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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orb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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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낭만에서 현실로, 청년에서 어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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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gr21.com/?b=2&n=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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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몇몇 분들께서는 이제 그만 신경 끄고 싶으신,
몇몇 분들께는 이미 끝난 얘기인,
극소수의 분들에게만 관심 거리인,
지난 협회와 방송사간의 분쟁이 제게 의미했던 것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고로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신경쓰시기 귀찮으신 분들께는 의미없는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ㅇ Inner circle
'남의 잔치에 감놔라 배놔라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바라는 것만 많은 사람들을 비꼬는 속담이죠. 근데 이 속담의 아이러니는, 자신이 관여하지 않는 대상이어야만 감놔라 배놔라 하는 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전에 저희 학교에 삼성 인사팀에서 방문을 왔었습니다. 대학원생 몇명과 인사팀 몇명이 모여서 조촐하게 저녁 식사를 했었는데, 인사팀에서 삼성에 대해 설명하는 '작년 대비 마진이 이만큼 떨어졌는데, 이 부분을 뚫고나가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신규사업을 대규모로 펼칠 예정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인력이 필요한데 이러이러이러이러...' 라는 말을 한참 듣고 있노라니, 자연스럽게 '저 분들한테는 삼성의 경제 독점같은 문제를 물어보는 자체가 실례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분들한테 삼성은 자신들의 자그마한 인생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기 위한 거대한 용광로같은 것이고, 그 용광로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지, 그 용광로가 동네의 장작을 너무 많이 독점하던지 말던지까지 신경쓰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라고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 이 부분에 대해 이견이 가능합니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달이 되었다면 패스~ )
전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임요환 대 장진남 / 임요환 대 홍진호 / 임요환 대 김동수 / 임요환 대 박정석 의 4회에 걸쳐 대회장에서 관전했었습니다. ( 전형적 올드 클래식 임빠입니다 ) 당시에 소위 '관계자' 계열에 속하는 분과 친분이 있었던 탓에, 가족석 근처에서 볼 행운을 누렸던 저는.. 사실 정작 눈여겨 보게 되었던 것이 임요환 선수나 그 가족이 아니라 방송국 직원들이었습니다.
저도 당시에 벤처 창업을 하던 시절이었고, 99년의 구질구질한 경기 세팅으로부터 타임머신이 등장하던.. 눈부신 발전을 보이던 당시의 스타리그를 보면서, '이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그야말로 삼국지의 군웅할거에 맞먹는 인간 최고의 로망이로구나!' 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로망을 펼쳐나가던 황현준 국장님이나 정일훈 캐스터님등의 비전과 열정은 제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여담이지만, 저는 지금 게임계에서 원로스러운 자리를 차지하진 엄재경 해설위원보다 정일훈 캐스터님을 한단계 더 높게 봅니다. 엄해설께서는 적절한 위험부담을 통해 높은 성과를 얻었고, 그 성과를 향유하시는 중이죠. 하지만 정일훈 캐스터께서는 그 성과를 걷어차고 다시 한번 뻗어나가려고 노력하셨고, 결과는 아직 미지수지만 솔직히 그다지 낙관적이진 않습니다. 뭐 다른 소문도 당시에 많긴 했습니다만.. )
근데 그분들이 당시에 '아.. 게이머들한테도 몇천만원씩은 연봉이 돌아가야 할텐데.. 큰일이로구나' 라는 생각을 할 여유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당시에는 전업 게이머의 비중이 그렇게 높지도 않았구요. ( 그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분들은 많았습니다만.. ) 이당시 방송국에게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은, 그야말로 '남의 잔치에 감놔라 배놔라 한다' 수준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한줄 요약 :
초창기 방송국은 선수들의 피를 빨아먹는 악의 축이 아니라, 이 바닥의 밑그림을 그려내고 그 그림을 현실화해낸 진정한 돈키호테들이다.
ㅇ 노동가치론? 설?
자본론을 한번도 통독한 적이 없고 짧은 해설서들만 읽은 저로서는 노동가치론 자체를 깊게 다룰 자격이 없기에 짤막하게 언급만 하겠습니다. ( 이후 글의 전개를 위해선 언급을 하긴 해야해요. )
근대의 천민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의' 라던가 '도의', '당위' 같은 것에는 아무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냥 분업을 해보니 생산성이 늘어서 좋고, 기계를 도입해보니 닥치고 5배로 제품이 많이 나오니 좋고, 팔 곳이 없으니 식민지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근데 그로인해 수많은 처절한 부작용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작용에 대한 고찰이 낳은 근대 공산주의는 사실상 최초로 진지하게 '인간이 만들어낸 생산품은 과연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라는 도덕적 당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계약서에 넌 시간당 천원 받고 하루에 18시간 일해서 제품 생산하면 사장인 내가 다 팔아서 천만원 벌기로 되어있으니 그냥 그대로 하면 됩니다' 라는 사장님의 설명이 아무래도 이상했거든요.
그리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노동가치론이었습니다.
'자연상태에서 모든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은 인간의 노동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산품에 대한 도덕적 권리는 노동자에게 있다'
초 단순하게 말하면 저런 것이죠.
지금 게이머 & 협회의 논리는 대략 저런 것이라고 봅니다.
'스타리그의 인기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은 게이머들의 경기이다. 고로 모든 가치에 대한 도덕적 권리는 기본적으로 협회에 있다.'
'계약서에 넌 경기당 몇만원 받고 하루에 18시간 연습해서 경기하면 방송국인 내가 다 팔아서 수십억원 벌기로 되어있으니 그냥 그대로 하면 됩니다' 라는 방송국의 설명이 이상했던 것도 똑같네요.
여기까지 한줄요약 :
방송국이 정주영씨마냥 중동에 석유라인 깔기로 하고 사업 성공한 건 좋은데, 그래도 정작 중동에서 석유라인 까느라 고생한건 노동자거든요.
ㅇ 착한 사람같은 것은 소설 속에나.
근데 노동가치론에 대해 제가 대학교 1학년때부터 가졌던 의문은 이런거였습니다.
저게 따지고 보면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이지, 어째서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다' 라 되냐는 것이죠. 마르크스가 바라는 도덕적 선호에 불과한 것을 사실관계와 혼동한 것 아닌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저런 식으로 따지면 '만물에 대한 권리는 하나님께 있다' 라고 말해도 됩니다. ( 70년대 현대 건설의 어떤 고급 기획자가 커피마시던 중 5분만에 중동에 석유라인 깔자는 아이디어를 착안해낸 것과, 현대 건설의 일반 노동자가 50시간 열심히 일해서 파이프 1개 조립한 것은, 과연 후자가 만들어낸 가치가 600배인가? 라는 의문에서 비롯된 부분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초고수분들의 냉정한 철퇴가 가능한 부분입니다만, 지금의 게임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싶으니 패스 부탁~ )
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저런 분배 문제에 대해 가진 소견은 이런 겁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놓고 착취하는 것은 안돼'
'시스템이 운영되면서 구조적으로 패자가 양산되면 안돼'
'저 2가지 원칙만 지켜진다면, 나머지는 철저히 수요공급으로 정하면 돼'
그러다보면 어떤 생각에 도달합니다.
리그의 흥행을 위해 노력한 게이머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매우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만, 그 정당한 댓가가 그럼 각 게이머의 인기를 정량화해서 배분할 것인지, 노동 시간에 비례해서 배분할 것인지, 둘 다 아니면 기준이 무엇인지 정도의 합의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1. 현재 제도가 사실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인기' 기준의 분배는, 승자가 방송국에서 인기 게이머와 몇몇 감독님들로 바뀔 뿐,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그분들이 '난 지금 합류하는 사람들에 비해 선점의 댓가를 받아야 마땅하지!'라고 말한다면, 그건 방송국의 논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2. 협회에서 대의명분으로 세운, '게이머들이 공존공영하는 분배' 는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려면 각 구단은 우선 자기 구단에서 행해지는 연습생에 대한 구조적 착취부터 멈춰야 할 겁니다. 적어도 방송국은 본의던 그렇지 않던간에 수십명 게이머들의 인생에 비전을 제시해주었습니다만, 구단의 연습생 제도는 본질적으로 1명의 인생에 비전을 제시할 때마다 5명의 낙오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제도입니다. '그 연습생을 구제하기 위해 프로리그를 확대하자는 것 아니오?' 라고 말하신다면, '프로리그를 확대해서 300명을 먹여살릴 수 있게된다면, 각 구단은 300명의 연습생을 추가로 뽑을 것이 분명하다'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여기까지 한줄요약 :
기존의 왕조가 안 착한 것은 잘 알겠는데, 신흥 군벌도 그다지 착해보이진 않아요.
ㅇ 낭만에서 현실로, 청년에서 어른으로
지나친 단순화라는 위험요소를 감수하고 말씀드리건데, 제가 보는 이 바닥의 구성 요소는 이런 겁니다.
초기
자본가 : 온미디어, 엠비씨
경영진 : 온게임넷/엠겜의 수장들
노동자 : 선수, 감독, 방송국 일반 직원
지금
자본가 : 온미디어, 엠비씨, 협회 스폰서들
경영진 : 온게임넷/엠겜/감독
노동자 : 선수, 방송국 일반 직원
전 이 분쟁의 초기에는 이것을 단순히 '새로이 들어온 스폰서들과 온게임넷/엠겜의 거대자본 vs 중소기업' 의 구도로 읽었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대자본의 의도는 2~3년간 단물 빼먹고 이판 버리기.. 라고 보았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방송국 편을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휘말렸다고 생각했던' 선수 & 감독님들에 대해서는 이런 커멘트를 남겼었습니다.
- 다만, 선수들한테는 지금 상황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10년 선수생활할 것도 아니고, 짧은 시간 돈 확 땡기겠다는 생각이라면.. 협회 주도하에 고액 연봉을 노리는 것도 현실적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고액 연봉이란게.. 절대 오래 가지 못할겁니다. -
근데 틀렸어요.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
1. 감독님들의 성명서
2. 개인리그 보이콧
이었습니다.
결국 이건 거대자본 vs 중소기업의 싸움이 아니라, 거대자본의 힘을 업은 신규 경영진 + 정규직 노동자 vs 기존 중소기업의 싸움이었던 것이죠. 굳이 정규직 노동자라는 말을 한 이유는, 연습생의 존재 때문입니다. ( 전 확신x5 합니다만, 이번 일로 파이가 커지면, 연습생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생의 숫자가 늘어날 겁니다. '자기 의지로 선택했으니 무슨 문제인가요?' 라고 말해버리기에 그들은 너무 어리죠. )
하지만 그분들을 비난하긴 어렵습니다.
그분들은 지난 몇년간 '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피방에서 게임하면서 우승을 노리는 낭만' 이라는 허울에 너무 오랫동안 착취당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도 생계를 고려해야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번 일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청년 시대가 끝나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커다란 바위가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듯이, 그것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라는 겁니다.
마지막 두줄 요약 :
그분들도 먹고 살아야지요. 근데 그럴거면 본인들은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분들을 판단하고 예상하는 이 글이 틀린 것이어서(즉, 프로리그의 흥행 성공이 하위 게이머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아서), 내년쯤에 사과글을 올리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퍼플레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03 1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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