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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2/06 13:49:28
Name Fi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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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역사] 북촌한옥마을은 100년도 안되었다?! / 한옥의 역사 (수정됨)

1. 한옥은 원래 없었다?!

한옥이라는 말은 원래는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옥이라는 용어 자체가 서양식 주택인 양옥과 구분하기 위한 용어이기 때문이죠.

한옥이라는 말은 1907년 정동길 주변을 기록한 약도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당시 서양의 근대 건축양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이들과 구분하기 위해 표시한 것이었죠. 이때는 한옥이라고 하면 살림집을 의미했는데요. 우리나라의 전통건축물을 통칭하여 한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75년에 나온 『삼성 새우리말 큰사전』에서부터예요. 이 사전에서 한옥은 양옥과 대비되는 개념이자 한옥의 동의어로 ‘조선집’, ‘한식집‘이 있다고 표기되어 있죠.

현재 한옥에 대한 정의는 건축법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2010년 2월에 제정된 「건축법 시행령」 제2조에 따르면 한옥은 ’기둥 및 보가 목구조 방식이고 한식 지붕틀로 된 구조로서 기와, 볏짚, 목재, 흙 등 자연재료로 마감된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반영된 건축물 및 그 부속 건축물‘을 말한다고 합니다.



2. 한중일 전통 가옥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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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전통 건축물은 비슷하게 생겼는데요. 한옥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중국의 집은 온돌과 마루가 없고, 일본은 마루만 있는 반면 한옥은 방에는 온돌을 대청과 툇간에는 마루를 깔아두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난방시설인 온돌과 냉방시설인 마루를 가지고 있는 한옥은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헬반도의 특징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온돌은 순수 우리말로 구운 돌의 약자인 '구들'이라고도 하는데요.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불기운이 바닥 아래를 지나 굴뚝으로 빠지게 되는 구조이죠. 온돌은 열의 효율이 높고 연료나 시설이 경제적이며 고장이 별로 없다는 장점이 있어요.

마루는 나무 널판으로 구성된 바닥을 말하는 것으로 바닥을 지면으로부터 떨어트려 통풍이 되도록 해 습기를 방지하는 구조이죠. 대개 마루는 앞쪽이 트여 있고, 뒤쪽에는 문이 달려 있는데 한여름에 이 문을 열면 통풍이 잘되었죠.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한옥은 대문, 마당, 부엌, 사랑방, 안방, 마루, 외양간, 화장실, 장독대 등이 갖추어져 있는 조선시대 상류층의 한옥인데요. 유교사상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던 조선시대라 신분과 남녀유별, 장유유서를 공간에도 적용했죠. 크게 안주인이 쓰는 공간인 안채와 바깥주인이 쓰는 바깥채 등으로 나누기도 하고, 집채를 달리하거나 작은 담장을 세워 주거 공간을 상, 중, 하로 나누기도 했어요.



3. 조선시대부터 한옥마을이었던 북촌

한옥은 풍수지리에 따라 배산임수의 원칙으로 지어졌습니다.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을 마주하며 남쪽으로 짓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한옥의 위치였죠.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서울에서 가장 좋은 장소는 경복궁이고 그다음이 창덕궁인데요. 그 사이에 있는 북촌 역시 북고남저로 겨울에 따뜻하고 배수가 잘될 뿐 아니라 남쪽은 넓게 트인 데다 남산의 전망도 좋아 조선 시대부터 권문세가와 왕족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어요.

반면 하급 관리들은 남산 기슭인 이른바 남촌에 살았죠. 이곳은 음지이기는 하지만 배수가 잘되고 지하수가 풍부하여 물을 얻기 편했어요. 오늘날의 중구 남산동에서 필동을 거쳐 묵정동에 이르는 지역이에요.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북촌과 남촌은 고급관리와 하급 관리로 나뉜 것이 아니라 북촌에는 노론, 남촌에는 소론과 남인 북인이 살기도 했어요.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북촌에는 노론만이 거주했고, 소론과 남인 북인은 남촌에 섞여 살았다고 기록되어있죠.



4. 서양인들이 만든 개량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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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미국공사관  ⓒ University of Arkansas Libraries]

구한말이 되면 우리나라에 서양인 관리와 서양인 선교사들이 들어오게 되는데요. 이들은 한옥을 구입해 자신들의 습관과 용도에 맞게 개조했어요. 여러 개의 방을 터서 침실, 식장, 거실 등으로 개조했고 벽지를 바르고 종이로 된 창문을 유리창으로 바꾸고 서양식 가구와 카펫 그리고 난로를 설치했죠. 당시 미국공사관이 대표적인 개량한옥이었죠.

서양인이 개조한 한옥은 이후 조선인의 주거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조선인 재력가들은 창호지 방문과 창문을 유리로 바꾸고, 대청마루를 응접실로 이용하고 목욕탕을 설치했죠. 그리고 당시 서양식 가구를 사용하는 것은 부와 개화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재력가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죠.



5. 도시형 한옥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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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형 한옥]

1908년 일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일본인들을 조선의 농경지로 대규모 이민시키는 사업을 추진했는데요. 조선의 땅값이나 세금이 일본에 비해 싸고 수익률이 높아 주로 일본에서의 빈농층이 이민을 왔죠. 1911년 첫 이민 가족 160호를 시작으로 매년 5,000명 이상이 넘어왔어요.

일본인들이 조선의 농촌으로 이민 온 후 일제는 본격적으로 조선의 농촌을 수탈했는데요. 특히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많은 조선인의 토지를 빼앗았죠. 토지를 빼앗긴 조선인들은 소작농이 되거나 소작농 거리도 찾지 못한 이들은 공장이 있는 대도시로 이주해 막노동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경성에는 1926년 30만이던 인구가 1931년에는 36만으로 1936년에는 67만으로 늘어났죠. 도시로 몰린 인구로 인해 주택난은 심해졌고 새로운 주거 형태가 필요해졌어요.

주택난 속에서 조선인 전문 주택 개발업자들이 등장하는데요. 관급 건설 사업을 일본인들이 독점하게 되면서 조선인 건설업자들이 민간 주택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었죠. 이들은 대형 필지를 사서 작은 필지로 나눈 후 획일화된 한옥을 개발하는데요. 어려운 조선인들의 경제사정상 소규모 주택의 수요가 더 많았고, 주택 개발을 하는 입장에서도 작게 여러 주택을 만드는 것이 평당 이익이 높았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한옥은 일본인들이 손대기 어려운 분야였고, 유학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서구식 건축 개발보다 훨씬 수월한 시장이었어요.

이때 대규모로 만들어진 한옥을 도시형 한옥이라고 부르는데요. 기존 한옥과 달리 '디귿'자나 '미음'자 형태, 작은 크기, 변소가 건축물 내부에 들어간 형태, 벽돌과 유리 함석을 사용하는 등의 특징이 있죠.



6. 건축왕, 북촌 한옥마을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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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정세권]

당시 등장한 전문 건설업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은 정세권이예요. 1919년 3.1 운동 이후 상경한 정세권은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부동산개발회사 건양사를 설립해요. 그는 북촌을 시작으로 경성 곳곳에 근대식 한옥 집단지구를 건설하는데요. 10년도 안 되어 큰 부를 축적해 조선을 대표하는 부동산업계의 거물로 성장하게 되죠. 그런 그를 사람들은 건축왕이라고 불렀어요.

그가 개발한 대표적인 필지는 조선 왕족의 종친 이해승의 누두궁을 68채의 한옥단지로 개발한 것과 현재도 한옥을 볼 수 있는 북촌 가회동 31번 한옥 집단지구, 익선동 166번지 등이 있어요.

정세권은 신간회, 조선물산장려회, 조선어학회 등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기도 했는데요. 이로 인해 일제에게 고문을 받기도 하고 막대한 재산을 빼앗겨 정세권의 건양사는 쇠락하게 되죠.



7. 고급 주택가였던 전주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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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현재 전주에는 풍남문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사대문이 있었어요. 성안에는 관인, 양반, 향리 등이 거주했고, 성 밖에 상인들이 거주하며 남문시장이 형성되었죠. 하지만 1907년 조선 통감부의 폐성령에 따라 풍남문을 제외한 3개 성문이 철거되었고, 도심부는 1920~30년에 일본인들이 독점하기 시작했죠.

한편 1920, 30년대 도시 집중화 경향에 따라 전주로 많은 사람이 이주해오는데요. 그중에는 호남평야의 대지주, 신흥자본가들도 있었죠. 이들은 교동·풍남동 일대에 고급 주택가인 한옥 집단지역을 형성했어요. 이 지역의 한옥 주택은 1970년대까지 꾸준히 생겨났지만, 1970년대 중반 한옥 보존정책이 시행되면서 한옥 신축이 중단되었죠.



8. 아파트에 밀린 한옥

그러나 6·25전쟁 이후 경제개발 등으로 도시로 인구가 몰리자, 토지이용의 효율성을 이유로 한옥보다는 서양식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했어요.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 산업화와 새마을 운동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졌고 초가집도 슬레이트집으로 바뀌게 되죠. 70년대 중반이 되면 재개발, 신축 등으로 한옥의 90%가 헐렸어요.

북촌한옥마을에도 1970년대에 현대사옥, 헌법재판소 등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죠. 이때부터 한옥을 보존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대두되었고 1976년 북촌 지역을 민속 경관 지역으로 지정함으로써 북촌의 한옥이 보존되고 있죠.



[참고문헌]
김경민. (2017).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이마
임창복. (2011). 한국의 주택, 그 유형과 변천사. 돌베게
전남일. (2010). 한국 주거의 공간사. 돌베게
전남일 외 3명. (2008). 한국 주거의 사회사. 돌베게
이용우. (2003). 북촌 한옥마을. 대한인쇄문화협회
장성화. (2011). 전주 한옥마을 조성사업의 도심재생 성과 분석 및 개선방안. 전북발전연구원
박명덕. (2005). 한옥. 살림
신광호. (2003). 도시형 한옥 마당의 공간적 특성 연구 – 전주시 도시형 한옥 사례 연구. 우송대학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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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개설해서 해당 내용 그대로 영상화했습니다.
혹시라도 관심있으시다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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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살이
21/12/06 14:44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애국 픽 제외하고서라도 색 배합은 한옥이 가장 좋네요.
21/12/06 16:2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애국 픽 크크
한옥의 색 배합은 내부에서 외부를 보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21/12/06 14: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북촌, 전주, 양동 등등 한옥마을 많이 가 보았는데, 지나치게 상업화 관광지화 된 모습에 솔직히 이게 정말 전통을 보존하고있는 모습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전통이란게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21/12/06 16:2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한옥마을의 한옥이 거주지로서 기능을 한다면야 도시형 한옥의 취지에 잘 맞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전주같은 곳은 상업 시설이 너무 많은 것 같긴 합니다.
꿈꾸는아나키
21/12/06 15:2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한 가지 지적하자면 대부분의 국어학자들은 구들을 구운 돌의 뜻으로 보지 않습니다. '구운 돌'로 보는 건 소수 의견입니다. 다수설은 '굳'은 구덩이, 움푹 패인 것 등의 뜻이고 '을'이 명사형 접미사로 설명합니다.
21/12/06 16:29
수정 아이콘
앗 그렇군요! 아무래도 제가 보는 자료가 한정적이다보니 이런 내용을 지적해주시면 너무너무 좋습니다 흐흐
Promise.all
21/12/06 16:21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21/12/06 16:30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트와이스정연
21/12/07 01:29
수정 아이콘
산업화 때 보급된 한옥 주택 일부는 서울 곳곳에 남아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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