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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4/30 16:10:37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나는 너희들이 지난 1912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1912년 영국의 아마추어 고고학자 찰스 도슨은 영국 서부의 작은 마을 필트다운에서 고대 인류의 두개골 조각을 발견합니다. 이 발견으로 한 껏 고무된 도슨은 당시 영국의 저명한 지질학자이자 영국자연사박물관 지질학부를 책임지고 있던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를 필트다운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이어 도슨은 신부이자 고생물학자였던 프랑스 사람 피에르 테이야드 드 샤딘까지 불러들여서 그 해 여름 필트다운에서 본격적인 유골 발굴 작업을 벌입니다.

찰스 도슨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


피에르 테이야드 드 샤딘



그들은 그곳에서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유골들뿐만 아니라 도구들과 동물의 뼈들도 같이 발굴하였습니다. 그들이 발굴한 것들은 한결같이 오래 된 것처럼 보였고 적어도 수 백만 년은 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의 발굴은 곧 영국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대 인류의 유골들은 프랑스와 독일,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등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서만 발견이 되고 있었고 영국에서는 고대 인류의 화석이 단 한 점도 발굴되지 않던 실정이었습니다.

도슨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놀라운 유골을 발굴하게 되는데 바로 치아들이 붙어 있는 아래턱 뼈의 일부를 발굴한 것이었습니다. 그 아래턱 뼈는 틀림없이 전에 발굴한 두개골 파편의 주인공의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그 아래턱 뼈가 주목을 끌었던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턱뼈라기 보다는 여러 면에서 유인원의 턱뼈와 비슷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턱뼈에 붙어있던 치아들은 전형적인 인간 치아들의 마모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그토록 많은 고고학자들과 고인류학자들이 발견하기를 바라마지 않던 유인원과 우리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 (missing link)"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1912년 12월 영국왕립지질학회의 회의에서 아서 스미스 워드우드는 그들의 놀라운 발견을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공개합니다. 영국의 과학자들은 이들의 발표에 열광하였습니다. 마침내 영국에서도 다른 대륙의 경쟁국들처럼 오래된 원시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이제 영국도 고대 인류의 화석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더 놀라운 것은 발견된 화석이 다른 국가들에서 발굴된 고대 인류의 화석들보다 더 오래된 가장 최초의 인류의 화석일지도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영국의 신문들은 이들이 발굴한 유골을 "필트다운맨(Piltdown Man)"이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의 학자로서의 권위는 이 필트다운맨을 둘러싼 어떠한 의혹의 눈초리도 잠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필트다운맨 복원모형. 밑에 검은 부분이 실제로 발굴된 아래턱 부분


여기에 영국의 저명한 해부학자인 아서 키스까지 가세하여 필트다운맨의 존재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더군다나 그 화석은 인류 진화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가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키스는 인류가 직립 보행을 하기 전에 먼저 두뇌의 용적부터 커지게 되었다는 이론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즉, 인류의 직립 보행은 두뇌가 커지면서 얻게 된 결과물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는데 필트다운맨 화석은 정확히 그의 주장을 대변해 주고 있었습니다.

아서 키스


여기에 또 한 사람이 끼어들게 됩니다. 최초의 필트다운맨 유골이 발굴되고 난 이후 영국자연사박물관에서 아서 스미스 워드우드 밑에서 일하고 있던 마틴 힌튼이 찰스 도슨과 피에르 테이야드 팀에 합류하여 추가적인 발굴 작업을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추가 발굴에서 더 많은 유골들을 발견했으며 이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필트다운맨 화석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마틴 힌튼


1916년 찰스 도슨이 사망하고 난 후 필트다운맨 화석은 더 이상 발굴되지 않았지만 그후로도 계속해서 필트다운맨 화석은 인류 진화의 열쇠를 쥔 중요한 화석으로서 학자들의 연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로 접어들자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20년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학자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더 많은 인류의 유골들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필트다운맨이 발굴되고 난 이후로 발굴이 되어지는 유골들은 무언가 필트다운맨하고는 이야기 구조가 잘 맞지가 않았습니다. 필트다운맨은 수 백 만년이나 오래된 최초 인류의 화석으로 여겨지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뒤로 발굴되는 인류 유골들은 필트다운맨에서부터 더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진화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두개골은 필트다운맨의 것에 비해 너무 작았습니다. 즉, 오히려 후대의 인류 화석으로 올수록 두뇌의 용적이 더 작아지는 형태를 띠게 된 것입니다.

필트다운맨 화석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점점 더 쌓여가고 있었지만 그 당시 기술로는 정확한 연대측정을 할 수 없었기에 필트다운맨은 여전히 최초 인류의 화석으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영국자연사박물관은 연구를 위해 필트다운맨 화석을 외부 학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매우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 후, 전환점이 찾아오게 됩니다. 불소연대측정법이라는 새로운 연대측정방법이 개발된 것입니다. 이 연대측정방법은 아주 정확한 연대까지 잡아내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인 연대를 추정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1949년 처음으로 필트다운맨에대한 불소연대측정이 이루어졌는데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불소연대측정결과 필트다운맨은 기껏해야 수 만년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은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1952년 과학자들은 필트다운맨의 진위 여부를 가려줄 마지막 시험을 하게 됩니다. 더 발전된 연대측정기술을 가지고 전면적인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들이 맞이하게 된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유골은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로 산으로 처리를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미경을 가지고 필트다운맨의 치아들을 살펴본 결과 치아들에게서 줄칼로 갈린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연대측정결과 아래턱 뼈는 채 100년도 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그것도 사람의 것이 아니라 암컷 오랑우탄의 턱 뼈였습니다. 과학자들이 이 결과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누가, 왜 이런 짓을 꾸민 걸까요?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는 찰스 도슨이 첫 번째로 손꼽혔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사기극에 주도적으로 가담했을 거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그는 소위 말하는 프로 과학자들의 권위를 조롱하고 그들을 농락하기 위해 이러한 일을 꾸몄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슨과 같은 아마추어가 전문가의 도움 없이 그토록 정교한 사기극을 꾸밀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지질학자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가 이 사기극에 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찰스 도슨이 죽고 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필트다운에서 추가적인 유골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발굴 작업들을 진행했었습니다. 그가 만약 이 사기극을 꾸민 공범이라면 굳이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최초의 3인방 가운데 하나였던 프랑스인 피에르는 어떨까요? 그는 필트다운맨이 가짜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후에도 이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가 영국에 머물렀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에 그가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했을 개연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해부학자 아서 키스는 이러한 일을 꾸밀만한 동기는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필트다운맨은 그의 인류 진화 이론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인물이 새롭게 용의자 리스트에 오르게 됩니다. 1975년에 영국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가방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가방 안에는 오래된 뼈 조각들의 들어있었습니다. 1996년 과학자들이 그 뼈 조각들을 분석해 본 결과 그것들은 오래된 뼈들이 아니었으며 모든 뼈 조각들이 필트다운맨에게 행해졌던 식으로 처리가 되 있음을 밝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름 아니라 그 가방은 거의 확실하게 2차 발굴에 참가했던 마틴 힌튼의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 모든 일을 찰스 도슨과 함께 꾸민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권위적이었던 그의 상관을 곤경에 빠뜨리고 명예에 흠집을 내기 위해 이런 일을 꾸민 것일까요? 아니면 호기심에 그냥 비슷한 실험을 해본 것일까요?

필트다운 사기극은 그것이 사기극이었다는 점을 빼고는 사기극의 주도자나 동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필트다운맨 사기극은 아무리 저명한 학자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점 또는 과학자들이 오히려 주도적으로 동료 과학자들이나 일반 대중들을 속일 수도 있다는 점 아니면 자신의 이론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객관적인 눈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비단 과학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필트다운맨 유골의 발견은 1856년의 네안데르탈인 유골 발견이나 1974년의 루시 유골 발견 못지않은 중요한 사건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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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30 16:16
수정 아이콘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m]
一切唯心造
12/04/30 16:2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
역사물에서 갑자기 추리물로 전환이네요
될대로되라
12/04/30 16:21
수정 아이콘
동기는 글에도 있지만 "영국도 고인류화석을 확보하는 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1912년이면 한참 대영제국 깃발이 휘날릴 때고 인종주의가 횡행하던 시기였으니
우수한 영국인이 인류 고고학계에서 찬밥신세인게 못마땅했겠죠.
일본에서 발생한 유물 조작사건도 "이제 일본도 괜찮은 구석기 유물 좀 가져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흑심이 발단이었죠.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건 아니겠습니까..
제미니
12/04/30 16:40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짱구™
12/04/30 16:47
수정 아이콘
피지알 공식 1호 뼈덕후 네안데르탈님 글 항상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Jamiroquai
12/04/30 16:54
수정 아이콘
인류의 진화와 함께 조작도 시작되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엠케이
12/04/30 17:07
수정 아이콘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12/04/30 17:34
수정 아이콘
전 황우석사건이 묘하게 연상되네요.
vagabonder
12/04/30 17:3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읽고
고고학에 관심이 생겼었는데 그 소설에서도 미싱 링크가 나오죠
(아주 충격적입니다!)
이쪽에 관심있으신분들 읽어 보셨으면 좋겠네요.
잠잘까
12/04/30 19:07
수정 아이콘
농담 아니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2/04/30 19:37
수정 아이콘
제목 짱이네요.
취한 나비
12/04/30 20:27
수정 아이콘
한 편의 재미난 단편 소설을 읽은 듯 하네요. 잘 봤습니다.
통큰루미
12/04/30 20:34
수정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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