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모두가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유머글을 올려주세요.
- 유게에서는 정치/종교 관련 등 논란성 글 및 개인 비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7/09/30 20:40
이거 재밌어요. 야간근무동안 정주행 쫙 했는데 그동안 몰랐던 것도 있고 하더라고요. 정말 열일하는 국방TV(...)
여담으로 이 당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공교롭게도 북한의 도로같은게 정비가 안되서 도시규모나 지형같은게 그 때 당시 그대로(...)라고 하더라고요.
17/09/30 20:45
저 당시 거란은 최고 전성기였죠. 병자호란때 청나라보다 더 강력했던게 저때 거란이였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이전 역사상 한전투에 가장 많은 가장 많은 병력을 동원한 전투이기도 합니다.
17/09/30 21:09
송나라도 대요전선에서 저런 대규모 전투에서 저정도 교환비로 압승을 거둔일은 없지 않나요? 귀주대첩은 알면 알수록 미라클합니다 그야말로....농경민족 vs 유목민족에서의 압승, 수만단위 대규모병력 닥닥 긁어모을수 있는 고려의 행정력+국력, 그만한 병력을 제때 적소에 기동시킨 안목과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려 기병 몰빵시킨 규모의 기병이 막상 막하의 상황에서 등장.....
17/09/30 21:16
한반도 북부의 한정된 기동로와 그에 따른 전력분산 제한, 결전강요+흥화진 마탄 개경공략 도중 거란이 입은 피해+400km 보급제한을 감수한 전격전 실패의 여파에 거란과 수십년간 투닥투닥한 고려의 대비 및 선전이 겹쳤죠
17/09/30 21:18
강감찬의 치밀한 작전 설계와 고려군의 완벽한 작전 실행이 합쳐서 만든 전투라는 말도 있더라구요. 거의 대부분 강감찬의 의도대로 전쟁이 흘러갔다고도 하고 저 방송에서는 완벽한 청야전술을 선보였던 전쟁이라고 평가하더라구요.
17/09/30 21:11
글 길이 늘어나면 자꾸 짤려서 댓글로 대신합니다.
https://i.imgur.com/QHGEWek.png 전투 이후 이야기. https://www.pgr21.com/?b=8&n=34587 눈시bb님이 쓰신 관련 글.
17/09/30 21:19
갠적으론 저기 나온 임용한 교수가 쓴 전쟁사 관련 책 중 여요전쟁을 다룬 전쟁과역사 2권은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잘쓴 책이에요.
17/09/30 22:09
사실 아예 이유없는건 아니었고...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소배압의 정치적인 판단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3차 여요전쟁은 작계부터가 수도로 진공해서 개경을 함락시켜 고려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었던만큼 거란군이 점령한 땅이 없었고, 오히려 직공 과정에서 흥화진, 마탄에서 참패하고 많은 군사를 잃었죠. 아무리 소배압이 그동안 전공이 많고 소씨 일족이라고 해도, 2차 여요전쟁 이후 최대규모 군세를 이끌고 와서 이 정도로 공이 없다면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죠. 이 상황에서 고려군이 아예 안싸워주고 니가와를 시전하거나, 혹은 몇 차례 격퇴한다해도 한 번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하면 고립된 상황이라-심지어 몇 달 동안 보급도 못받았고- 시간 끌면 불리해지는건 거란군입니다. 김종현의 기병대도 따라붙었으니 뒤통수도 근질근질하고... 이럴거면 고려군을 끌어들여 크게 한타싸움 벌여 승리한다면 퇴각로도 뚫을 수 있고, 주력군도 격멸시키면 개경함락에는 실패했어도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는만큼 배수진을 치고 싸울만한 이유는 있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전세도 팽팽했구요.
문제는 "종현이 형이 거기서 왜 나와?"
17/09/30 22:53
저 때 고려가 인조정권 꼴났으면 세계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도 고려가 송나라 머리 끝까지 기어오르게 된 데 한 몫하기도 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