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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24 21:25
그 누구도 3번은 고르지 않는군요
개인적으로는 복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묘했죠 일단 하는 농구로는 2번 영향이 컸고 남성팬덤은 1번 여성팬덤은 4번 스포츠 저변 확대는 5번입죠
25/06/24 21:34
농구대잔치가 인기있던 와중에 이때는 허재,이충희,김현준 인기 이 시기에 연대 농구부,고대 농구부가 뜨고 중앙대 농구부는 3순위.그러다가 마지막승부 인기있었고 슬램덩크와 마이클조던은 같은 시기 1990년대
25/06/24 21:37
복합적인게 정답이겠지만,
남자애들의 농구즐기기가 먼저, 여자애들의 관심이 후순위라고 봐서, 2번이요. 드래곤볼 - 슬램덩크 - 조던 트리였던걸로 기억합니다.
25/06/24 22:07
슬램덩크로 학생들 사이에서 농구 붐이 일고 (그 전까지는 학교에서 다 축구했음)
동시에 대학 농구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거죠 농구대잔치는 대학 농구 인기에 편승해서 같이 올라간거고 마지막 승부는 농구 붐을 일으킨 게 아니라 그에 영향받아서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고 보고 조던은 저 시기 농구붐하고는 아예 관계없는 수준이고 .. AFKN 통해서 어쩌다 한경기 볼까말까한 시대에 NBA 는 무슨 .. 2랑 4가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25/06/24 22:21
(수정됨) 이건 저 시대때 고삐리였던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92년부터 주간 소년챔프에서 연재를 시작했던 슬램덩크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승부가 94년초 방영되었는데 때마침 93-94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 농구부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실업팀들을 박살내고 우승해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농구대잔치의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삼성전자-현대전자의 양강 구도에서 허재-강동희-김유택-한기범의 중앙대가 치고 올라왔고, 중앙대 출신들을 그대로 데리고 온 기아자동차가 원탑이었는데, 연예인 못지않게 잘생긴 이상민, 문경은, 김훈, 강정수 등이 활약하는 연세대 농구부의 인기는 당시 엄청났었죠. 조던과 NBA는 이와는 별개로 AFKN이나 인사이드NBA, 점프볼 같은 잡지로 알음알음해서 즐기는, 아는 사람만 아는 별개의 장르였습니다. 슬램덩크는 초창기에는 농구만화라기보다는 농구를 배경으로 한 학원폭력물 느낌이었는데, 당시 단행본 기준 9~10권부터 본격적으로 농구경기 묘사가 보여지면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원판 31권 단행본 초판으로 다 모았었는데... 고물상으로 팔려나갔...
25/06/24 22:42
저의 체감도르로는 마지막 승부, 농구대잔치, 연대 농구부 비슷하게 큰 영향, 그 다음 슬램덩크 (당시만해도 이런 만화 여자들은 많이 안 봤으므로 영향력 떨어짐)
25/06/24 22:55
제가 80년 생인데 일단 태초에 농구대잔치가 있었다... 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티비에서 '보는' 단계였지 하는 단계는 아니었고요.
그게 슬램덩크와 마지막승부를 통해 '하는'농구와, 경기장에 '찾아가는'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그러한 흐름의 정점에 연대 농구부가 있었고, MJ가 마무리를 장식했다는 느낌입니다. 주관적으로는.. 굳이 따져본다면 농구대잔치에 한 표 입니다.
25/06/24 22:55
전 결국 마지막 승부라 봅니다. 90년대 농구붐은 여성팬이 늘어난 게 핵심이라고 보거든요.
사실 위 5개가 전부 다 연결된 건데, 가장 핵심적인 '지점'은 마지막 승부였다고 생각합니다.
25/06/24 23:10
조던으로 인한 농구세계화 -> 농구를 소재로 한 슬램덩크 탄생 + 영양학 발전으로 신체적 능력이 좋은 젊은 농구선수들의 스타일, 실력상승. 마지막 승부는 일종의 방점이라 보구요.
결국 nba의 세계화가 나비효과처럼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25/06/24 23:35
그당시 농구를 계속 하던사람으로서 체감은 마지막승부 입니다.
다른건 농구하는사람이 조금 느는 정도 였다면.. 마지막승부때는 코트가 늘 꽉 찼고.. 그놈의 손지창 슛 한다고 사람들 에어볼 많이 만들더라고요.
25/06/25 01:07
남자들은 고대, 여자들은 연대 아니었나요? 제 친구들은 다들 고대 능구 스타일 좋아했었죠. 연대는 서장훈 골밑에 박아놓고 3점만 쏜다고 엄청 얍삽한 농구라고 깠었던 기억이 있네요. 연대는 이상민, 우지원 얼빠들이 많았던듯.
25/06/25 01:12
모든 게 연결과 연결이 됐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정보 양이 한정적이라 하나가 인기 끌면 요즘 보다 유행 전파 시기는 느릴지언정 오래 유지 됐습니다. 전국민대상(성인 및 청소년 남자) 스포츠의 인기(야구, 축구, 농구, 배구 + 씨름)는 꾸준했습니다. 그러다 당시 10~20대 문화였던 월간, 주간 잡지에 한두 편 씩 실리던 잘생긴 1류대학생 농구 선수들이 조금씩 10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인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드림팀을 보고 10~20대 스포츠를 좋아하던 남성팬들이 충격 먹습니다. 또한 당시 10대 남자들에게 일본 해적판 만화가 폭발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의 주간 만화잡지에서 일본의 인기 만화를 정식 수입했는데 그 중 하나가 슬램덩크입니다. 슬램덩크 초기는 10대 학원폭력물이었습니다. ('비바 블루스' '상남 2인조' '오늘부터 우리는' '크로우즈(파워클럽)' 등 학원폭력물은 당시 중고생들에게 엄청난 인기였습니다.) 94년에 마지막 승부가 방영됩니다. 젊고 세련된 이미지의 장동건, 손지창, 심은하. 심은경(이후 최고 인기)이 캐스팅되어서 농구를 떠나 방송 3사 뿐이 없던 시절 이 드라마를 안 볼 수가 없게 됩니다. 동내 초딩들이 명성대를 가겠다, 한영대를 가겠다고 할 정도로 세대를 아우른 인기 드라마였습니다. 진짜 농구(농구대잔치, NBA)에다가 만화(슬램덩크)와 드라마까지 한번에 비슷한 시기에 터진거라 꼭 하나를 고를 수 없습니다. 물론 나이와 성별에 따라 접근하게 된 시발점을 다를겁니다. 개인적으로 점프볼이라는 잡지를 모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NBA소식보다 한국 대학 농구선수들의 글이 많아지면서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그 추운 겨울날 새벽에 나서 몇시간씩 줄 선 추억을 만들게 해 준 농구대잔치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25/06/25 01:34
아니 nba 카드 얘기가 왜 한분도 안나올까요.
80년생인 제가 느끼기로는 nba 는 보던 사람들만 보던걸 넘어서 고가의 카드가 수집이 취미가 될 정도에 잡지, 비디오도 교실에서 돌았죠. 그다음에 농구화 열풍( LA GEAR, 나이키 조던 농구화, 리복 샤크 농구화) 과 슬램덩크가 같이 터졌구요. 대학농구와 여성팬유입, 마지막 승부는 그 다음이죠. 조던의 전세계 농구 인기 아니였으면 슬램덩크도 안나왔거나 인기 못끌었을거로 예측됩니다. 1,2번 쌍끌이라고 생각합니다.
25/06/25 09:34
저도 고등학생때 nba카드 모았지만 한 반에 nba카드 모으는 친구 40명중 2-3명꼴이었습니다. 지금의 서브컬처정도밖에 안되는 인기였다고 생각합니다.
25/06/25 01:36
조던과 NBA가 90년대 농구붐과 관계없다는 분들은 당시 SBS시청불가 지역분들의 이야기일뿐이죠
그전에나 찐매니아들이 AFKN으로 보던 시절이지 SBS가 개국하고 차별화로 시작한게 NBA 중계였고 이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드림팀이 화제가 되면서 이후 92-93 조던과 바클리의 라이벌리시절만 해도 큰 경기들은 중계가 다 되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슬램덩크와 함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게 이후 농구열풍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고요 연세대 농구부는 큰 인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농구열풍 영향력 측면에서 뽑는다면 보기중 최하위죠 오빠부대는 현대 이충희 삼성 김현준 허동택 중앙대시절의 농구대찬치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때 이미 공중파 중계가 이루어지면서 대중들에게 충분히 접근성이 있었죠 연세대 농구부의 인기는 그 안에서 폭이 넓어진 것뿐이었고요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건 마지막 승부일겁니다 물론 그 이전 다른 요인들의 인기를 토대로 마지막 승부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당시 티비 드라마의 대중적인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 그걸 이길 수는 없다고 봅니다 순위를 매기자만 5>3>1=2>4 이 되겠네요
25/06/25 05:25
SBS 서울방송이 서울과 일부 수도권만 나오던 거 아니었나요?
저는 지방에 살았던 터라, 공천 아니면 서울방송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SBS 안 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 않았나요?
25/06/25 06:46
Sbs 1주일에 한번정도 수요일 밤11시에 nba녹화방송 그것도 4쿼터 하이라이트 15분정도만 보여주지 않았나요? 중계라 할 거 였는지.. 92년 조던대 바클리 큰경기 대부분 어디서 중계를 했었죠?
농구대잔치 중에서도 연세대농구부는 특별했는데.. 사회적현상으로 뉴스나 다큐에서 다뤄질정도로 마지막 승부 드라마랑 비교가 안됐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이상민, 우지원 인기가 손지창, 장동건보다 높았을 것도 같구요.
25/06/25 08:11
당시 SBS는 서울/일부 수도권 말고는 시청이 어려웠죠.
지역민방 개국으로 SBS가 전국적인 방송망 갖춘건 90년대 중후반 이후입니다.
25/06/25 15:17
초창기 서울 수도권에서만 티비로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파급력이 있었죠
일부라고 할지라도 그만큼 볼거리 놀거리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부족했던 그 당시 지상파티비의 대중적 위력이 컸습니다 그게 되니 티비 녹화떠서 비디오로 돌려보면서 퍼져도 역시나 만화 연재로 접하며 돌려보던 슬램덩크만큼의 영향력은 생겼죠 녹화중계지만 주말에 특별편성도 있었고 방송범위도 점차 넓어지기도 했고요 이건 역시나 그시절 티비 라이브중계가 있었던 이전 농구대잔치의 영향력을 더 위로 놓는 이유기도 합니다 당시 아마추어 농구 배구의 대중적 인기가 프로화된 지금의 농구 배구 인기보다 더 높았다고 하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또 그런 농구인기에 편승하려고 만든 것이 마지막 승부였지만 그 인기를 확대 재생산한 티비드라마의 위력은.. 그래서 1위로 보는 거고요
25/06/25 02:16
전 농구대잔치라고 봅니다
결국 드라마고 만화잖아요. 농구는 스포츠고 농구의 인기를 논하려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실제 스포츠가 가진 스토리와 감동이 근본이죠. 실제 스포츠로서 큰 흥행과 인기몰이를 한 농구대잔치가 없었다면 드라마붐 만화붐은 있어도 전국민적인 농구붐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NBA는 남의나라 이야기였죠. 인터넷도 없고 해외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지극히 한정적인 상황에서도 그 정도 인기였다는게 대단하긴 하지만 국민적 관심 어쩌고 하기에는 NBA는 저변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25/06/25 02:47
(수정됨) 개인적으로는 최고는 몰라도 지분 최저가 슬램덩크라고 생각은 하네요
만화책보는게 죄악이던 시절인데 슬램덩크가 농구붐에 일조를 할수가 있었나요 범죄자 집에 만화책 없기를 기도하길 바라던 시절인데 그리고 마사장님때는 우리나라 9시뉴스 뒤에 꼭지로 달린 스포츠 뉴스에서 불스 경기결과 알려줬죠
25/06/25 05:20
농구대잔치 기아자동차, 연세대, 고려대 인기에다가 화룡점정으로 마지막 승부가 딱!
제 주변에 슬램덩크 안 본 사람이 본 사람 보다 훨씬 많았네요. 마이클 조던은 남자들만의 영웅이었고..
25/06/25 08:23
애초에 nba가 터져서 슬램덩크가 그려졌고, 슬램덩크가 터져서 마지막승부가 만들어졌고, 그 시기에 연대농구부가 등장해서 농구인기가 올라간 것 아닐까요?? 슬램덩크와 마지막승부의 밑그림 없이 연대 농구부 나와봤자 관심없는 리그의 a팀으로 끝났을 것 같아요.
단편적으로 보면 기아자동차 연대 고대 3파전이 농구의 인기를 만든게 맞지만, 그 이전에 농구에 대한 인기 자체가 상당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서, 슬램덩크 마지막승부 농구대잔치 3개가 같이 끌어갔다고 생각하고요. 조던은 너무 깊게 관련되어 있어 관련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싶네요.
25/06/25 10:27
슬램덩크는 한국에서는 마지막승부보다 좀 많이 뒤에 터졌죠. 마지막승부가 94년 초였고, 슬램덩크는 그보다 좀 더 이후에 인기가 올라갔던걸로 압니다. TVA 방영도 한국에서는 98~99년에 이루어졌고.
25/06/25 14:05
슬램덩크가 인기가 많았던 건 맞지만, 슬램덩크가 인기가 있어서 마지막 승부가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시기적으로 둘은 별개로 인기를 얻어서 비슷한 시기에 나와 시너지가 발생한 걸로 봐야죠.
25/06/25 08:51
제 체감은 슬램덩크 마지막승부 nba 농구대잔치 순이었습니다 제가 그당시 좀 어린축이라 그럴수 있을거 같아요 채널선택권이 없어서..
25/06/25 15:52
아니 자랑이 아니라 농구 인기의 밑바닥을 다졌다는거죠. 조던의 nba인기 때문에 쭉이어져 왔다고 생각해서 지분을 높게 잡은겁니다.
전세계 농구 인기 농구화 인기 농구 만화 드라마 인기 국내리그 인기 여고생 참전 다 이어져 온거죠.
25/06/25 09:21
이노우에작가는 고등학교 농구선출로 그냥 농구 좋아해서 그린거지 NBA 세계화 때문에 그린것이 아님.
한국 농국 인기에 조던의 영향은 진짜 없다고 봐야함. 차라리 농구화 붐으로 더 도움이 되었음.
25/06/25 09:27
90년대 초반에 슬램덩크 보고, 연대농구부와 같이 학교 다녔고, 마이클조던을 응원했던 사람으로 당시 체감적으로 느꼈던걸 말하자면...
농구 인기가 확 늘었다 체감적으로 느껴졌던게 연대농구부입니다. 슬램덩크와 마이클조던도 농구의 인기를 늘렸지만, 그 범위가 확 넓어진건 제가 느끼기엔 연대농구부였습니다.
25/06/25 09:52
1. 92년에 또래 아이들 사이에 에어조던 열풍이 불었음.
2. 농구의 규칙을 몰라도, 농구를 해본 적 없어도 에어조던이 마이클조던의 신발이란 건 학생들 90%가 알았음 3. 대부분 기억하겠지만, 마이클 조던의 야구 전향은 한국 뉴스에서도 거의 매일 보도함 4. 슬램덩크는 초반(92년)에 농구만화가 아니었음 5. 그리고 92년 말 ~ 93년 초에 롱백이 유행했는데, 이는 슬램덩크도 마지막승부도 영향 x 6. 실제 농구를 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또래들은 93년부터 급증한 걸로 기억함 3 >> 1 >>>> 4 = 2 >>>>>>>>> 5
25/06/25 09:53
애당초 연도 순으로 나열하면 농구대잔치가 제일 빠르죠.
농구대잔치는 허재 중앙대 시절 이충희, 김현준, 유재학 등과 함께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인기 스포츠 리그로 자리 잡았고 그 다음이 90년대 초 연재를 시작한 슬램덩크가 남자 고등학생, 중학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받고 동시에 고연/연고 라이벌이 각광 받으면서 94년인가 나온 마지막 승부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저도 저 때가 중-고-대를 거치면서 농구 써클 활동하면서 농구 대잔치도 여러 번 보러 다녔지만 저 당시 국내 팬들에게 MJ는 오히려 92년 드림팀 등이 미디어를 타면서 '엄청난 선수' 정도였지 국내 인기 열기와는 별개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엄청난 팬이었습니다)
25/06/25 12:14
우리나라 한정, 조던은 지분이 거의 있을 수가 없다고 봐야죠.
인터넷 보급은 고사하고 티비도 한 집에 한대 있을까 말까한데 농구 시청층이 리모컨 쥐고 있을 수도 없었고 그마저도 잘 틀어주지도 않는데 어떻게..
+ 25/06/25 18:16
무슨 70-80년대인가요!? 90년대에요. 서울기준 일반 가정에도 티비없는집 드물었고 야구 복귀 후 쓰리핏은 중계 해줬습니다.
25/06/25 13:01
마지막승부는 아니에요. 마지막회에 연세대 농구부가 등장 할 정도로 농구 붐에 편승해서 나온 드라마입니다.
심지어 연대는 서장훈 입학 전인데도 당대 최고팀 기아자동차보다 인기가 많았습니다.
25/06/25 13:52
슬리엠 덩크가 인기가 많았던거같지만, 그건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서지 실질적으로 만화는 드볼이랑 유유백서가 훨씬 인기 많았습니다. 농구대잔치랑 마지막 승부가 더 컷죠, 그리고 복합적으로 다 작용한 시기였다고 생각하네요.
25/06/25 14:10
드래곤볼이 인기가 더 많았던 건 맞지만 유유백서는 아니죠. 대원에서 드래곤볼에 대항하는 카드로 슬램덩크를 꺼냈는데.
일본에서는 3대만화지만, 국내에서는 유유백서는 비교대상도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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