말마따나 총체적 난국이지만 크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겠소
16/03/10 10:10
수정 아이콘
제 글은 늘 마무리가 허무하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깔끔하게 읽혔다니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wish buRn
16/03/10 13:25
수정 아이콘
며칠 시끄러웠는데 요거 하나 건졌네요 크크
누구겠소
16/03/10 15:37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체적고민
16/03/10 13:34
수정 아이콘
아 감탄하게 되네요.
누구겠소
16/03/10 15:37
수정 아이콘
좋은 평가 고맙습니다.
16/03/10 15:14
수정 아이콘
결말 크크크크크크크크
누구겠소
16/03/10 15:38
수정 아이콘
크크 앉는게 장땡이죠.
DavidVilla
16/03/10 15:26
수정 아이콘
와~ 잘 읽었습니다! 이 글도 좋지만 다음 글도 기대하게 만드는데요? 기다릴게요~
누구겠소
16/03/10 15:38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글쓰기에 힘이 될 거 같습니다.
락샤사
16/03/20 14:49
수정 아이콘
마무리가 아주 크크 잘봤어요.
누구겠소
16/03/20 15:04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크
주여름
16/05/14 17:32
수정 아이콘
대답합니다. 크크 잘봤습니다.
16/05/14 19:53
수정 아이콘
이건 뭐... 단편영화 한편이네요. 크크크
TheLonelyBiscuit
16/05/15 21:59
수정 아이콘
한명씩 등장하는게 마치 로열럼블을 보는듯 하군요.
리나시타
16/05/16 17:04
수정 아이콘
마무리가 정말 만족스러운 글이네요
역시 지하철은 앉아서 가야죠
16/05/16 17:43
수정 아이콘
진짜 필력보소...라는 말이 나오네요. 어휴
지앞영소녀시대
16/05/16 20:40
수정 아이콘
저 순간 지하철 탔다가 뛰쳐나왔습니다 대박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공지 추천게시판을 재가동합니다. [6] 노틸러스 23/06/01 7923
3574 무지의 합리성 [22] 구텐베르크1463 22/08/24 1463
3573 [테크히스토리] 회오리 오븐 vs 레이더레인지 [14] Fig.11284 22/08/22 1284
3572 교회의 쓸모(feat. 불법주정차) [160] 활자중독자1579 22/08/21 1579
3571 국가 기밀 자료급인 홍수 위험 지도 [45] 굄성1507 22/08/19 1507
3570 스티브 유 - 그냥 문득 떠오른 그날의 기억 [26] 겨울삼각형1327 22/08/18 1327
3569 정권의 성향과 공무원 선발 - 일제 패망 전후의 고등문관시험 시험문제 [19] comet2111582 22/08/18 11582
3568 부모님과 대화를 시작해보자! [30] 저글링앞다리11103 22/08/17 11103
3567 "그래서 누가 칼들고 협박했냐" [158] 노익장11629 22/08/16 11629
3566 방콕에서 자고 먹고 [43] chilling11048 22/08/16 11048
3565 광복절맞이 뻘글: 8월 15일이 정말 "그 날"일까요? [41] Nacht10652 22/08/15 10652
3564 [역사] 광복절 특집(?) 일제 강점기 어느 고학생의 삶 [13] comet2112558 22/08/15 12558
3563 무술이야기 복싱! 권투! [11] 제3지대12558 22/08/14 12558
3562 수호지, 명나라 마블 [35] 구텐베르크12660 22/08/13 12660
3561 [테크히스토리] 선풍기와 에어서큘레이터의 차이를 아시나요? / 선풍기의 역사 [17] Fig.112151 22/08/12 12151
3560 "엄마는 그런 거 못보겠어" [22] 노익장13099 22/08/10 13099
3559 [리뷰] 피식대학 05학번 시리즈 - 추억팔이에서 공감 다큐로 [20] 라울리스타9446 22/08/08 9446
3558 어제 달려본 소감+다이어트진행상황 (아무래도 우주전쟁님이 날 속인거 같아!) [19] Lord Be Goja8451 22/08/06 8451
3557 늘 그렇듯 집에서 마시는 별거 없는 혼술 모음입니다.jpg [30] insane8238 22/08/06 8238
3556 [역사] 괴뢰국가 만주국의 최고 학부 건국대학의 조선인 유학생들 [13] comet218545 22/08/05 8545
3555 쉬지 않고 40분 달리기에 성공했습니다... [39] 우주전쟁8369 22/08/04 8369
3554 (풀스포) 탑건: 매버릭, '친절한 매버릭 투어' [28] Farce4602 22/08/04 4602
3553 특전사의 연말 선물 [37] 북고양이4699 22/07/31 469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