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를 따져보니 .. 어언 45년 전 일이다.
흔히 쓰는 표현대로 엊그제 같달 수도 있지만,  
참...  오래 전 기억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막, 잠이 깰 똥 말 똥 하고 있는데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오신 걸 보니, 
또 오리알을 갖고 오셨나 보다.
당시 중3이었던 여동생은 아무도 그리 하라 시킨 사람도 없건만,
공연시리 불철주야 공부에 매진한 탓으로 몸이 몹시 허약한 상태였다.
이에 외할아버지는 새벽에 갓 낳은 따끈한 오리알을 막내외손녀에게 먹이고 싶어 이렇게 달려 오시곤 했다.
우리 형제들이 얼마나 오리알을 싫어하는지 모르시고 말이다.
계란과는 확실히 다른.. ..그 비릿하고 맹한 맛. 
근데 다른 때와는 달리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창고 옆 대추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두런거리셨다.
나는 창문을 열고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는 
한약 두 첩을 소중히 가슴에 안고 고개를 숙인 채,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계셨는데..   표정이 어두웠다. 
날이 온제로 잡힜다캤노? 
내달 스무하룻날입니더.
그라모 .. 달포 반 남았네..  지금 달여 먹이모 되것다.
두 첩 가지고 되겠심니꺼.
일단 멕이보고 효꽈가 없시모 다른 약재를 하나 더 넣어 차후에 또 지어주꾸마. 
그럼 .. 초탕은 두 번 나눠 먹이고, 재탕은 한 번만 달일까예 ? 
온냐.   약이 좀 독한께. 
그라고 .. 무시(무)하고 닭괴기는 못 먹게 조심 시키라이..
뉘예... 
외할버지와 어머니는 나지막한 어조로 사뭇 진지하셨고,  그리 보아 그런지 얼굴이 침통해 보였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하아... 이거.. 아무래도 
언니가 무슨 말 못할 병이 생긴 모양인데...
결혼 날짜 받아놓고 이거 큰일 아이가..
이 일을 우짜노.   
참..  엄마도 답답하다.
그라모 큰병원에 데리고 갈 일이지.. 
정식 한약방도 아니고,  취미로 한약을 짓는 야매 한약업자 외할아버지께 부탁하모 우짜노 말이다. 
당시 외할아버지께서는,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각종 한의약서를 탐독하시며 
손수 집 옆 60여 평 밭에다가 온갖 약초를 재배하심은 물론,
벌꿀까지 치면서
기발한 한약 제조에 몰두하고 계셨다.
멀리 대구 약전에까지 가서 희귀 약재를 구해 오시기도 했다. 
그래서 
두 딸만 내리 낳은 큰며느리에겐  <아들 낳는 약>을,
생리불순인 막내이모와 언니에겐  <월경약>을,
안색이 늘 노라탱탱한 나에겐  <화색약>을,
늘 비실비실 기력이 없는 여동생에겐  <기력약>을, 
심혈을 기울여 지어주시면서..  
자손들을 당신의 연구에 마루타로 이용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달여 먹는 한약 외에도 정체 모를 쥐똥 반만한 환까지 먹어야만 했다. 
그 한약 덕분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만, 우쨌거나 !! 
큰외숙모를 비롯하여 
<외할아버지표 아들 낳는 약>을 먹은
집안 여인네들은 모두 아들을 낳았다. (물론 언니와 나도 포함)
첫딸을 낳고 5년 후 이들을 낳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외할아버지의 이.. 아들 낳는 약만큼은 불신하고 있는 터였다.
도무지 의학적이건 생물학적이건  납득할 수 없는 이치였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그런 약을 먹어서까지 아들을 낳으려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딸 낳는 약을 먹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언니에게 무슨 병이 있음을 감지한 나는,
아버지는 알고 계실 것 같아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다. 
근데 말씀으로 보아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에 들었던 두 분의 대화를,  또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보고했다. 
아하... 그거 !! 
사물탕인갑다. 예에 ?   사물탕이라꼬예 ??? 
뭐어..  
느그 엄마가 그라는데  방구 삭쿠는 약이라카더라... 예에?    방구를 삭힌다꼬예  ??  
결혼날도 다가 오는데...  느 언가가  방구를 무시로 뀌어싸서 .. .. 
느 엄마가 걱정해쌓더니만  결국,  빙장어른이 약을 지어오신는갑다. 
헐 ~~~~~~~~~
참,,,,   
어찌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있으리요. 
언니에게 효꽈가 있었는지 우쨌는지 물어보지는 못 했지만, 
두 사람의 금슬로 미루어 보아 ...
그 이름도 희한한 약의 정체와 효능이 영... 엉터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요즘 들어 .. 그 원인을  모르겠는데.....
외할아버지의  사물탕이 생각날 만큼, 그 기능이 활성화 되고 있달까...
배출량이랄지...생산량이랄지.... 나날이 갱신 중에 있다.뭐..긍정적인 현상이라 여기고 싶다.
편한 아줌마체 + 허접한 소재를 양해 바랍니다. 
가배얍게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