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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5/12 22:12:17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156
Subject [일반] 광무제를 낳은 용릉후 가문 (6) - 미완의 꿈, 제무왕 유연 5
e7rmSvz35Dgnxn7TUzDTRza_cgM.png육양 전투 후, 왕망의 명으로 학교에서 유연의 얼굴을 쏘는 상상화.

육양 전투

한나라를 다시 일으킨다는 목표로 일어난 유연이 남양군의 신군을 무찌르고 진부와 양구사를 죽인 비수 서쪽 전투의 승리는 녹림군에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남양태수와 군위를 모두 죽였으므로 남양군에서 이제 녹림에 대적할 수 있는 상대는 없어졌다. 진부와 양구사가 가지고 나온 물자도 모두 빼앗았다.


하강·신시·평림·용릉으로 나뉘어 있던 분파를 섞어 육부병으로 조직하고 승리하는 과정에서 병사들이 얻은 일체감도 소중한 열매였다. 녹림의 대장들은 유연의 능력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그에게 지휘를 맡기고 있는 현재 상황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유연은 이제는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이 아니었다. 수많은 혈족들이 흘린 피를 기억하는 가문의 대표자였고, 남양의 사대부들의 기대를 받는 기린아였으며, 농민군을 자유자재로 조직해 신나라의 정규군 앞에서 두려움 없이 싸울 수 있게 하는 지휘관이었다.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그는 녹림군과 함께 빠르게 성장했다.


승리에 들뜬 녹림의 대장들과 달리, 유연은 마음을 놓지 않았다. 하강병을 추격하고 있던 신나라의 중앙군, 장우와 진무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들의 위협을 해소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장우와 진무를 무찌른 뒤에야, 안심하고 완성을 공격할 수 있었다.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비수 서쪽 전투의 결과가 장우와 진무에게도 전해졌고, 이들은 위태로워진 완성을 구원하기 위해 북상하는 선택을 했다.


장우와 진무가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연은 녹림군에게 다시 전의를 북돋고자 했다. 병사들과 함께 맹세를 하고, 남향에서 얻은 노략물들을 불태우고, 취사 도구인 가마와 시루를 부수었다.


“위대한 한의 병사들이어! 오늘 우리는 천지간에 맹세하노라. 저 거짓된 왕망의 대장, 장우와 진무를 무찌르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 우리는 옛날 항우가 한 대로, 밥 지을 가마를 부수고 진격한다!”


그 옛날, 진(秦)나라와 맞서 싸우던 항우가 진나라에 포위되어 위태롭던 조(趙)나라의 한단(邯鄲)을 구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에 항우는 황하를 건너면서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히고 가마를 부숴(파부침주破釜沈舟), 싸워 이기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의지로 진나라를 무찔렀다. 유연은 이를 본받은 것이었다.


병사들은 유연과 마음을 함께했다. 왕망을 무찌르고 한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아끼지 않았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던 백성들도 유연이 노획물을 불태우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유연이 불어넣어준 꿈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유연은 북을 치며 앞장서며 완을 향해 나아갔다.

극양성을 떠나 극수를 건넌 녹림은 곧 육수(지금의 백하)를 만났다. 육수는 한수의 지류로, 완성 남쪽 평야를 비스듬히 지나 남으로 흘러 극수와 합류해 한수로 흘러 들어갔다. 형주 남부에서 완으로 오는 가장 빠른 길은 바로 이 육수를 거슬러 올라오는 것이었다.

유연은 육수를 건너 육양성(현 남양시 남) 아래에 진을 치고 장우와 진무를 기다렸다. 육양현의 현장은 이미 남양태수를 죽인 녹림군과 감히 맞서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서두르지 마라! 장우와 진무는 곧 올 것이다.”


과연 장우와 진무는 완으로 가장 빠르게 가기 위해 육수를 거슬러 북상하는 길을 택했다.

유연의 군대가 육양성 아래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장우와 진무는 완으로 곧장 가는 대신 육양성으로 길을 옮겼다. 육양성과 육수 사이를 뚫고 지나가기에는 그 사이가 너무 좁았고, 유연의 감시가 심했다.

그렇게 유연과 장우는 육양성 아래에서 만나게 되었다.

일찍이 장우와 유수는 안면이 있어, 장우는 유수를 높이 평가했고, 유연 역시 유수를 통해 장우가 지략이 있는 자라는 것을 전해 들었다.


유연이 장우에게 외쳤다.


“백석(伯石: 장우의 자)의 지혜는 다하였는가? 어찌하여 가짜 황제 왕망을 위해 싸우는가?”


장우는 신나라의 난맥상을 알고 있기에 내심 부끄러워했으나, 그것이 아직 신나라에 남은 충성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늘이 이미 한(漢)의 운을 다하게 했고 신(新)을 일으키셨거늘, 어찌하여 하늘에 맞서 싸우는가? 도적떼를 거느리고 백성들을 겁박하고 죽이는 자가 감히 하늘을 운운하는가?”


유연과 장우는 다시 바라보았다. 서로 다른 하늘을 이고 있었다. 결론은 분명했다.


“쳐라!”


유연도, 장우도 이 육양까지 오는 동안, 여러 번의 싸움을 거쳤고, 둘 다 그 과정에서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면서 한을 위해, 신을 위해 싸운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소장안취의 패배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유연과는 달리, 장우에게는 신나라의 앞날을 회의하는 흔들림이 있었고, 그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

장우는 너무나 생각이 많았고, 이미 완에 육박한 녹림을 뚫지 못하면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다는 초조함으로 인해 그의 손은 어지러워졌다.

장우의 흔들림을 감지한 유연은 빈틈없이 군사를 움직여 장우와 진무의 진영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진부와 양구사를 죽이고 기세가 올랐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한 녹림군은 서둘러서 온 장우와 진무의 신군을 간단하게 격파했다.

장우와 진무는 형세가 불리해지자 녹림군을 돌파하거나 우회해 완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결국 장우와 진무는 완성을 구원하기를 포기하고 형주를 넘어 낙양으로 가는 길을 찾아 도주했으며, 유연은 그들을 추격해 3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녹림을 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두 군대가 모두 무너져 내렸다.

이제 남양군에서 한의 부흥을 내세우는 녹림을 분쇄할 수단은 없어졌다.

유연은 드디어 군대를 몰아 완성을 포위하고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칭호도 주천대장군(柱天大將軍)으로 올렸다.


이 소식은 장안의 신나라 조정에도 곧 전해졌다. 왕망은 매우 두려워 떨었다.


“어찌 유씨 도적떼 따위를 진부도 장우도 무찌르지 못했다는 것이냐!”


곧 왕망은 유연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5만 호, 황금 10만 근, 상공 자리. 그리고 장안의 관서와 각 지방의 학교에 유연의 화상을 그려서, 아침마다 활로 쏘게 하였다. 이제 온 중국에서 유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녹림의 대장들은 승리를 만끽했다. 그러나, 이것은 분열의 시작이었다.


유연 대신 유현

진부와 양구사를 무찌르자, 남양의 사대부와 백성들이 앞다투어 녹림에 가담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목표만 있었을 뿐, 아직 나라를 이루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한나라를 제대로 선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게 되었다.

남양군의 여러 현장들과 현령들 중에서도 신나라에서 한나라로 말을 갈아타려 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니, 나라를 미리 선포하지 않으면 이들의 항복을 받고 통치를 할 때에도 장애가 있을 것이었다.


녹림의 대장들과 유력한 인물들은 회의를 열었다. 하강병의 대장 왕상이 의견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왕망과 맞서 모든 승리를 이끈 것은 바로 주천대장군입니다. 주천대장군은 또 한나라의 자손이기도 합니다. 황제가 되실 이는 주천대장군 외에는 없습니다.”


남양군의 사대부들은 왕상의 의견에 동조했다. 흔히 녹림을 농민 반란군이라 하지만, 처음 녹림을 조직한 왕봉과 왕광도 지역의 유력자였고, 현장 등을 역임하다 하강병에 가입한 장궁(臧宮)처럼 관료 출신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일반 백성뿐만이 아닌 지배층들도 많이 있었고, 그들이 이 반란군의 지도 계급을 이루고 있었다.


유교적 소양을 지닌 사대부들에게는 실력과 학문을 겸비하고 한나라 종실이기도 한 유연이 마땅히 모셔야 할 황제의 이상형이었다.


그러나 평림병과 신시병에게 유연은 달갑지 않았다. 그들은 한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유연의 명분에 호응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는 것이 더 먼저였다. 한나라를 다시 세운 공로로 한 자리씩 얻고 그 안에서 호령하며 권세를 누리고자 했다.

유연이 황제가 되면 실력으로나 인연으로나 자신들이 유연의 제어를 받게 될 것은 명약관화했다.


신시병의 대장인 왕봉, 왕광, 주유(朱鮪), 평림병의 대장인 진목(陳牧), 요담(廖湛) 등은 왕상의 제안을 듣자,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군막을 나와서는 따로 모여서 머리를 맞대 보았다. 주유가 맨 먼저 입을 열었다.


“굳이 주천대장군이 황제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유씨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굳이 용릉병의 대장인 주천대장군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들은 다른 유씨들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용릉절후 유매의 장손인 유지(劉祉)였다. 녹림에 있는 유씨들 중에서 정통성으로는 그만한 인물도 없었다. 유지는 돈후하고 정직한 성품으로, 종실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유연의 지휘에 따르고, 자신의 이름은 앞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평림병과 신시병이 보기엔, 그 또한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의 정통성과 인품이라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들 터. 심지어 유연조차, 그 앞에서는 복종할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용릉병에 있는 적당한 유씨들을 내세우자고 하니, 인망으로는 유연을, 혈통으로는 유지를 앞서는 인물이 없었다.


진목이 입을 열었다.


“왜 굳이 용릉병에서 유씨를 찾습니까? 우리 평림병에도 용릉절후의 후예가 있습니다.”


“아하, 갱시장군(更始將軍) 유현(劉玄)과 그에게 속한 유지의 사촌, 유가(劉嘉) 말이군요.”


그러나 평림병과 신시병은 유가 역시 제외했다. 그는 본디 유연이 자신들을 설득해 함께 신나라에 맞서자고 할 때, 그 외교적 교섭을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근본적으로 유연의 사람일 가능성, 그리고 외교력과 조직력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그 역시 유지처럼 황제가 되면, 사람들을 순식간에 휘어잡고 주도권을 쥘 위험이 있었다.


그러면 남는 인물은 단 하나, 유현뿐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는 현재 녹림군 전체에서 유연 다음으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유씨 인물이었지만, 유약한 기질, 그리고 과거 진목의 수하였다는 경력은 그를 평림병·신시병의 조종을 받기 가장 쉬운 위치에 놓이게 했다.


신시병과 평림병의 대장들은 그렇게 선수를 쳐서 유현을 황제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유연과 하강병의 왕상, 장앙, 성단을 불러와 자신들의 뜻을 통보하듯 일방적으로 말했다.


그들의 주장은 겉으로 보기에 시의적절해 보였다.


황제를 세워야 할 때다. 군세는 모였고 민심은 요동친다. 그러나 용릉병 대장 유연이 황제에 오른다면, 녹림 내부의 세력 균형이 무너진다.


그들은 균형을 원했다. 평림병에서 장수 노릇을 하고 있는 유현이라면, 자신만의 세력을 갖고 있기에 하강, 신시, 평림, 용릉, 이 네 갈래 세력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은 그럴듯했다. 유현이라면 자신의 군세가 있고, 위치도 좋고, 균형도 맞출 수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녹림 내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실상 유현이란 인물은 신시병과 평림병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T5hsinCgy4tKm4sOlwKHVW3vW80.png유연과 왕상 앞에서 칼로 땅을 쳐 논의를 중단하는 장앙.

유연을 가로막은 장앙

왕상은 당연히 반발했다.


“말도 안 됩니다! 갱시장군은 평림병의 한 군부에 불과할 뿐이며, 공적도 없습니다. 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앙이 왕상을 말렸다.


“대장, 신시병은 우리 녹림의 어르신입니다. 그리고 평림병도 신시병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함부로 반대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 순간, 왕상은 장앙의 눈빛을 읽었다.


‘아차, 그때 스스로 대장이 되어야지 어찌 유연 따위를 따르겠냐고 했던, 그 장앙의 눈빛이다.’


그렇다. 장앙 역시 바라는 바는 신시병과 평림병의 대장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다면 성단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강병이 일치단결해도 유연이 불리한 마당에, 갈라섰으니 더 저항할 힘은 없었다.

왕상은 속으로 분을 삭이며 자리에 앉았다.


유연은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유현을 황제로 세우고 권세를 나눠먹으려는 평림병과 신시병의 시도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고 여겼다. 마지막으로 유연은 제장들을 설득해, 황제를 세우는 일을 늦추고자 했다.


“장군들께서 유씨 종실을 높이 세우고자 하신 뜻은 참으로 두터운 덕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고 비루한 제 소견으로는, 감히 이에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청(靑)과 서(徐)에서 적미(赤眉) 군이 일어나 수십만 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이 남양에서 유씨 종실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또 다른 종실을 세우려 들까 두렵습니다.”


유연의 말을 들은 제장들은 고요해졌다. 유연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내부에서 다투게 될 것이고, 왕망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는데 유씨 종실끼리 서로 공격하는 셈이니, 이는 천하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고 스스로 세력을 약화시키는 일이 되어, 결코 왕망을 무너뜨릴 방도는 아닙니다.”


유연은 말을 더 이어나갔다.


“또 예로부터 처음 군사를 일으켜 구호를 외친 자들 가운데, 그 뜻을 끝까지 이룬 자는 드물었습니다. 진승과 항적(項籍, 항우)이 바로 그런 사례지요. 용릉(舂陵)은 완(宛)에서 겨우 삼백 리밖에 떨어져 있으니, 아직은 큰 공을 이루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성급히 스스로를 높여 천자의 자리에 오르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선례로 삼게 될 것이고, 훗날 누군가 우리 허물을 이어받아 흉내 내게 될 것입니다. 이는 결코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아직 신나라가 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황제를 세우는 것은 섣부르다고 지적한 유연은, 대안으로 일단 왕을 세우는 것을 제안했다.


“지금은 일단 왕이라 칭하며 명령을 내리는 정도로 하고, 만일 적미가 세운 인물이 어질다면, 우리도 그를 따르러 가면 될 것이며, 만일 적미가 아무도 세우지 못하고 우리가 먼저 왕망을 무찌르고 항복시키게 되면, 그때 가서 천자의 지위를 높이 올려도 결코 늦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여러분도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유연의 말이 마치자, 제장들은 웅성웅성하며 서로 의논했다.

황제를 세우는 것을 나중 일로 미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녹림 외에도 한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일어난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다. 이런 유연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시병과 평림병 측의 장수들은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마뜩찮게 생각했다. 지금도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적미나 옛 신나라의 관료들까지 합류한다면 유연을 지지하면 지지하지 유현 편을 들 리는 없었다.

유현을 황제로 세워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인물들은 녹림의 원로 대장 외에는 없었다. 그런 여러 대장들 중, 장앙이 칼을 뽑아 땅을 치며 말했다.


“의심 많은 논의로는 일을 이룰 수 없소! 오늘 결정한 바는 두 번 따져서는 안 되오!”


고대에 칼이나 막대기로 땅을 치는 행위는 분노든 통곡이든 하나를 뜻했다. 바로 대화의 종결.

장앙은 칼과 말로 동시에 선포했다. 끝났다. 더 논의하지 말라.

그 칼 뒤에는, 신시병과 평림병의 대장들이 앉아 있었다.


장앙의 칼끝에서 서릿빛 파편이 튀었다.

회의장에 장앙이 세운 칼날이 벽처럼 웅변하고 있었다.

그 벽 앞에서, 유연에게 동의한 제장들의 웅성거림은 그쳤다.


유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왕상은 눈빛으로라도 장앙을 찌르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미 벽은 굳게 세워졌고, 유연은 저 편으로 밀려났다.

황제는 유현이었다.


그렇게 3월 11일,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것을 상징하고자 음력으로는 2월 초하룻날을 골라 유현이 황제로 즉위했다.

녹림의 제장들은 삼공구경을 나눠가졌다. 유연은 대사도가 되어 삼공의 반열에 올랐고, 왕상은 정위, 유수는 태상이 되었다. 유연의 숙부 유량은 원로 중 하나인 국삼로가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관직은 유현을 세운 사람들의 몫이었다.

유연과 신시병·평림병 사이는 이렇게 갈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연은 여전히 한나라가 된 녹림의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

목표는 완.

지금까지 그토록 싸움을 거듭해 온 남양군의 수부이자, 장안과 낙양, 두 황제의 도시로 가는 길을 여는 관문이었다. 이제, 그 성이 손에 잡히려 하고 있었다.


그림 출처

그림 1, 2: ChatGPT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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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페인
25/05/12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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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갈등의 서막이 오르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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