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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1/19 09:44:31
Name Farce
Subject [일반] 남베트남 난민의 "우리의 최선"을 읽고 왜 나는 열등감을 느꼈는가. (수정됨)

Farce입니다.
며칠만 있으면, 미국에서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됩니다.
무슨 거창한 석박사는 아니고, 저는 단지 국내대학에 다니는 학부생에 불과합니다
잠시 일 년도 안되는 시간을 교환학생으로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저번 학기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좀 길게 저에 대한 이야기와 수업에서 너무나도 기억에 남는 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보려고 합니다.

1.
저는 2018년 1월, 그러니까 작년 이때 즈음에 육군 만기전역을 했습니다.
그다음에 바로 이어, 복학생이라면 뭐라도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한 학기를 마치고 나니,
넋이 반쯤 나가 있는 정신머리로는 아무리 좋은 수업을 들어도 배우는 것도 없고, 제 몰골도 말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뒤늦게나마 교환학생을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으로 다녀오면 좋겠다고,
아무런 계획조차 없이, 모아 놓은 금전조차 별로 없이, 무작정 신청했습니다.

도착한 학교가 어떤 강의가 잘났고, 어떤 유명한 교수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제가 가장 우선순위를 가지고 찾으려고 했던 과목은 '미국문학사' 수업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이면서, 학점을 좋게 받는 것에도 재능(?)이 있는 과목이면서,
항상 꿈꿔왔던, 미국에서 미국문학을 공부해보자는 목표에 너무나도 닿아있었으니까요.

애석하게도 제가 한 학기 동안 듣게 될 이 강의는 제가 생각한 것과 별로 연관이 없었습니다.
첫 시간에 키가 상당히 크고, 부스스하게 생긴 백인 교수님이 쪽지를 돌리더군요.
"미국 문학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문학을 미국 문학으로 만드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변해 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모니터 화면에 띄우면서요.

저는 거기에 제가 평상시에 생각하고 있던 대로 적었습니다.
"미국이라는 소재를 익숙하게 다루는 작품들,
미국인이라면 이해할 상징성과 장소와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한국인인 저의 목표입니다."라는 식으로요.

강의에서 첫 교재는,
당시 미국 주류사회에 대해서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싶어 시골에서 홀로 살려고 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수필 "월든"이었습니다.
문학에 살고 죽는 영문학도인 저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책이었고,
강의 내용 또한 예상한 대로 흘러가더군요.

한 백인 미국인이 있었고, 그는 자기가 살던 시대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똑똑하고 배운게 있는 사람이었기에, 툴툴거리는 책을 썼습니다.
책의 내용은 이런 내용이며,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합니다.
몇몇 이해가지 않는 부분은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학생 여러분 재미있죠? 역시 책에 대해서 공부하면 재미있답니다. 이제 다음 책으로 가볼까요?

그렇게,
스페인계 '라티노'들의 문학 이야기가 지나갔고,
흑인들, 인디언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지나갔습니다.
한 학기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수업 중에 서툰 영어로 제가 떠들게 만들어주었지요.

하지만, 단 한 책.
어떤 '아시아인'들에 대한 책은 정말 저를 매우 재미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른 책들을 공부할 때는, 인터넷으로 시대상도 더 알아보고 싶어지고,
도서관에서 작가의 다른 책도 알아보게 만들더니만,

이상하게도, 단 한 책만은 저를 정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책만 생각하면 머리가 너무나도 아파졌고,
한국에서 하던 대로 술을 찾아와서 마시게 만들었습니다.
the-best-we-could-do

[The Best We Could Do. 해석하자면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러니까 아시아인이고,
애석하게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먹는 데는 교수님의 강의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지만,
네이버로 검색을 해보니, 나름대로 유명한 권장도서라 여기저기 책에 대한 리뷰가 한국어로 많이 작성되어있습니다.
아래는 바로 저의 버전입니다.


2.
저번 학기, 기말 레포트에서 썼던 이야기 그대로 적습니다.

도대체 미국에 도착한 '남베트남 난민 보트피플'이 미국에서 만화로 '자서전'을 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라고 제목을 적는다니,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슴에 품고 도착한 책은 딱 한 권이었습니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었습니다. 북한에서 '혁명'도 못하고, 남한에서 '영달'도 못하고, 6.25 끝나고 북한에 (도로) 끌려가서,
죽을 것 같으니까, 중립국으로 가는 보트 위에서 선원들에게 회한이 담긴 농담을 좀 따먹다가,
입은 실실 쪼개고, 눈에서는 눈물을 흘려대며 몸을 던져버리는 대학생의 이야기.
그게 다리 부러져서 전역한 저의 "최선"이라면 최선이었습니다.

how-painful-it-is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두려웠다."]

작가 '티 부이 (Thi Bui)'는 책을 분만실에서 시작합니다.

'이 귀여운 아이가 지난 전쟁의 상처를 얼마만큼 담고 있을까.'
부이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무서운 일인가를 천천히 털어놓습니다.

the-papa-monster

[내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실 당신은 전쟁에서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잃은 아버지였을 뿐인데...]

부이는 천천히 자신이 기억하는 어린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미신적이고, '좋은 부모'는 결코 아니었던 부모님이 있었던 그의 어린시절.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니, 도저히 부이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자식에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누릴 수 있는 세계가 고작, 캘리포니아 난민촌의 부족한 부모님들이면 너무나도 서글프니까요.

thi-bui
[어머니는 사이공에서의 즐거운 학창시절을 말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으셨다.]
[하지만 중요한 대목이 나오려면 자꾸 저녁 식사니, 요즘 생활비니 하는 이야기로 돌리셨다.]

그래서 부이는 이 기회에 자신의 부모님이 어떤 역사를 보냈었는지 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합니다.
그리고서는 책은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그림체로 남베트남의 혼란기를 하나씩 독자들에게 전달해줍니다.

the-family-tree
[가족의 이야기를 알고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버지 '보(Bo), 북베트남말로 아빠'는 북베트남에서 피난을 온 출신이고,
농촌 지주 출신 할아버지와 함께, 공산당원이 된 아버지를 의절하고 내려왔습니다.

어머니 '마(Ma), 남베트남말로 엄마''는 반면 남베트남 토박이이며,
프랑스어를 가톨릭 학교에서 배웠을 정도로 엘리트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결국 이들은 말레이시아로 보트 하나를 타고 도망치게 됩니다.
다행히도 이들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미국에 우여곡절 끝에 정착하게 되지요.

'마'는 이미 전쟁 전의 혼란기와 전쟁통에도 수많은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그 잊혀진 혈육들은 다시는 찾을 수 없었지요.

담담하게 '마'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부이'는 엄마에게 울면서 묻습니다.
"(아이를 낳는) 이런 짓을 어떻게 한 번 이상 하신 거에요?"

남베트남이란 '패배'의 장소입니다.
미국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실패한 국가이고,
남한 사람들에게도 남베트남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은 어떻게 망합니까? '남베트남처럼 망합니다.'

'부이'는 남베트남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최선을 다합니다.

the-south-vietnamese
[남베트남은 패배주의자들로 기억될지 모른다. 그러나 남베트남의 항복은 내가 태어난 날, 전투가 끝나있게 해줬다.]
[내 목숨은 어쩌면 항복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부이'는 결국 책의 제목을 마지막에서 다시 곱씹습니다.
이게 우리 남베트남 사람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나는 이제 자식을 낳고, 대를 잇기로 했다고,
나는 부모님을 용서한다고, 아니 적어도 이해는 해드릴 수 있다고.

나는 자식을 낳았으나,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책에서는 말을 하지 않지만, 저는 책이 이런 식으로 결론을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그 고생을 했지만,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남베트남은 계속될 것이다.'

3.
your_father

["너희 아버지"]

전역을 하지 않고, 얼마 되지 않아. 저는 자취를 하지 않고 온실 속에서 자라는 대가로,
아버지와 또 다른 언쟁을 벌여야했습니다. 성격 문제였습니다.
아니, 사실 성격 문제는 제가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아직도 육군 병원에 헐레벌떡 달려오시던 아버지의 놀란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 오지 말라고 했건만, 위수지를 들려서 웃돈을 주고 사 온 '맛없는' 그 막국수를 사 오신 것도.

이상합니다. 저는 제 아버지를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아버지는 정말 좋은 제 술친구이시기도 합니다.

무슨 거창하게 술을 먹는 것도 아니고,
당신께 배운 그대로, 가벼운 저녁에 가벼운 소주 두어 잔.
그러면 저는 세상 각지를 돌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세계여행을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어째서 당신은 이런 견문과 혜안을 가지고도, 대학교를 중퇴하시고 일을 택하셨습니까.
연구소장이면 뭐하나요. 얼마 안 되어서 IMF에서 잃어버릴 그 자리를, 그때부터 저녁에 술이 빠진 적은 없었지요.
이렇게 웃으면서 자식이 이해할 술자리가 되기 전까지 얼마나 몇 년간 무서웠는지 당신은 아시나요?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오히려 술이 없을 때,
평상시에 같이 살면서 왜 무슨 말만 하면 그리 오해를 하시는지,
왜 나를 그렇게 나쁜 놈으로 만들고 싶어 하시는지.
무서워서 집 안에서 아무 말도 못하겠더랍니다.

이상하게 군대에서 그렇게 돌려쓰는 전화기로 전화를 걸 때, 미국에서 보이스톡을 걸 때,
정말 그렇게 좋으신 분인데, 전화로는 왜 이리 사람이 순하고 좋으신지.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왜 그러시는 건가요.

4.
저는 여자친구도 없는데, 무슨 자식이야기를 할 수야 있겠냐만,

good-parents
[애 못 낳겠어요.]
저는 도저히 아버지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없어요. 자신이...

내가 애를 상처 없이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드는데,
애에게 상처를 주는 부족한 아비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한둘이 아닙니다.
저는 술을 좋아합니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저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저는 여자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없습니다.
내성적입니다. 지나간 시대의 일을 좋아합니다.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한 불효자입니다.

요즘 서로를 비교하기는 쉽고, 못난 것이 알려지기도 쉬운 세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고개를 들고 다닙니까. 제가 어떻게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다치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그 안에서 끝내보라고 말씀을 하셨지요.
밖에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할아버지도 군인이었는데 아직도 사인이 '지병'이라고.
그래서 '애비없는 자식' 뒷바라지 싫어하는 친척으로 가득 찬 고향을 떠나서,
할머니와 함께 무작정 부산으로 향하셨다고.
지금도 집에 남아있는 고향 물건은 할아버지 영정이 전부라고.

[정말 그런 인생 어떻게 살아오셨어요.]
내가 맨날 농담으로 군 병원에서 전화로 시간 죽이며 그랬잖아요.
아버지는 "너도 자식 생기면 이 정도는 해줘"라는데,
저는 계속 "어우, 저는 자식 생겨도 아빠처럼은 못 해줄 것 같아요."라고.

당신을 제가 넘어설 수 있을까요?

5.

LA 한인타운은 묘하게 낡은 한국의 냄새가 납니다.
한국인의 시계는 한국을 떠나는 순간 멈추고,
이제 한인타운은 지켜야 할 문화가 생기는 법이니,
그렇게 '한인'과 '한국인'의 시간대가 바뀌어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일본 여행 때도 그랬고, 미국 여행에서 한국은 가끔 '물리적인 존망'을 묻는 질문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너희 머리 위에 핵을 이고 있잖아? 터지지는 않아?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없어?

당연히 저는 대답합니다.
아니, 전혀. 전쟁 같은 것은 나지도 않을 거야. 요즘 문화로 널리 퍼트리고 있고.

그러면 남한은 안전하구나. [계속해서 존재하겠구나.]

제가 뭐라고 답해야 했었을까요.

6.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두려운 행위입니다.
이어나갈 미래를 만들겠다는 용기는,
지나간 과거를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있다는 의미 있겠지요.

도대체 무슨 최선을 다했다고, 저는 세상에 남길 수 있을까요.
저의 기말 레포트는 A를 맞지 못할 레포트답게,
갑자기 출산율 저하와 헬조선을 들먹이면서,
저열한 논리로 현대 한국인은 실존이 끝났으면 하는 자기 파괴적인 열망을 가진다.
라고 성급하게 적었습니다. 막상 마음에 "광장"을 품고 있는 샘플은 저 하나뿐인데 말입니다.

제가 배우는 영문학에서, 미국 문학의 장르 중 하나가 바로 "남부 고딕 (Southern Gothic)"입니다.

southern-family

[게임을 하시는 분이라면, 바이오하자드 7에서 등장한 "베이커 가족"에서 사용된 소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비위생적이고, 습기 가득찬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 '악'의 이야기. 곧 '고딕'입니다.
주로 근친혼, 괴물 같이 '더러운 가문', '더러운 피' 같은 소재가 쓰이는 작품으로서,

예를 들자면, 윌리엄 포크너의 "임종의 자리에서 (As I Lay Dying)"라는 소설의 경우,

가치 기준이 완전 뒤틀려 있는 '아버지'에게 자기 멀쩡한 다리를 잘라서 충성심 경쟁을 하는 무식한 자식들이 등장합니다.
독자들은 '외부인' 의사의 눈을 통해서, 뒤틀린 가치가 재생산되는 작은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느낍니다.
아들들은 또 다른 '갑질'을 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무런 여자에게나 불쌍해 보이는 것으로 청혼을 하고, 학대를 통해서 결혼생활을 통제해나가며,
딸내미들은 똑같이 학대받으면서,
멍청한 '수컷'들을 홀리는 것으로 '복수'하고, 자기 후대를 잇는 자식들에게 학대를 대물림하지요.

괴물이 되거나, 괴물을 낳는 기계가 되거나.
결국 그나마 행복한 결론은 서로 죽고 죽이는 것으로 이 '세계를 끝장내거나', 소극적으로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것이지요.

열심히 산 한국인 아버지에 대한 한국 소설이 있습니다.
kapitan-lee
[바로 "꺼삐딴 리"입니다.]

북한에서 아들을 동베를린에 유학을 보내는 것으로, 소련 관리들과 친분을 과시하지만,
막상 남한으로 전쟁통에 내려오게 되자
아들은 죽었다고 잊고는, 이제 딸내미를 미국 관리를 통해, 미국으로 보내려고 하지요.
그러면서 막상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키는 것은 자신의 제국대학 의과대학에서 선물 받은 '시계'라는 트로피입니다.

이 땅에 사람이 아닌 트로피끼리 교배해봤자,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존재하지 않나요?
사람이 사람 구실을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는 그런 불안감만이 자극되지 않나요?

ephraim

[너는 내 괴물의 왕국을 이을 것이다.]

남부 고딕이 미국 남부만의 것인가?
한반도 남부에도, Southern Korean Gothic이 성립하지 않을까.

미국에선 남베트남 사람도 아이를 낳는데
도대체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과연 이 열등감은 저 혼자만의 개인적인 이야기일지,
아니면, 어떤 지정학적인 현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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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 10:36
수정 아이콘
공중파엔 이미 서던 코리아 고딕이 막장 드라마란 장르로 때깔 곱게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듯 합니다.
그리고 망국과 망국의 유민, 그들의 디아스포라는 우리네 증조 어버이들이 월남 쪽배사람들보다 먼저였음이 수박도에도 그려져 있다는 사실은 농이지만은 진실로 유라시아를 넘어 전 세계 곳곳으로 탈조선(문자 그대로의) 했더랬지요. 하지만 본문처럼 관련 작품도, 연구도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뵈지 않는 서가의 응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코리아 디아스포라의 논쟁적 대표가 바로 윤동주 시인입니다.
따라와 누워 풍화작용하는 백골이 조선족이 유골인지 조선인의 유해인지 한국인의 주검인지를 위에 썼던 응달과 종이의 지층에서 갑론을박하는 상황였는데 이게 또 인터넷 시대를 맞아 조선(중국조선,남조선)사람들 끼리 마찰이 빚어지기도 하더군요.
시인의 작품들에서 흐르는 망국의 룸펜이 제국의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괴하는 분위기야말로 제가 넘겨짚기로는 글쓴분의 고뇌(나라가 망하지는 않았지만!)와 근사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이 댓글 자체가 횡설수설노앤썰인 상황이라 F는 따놓은 당상이고 결론도 못짓고 그저 쉽게 망해진 댓글이라 생각 하시고 이해바랍니다.

쉽게 씌여진 시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TheLasid
19/01/19 11:05
수정 아이콘
필력이 갈 수록 좋아지시는군요. 새삼 감탄했습니다. 아침을 좋은 글로 시작하니 좋네요.

아버지에게 애증을 느끼는 이로서, 역시나 자식을 낳을 자신이 없는 이로서 여러 가지로 공감하고 갑니다 :)
foreign worker
19/01/19 11:23
수정 아이콘
요즘 살기요?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힘들다고 천천히 가면 눈치먹으니 어느 정도 속도는 유지해야합니다. 애 낳으면 애까지 태우고 가야 되죠. 좋든 싫든 달려야 됩니다.
좀 천천히 달려도 되지 않냐고, 힘들때 좀 쉬면서 달려도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현실을 만든 건 고도성장에 목맨 국민 전체와 정부죠. 정치인 한두명 바뀐다고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침묵해야 하느냐? 아니죠, 계속 목소리를 내고 환경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해야죠, 아니면 그렇게 안하는 정치인에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물론 이런 방식은 속도가 느립니다, 재수없으면 말 바꾸기 전문인 정치인에게 통수맞기도 하죠. 직접 바꿀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은 많고 힘없는 서민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헬조선이라는 관념을 딱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살기 팍팍한건 사실이고, 불만이 치솟는 것도 당연하다고 봅니다. 다만 노력해도 안된다는 식의 자학이 사회의 대세가 되는 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다람쥐 쳇바퀴하고 느리더라도 점점 달리는 자전거는 페달질은 동일하지만 결론은 다르다고 봐서요.
글 내용과 상관없는 뭔가 엄한 댓글이 되어가네요. 암튼 결혼은 하고 싶습니다(응?) 살얼음판을 걷는 외국 생활이지만. 애기는, 아직 모르겠네요.
제가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 될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만, 그렇게 하고 싶네요. 대책없는 긍정이라고 한 소리 듣긴 했지만, 비관적으로 살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뤼륑뤼륑
19/01/19 12:38
수정 아이콘
겉으로 보이는 논리적 형식이 없는데도
본인의 섬세한 내면을 조리있게 전달하는게 대단하신거 같아요.

작성자님의 스탠다드가 굉장히 높아서 이런 생각들을 하시게 되시는거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무언가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기 좋아요.

일단, 제 생각에는 작성자님은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시고 싶은 시기인거 같고, 그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는 그럴 만한 준비가 되면, 그걸 이해해줄 만한 사람들과 만들어나가면 되겠죠.

상냥한 분이신거 같아요. 글 잘 보았습니다.
19/01/19 13:10
수정 아이콘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생각들인 것 같고,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더 깊이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게 부럽습니다.
스테비아
19/01/19 13:37
수정 아이콘
수필 한 편 읽은 기분이네요. 추천합니다. 그리고 책도 꼭 찾아보겠습니다.
19/01/19 15:13
수정 아이콘
문학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절절함이 역설적으로 잔잔하게 전해지네요.
그린우드
19/01/19 21:06
수정 아이콘
좋은 패배였네요
Quantum21
19/01/20 10:28
수정 아이콘
어설프게 뭐라 댓글을 달면 부끄러워질것 같습니다.

추천수 대비 댓글수를 보니 전 혼자가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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