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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2 11:47
(수정됨) 조선 왕조 역대 왕들 중 정통성이 가장 뛰어난(아버지가 선대왕의 적장자->본인은 그런 아버지의 적장자인 원손->세손->세자->왕위 등극) 2명이 단종이랑 숙종인데 그런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으니 크크
25/09/02 11:57
숙종이 정통성을 바탕으로 카리스마정치가 어마어마해가지고 .. 영조가 대군때부터 시달린 탓에 사도세자를 죽이기까지 이르럿다는 분석도 있더군요;;
+ 25/09/02 16:05
그건 아닐 거 같은 게 영조는 숙종 생존 당시 왕세자도 아니었을 뿐더러 왕자들은 보통 성인(17~18세정도)이 되면 궁 밖에 나가서 따로 살았습니다. 숙종에게 시달렸어도 영조가 아니라 경종이 시달렸어야 하긴 합니다.
25/09/02 11:53
권력은 부자간에도 못 나눈다지만, 문종 생전에 형님 형님 하면서 잘 따른 주제에, 조카를 냉혹하게 살해한다는 건 대체 어떤 마인드로 했을지...
25/09/02 12:04
'난가?'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종이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 애초에 왕이 될 팔자가 아닌 걸요.
문종이 아프면서 단종이 크기 전에 죽을 듯하자 그 때부터 '난가?'병에 걸렸다고 봅니다.
25/09/02 12:50
수양이 1417년 생이고 1418년에 아버지가 왕이 되었죠. 물론 그때는 세자 형님(1414년생, 1421년 세자책봉)이 있었는데...
문제(?)는 1441년까지 세자 형님이 아들을 낳지 못합니다. 저는 이 [20년] 동안 이미 수양의 마음속에 "다음은...난가?"라는 생각이 있었을 거라 봅니다. 그런데 1441년, 세손(후일의 단종)이 태어났죠. 그러면서 왕위 레이스에서 완전 탈락. 이때 수양의 마음은 이러지 않았을까요. [네가 가져간 그 자리, 그것이 내것이었어야 해. 원래 내 자리였다고!!!]
25/09/02 12:25
이성계는 그래도 형제를 죽인 일은 없으니... 오히려 의형제 이지란 하고도 끝까지 돈독했고요.
정몽주를 안 죽이려고 했을 정도로 좀 무른 면도 있는...
25/09/02 12:32
사실 이성계 정몽주 안 죽였다 이것도 윤색이고 정몽주가 '아우터 중팔' 소환진으로 주원장 권위를 빌어 공양왕의 권위를 확립하려던 시도를 하려다가 이성계 일파한테 죽은거라, 정몽주 죽은 것도 이성계의 복심이라고 봐야 합니다.
25/09/02 12:47
전주 이씨들이 다 동원된 정황 있거니와 거침없이 찬탈 행보 이어가던 이성계가 거기서만 사실 천명이라면서 정몽주 살해를 망설였다는건 좀 웃기는 얘기죠. 농담 아니라 거기서 정몽주 안 죽였으면 주원장에게 세자 입조시키고 공양왕 권위 확고해지는 단계인데요.
25/09/02 13:06
그러니까요. 낙마 사고를 틈타 이성계를 치려고 한 정몽주를 제거하는 게 이성계 입장에서는 정답이겠죠. 하지만 이성계가 내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까. 이방원과 비교해서 정치적으로 냉철한 판단을 못 내리는 성향이 좀 있지 않았나 싶어요.
25/09/02 13:10
(수정됨) 그냥 이성계가 정몽주 죽이고 '야 내가 했다고 하면 면이 안 서니까 방원이 니가 욕받이 해라'...뭐 이런 컨센서스라고 봅니다. 이성계가 정몽주 죽고 "천하사람들이 내가 죽였다고 하겠지 네가 죽였다고 하겠는가! 감히 네놈 따위가 나라의 대신을 함부로 죽이다니!"라는 발언하니까 이방원이 '어쩐일인지 굉장히 억울해' 하면서 신덕왕후에게 말려달라 했다죠. '왜 억울해' 했을까요? 단순히 자신의 효성을 아버지가 못 알아봐서? 그리고 이성계 말 따라 '그냥 문관1'에 불과했던 이방원이 정말로 전주 이씨 전원의 동의나 이성계 일파 모두의 동의가 없었으면 정몽주 죽일 수 있었을까요? 정몽주 가지고 반응이 물렀다 그런거치곤 이방과가 바로 정몽주 죽자마자 입궐해서 공양왕을 협박하는데?
25/09/02 13:30
이방원은 과거 급제한 인재인데, 많은 자식 중에 굳이 이방원을 칼잡이에 욕받이로 쓴다는 건 좀 의아해요.
그리고 이방원 입장에서는 본인 판단으로 일을 저질렀어도, 얼마든지 억울해할 만하죠. 이방원을 그냥 문관1이라고 할 수 없죠. 회장님 자식 중에 서울대 나와서 고시 패스한 아들이 나서면 임원들이 마냥 가볍게 보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유력한 후계자 중 한 명일 텐데요. 오히려 평소에 친했지만 끝내 참여하지 않은 이지란이 특이한 셈이죠. 그리고 이방과는 정몽주 살해에 동참한 형제 아닌가요? 그러면 바로 후속 행동하는 게 맞죠.
25/09/02 13:37
(수정됨) 군령술사 님// 과거 급제한 인재는 이성계가 권신1이었을때나 유용하죠. 즉위하자마자 신덕왕후 바로 왕후로 책봉하고 신덕왕후 소생까지 프리패스로 세자에 책봉한 이성계 입장에서 찬탈 이후 이방원은 그냥 '쓸데없이 똑똑해서 차기 후계자인 이방석에게 방해가 되는 아들 나부랭이 1'일 뿐 입니다. 마치 후대의 이유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사장님 자식이라고 고시패스한 5~6급 20대 공무원의 말 들어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사장님이 적대적 M&A 단행하고 회장 자리까지 강탈하려는 중대사항까지 끼어듭니까? 설령 끼어들어도 이건 '그 중대사의 톱니바퀴 1에 가깝다' 해석을 해야지 '엔진'이라고 해석하면 안 되는 거죠.
25/09/02 13:25
세자를 보낸 아우터 중팔 소환진은 이미 3월에 마무리 됐고 진짜 찬탈에 방해될 수 있는 책봉사절은 6월 말에나 보낸거라 4월에 급박하게 정몽주를 죽일 필요는 없었죠. 정몽주 제거안도 이성계의 카드 중 하나였지만 이성계가 개성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사실상 공양왕이든 정몽주든 이성계 일파 제거가 불가능하게 됐음은 인지하고 있었죠. 거기서 이성계가 어떤 패를 낼지 고민하던 중 이방원의 주도로 급발진 한거라고 봅니다.
25/09/02 13:29
핵심은 당대 권력 구도에서 이 '이방원 주도서사'가 과연 가능하냐는 겁니다. 이제 '겨우 20대 듣보잡 문신1 짜리일 뿐인 이방원?'이 정몽주라는 거물을 죽이려면 이 정도 '어린애'의 정치력이나 명망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더 높은 누군가'의 개입이 필수지.
25/09/02 13:37
'더 높은 누군가'는 이방과, 이화 등의 지지만으로도 불가능하진 않죠. 이방원이 주도적으로 그들의 지지나 묵시적 동조를 끌어모으는 것조차 불가능하진 않았을거구요. 그리고 이성계 입장에서는 자기가 욕 다 쳐먹으면서까지 정몽주를 때려죽일 급박한 이유가 뚜렷하지 않죠. 이미 정몽주가 이성계 찾아온 순간 이성계 제거 시도는 실패했음을 자인한거나 마찬가진데요.
25/09/02 13:39
이방과는 이성계 본인이 '평생 방과는 내 마음에 들지 않은 행위를 한 적이 없다'라고 칭찬한 유일한 자식이고 이성계의 무력 기반인 가별초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고도 이성계한테 '한번도 질책을 받지 않았다?' 그럼 별거 있나요. '이성계도 한통속'이라고 해석해야지.
25/09/02 13:47
이방과가 드러나는 행동 한거는 정몽주 사후 수습때 일이고 묵시적 지지를 보낸거랑 주도적 실행자 사이에 이성계가 분노를 쏟아낼 대상은 등연히 실행자 아닌가요. 심지어 그 시점도 선죽교 사건 직후인데.
그리고 말씀하신거랑 동일한 논거는 무인정사에도 적용할 수 있죠. 이성계가 그 말한때가 무인정사 후인데, 무인정사로 국왕까지 오른 방과가 그런 말 들었으면 이성계도 무인정사의 한통속이라고 하실건가요. 말 그대로 그건 "우리애가 착해서 부모 속썩인적이 없어"라는 관용적 칭찬이죠.
25/09/02 13:52
고기반찬 님// 고기반찬님에 논리에 따르면 "'더 높은 누군가'는 이방과, 이화 등의 지지만으로도 불가능하진 않죠."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방원이 정몽주를 암살하는데 있어서 '사전부터 동생의 확고한 지지자'가 되었다는 말씀이시죠. 실제로 정몽주 살해에 동원된 인물들은 '이성계 가별초의 핵심 인물인' 사람들고요. 이런 사람을 두고 '단순히 묵시적 지지자'라고 해석해야 합니까, 아니며 '이방원이라는 얼굴 마담 뒤에 숨은 진짜 실행 주체이자 칼날'이라고 해석해야 합니까?
무인정사 때 이방과는 부친을 위한 제례를 지내다가 기습을 당한 상황이고 기습한 동생에게 실권을 빼앗겨 억지로 왕위에 오른걸 당대부터도 알았고 2년 후 무력하게 동생에게 강제퇴위 될 때도 알았고 이숙번이 이방과를 능멸하는 짓을 할 때도 알았고 왕 취급도 못받으며 공정왕 따위로 불렸던 수백년간 조선 사람들이 다 알았습니다. 이런 가벼운 진리도 이성계가 몰랐으면 이성계는 조선의 태조가 아니라 일개 노망난 범부 1일 뿐이죠.
25/09/02 14:03
된장까스 님// 이방원이 이성계의 컨센서스를 받았으면 태조실록에 그걸 안 남겨둘 이유도 없고 당황해서 신덕왕후한테 도움을 청하는 내용까지 그대로 남겨 둘 이유도 없죠. 그리고 말씀하신대로면 굳이 이성계까지 올라갈 필요 없이 이방과에서도 선죽교 사건은 충분히 가능하다는거 아닙니까. 이방과가 이방원의 계획에 동의하고 가별초 인원을 쓰게 해줬어도 범행 직후 이성계의 분노가 직접 정몽주 살해를 실행한 이방원에게 집중되는건 별로 이상할게 없죠.
25/09/02 14:12
(수정됨) 고기반찬 님// 이방원은 즉위 이후 정몽주 암살 그것을 자기가 건국의 주도한 공이 있다고 제일 앞서서 써먹은 인물입니다. 후대인들조차 수백년간, 아니 지금까지도 이방원 최고의 건국대업 공과라고 평가 할 정도로. 새삼 얼굴마담 따위로 이용당한 얘기를 이렇게 통쾌하게 역전한 서사도 별로 없을걸요? 크크크 태조실록 제일 많이 고친게 이방원 측근 하륜인데 설마 이방원이 자기한테 불리하게 해석될 내용을 두고 그렇게 남겨두었다고 생각하는건, 오늘도 이방원의 정몽주 척살대의에 감격하고 부당하게 공이 있는 아들인데 팽했다고 여기는 대중들한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어보셔도 될겁니다. 요컨데 여기서 이성계의 책임회피를 오히려 이성계의 우물쭈물로, 이 암살을 자신의 대의로 거창하게 써먹은 이방원의 서사는 오늘날에도 매우 유용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는거 보면 결국 이방원은 이방과의 직접적인 도움없이는 정몽주 암살을 결행할 수 없었다는 얘기입니다만...동생이 "형 오늘 내가 노땅 하나 죽여버리려고 하는데 형도 우리가 그 인간 왜 죽여야 하는지 알지? 연장이랑 그 인간 담그는데 쓸 어깨들 좀 빌려줘"라고 하자 그에 형이 흔쾌히 동의한데다가 동생이 일 처리하자마자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있어!"라고 피해자 가족을 협박했다고 하죠. 대한민국 형법상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이런 범죄를 저지른 형제를 두고 아버지가 살인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전 대한민국 형법을 잘 모르고 이럴때 부모가 공범이 아니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한번 질문 드려 봅니다.
+ 25/09/02 14:22
고기반찬 님// 좀 더 냉소적으로 따지면 "아 이 형이 꼭 형 정도 위치인데 꼭 내가 나서서 직접 해야겠니? 애들 빌려줄테니 니가 적당히 처리해, 그 다음에 저쪽 대빵 상대로 큰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러면 공동정범이 아니라 살인교사 정도? 사실은 형제 서열상 이쪽이 맞고 그래서 무인정사가 제대로 방심하다가 이방과가 이방원한테 통수 제대로 맞고 앙값음 당했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거고요.
+ 25/09/02 14:34
고기반찬 님// 제가 봤을때 조부 이방원보다 손자 이유가 부족했던 건 '손속'의 문제에요. 단종을 이방석처럼 임금 자리에 문제 있는 인간 쓰레기, 호로자식으로 만들지 않고 형이나 아빠 모두 얼간이 만드는 서사 안하고 적당히 역사왜곡해서 단종을 동정의 대상으로 만든것 때문에 더 욕먹는거죠. 조부만큼 진짜 손속이 독해서 단종을 절대 폐립해야 할 인간 쓰레기로 만들었으면 아마 조부만큼은 아니어도 지금 훨씬 덜 욕먹었을겁니다.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옛날 중국 남조에서 어린 임금에게 찬탈하고 이런 짓 많이 하기도 했고요.
25/09/02 13:03
전주 이씨가 개성 왕씨 통수를 세번 쳤죠. 무신정권, 여몽전쟁, 찬탈까지 해서...아 종족 보전해 주겠다고 했다 속이고 물에 빠뜨린 것까지 네번인가요? 크크크
25/09/02 12:18
(수정됨) 권력을 나눌수 없는 전제군주왕조에선 어쩔수 없어요.
왕 입장에선 장자나 똘똘한놈 자리주고 형제들이 사이좋게 도우면서 살았으면 하겠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쟤가 안죽으면 내가 죽는데요. 단종이 장성해서 자리 잡았으면 수양대군이 숙청 당했을겁니다. 크킹만 해봐도 뭐.. 어디가 됬던 왕이 못된 형제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죠.
25/09/02 13:27
세종이 그때 양녕을 살려둬서 양녕이 나중에 세조한테 붙어 버리죠.
그리고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정사에 직접 참여 하도록 해서 불씨를 남겨 놓게 되구요. 단종이 저렇게 죽게 된건 세종이 손에 피를 안 묻혀서 라고 생각합니다. 태종처럼 손에 피를 묻히고 다 꺾어 버렸어야 합니다.
25/09/02 12:33
저는 초딩 때 소설 한명회로 저 부분 역사를 처음 심도있게 접해서
(신봉승 저 이덕화씨가 한명회로 나오는 그 드라마 원작입니다) 아직도 세조 까는 글이나 그런 거 볼때마다 뭔가 사연이 있었겠지 .. 주변에서 부추겼겠지 .. 하는 근거 없는 쉴드를 마음속에서 생성하곤 합니다 무슨 일이건 최초의 관점이나 개념이 끼치는 영향이 참 지대하다 싶어요
25/09/02 12:34
그 짓거리를 한 둘째를 바라보는 이도님 표정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 저걸 죽여살려인지 아니면 니가 그럼 그렇지 인지...
25/09/02 12:43
세종입장에선 할 말이 없지 않을까요.
자기 아버지부터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었고, 자기 자신도 형을 대신해서 왕위에 올랐으니... 그냥 '우리집안 가풍인가...'라고 생각했을수도?
25/09/02 12:55
저 집안 근본을 거슬러 볼까요? 조상들 중에 처음으로 크게 이름을 알린 사람이 그 무신정권 초대 집정 이의방이고, 이성계 직계 선조인 이안사는 아예 고려의 방위를 맡은 장수로써 고려의 땅과 백성을 몽골에 팔아넘기고 다루가치 벼슬을 받은 악질 부원배죠. 이성계 부친 이자춘도 조카의 자리를 빼앗고 천호가 된 거고요. 건국세대들인 이성계, 이방원이나 이유 뒤의 수많은 전주 이씨 행적들 보면 말할것도 없고...그런 집안에서 이유의 행적이 그냥 저 집안 평균 맞는게 아닌지부터를 의심해야...크크크
+ 25/09/02 16:11
'전주 이씨 평가 최후의 방어선'이죠. 이 신랄한 개깜조차도 세종께선 코웃음도 안 치고 가당치 않게 보면서 '근데 어쩔건데? 지금 쓰는 이 글로 니가 뭘할 수 있는데? 크크크' 하면서 절 조롱하실 겁니다. 역설적으로 세조를 까는 글 조차 그가 적극적으로 한글 보급을 했던 인물이기에 가능한 것이고요.
25/09/02 13:05
학교 때 배운 역사보다 나무위키와 대체역사 소설 보면서 배운게 더 디테일하고 생동감 있죠.
가만히 보면 저 이씨 집안은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아요. 왕족이 원래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 25/09/02 16:16
조선왕은 조금 더 억울할 수 있는 게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너무 자세히 남아 있어서 그 인물의 성격을 너무 세밀하게 볼 수 있긴 합니다. 사실 영조도 실록이 없었으면 오히려 미치광이 연쇄살인마 아들을 잘 죽이고 똑똑한 손자에게 왕위르 물려준 현명한 왕..정도로 남아있을 확률이 높죠. 사건에 대한 기록 뿐 아니라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너무 잘 기록되어 있다 보니 인물 평가가 너무 세밀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25/09/02 13:14
무인정사 - 왕조건립 공이 있는 아들 대신 막내아들을 세자로?
중종반정 - 연산군 인조반정 - 광해군 계유정난 - ...? 형 아비 할아비에게 아직도 쳐맞고있을듯
25/09/02 13:56
피해자에게 집중하는 정종과 피해자도 가해자도 자기 직계라서 착잡한 세종대왕님...
모 로판에서 황제의 적자가 황위 싸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죽음뿐 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 25/09/02 15:51
쿠데타로 세워진 나라에서 27대 왕들 중에 5명밖에 쿠데타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건 양호한 것인지 아닌지...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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