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 Date |
2006/02/18 17:15:13 |
| Name |
구름비 |
| Subject |
그는 이제 두려움을 알았습니다. |
|
오늘 드디어 홍진호 선수가 스타리그로 복귀했습니다.
그의 수많은 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이 말이죠.
저도 그를 좋아하지만, 경기에서 그를 응원하는 일은 그닥 많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는 언제나 '임요환 '선수의 라이벌이었기 때문이죠.
제게 베스트는 항상 임요환 선수였기 때문에 그들이 많들어냈던 수많은 명승부들에서 전 그를 응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라이벌인 그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라이벌 전의 승자가 거의 임요환 선수였던 탓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는 패배의 순간에도 너무나 깔끔한 매너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라이벌 선수들에게 느끼는 '얄미움'이 그에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리쉬한 폭풍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엄재경 해설위원이 얘기했습니다.
"선수들마다 별명이 있는데 '폭풍'만큼 그 선수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표현해주는 건 없다"고.
임요환 선수에겐 드랍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요환 선수는 큰 흐름을 뒤쫓아 그만의 스타일을 수정했습니다.
이제 드랍쉽은 임요환 선수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요환 선수가 그렇게 대세를 따라갈 때도 그는 자신의 폭풍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슬프게도 시대가 원한 답은 아니었습니다.
얼마전 추천 게시판에서 홍진호 선수에 대한 글을 봤습니다.
그 글에 저는 가슴이 찡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랬습니다. 그의 깔끔한 매너와 고유한 스타일은 그에게 많은 팬들을 만들어 주었지만 대신에 승리란 기쁨을 뺏어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패배란 것은 그에게 게임을 하는 즐거움을 앗아간 듯 보였습니다.
그는 제가 이제껏 보아온 어떤 선수들 보다 경기 자체를 즐겼던 선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윤열 선수에게 '천재'란 칭호를 붙여줬지만 제가 있어 천재는 언제나 홍진호 선수였습니다.
대부분의 천재가 그렇듯 그는 쉽게쉽게 모든 것을 얻는 듯 보였습니다.
언제나 경기 자체를 즐기고 아쉬운 패배의 순간도 왠지 모를 느긋함이 느껴졌습니다.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그냥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듯한.
그는 언제나 자신감에 넘쳤고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선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제가 그의 팬이 될 수 없는 이유였는지 모릅니다.
모든 이들이 다 매료될만한 천재성과 매력을 지녔음에도 그러한 승부에 대한 집착이 없는 '느긋함'이 절 그에게 빠져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변화의 징조를 느낀 건 임요환 선수와의 에버배 4강이었습니다.
허무한 3연속 벙커링...
임요환 선수의 팬인 저조차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순수하게 임요환 선수의 승리를 기뻐할 수 없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왜냐면 저는 그때 너무나 상처받은 듯한 그의 '약한'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 그는 변해갔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를 보는 저의 시선이 변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고의 저그였던 그의 영광은 이제 먼 시절의 얘기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폭풍은 더이상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생산의 종족'은 저그만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겁없이 휘몰아치던 그의 폭풍은 조금씩 두려움을 알게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이제 망설임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동안 있어왔던 테란전의 많은 패배가 그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경기가 그랬습니다.
그 경기는 그의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휘몰아치는 폭풍으로 상대의 병력을 잡아먹을 수 있는 순간,
그는 망설임을 보였습니다.
마치 '이게 막히면 어떡하지'란 두려움의 찰나를 보여주듯이...
그는 적어도 제가 이제까지 알던 '폭풍'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제까지 보아왔던 그의 자신감은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당당함에서 나온 껍질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껍질 안의 그는 제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폭풍'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승부에 갈림길에선 여유로울 수 없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말입니다.
동정이냐고요?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기뻤습니다.
껍질을 깨고 한 단계 올라갈 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승부에 더이상 '느긋해'하지 않습니다. 조바심을 냅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지 뭐'라는 듯한 여유를 버린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만화책에서 이런 대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너는 바닥을 몰라"라는.
그는 천 길 낭떠러지 떨어졌다 이제 다시 올라오는 맹수 같습니다.
그는 이제 바닥을 아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순간순간 두려움으로 그를 옭아맬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오늘의 경기에서는 그는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그의 모습에서 저는 알게되었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만약 '안도감'을 느꼈다면 전 그 경기에 실망하고 그를 포기했을지 모릅니다.
그만큼 전 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경기 후 굳은 표정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는 그의 모습에서 전 새로운 '폭풍'을 보았습니다.
홍진호 선수, 화이팅 입니다.
다가올 스타리그에서는 다시 한번 임진록 , 그 명승부를 보여주세요.
그때는 어쩌면 당신을 응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9 20:06)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24 19: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