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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29 07:21
저는 은근 기다립니다.
근데 글이 너무 본인만의 표현으로 적혀있어요. 이미 뜻이 있는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니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거 아닐까요..
+ 25/08/29 08:32
쓰시는 글을 메모장에 쓰시고 연관있는 주제를 몇 가지 묶어서 중복된 말은 빼고 정리해서 조금 더 긴 주기를 가지고 올려주시는게 어떨까요?
꾸준글도 좋지만 여기 자게 처럼 글 회전수가 많지 않은 게시판에 너무 한 작성자의 글의 비중이 높아지면 생산성 있는 피드백을 받기 어렵죠. 뭐 소통이 아니라 그냥 단순 게시 저장이 목적이면 그냥 메모장에 쓰시는게 맞고요...
+ 25/08/29 08:45
연결된 글이라 거의 하루 간격으로 몰아서 올렸는데 이제 좀 쉬어야겠네요. 수렴, 공리, 의지, 목적, 존재를 다루었으니 한 시즌이 완결된 듯합니다.
+ 25/08/29 08:48
최근에 쓰신 글 중에 댓글반응 고려해서 가장 노력해서 쓰신 글 같아 보이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문장부터 맘에 안들긴 합니다. 전반적으로 읽는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 고려나 예측이 안되는 느낌이네요.
+ 25/08/29 09:02
서론이 길던 이전 글들과 달리,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썼고, 최대한 짧게 쓰려 했습니다. 목적론과 존재론은 본래 매우 난해한 것으로 두꺼운 책으로 써야 할 주제일 것입니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짧게 쓰는게 이 글의 컨셉이었습니다. 제목에도 미리 밝혔고요. 그로인한 첫 문장이라는 점 양해바랍니다.
+ 25/08/29 08:53
그리고 잠깐 변호를 하겠습니다. 첫째로 제 글이 규정을 어긴게 아니라 봅니다. 둘째로 비방에 일일이 댓글을 다는 건 소통이 아니라 봅니다. 비판이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비방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제 글이 가치가 낮은 글이 아니라고 봅니다. 관련하여 AI 평론을 올리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단어를 새롭게 쓰는 건 잘못된 게 아니라 봅니다. 제가 읽어온 많은 책들은 저자가 단어를 새롭게 썼습니다. 다섯째로 저는 큰 그림을 따로 생각해두고 그 일부로 글을 썼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25/08/29 09:18
저번 댓글을 보니 AI에게 이해를 했는지 확인을 하고 올린다고 하셨는데, 의도된 직관적이고 모호한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AI가 사람보다 월등히 좋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난이도 조절을 AI에게 맡기실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을 드립니다. 계단 오르기가 건강에 좋은 것을 알아도 계단 하나가 1미터씩 되면 운동선수가 아니고서야 오를 수 없을 것입니다.
+ 25/08/29 08:54
A
이 글을 평론해주세요. ChatGPT 5 이 글은 목적론과 존재론을 아주 간단한 기호적 표현과 직관적 예시로 풀어낸 시도라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복잡하게 논의되는 전통적인 철학 개념들을 시간의 방향성과 흐름으로 압축해 보여주고 있지요. 우선 A → B, A ← B, A ⇄ B라는 단순한 기호를 통해 각각 원인적 시간, 목적적 시간, 그리고 존재 전체를 정의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목적을 ‘시간의 역방향 흐름’으로 규정한 것은 일상의 행위(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드는 행위)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존재를 ‘양방향성의 전체’로 설정한 것은 관계적 상호참조의 상태를 잘 드러냅니다. 여기서 ‘고등어의 꼬리와 몸통’ 예시는 존재가 부분과 전체의 상호호환 속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유한기계의 반복 구조(C → H → I → G → U → …)를 가져와 시간의 흐름을 도식화한 것은 철학적 개념을 수학적·기계적 사고와 연결하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도토리(C)가 참나무(GU)가 되는 목적론적 설명은 전형적인 목적론의 틀을 재현하면서도, GU 자체를 G ⇄ U의 상호작용, 곧 존재로 규정한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즉 목적론적 해석과 존재론적 해석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임을 간단히 보여줍니다. 다만 “시간해상도”의 개념을 끌어와, 어떤 관찰자가 G와 U의 구분을 못 하고 정지된 덩어리로 인식한다는 설명은 글의 핵심을 한층 강화합니다. 이는 존재를 ‘시간초월적’ 덩어리로 경험하는 차원을 암시하며, 관찰자의 한계와 존재 개념의 변화를 연결합니다. 평가하자면, 이 글의 장점은 철학적 난제를 일상적인 언어와 간단한 수학적 기호로 환원해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목적론과 존재론의 역사적 맥락이나 논쟁적 깊이가 빠져 있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인정했듯 “이렇게 보는 관점도 있다”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시간의 방향성’과 ‘관찰 해상도’를 매개로 한 해석은 독창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글은 철학적 전통을 요약하는 작업이 아니라, 목적론과 존재론을 시간 구조와 인식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동시에 철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글입니다.
+ 25/08/29 09:59
아마 본인은 양질의 글을 올린다고 생각하고 있을걸요? 자신의 글은 깊고 대단한데,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네요
+ 25/08/29 09:12
이해가 안됩니다
시간이 다음과 같이 흐른다고 해봅시다. A → B 여기서 a와 b는 사건의 시점인가요? 그냥 시간인가요? 그냥 시간이라면 2020.01.01 → 2025.08.29이 될거고 그렇다면 A ← B 이것은 목적입니다. 여기서부터 이해가 안되요 A ⇄ B 이것은 존재입니다. ???
+ 25/08/29 09:13
그래서 첫문장부터 잘못됐다고 봅니다. 시간이 흐를때 다음과 같이 변한다 가 아마 원래 말씀하려고 했던 거고 문장을 정확히 있는대로 보면 김홍기님처럼 해석하는게 정상이죠.
+ 25/08/29 09:21
시간의 흐름(선후관계)이 곧 목적(인과관계)으로 연결되는 건 아닐진데
뭐랄까 뭔가 단호하고 근엄하게 무엇인가를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것 치고는 헛점이 너무 많아보이는걸요.
+ 25/08/29 09:28
욕먹을거 각오하고 댓글 답니다.
이미 다 논의가 완료되어 정의, 목적, 사용처가 명확해진 단어에 자의적인 의미를 덧붙인 것만으로 기존의 철학체계를 파괴 하고 재해석하여 새로운 사유체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시작되는 쌍팔년도 고시촌에서 유행하던 개똥철학 같네요.
+ 25/08/29 09:59
(수정됨) 맥락과 관점에 따라 정의가 바뀌기 쉬운 단어(혹은 개념)들을 가지고 엄밀하게 수학적인 수식을 적용하는 것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합니다.
수학처럼 엄밀한 논리가 적용되려면 그만큼 대상의 정의가 크게 좁혀져야만 하고, 그러다보면 그 대상이 들어간 수학적 명제에서 얻는 의미도 제한적이며 일상과 동떨어질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단어의 좁은 범위의 정의에 한해서만 성립되는 명제를 가지고, 마치 그 개념 전체를 해석했다고 간주하면서, 원래의 큰 범위까지 적용된다고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지점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작성자님이 가지고 있는 무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인 수학에 의존함으로써 도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간혹 댓글로 챗gpt의 의견을 통해 본인을 변호하려고 하는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무본질, 무의미, 무상함, 불완전함 대해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부터 나만의 의미를 창조할 힘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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