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엄재경입니다.
아침에 후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더군요.
‘형, 이스포츠의 중심은 온게임넷이 아니라 형인 거 같아~.’
‘뭔 소리 하는 겨?’
‘형이 뭐 한 마디 하면 아주 난리가 나는데?’
누구나 예측 가능한 대충의 대화가 끝나고, 피지알에 와보았습니다. 관련 글도 대략 읽었
고요. 제목만 봐도 짐작이 가능한 본문은 사실상 대충 읽었고, 리플들 위주로 주욱 훑어
보았는데, 수년째 반복돼온 일이기도 하고 ‘예상대로군’하는 정도였습니다.
애정이 담긴 글도 많이 있었고, 늘 그렇듯 한숨 나오게 만드는 글도 많이 있더군요. 애정
엔 애정 그 자체에, 비난엔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이게 몇 년 째 반복돼온 일인데...하고
그냥 넘어가려다 한 자 적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조금은 반성도 했기에 분발하겠다는 의지
도 전하고 싶었고, 겸사겸사 핑계도 좀 하고 싶어서요. 이렇게 쓰면 또 이것만으로도 ‘까대
는’ 사람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저는 그냥 이렇게 씁니다. 방송이고 뒷담화고, 어
떤 태도로 임하면 되도록 욕을 덜 먹을 수 있는지는 잘 압니다만, 저는 그런 거 신경 쓰느
니 그냥 내 생긴 대로 행동하고 욕먹고 맙니다. 대신 저를 선호하는 분들은 또 그런 면
때문에 선호하기도 하는 거니 ‘쌤쌤이네’하고 치웁니다.
일단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니 반성과 사죄부터. 솔직히 열정이 사라졌다고 생각하
지는 않습니다. 아니, 열정은 애초에 하나도 없었는지도 모르니 용어를 새로 선택하겠습
니다(‘사랑’이니 ‘애정’이니 이런 표현 낯 뜨거워서 잘 못하는 편이기도 하고). 저는 이 일
을 열정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재미있어서 했고, 내가 아는 이 재미를 다른 사
람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했고, 이 재미를 공유하고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게 즐거움이었을 뿐입니다. 덕분에 먹고 사는 것도 덩달아 나아지기도 했고
요. 솔직히 여전히 스스로 재미있게 경기를 즐기고 있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고자 아
둥바둥 노력하고 있기에 의지나 열의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먹
고 사는 일인데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 저는 나름대로 제 노선에 따라 예전처럼 열심히
방송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신 대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 점은 솔직히 인정하고, 특히나 오늘 더 느끼게 되었고, 지난 일들과
앞으로를 찬찬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원래 매너리즘이라는 게,
다 알고 그냥 안고 살아가는 놈입니다. 알고 있었죠, 솔직히. 하지만 정말이구나하고 느
끼려면 자극이 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이 자극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스타 외에도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았고 해서 스스로 스타 자체를 즐기는 일에 많
이 소홀했는데, 노는 게 아니라 일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나 보네요. 음.
다른 친구들은 노는 게 아니라 일의 연장이니 더 열심히 한다고들 하던데... 저는 좀 별종
인가 보네요. 만화가게에서 살다시피 한 적도 있었지만 만화를 하게 된 후 만화를 오히려 덜
보게 되기도 하고... 하여간 일이 되면 좀 그렇게 되네요. 앞으로 스타를 하면서 노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습니다.
지금부터는 게임 해설이란 무엇인가, ‘나의’ 게임 해설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똥철학(?) 같은 것을 좀 이야기할 텐데, 그 전에... 욕도 많이 먹고 했으니 변명도 좀 하
겠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면들도 있긴 합니다만 오해도 많은 것 같네요. 천만년 반복되
는 떡밥성 오해도 많은 듯하니 FAQ 형식으로 해 볼까요.
1. 이엠피, SCV 홀드, 파일런 언파워드 못알아본 것, 레이스와 발키리 속도문제 등등.
- 프로게이머 출신 해설자들에 비해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능력은 떨어져도 유닛의
스펙 등등에 관해서는 지존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_-; 저런 실수는 정말 민망하긴 합
니다. 이엠피야 뭐 하루 종일 떠들다보면 피곤하기도 하고 순간적인 착각이었다고들 생각
하실테고, SCV 홀드 부분에 관해. -_-; 이것도 순수한 실수입니다. 관심이 좀 있으신 분
들은 홀드를 ‘연타’한다는 말만 듣고도 짐작하셨을 거라 보지만, 누가 홀드를 연타합니까.
스탑을 연타하는 거죠. 스탑을 홀드로 말한 실수입니다. 이런 실수가 잦아지는데... 나이탓인
지 음. 지지난 시즌이든가요 영호와 택용이의 히치하이커 경기에서 영호가 머린 한 기 없
는 가운데 SCV로 일꾼 진입을 막아내고 스캔 러시를 성공해 택용이를 쉽게 이긴 경기가
있었죠. 그 때 일꾼에겐 홀드 기능이 없으니 스탑 연타로 못 들어오게 한 거라는 해설을
했고, 경기후 인터뷰에서 영호가 손가락 부러지는 줄 알았다는 말을 했었죠. 설마 두 시
즌만에 9년동안 알아오던 ‘일꾼엔 홀드가 없다’를 잊어버렸겠습니까... 사소한 실수조차
실력으로 비난받는 건, 그간 쌓여온 실수들 때문이겠거니 하고 있습니다만, 미운털이 단
단히 박혔나보구나 싶기도 합니다. 실수한 건 10년은 가는 거 같은데 그 실수를 커버할 얼
마 전의 해설은 사람들이 기억도 못하는 거 보면 참... 실수를 줄이는 것만이 해결책이겠네요
. ㅠ.ㅠ; 파일런 언파워드 부분. 이건, 죄송합니다. 솔직히 건물 색깔이 바뀌는 것까진 잘
몰랐습니다 이건. 제가 토스로는 거의 경기를 하질 않거든요. -_-; 팀플 할 때 랜덤했다 걸
리는 경우 말곤... 저걸 몰랐었네요. 아, 물론 이제는 압니다. 또 실수할지도 모르지만...
^^; 레이스와 발키리 속도 같은 건, 패치 후에 테스트해봐 알고 있었는데 순간 착각을 했
던 거였고, 또 같은 속도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동성은 레이스가 좋기 때문에(수치화 되어
나타나진 않지만 ‘가속’이라는 부분이 있어서. 발키리는 첫 이동명령을 받고 조금 굼뜨
는 유닛이죠;아우 이거 또 언젠가 바뀐 거 아닌가 -_-; 테스트 해보고 쓸 걸 그랬나 음...
) 그런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아 그렇게 언급을 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저런 것 외에도 이
것저것 있지만 착각이 한 몫을 하는 것이라는 변명을 좀 해 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서는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려고 확실치 않은데도 확실한 것처럼 말할 때도 있고요...
^^; 보통 동진이가 그럴 때마다 지적을 해 줘서 머쓱해질 때도 있습니다만. 때로는 제
가 실수한 걸 아예 모르고 넘어갈 때도 많습니다. 단지 이걸 말하려고 했는데 저걸 말한
용어실수를 한 것이기에 뇌와 입이 동상이몽을 하는 경우죠. 말을 워낙 많이 하다보니 음. 변명 변명.
2. 가정에 신경 쓰느라 다른 게임방송은 안 본다?
솔직히 저런 반응에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만, 저런 반응 한두 번도 아니고 일일
이 응대를 어떻게 하나싶어 그냥 지내왔습니다. 겸사겸사 이럴 때 말해야겠군요. ‘그걸 어
떻게 [다] 봐?’라는 말이 ‘나는 그걸 전혀 보지 않아’가 되나요? 보통은 ‘대부분은 보지만
모두 보진 않아’라고 이해하는 말 아닌가요? 간편한 곰티비가 있는데, 하루의 절반 가까
운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 설마 다른 방송국 게임이라고, 다른 리그라고
그걸 안보겠습니까. 제 입장에선, 정말 저렇게 생각한 건지 단지 목적이 음해인 건지 궁
금해지는 오해입니다. 생방송으로 보는 경우는 사실 흔하지 않습니다. 일주일 내내 게임방
송 하는 시간에 티비나 모니터 앞에 앉아있을 수는 없는 거고, 그러다보니 수없이 많은 양
산형(?) 테테전이라든지 하는 경우는 안 볼 때도 있고, 봐도 처음부터 보진 않고 좀
넘겨가며 본다든지 합니다. 솔직히, 종서 경기 말곤 팀플도 잘 안 보는 편입니다. 이 정도
봐도, 방송에서 ‘경기 다 본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뒷담화란 프로그램은 친구
들끼리 허물없이 주고받는 대화라는 기분으로 하다보니 그냥 그리 말 한 거고요. 뒷담화
끝나면 거의 하는 말이 있죠. ‘이번 편도 까는 애들 벌떼 같이 달려들겠네?’ 내지는, ‘이
번에는 떡밥이 좀 약했나~?’류의 농인데요, 저는 욕을 먹을지언정 가식은 떨지 못하는 스
타일이라. 어떤 분들은 뒷담화 왜 해서 이미지 버리느냐고 하시더군요. 주로 제가 욕먹는
걸 안타까워하는 고마운 불들이 그러시는 건데, 사물엔 그림자만 있는 건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싶고, 그러한 염려에는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참고로, 게임판에 오면 거의 왕
고에 가깝지만 만화계 모임 나가면 막내에 가까울 때가 많고, 어르신들은 보통 저를 아주 좋아들 하신답니다.
3. 게임의 흐름을 전혀 모르니 ‘아니 저 선수 왜 저러죠?’라고 질문을 한다? 해설자란 그걸
설명해야 하는 사람인데?
바둑 해설 좀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장면이네요. 물론 저야 프로게이머들만큼 게임을
하지도 못하고 게이머출신 해설자에 비해 그런 부분에 있어 안목이 부족하니 그런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 경우를 벗어나서도, 해설자는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어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뻔하게 진행되는 과정일지라도,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있으면 별 거 아니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품 나오는 장면일지라도 뭐지
싶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보게 되는 거고, 뭐 실수겠거니 싶은 장면이라도 계속 궁금
해하면서 이유를 추리해봅니다. 어쩌다가 적중할 때도 있고, 틀리거나 다른 상황이 발생
해 묻히더라도(이런 경우 특히 제대로 무엇이 의문이었는지조차 전달을 못하기 때문에 특
히 나어린 사람들일수록 ‘엄재경은 개뿔도 모르고 저런것조차 물어보기만 한다’라는 생각
을 하게 되는 거 같기도 합니다만) 이게 게임을 보는 재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에 계속 그러는 겁니다. 이 점은, 비난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절대 달라지지 않을 제
방식입니다. 바둑 해설을 보면, 같은 프로기사이면서도 이걸까요 저걸까요 하면서 계속
이리저리 두어보면서 기사의 의도를 궁금해합니다. 심지어는, 심한 악수로 보이는 수나 별
거 아닌 수도 이창호 9단이나 조훈현 9단이 둔 수라면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의도를 궁구
합니다. 저는 스타 경기는 농구의 특징과 바둑의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기라 생각하
기 때문에, 때로는 너무 질질 끈다고 곱지 못한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만, 꼭 필요할 땐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바둑보다는 육체스포츠에 가까운 경기가 많이 나
오는 요즘은 저한테 조금 불리하다는 생각도 하곤 합니다만... 요환아 스타리그로 돌아와! ㅠ.ㅠ;
4. 커뮤니티 사이트엔 오지도 않고 귀를 막고 산다?
사람의 개성이란 게 안 나타날 수가 없는 거고 특히 뒷담화 같은 프로그램에 거의 알몸으
로 나오듯 하다시피 하는 제 경우엔 더 할 테고, 제가 굉장히 고집이 센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이들 느끼고 계시듯 사실입니다. 고집 아주 세죠. 나이 먹으면서 조금씩
둥글어지고 있긴 합니다만, 기본 고집은 셉니다. 헌데, 고집 센 사람은 아예 자기주장을
굽히거나 꺾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보통 어린 사람일 거라 추
측해 봅니다. 남자는 나이 먹으면서 점차 그렇지 않게 되어갑니다. 비단 저만 그런 게 아
니고 다 그렇습니다. 살아보면 누구나 알게 됩니다. 말이 샜네요.
제 나이 또래 만화가들이 오프라인 만화만 하다가 요즘 대거 온라인 만화로 들어오고들
있습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중에 하나가, 댓글의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정기적으로 한 번씩 앓아눕는다는 건데요, 제가 보기엔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의 댓글에도
심하게들 괴로워하더군요. 정말 그들에 비해 나는 맷집이 상당하구나라고 느껴지는 장
면입니다. 30대 초반부터 게임판에서 치고받고 해왔는데 출신성분이 다른 거죠. ^^; 저는
이런 면에 좀 센 편이었는데, 그래서 수년 전까지는 이런 저런 커뮤니티 사이트에 상주하
다시피 하면서 욕하는 사람 있으면 피식 웃어주고 같이 싸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나이를
먹어 가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맷집이 약해진답니다. 그래서, 스갤은 아예 안가고(아니,
못 가는 거죠. 동영상 올라오는 스중갤은 그래도 가지만...) 피지알도 두문불출합니다.
‘욕먹는 스트레스를 참아내며 비판도 듣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불과 몇 년 전에
제가 입으로, 각종 지면에서 공공연하게 하고 다니던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심한 욕설이나
비아냥은 반복되면 정신건강에 엄청나게 해롭습니다. 그게 육체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살기 위해, 또는 좀 더 오래 살기 위해 사람은 도망치게 되어 있습니다.
왜들 이렇게까지 심한 말을 하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까지 심한 표현을 쓸 수 있는 걸까.
궁금해하다가, 일부의 해답을 얻은 날이 있었습니다. 용준이랑 일밤의 요리왕 코너에 나
갈 때였는데, 당시에 일밤 게시판을 몇 번 가봤었지요. 소녀팬들을 거느린 아이돌 스타가
나온 뒤에는 아주 쓰레기장이 되더군요, 게시판이. MMORPG를 해보면, 여성들이 대수롭
지 않게 PK를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남자들이 오히려 온라인상의 행위를 리얼하
게 받아들이며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죠. 울티마 온라인을 하면서 최초의 PK를 했을 때,
정말 살인이라도 한 것처럼 손을 떨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가상의 공간을 대하는 데 있
어서 중고생 어린 여성들의 두려움 없는 공격성은 정말 놀랍더군요. 아는 선배의 딸이 그
런 댓글을 다는 걸 직접 본 적도 있었습니다만(게임 관련 사이트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스스럼없더군요. 아, 이 지면을 빌어서 또 한 가지 소소한 오해를 풀자면, 저랑 용준이가
못해서 요리왕 짤린 건 아니었습니다. 요리왕 자체는 요즘 무한도전 같은 프로와 비교할
수는 없는 정도긴 했지만 일밤 프로들 내에서는 제일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때, 엠비씨
예능국에서 지방에 나가서 한 행사에서 대형 사고가 나는 바람에 예능국장이 경질되었고,
새로운 예능국장이 대대적인 개편을 해서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이 없어졌던 것일 뿐...
그 때 요리왕 피디가 지금 무한도전 피디랍니다. 음 말이 샜네요(제 특기이기도 하죠)...
아무튼, 프로게이머들도 연예인 못지않게 그런 팬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스갤에
등장하곤 하나보구나라고 생각했고, 모래알에서 진주를 찾는 기분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비판의 글을 보기 위해 빨리 결혼했다면 딸자식 같은 아이에게 그런 욕설을 듣지는 말
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지알도 마찬가지였고요.
물론, 피지알은 아예 끊을 수는 없어요. 유머게시판 때문에... ^^; 그래서 오는 김에 눈팅
은 가끔가다 합니다. 주로 제목만 훑어보고 나가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민감한
주제라든지 하는 경우엔 댓글 위주로 전체 분위기를 보긴 하는 편입니다. 헌데, 솔직히
피지알도 평균적인 여론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진 않고 일정한 선입견을 가지고 봅니다.
얼마 전, 전상욱 선수의 부친상 관련으로 일정 조정이 있었을 때, 온겜은 굉장한 비난을
받더군요. 헌데 거의 같은 케이스인 최연성 선수의 손목 부상 관련 엠겜 쪽의 일정 조정이
있었을 땐, 그런 것조차 가능한 훈훈한 이스포츠가 되더군요. ‘타방송사’라는 표현을 쓰다
가 정말 수명이 2~3년은 늘어난 것 같은데, 바로 엊그제만 해도 승원이의 입에서 ‘다른
방송사의 개인리그’라는 말이 나와도(이것을 비난하는 건 아닙니다. 승원이랑 막역한 편이
고, 스타리그라는 말을 해설자가 하는 게 오히려 엠에셀에 도움이 되던 시절에 비해 이제
많이 성장한 엠에셀에선 ‘스타리그’라는 용어 내지 ‘온게임넷’이라는 용어를 진행자가 쓰
는 걸 피디가 싫어하기 시작했겠죠. 그렇다 하여 그 피디를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한
걸로 생각할 뿐) 비난은커녕 언급 자체도 않죠. 굉장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는 말이고, 목
적이 뚜렷한 사람은 나무 한 그루 베어다가 엄재경이라는 숲을 여기저기 알리고 다닐 떡
밥이겠습니다만,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죠, 사람이. 반대의 경우였다면 정말 엄청나게 비
난이 폭주했을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피해의식 대단하죠? 이런 피해의식을 가질
정도로 저는 피지알이란 곳 역시 상당한 편향성을 가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
안 사안에 대해서의 반응에 있어서도 일정한 필터링을 하게 되죠. 피지알에 오는 사람 대
다수가 편향된 건 아닐 수도 있겠죠. 세상 어딜 가도 소수파의 목소리가 더 큰 법이라고 합
리화할 수도 있는 거고. 또 매니아의 특성으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퀸의 매니아치고
퀸의 최고의 곡이나 자신의 Favorate을 보헤미안 랩소리로 꼽는 사람이 흔치 않은 이치라
고 생각하고 편히 대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도, 흥겨운 발걸음으로 이것저것 눌러보
고 읽어보고 댓글 달고 그리 되진 않습니다.
이런 글, 예전 게임큐 게시판에도 잘 찾아보면 장문으로 제가 쓴 글이 아마 어딘가 있을
것이고, 여기 피지알에도 논조가 크게 다르지 않은 글이 어딘가엔 아마 있지 싶습니다.
초창기엔, 한 달에 한 번은 나의 의견을 개진했던 거 같습니다. 아무리 적어도 그 정돈
했었죠. 그게 간격이 점점 멀어집니다. 아무리 자세히 내 입장을 설파해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팬은 영입됩니다. 역사는 늘 반복되더군요. 때 되면 이미 피지알에서조차 수차례
논란이 되었던 주제가, 닳고 닳아 무늬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해묵은 주제가 또 다시
고개를 듭니다. 그 때가 언제였냐는 듯, 사람들은 열띤 논쟁을 벌입니다. 이제 10년입니다.
10년 전의 키보드 워리어들은 90% 눈팅족이 되어 있을 겁니다. 눈팅조차 안 하거나
제목만 보고 선별해서 보거나 각양각색이겠습니다만, 인터넷 게시판 문화에 열광하는 건
사이버 인생에 있어서 일종의 홍역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개똥 같은 게임철학을 소개합니다.
게임해설을 하는 데 있어서 제 노선은 아주 뚜렷합니다. 무조건 재미 추구. 스타를 잘 모
르는 어린이가 봐도 재미있고, 직장이나 학교에선 꼰대로 통하는 40대, 50대 아저씨가 봐도
재미있는 중계를 하자는 게 모토입니다. 마루에 아들이 크게 틀어놓은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주머니도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 그게
최고입니다. ‘난 이런 게 재미있는데?’ ‘재미란 이런 것 아닌가?’ ‘해설자란 이런 것을 하
는 사람이다!’ 등등 반론 말하는 사람 참 많겠습니다만, 세상이란 게 참 냉정한 거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대세였다면 전 벌써 짤렸을 겁니다. 온게임넷을, 스타리그를
시청하는 보다 다수의 사람이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짤리긴 커녕 아직 피디들에게
중용되는 겁니다. 오만이 아니고... 실제 세상이 그런 겁니다.
게임해설 초창기에, 저는 프로게이머가 해설을 해도 게임을 보는 눈 자체는 내가 더 높을
수 있도록 노력을 했었습니다. 정말 큰 노력을 해도, 태형(당시 도형)이가 나타났을 때,
창선이가 나타났을 때, 동준이가 나타났을 때, 성춘이가 나타났을 때, 그 모든 경우에 있어
서 같은 말을 들어왔습니다. 내가 맞고 그들이 틀린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출신성분
’이야기는 어김없이 나옵니다. 100의 노력을 투자해도 10을 건지는데, 리그의 전체 줄거
리를 얼기설기 엮어나가고 경기 내에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로 재밋거리를 전달해보면 10
의 노력으로 100을 건지게 되더군요. 예전, 정민이랑 WCG 국대선발전(이제 재작년이군요.
2006년이니)을 중계한 적이 있었는데, 서지훈 대 전상욱전, 맵은 아카디아2였고 대각선
방향이 나온 일이 있었는데, 지훈이가 투팩 애드온을 한 경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비프로스트에서 서지훈이 들고 나왔던,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이었던 온리 탱크 러시를
생각해내곤 그 말을 주워섬겼다가, 정민이의 ‘저 빌드 제가 압니다!’라는 말에 셧업했던
일이 있었는데, 2벌쳐 2탱크 2골리앗 러시든가? 아마 그런 식으로 정민이는 예측을 했었
고, 지훈이는 온리탱크 러시를 했던 일이 있었죠. 거 봐라, 이런 일도 있었다!라는 걸 말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빌드나 선수의 의도나 이런 것, 얼마 전까지 프로게이
머를 했던 정민이보다 제가 잘할 수가 없죠. 저런 경우보다는 정민이가 맞는 경우가 평소엔
훨씬 많겠죠. 그러나, 만약 그 때 둘의 발언이 바뀌었었다면...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또 수년간 이어지는 떡밥이 되었겠죠. 게시판 댓글로 툭, 툭, 던지며. 아, 그래.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면서. 심지어 그렇게 돌고 돌면서 서서히 윤색되고 왜곡되기도 하고요. 게임 자
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력, 나름대로 하다가도 프로게이머 출신 해설자 한 명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제 역할에 대 한 재정립을 해나가게 됐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제 위
치는 부동의 위치가 된 겁니다. 긍정적인 면으로도, 부정적인 면으로도 과정 속에서 정착
된 것이고요. 그리고, 그것을 떠나서도 나만의 고유한 분석의 영역이란 게 있기도 했었는데
... 프로게이머 경기 리플레이의 봉인이 또 작용한 게 있었죠. 집에서 리플 연구를 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었는데. 음.
내부 회의 때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이도 하고, 우리끼리 술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이
도 하고, 우리는 3인 중계 시스템의 역할 분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차별화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위기를 띄우고
, 만들고,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궁구하고, 의문스런 플레이에 대해 추리하고(맞고 틀리
고를 떠나, 억지스럽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축제와 같은 즐거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
런 것들이죠. 제가 사람이 좀 ‘세기’ 때문에 -_-; 제 분위기에 다른 사람들도 휩쓸릴 때가
아주 많아서 게임 자체에 대한 비중이 전체적으로 낮아질 때 주로 매니아 분들이 불쾌해
하시는데, 이 점은 저도 참으로 유감입니다. 하지만, 요즘 좀 과했어 오늘은 게임에 조금
더 집중해 볼까라는 마음가짐으로 중계를 하면, 끝내고 돌아가면서 대부분 후회합니다.
나중에 욕먹건 말건, 실수나 삽질을 하건 말건, 시종일관 들뜬 상태에서 즐겁게, 신나게
열띤 중계를 했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우리의 이런 경향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던 게 용
산 스튜디오이기도 했습니다. 용산으로 넘어오면서, 모니터와 현장 분위기중 직접 현장을
찾은 관중들과의 호흡쪽으로 비중이 더 실리게 되기도 했죠. 방송이라는 면에서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지라...
그래도 과도하다, 과도하다라고 하시는 분들 있을 거 같군요. 어느 정도는 인정합니다. 하
지만, 과도하다라는 생각보다는 다르다라는 생각으로 좀 봐주심 안 될까요. 선수들의 경
기와 빌드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정확한 예측을 하고 유불리에 관한 정확한 소견을 전달하고..
. 이런 경기 정말 많이들 보시고 계시지 않나요. 엄재경이 나오는 중계는 허접해서도 좋
고, 짜증나서도 좋고, 재미있어서도 좋고, 신나서도 좋고, 시끄러워서도 좋고, 그게 뭐가
됐건, 정말 많은 게임 중계가 있는 가운데,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봐주세요. 저는
다르게 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포기해도 좋고, 흥분 상태에서 마구 떠들다가 실수가 나와
도 좋고, 욕 무지하게 먹어도 좋고, 상관없습니다. 스타리그는 달랐어. 재미있었어. 이렇
게 느끼는 분들이 많으면 그만입니다. 삽질하고 엉뚱한 소리 하면, 욕하세요. 오징어 없이도
캔맥주 한두 캔 뚝딱하고 해치울 수 있지 않습니까. 스포츠 보면서 해설자 씹는 맛도 유
력한 재미의 한 가지이죠. 이 쯤 연봉 받으면 이제 어느 정도 됐으니 이제부터는 좀 근엄
해도 되지 않나 생각하는 선수, 코칭 스탭,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다릅니다. 볼 거
없어서 여기저기 채널 돌리다가 잠시 멈춘 5초, 그 사이에 채널이 결정되는 순간을 위해
무조건 재미를 추구할 겁니다. 이스포츠, 대중문화가 되기엔 정말 아주 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스포츠에서는 매니아들과 참 많이 충돌하는 편입니다. 초기에는 매니아들과 거의
동지적 관계였다고까지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많이 달라졌죠. 매니아, 좋아합니다. 저도
프로그래시브 락이나 영화, 위스키 이런 쪽으로 가면 상당한 매니아입니다. 락인지 디스
코인지 싶은 본 조비, 정말 욕 많이 하고 싫어합니다. 하지만, 하는 일에 관해서는 위치와
노선에 따라 사람이 절대 매니악할 수 없는 거랍니다. 저는 이스포츠와 방송에 있어서 ‘
극’대중주의를 표방합니다. 제가 이스포츠의 일반 팬이었다면, 매니아였다면, 저 같은 스
타일을 싫어했을 지도 모를 거 같네요. 음... 성격상 싫어할 수는 없겠군요, 코드가 완전히
같으니. ^^; 내심 재미있어하면서 겉으로는 욕했을 거 같기도 하구요. 본 조비, 정말
싫어하지만 세상엔 본 조비 같은 사람이 꼭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글을 써봐야 안티들에겐 핑계나 대는 일로 비추기만 할 테고, 어차피 먹던 욕 덜
먹어봐야 얼마나 덜 먹게 되겠습니까만, 그래도 제법의 시간을 투자하여 썼습니다. 잘 좀
봐 주십쇼~!하는 의미도 있었고, 제 입장에선 안타까워하는 아군들에게 힘내시라고, 감
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경기중에 좀 더 경기에 집중할 테고,
한 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방관하고 있었던 게임 내적 데이터에 관한 부분도 다시금 테스
트 새롭게 해 보면서 공부 좀 더 할 테고, 결정적으로..., 자주 하지 않고 있던(심심하면 컴
깨기 같은 거나 마눌 농락 이런 거나 했었는데... ^^;) 게임 자체를 즐기는 일을 많이 하
겠습니다. 이것 역시, 되도록이면 좀 더 많은 사람이 만족하는 게임중계를 하는 길이겠죠. 그
.러.나. 해설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제 스타일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침묵으로 만족하
거나 응원하고 있던 많은 아군들이 등을 돌리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하, 그 놈 고집도 참~! ^^;
욕먹고 사는 일도 참 쉽지는 않습니다만, ‘형, 무플이 제일 악플이에요~.’라는 후배의 말
을 떠올리며 많은 관심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게시판 난리 났다고 영광이가 좋아하려나 모
르겠네요. 곧 스타리그인데, 이 악독한 친구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 거 같기도 하군요.
추운 데 몸조심들 하시고, 앞으로도 이 재미난 이 스포츠, 오래오래 함께 즐깁시다.
항상 즐겜하세요.
-- 서교동에서 엄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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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02년 05월 01일 레벨 : 3 글쓰기 점수 : 288 (글 : 17, 코멘트 : 118)
게임 해설을 하고 있는 엄재경입니다.
항상 즐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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