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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0/08/21 01:05:38
Name   becker
Subject   about 해설.
밑에 해설에 관련된 글이 있어서 댓글로 남길까 했지만 이미 댓글이 너무 달려있고, 또 댓글보다는 긴 글이 필요할것 같아서 이렇게 따로 짧게 적어봅니다.


- 스타크래프트 vs 스포츠

보통 해설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는 대부분 승패가 점수로 갈립니다. 얼마나 좋은 경기를 펼치든, 졸전이였든, 일단 경기장위의 스코어는 모든것을 판단하게 해줍니다. 야구나 축구를 처음보는 꼬마나 여자분들도 별 거리낌없이 접근할수 있는 이유가 승패의 차이가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스타크래프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토너먼트라던가 시즌의 기록은 남을지 언정, 그 한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것은 상대방의 항복선언이 전부입니다.

바꿔 말하면, 승리를 거두기 위한 모든 게이머들의 목적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 한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상대방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것"


앞서 대부분의 스포츠라고 이야기 했는데, 저러한 목적을 가지고 승부를 겨루는 종목도 꽤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복싱, UFC 같은 격투종목입니다. 그렇지만 격투종목이 확실한 승패의 스코어가 없다고 경기를 보는것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격투종목의 모든 행동들은 링안에서 펼쳐집니다. 해설자, 관람객 모두 선수가 경기의 모든것들을 볼수 있기 때문에 승패의 판단은 그만큼 간단하고 확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의 경기를 보면서 유불리를 논하는것은, 다른 스포츠 종목들에 비해 더 어렵고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원래 규칙부터 추상적이고, 보이는것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림도 그려서 스스로 유추해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 저저전 해설 vs 테테전 해설

앞의 이론을 되새기면서 질문해봅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가장 해설하기 쉬운 종족전은? 반대로 가장 어려운 종족전은?

전자의 경우는 두말할것 없이 저저전이라고 봅니다. 저그 대 저그전만큼 빌드상성이 확실하고, 유불리 판단이 간단하고, 플레잉 타임이 짧은 종족전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기중에 일어나는 상호간의 액션자체가 적기때문에 한 화면을 통해 거의 모든것을 유추할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온게임넷 10주년 기념 뒷담화에서 해설자들이 만장일치로 저저전을 제일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짧아서가 아니라, 명확한 해설을 할수 있기에 그렇겠다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반대로 해설하기 가장 어려운 종족전은 테란 대 테란전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경기시간이 길어서만은 아닙니다. 보통 스타크래프트의 유불리를 측정하는데 자원상황/병력상황/인구수 등만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면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테테전의 경우는 또다른 변수들이 있습니다. 탱크vs탱크의 긴 사정거리 싸움이 낳은 끊임없는 병력의 움직임, 동족전 특성상 동등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더더욱 치열한 멀티 공방전,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어 끝없이 바뀔수 있는 판의 흐름등은 640x480p의 작은 화면속에 다 보기엔 너무나 부족합니다.


테테전을 보는것은 비유하자면, 한쪽 귀(모퉁이)만을 보면서 전체의 흐름을 판단해야 하는 바둑과도 같습니다.






- 선수출신 해설자들이 선호받는 이유

제한된 정보로 전체의 흐름을 유추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가? 많은 경험을 갖춰야함은 두말할것도 없습니다. 다만, 좋은 해설을 위해선 다른이들보다 더 멀리볼수 있고, 보통의 관객들이 보는 옵저빙 화면을 넘어 그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프로게이머 출신의 대부분의 해설자들이 방송국에서 선호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들은 하루에 수십게임씩을 통해 수많은 상황을 겪어왔고, 그것이 경험으로 남아 단순히 보여지는 짧은 상황에서도 큰 그림을 그릴줄 알고, 더 나아가 역전의 수, 굳히기의 수까지 정말 빠르게 분석해왔습니다. 한승엽, 김정민같이 화려하진 않았더라도 정석을 추구했던 테란유저들은 그들의 플레이스타일만큼 경기를 곧이곧대로 분석하는것이 가능했고, 프로토스 출신인 강민/박용욱해설의 경우는 테테전은 주종이 아니라 미흡할 지 언정 프로토스전을 보는 눈만큼은 날카롭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사실 비선수출신 해설자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불리한 스탠스에서 출발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프로게이머들처럼 하루에 20~30게임씩 하라고 주문할 수도 없구요. 정확히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앞으로 비선수출신의 해설자를 보는일은 정말 어려울것이라는 말에는 일리가 있으며, 빠르게 급변하는 트렌드속에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해설을 하는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가장 주가를 높이고 있는 해설자는 놀랍게도 비선수 출신입니다.




- 이승원, 돌아온 무당해설.

올해 STX와 T1의 플레이오프 2차전 에이스 결정전, 김구현과 정명훈이 매치포인트에서 만났습니다. 초반 김구현의 찌르기에 꽤나 많은 득점을 했었고, 불리해진 정명훈이 상황을 타개하기위해 빠른 트리플을 가져갑니다. 김구현은 곧이어 본진으로는 리버견제, 트리플에는 드라군 푸쉬를 통해 승부가 많이 기울기 시작할 무렵, 무엇을 해도 김구현이 할만하다고 생각할 순간이였습니다. 이 때, 이승원해설은 이렇게 상황정리를 합니다.

"...이제 셔틀이 추가적으로 스피드업까지 됐기때문에 수비를 더해야겠구나 이런생각인데, 제가보기에는 투리버의 속업셔틀을 활용하는것보다 게이트웨이 확보를 하면서 조금 더 이제 원초적인 지상물량의 힘으로 압박하는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지금도 굉장히 까다로운 투 셔틀, 속업셔틀이지만 그렇지만 마인밟고 죽을수도 있구요, 골리앗에 의해서 막힐수도 있고, 그런겁니다. 차라리 게이트를 늘리는게 낫지 않나,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몇 초뒤에 정명훈의 본진에 정확히 투리버와 질럿2기가 떨어집니다. 결과는 토스의 견제 병력이 노킬 올다이. 개인적으로 해설에 소름이 돋은적은 저 때가 처음이였습니다.


한때 상황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예언같이 맞아떨어진다고 하여 "무당해설가" 라고 불리우던 이승원 해설이였으나, 어느순간부터는 강민-한승엽-김정민같은 여타 게이머출신 해설자들에게 빛이 바래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순간부턴가 이승원의 무당해설은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MSL은 선수포장을 할줄 모른다"라는 비판이 거셌을 한때는 주춤하기도 하였으나, 해설자로서의 자신의 주특기인 냉철한 판단과 정확한 전달력을 더욱 더 갈고 닦아 2010년 하반기부터 다시 작두타는 해설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궁금합니다. 매일 스타를 하시는건지,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상황판단이 개쩔게(?) 됐는지.



- 엄재경 vs 이승원, 떼려야 뗄 수 없는.

좋든 싫든 사람은 언제나 다른사람들과 비교를 받고 살아갑니다. 옆집아들, 앞집누나, 사촌동생에서 부터 시작해 인물간의 비교는 사회에서 더더욱 심해집니다. 거기에 "프로"라는 이름을 다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겠지요.

엄재경/이승원, 이 두 해설은 원년 스타리그와 KPGA때부터, 비록 방송사는 다르지만 오랜 기간동안, 그것도 '비선수' 출신으로 이 바닥에서 장인으로 자리매김한 인물들입니다. 포장의 온게임넷/최강자 산실의 엠비시게임과 같이 잘 알려진 리그의 성격은 어쩌면 이 두 해설의 특징을 그대로 빼닮은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다른 특징때문에 한 리그를 다른 리그보다 더 선호하는 경우도 생기고, 그래서 방송국 빠가 생기면서 해설자들간의 비교도 더더욱 심해지고 원색적인 비난도 거칠었던 때도 있습니다.

결국엔 해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해설이 각광받을때 다른 해설이 재미없다고 비판받을때도 있고, 정 반대로 이 해설은 참 정확한데 저 해설은 포장하기에 급급하다고 더 튀어 보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온게임넷의 해설진들이 다른데보다 유난히 더 비판받았던 이유도 최근의 이승원 해설의 물오른 능력, 거기에 같은 테테전 명경기였던 목요일의 MSL 후폭풍이 합쳐져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옆동네는 잘 해주던데 왜 이 동네는 못해주지? 저쪽 해설자도 프로게이머 출신은 아니던데??" 이런 심리가 섞였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저런 흐름을 다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완소엄빠입니다만, 오늘만큼은 저도 실망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테테전 보는것, 참 어려운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경기 내적인 설명이 40여분 거의 없이 "가속도와 rpm"이야기"와 같은 비유가 태반이였고, 가장 실망했었던 점은 경기 중후반부부터는 해설자들도 상황판단이 어려웠는지 말수가 급격히 적어지기도 했습니다. 뭐랄까, PC방 예선때 갑작스레 화면이 전환되었을 무렵 상황판단을 하기위해 해설자들이 말을 아끼던 상황이 오버랩 되기도 했구요. 누가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정확하게 보이지가 않아서 나온 해프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온게임넷의 비유와 포장은 예찬합니다만, 그래도 매니아들도 공감할수 있는 내용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노력이(특히 테테전에서)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반팬도 팬이지만 매니아도 팬이니까요.  (덧붙혀서 말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엄재경 해설이 이영호편을 든다...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설사 어느정도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존 최강 이영호니까" 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김태형 해설위원이 한때 너무 해설을 못한다고 비난받던 무렵 스스로 한 게임단 숙소에서 합숙생활을 하면서 경기보는 눈을 키운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후부터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더 나은 수준의 해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호응을 얻기도 했구요. 팬들의 목소리는 원색적인 비난이 아니라 좀 더 퀄리티 높은 해설을 듣고싶은 욕심에서 나오는 부탁입니다. 좀 더 나은 해설을 기대합니다.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1-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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