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라는 표현보다는 우리에게는 19세기 '지하철도'라는 표현이 아마 더 익숙할 것 같습니다. 미국 남부로부터 노예를 탈출시키기 위해 조직되었던 점조직이 만약 진짜 '지하철도'로 존재한다면, 이라는 가정을 담은 이 책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읽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흑인 노예 여성, '코라'의 탈출을 소재로 공간의 변화를 다루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차역과 철도가 실재한다는 기묘한 설정을 가지고 오면서도 묘한 현실성과 시치미(?)를 떼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다만, 많은 부분에서, 이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말해 '우리'에게 잘 와닿는 이야기인지는 의문스럽기는 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노예 제도가 없던 나라는 아니지만, 그 제도를 대다수 사람들이 '매우 옛날 얘기'로 여기기도 하고, 또 인종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물론, 아직까지 생각해볼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에 영화 <노예 12년>을 보면서, '관찰'이라는 시선이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흑인 감독이 만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영국'인의 작품으로써, 섣불리 선과 악을 내보이기보단, 그저 그 상황을 관찰하는 방식으로요. 또,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는 어찌보면, 선악이 그저 인종으로만 정해지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서도,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하지만 그 만큼의 의지력을 지니지 못하기도 했구요. 누군가는 회의적인 악인이기도 하구요. 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적절히 '현대적'인 지하철도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소설의 이야기는 기묘한 불협화음을 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분명 작품의 주인공은 그 시대의 인물이지만, 읽는 우리는 현대에 있기에, 그 기묘한 불협화음이 책을 읽으면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칭찬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는 지하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죠. '창 밖을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게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코라'는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럴 때 마다, 우리는 오락가락할 때는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적당히 비관적이지만) 낙관적인 이야기를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