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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2/11 19:13:29
Name   sylent
Subject   [sylent의 B급칼럼] ‘탈정치적’으로 바라본 임요환
[sylent의 B급칼럼]은 월드컵보다 스타리그를 좋아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물량전 보다는 깜짝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올인’ 전략에 환호하는 sylent(박종화)와 그에 못지않게 스타리그를 사랑하지만, 안정적인 그리고 정석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정착되는 그날을 꿈꾸며 맵과 종족의 밸런스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강조하는 왕일(김현준)이 나눈 스타리그에 대한 솔직담백한 대화를 가공해 포장한 B급 담론이다.


[sylent의 B급칼럼] ‘탈정치적’으로 바라본 임요환


묵은 상처를 다시 한 번 벌려 젖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는 [EVER 2004 스타리그]의 빚을 청산하지 못한채, 스스로 낳은 ‘괴물’ 최연성 선수를 [신한은행 2005-2006 스타리그]의 준결승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촘촘한 전장 속에 무엇에 홀린 듯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주하는 두 선수의, 지옥처럼 괴롭고 천국처럼 지루했던 승부를 팬들은 탐미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안경을 벗은 임요환 선수가 최연성 선수에게 힘든 악수를 청했을 때, 맞잡은 두 선수의 손을 통해 테란이라는 종족의 미래가 올드보이로부터 뉴가이에게 전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황제의 분발은 여기까지구나.’ 하지만 이내 이런 기분에 익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 ‘사신’ 오영종 선수에게 [SO1 2005 스타리그]의 왕좌를 넘겨주었을 때도, ‘가림토스’ 김동수 선수와 ‘영웅’ 박정석 선수에게 [스카이 스타리그] 시리즈를 모조리 양보했을 때도 나는(혹은 우리는)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했었다. 거울을 보고 대답을 요구해보자. 왜 그랬을까?

그는 너무 오랫동안 정상에 있었고, 여전히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은, 끊임없는 전복을 통한 권력의 균형을 바라는 많은 스타리그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경기력이나 승부에 관련된 무엇 이외의 요소를 개입시켜 선수를 바라보는 것만큼 어리석고 때로는 폭력적인 태도도 없지만, 우리는 종종 임요환 선수에게 그래왔던 것이다. 마치 수학 공식과도 같은 임요환 선수의 치밀한 전략과 현란한 컨트롤에 우리는 충격을 받거나 구토를 하거나 화를 내거나 눈을 감았던 것이다.


가변(可變)테란

세상에는 규정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수 유닛 컨트롤에 능하여 저그를 곧잘 잡아내지만, 만성적인 물량 부족으로 프로토스에게 약한 테란 플레이어’라는 굴레로 임요환 선수를 묶어두려 한다. 이는, 어느덧 프로게이머의 평균연령을 훌쩍 넘겨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테란’에 관한 논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장을 빨리 정의 내리고, 그 다음 쉽게 안심하고 싶은 호사가들의 희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임요환 선수를  규정하려고 하는 순간, 임요환 선수는 움직이는 타깃으로 변해왔다. 그러니까, 진화다. 임요환 선수는 ‘스타리그’라는 생태계에 맞게끔 스스로 진화해왔다. 그래서 임요환 선수의 특징을 하나의 문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요환적(的)이라고 부를만한 특징을 굳이 끄집어내자면, 정치적으로 불공정해 보일 만큼 테란에 특화된 변화무쌍하고 날카로운 전략과, 컨트롤에 대한 집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멈추지 않는 전략제조기

임요환 선수는 변화하는 것, 이제 막 징후를 드러내는 무언가에 더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것이 단지 소재주의라고 비판을 한다 해도, 그의 예민한 더듬이가 누구보다 앞서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마린 1기를 운용해 러커를 잡아내면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아키텍처를 증명한 그는, 결국 사멸해가는 테란을 심폐소생시켰고, 이후 ‘815대첩’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인내와 끈기를 겸비하였음을 보여주며 수많은 감성적 경기를 통해 팬들을 매료시켜왔다. 임요환 선수는, ‘온게임넷’이 낳은 테란의 미래였던 것이다.

언제나 안정보다는 충돌을, 정착보다는 개척을 추구했던 임요환 선수는 필연적으로 몇 차례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영웅’ 박정석 선수와 ‘몽상가’ 강민 선수 그리고 ‘투신’ 박성준 선수는 차례로 ‘물량 부족’과 ‘아이디어 고갈’ 그리고 ‘노화된 컨트롤’이라는 불명예를 임요환 선수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라이벌의 등장은 임요환 선수에게 초창기 스타일로 선회하며 자신이 끌어온 다양한 전략적 레퍼런스의 색깔을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에 더해 최연성 선수, 전상욱 선수라는 좋은 동료들과 테란의 철학을 공유한 덕분에 해저탐험처럼 신비롭고 심오한 자신의 잠재력을 경기에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테란 환상록

어쩌면, 첫 번째 골든 마우스의 주인공은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투신’ 박성준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타리그에서 임요환 선수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최초’이거나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두 번의 우승과 네 번의 준우승이라는 과거의 영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새로운 희망을 심기 위해서라도 절망을 베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임요환 선수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한번 굳게 매듭지어야 한다.

숨가쁜 ‘속기 바둑’ 한 판을 마친 임요환 선수는 이제 또 다른 ‘대국’을 준비할 것임에 틀림없다. 노력에 한계를 부여하지 않는 임요환 선수는 언제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한빛소프트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우승할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임요환 선수에 대한 기대는 종기와 비슷한가보다. 뿌리를 뽑기 전에는 계속 발열하며 부어오른다. 그러니, 저항은커녕 투항할 수밖에.

상상의 갑옷을 입고 나선 이 로맨틱 테란의 환상록을 언제쯤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아마 다음 스타리그이겠지.


by sylent, e-sports 저널리즘.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3 10:51)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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