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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2/19 00:15:37
Name 한니발
Subject RE So1 <5> 上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여정도 이제 막바지에 다달았다. '괴물' 최연성은 이 자리에 없다. '천왕' 홍진호와 박정석도 없다. '스피릿' 박지호도, '사령관' 송병구도 없다. 오로지 오영종과 임요환이 있을 뿐이다. 이제 So1의 마지막 무대에 단 두 사람만이 남았다.



  오영종이 마지막 무대까지 걸어온 길은 흔한 소년 만화나 뻔한 헐리우드 영화의 스토리를 생각나게 한다. 약체 팀에 어느 날 갑자기 재능 있는 소년이 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감독과 팀원들은 소년을 향해 믿음을 갖게 된다. 소년 역시 스스로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결국 소년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쟁쟁한 상대들을 꺾어내며 마지막 승자가 된다……. So1의 오영종은 그런 선수였다. 만일 만화 속의, 영화 속의, 드라마 속의 이야기였다면 '식상하다'는 반응밖에는 기대하지 못할 그런 꿈같은 이야기. 누구나 꿈꾸고 몇 번이나 꿈꾸면서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모두가 씁쓸히 비웃고 마는 그런 이야기. So1 오영종은 그 꿈을 이 현실 속에서 온 몸으로 살아내는 선수였다. 사람들은 그래서 오영종에게 열광했다. 오영종이 전설이 되기를 바랐다. 너덜너덜하게 헤진 자신들의 꿈이 오영종의 손에서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바랐다.



  임요환이 걸어온 길은 그 어떤 만화나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신성으로 등장하여 테란을 구원하며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세 번을 우승하고, 이후 4년에 걸쳐 끊임없이 패배하면서도 네 번을 준우승했다. 임요환에게서는 다섯 번을 우승한 제자 최연성이 보인다. 그러나 다섯 번을 준우승한 친우 홍진호도 보인다.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던 독재자 마재윤이 보이고, 그 벽을 향해 도전하는 혁명가 김택용이 보인다. 그는 수많은 팬들에게 둘러싸인 최고의 인기스타이기도 하며, 선수로서 홀로 남았던 최후의 1.5세대이기도 하다. 임요환이란 한 사람 속에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수많은 극과 극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So1의 임요환은 그런 선수였다. 사람들은 임요환이라는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저마다 다른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는 저 옛날 군림하던 시절의 임요환을 보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을의 전설에 번번이 좌절하던 임요환을 보았을 것이다. 지독하게도 매달린다고 혀를 찬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느새 지나간 수년의 시간을 되돌아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두가 임요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전설을 무너뜨리기를 바랐다. 혹은 전설에 굴복하기를 바랐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라도, 임요환이 온 몸으로 싸워낸, 그 이야기가 나지막이 들려오기를 바랐다.

  서로 다른 바람 위에 도전자는 두 사람. 챔피언은 가을의 전설.
  이제 마지막 두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당신들의 So1. 몇 번이고 되새겨지는 아득한 전설의 리그, 그 대단원을.
  





  서곡

  결승까지 3일. 프로리그 경기장에는 아주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3일 후 So1의 마지막 무대에서 맞붙을 적수, 프로리그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는 임요환과 오영종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이 날 임요환은 월간 MVP의, 오영종은 주간 MVP의 수상자로서 각각 자리에 참석했다.

  임요환의 얼굴은 다소 창백했다. 결승전을 앞두고서는 천하의 T1도 한 주 동안 프로리그 연습을 면제시켜주었고, 임요환은 그 배려를 그대로 결승 대비에 쏟았다. 다른 모든 스케줄은 결승 이후로 미루고, 주말을 반납하며 코피를 쏟아가면서 연습했다. 비단 임요환만이 아니었다. 김성제, 박용욱을 비롯한 프로토스 팀원들, 게다가 테란과 저그 팀원들까지 거의 T1 전원이 임요환의 결승 준비를 위하여 스스로 주말을 반납하고 전략 연구 및 임요환의 연습 상대로 뛰어들었다. 오영종이 대적해야 할 것은 임요환이었고, 또한 T1이기도 했다.  


  
  그 정도, 다수 무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혼신의 힘을 쏟을 정도로, 당시 임요환의 압박감은 엄청났다. 이미 몇 년째 매해 최고령 게이머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고, 따라서 모든 결승무대가 항상 마지막 결승무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So1은 그의 마지막 결승 무대이기도 했고. 하지만 다른 그 무엇보다도 오영종과 같은 타입의 선수를 상대하는 것은 이미 여섯 번의 양대 리그 결승을 치러낸 그로서도 처음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오영종이 단순히 전략가라서가 아니다. 이미 김동수와 최연성이라는 사상 일류의 전략가들을 상대로 임요환은 치열한 승부를 치룬 경험이 있었다. 다만 그들과는 달리, 오영종은 갑작스럽게 마각을 드러낸 전략가였다. 로열로더 후보라고는 믿을 수 없는 5전제의 판짜기. FD를 봉쇄하는 다각도의 발상. 전진건물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과감함. 오영종은 그만한 기량을 결승 직전, 최연성을 상대함으로써 비로소 드러낸 것이다. 임요환이 전략가로써 오영종에 뒤진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전략가로써 가장 중요한 부분 - 얼마나 그 정보가 알려져 있는가 - 에서 오영종은 임요환을 한참 앞서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영종은 다소 여유로웠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임요환이 나이 탓에 항상 마지막 결승이라는 각오로 전장에 임해야 했다면, 오영종에게는 사상 첫 결승이라는 압박감이 뒤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전략적으로 임요환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했고, 최연성이라는 테란의 거목을 넘어섰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영종이 결코 준비를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다. 여유로운 마음가짐의 다른 한편으로는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무엇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치밀함과 집요함이 엿보였다. 작은 수첩을 밥 먹을 때, 잘 때 가리지 않고 들고 다니며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그 때 그 때 적었다. 그 수첩에는 이미 수십 가지의 전략이 적혀 있었다. 팀원들은 물론, 다른 팀의 테란들까지 오영종의 결승 준비에 가세했다. 여담이지만 그 연습 상대 중에는 당시 무명이었으나 뒷날 ‘블록버스터’라 불리며 센세이션을 일으킬 이성은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오영종은 이성은을 임요환에 뒤지지 않는 전략성을 갖춘 테란이라고 평가했고, 이것이 이성은이란 이름이 스타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첫 순간이 되었다.
  다만 보다 많은 사람들은 임요환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임요환 승리(9명)=KOR 이명근 감독, GO 조규남 감독, 팬택앤큐리텔 송호창 감독, 한빛스타즈 이재균 감독, POS 하태기 감독, 온게임넷 엄재경 해설위원, 김도형 해설위원, 김창선 해설위원, MBC게임 김동준 해설위원

  ▶오영종 승리(6명)=SouL 김은동 감독, KTF 정수영 감독, e네이쳐톱 이대니어 감독, 삼성전자칸 김가을 감독, MBC게임 이승원 해설위원, 임성춘 해설위원

  임요환의 우세를 점친 사람들은 경험을 그 이유로 들었고, 오영종의 우세를 점친 이들은 기세를 그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만 본다면 어디까지나 호각세라 할 만 했다. 그럼에도 임요환의 승리를 점친 사람들이 보다 많았던 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 맵 순서에 기인했다.
  1경기,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 (이하 ROV)
  2경기, 815
  3경기, R-POINT
  4경기, 네오 포르테
  5경기, ROV
  이 중 임요환의 전적이 가장 좋지 않은 맵은 ROV다. 3승 3패. 그러나 오영종의 경우, 이 ROV의 전적은 0승 4패였다. 16강에서는 최연성에게 양익 질럿 난입을 봉쇄당했고, 4강에서 최연성을 물리칠 때에도 전진 게이트를 던지는 버림수로 쓰였다. 게다가 2경기에서 이어지는 815의 전략성 역시 임요환에게 보다 무게를 실어주었으며, 제국령 R-POINT와 네오 포르테에서 임요환의 전적 또한 압도적인 것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임요환이 가을의 전설을 무너뜨린다.
  이러한 분위기는 전문가 예측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팬들과 함께 온게임넷 역시도 들뜨게 만들었다. 온게임넷은 결승전을 일주일 앞두고 새로운 소식을 발표했다. 온게임넷은 이번 시즌부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3회 우승자에게 순금으로 만든 골든 마우스를 수여할 것이며, 동시에 스타리그의 모든 우승자들에게 우승자 배지를 수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더하여 온게임넷은 3회 우승자에 한하여 차차기 리그까지 시드를 보장할 것을 발표했는데, 이것의 경우는 상당한 무리수임에 틀림이 없었기 때문에 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임요환 자신이 마땅치 않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곧 철회되었다. 어쨌거나 이 해프닝 또한 온게임넷이 So1의 결승을 앞두고 얼마나 고조되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임요환이 우승할 시 임요환은 스타리그 통산 전적에 3승을 더함으로써 자신의 스타리그 100번째 승리를 결승전에서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여기에 최초의 스타리그 3회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며, 온게임넷이 수여하는 사상 첫 골든마우스와 우승자 배지까지 더해진다. 그리고 다른 그 무엇보다, 2001년부터 5년에 걸쳐 집요하게 쫓아온 가을의 전설을 마침내 극복하게 된다. 임요환이 우승했을 때 틀림없이 이 So1 결승은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인생에 있어 정점이 될 것이었다.
  그만큼 많은 이가 가늠하고 있었던 임요환의 승리였다. 자칫하다가는 일방적인 3:0 승부. 더욱이 신인인 오영종이 첫 결승무대에서 움츠러들기라도 하면, 임요환은 용서 없이 대담한 기략으로 치고 나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오영종은 겨우 그 정도의 그릇이었을까?
  4강에서, 다름 아닌 최연성을 완파한 오영종이다. 최연성은 오영종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미 이긴 뒤에 게임을 시작하려 했고, 그래서 패배했다.
  오영종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김동수가 가을의 전설로 거듭났을 때, 임요환은 온게임넷을 최초로 연패한 패자였다. 박정석이 가을의 전설로 거듭났을 때, 임요환은 결승까지 전승으로 진출한 첫 스타리거였다. 그리고 작년에도, 임요환은 라이벌 홍진호를 단칼에 베어버리고 올라왔다. 그 임요환을 딛고 일어섰기에 가을의 프로토스는 전설이 되었다. 전설이 되어 왔고, 전설이 될 것이었다. 오영종은 아마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행동에서 묻어났을 것이다. 기자들이 그를 ‘낙천적인 도전자’로 묘사한 것도, 오영종의 승리를 가늠하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 가지 더 오영종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이즈음해서 PLUS가 의류 스폰서인 엘레쎄에게 600만원 상당의 추가적인 의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영종은 이미 명실상부 PLUS의 간판스타가 되어 있었다. 프로게이머 경력 1년, 오영종에게는 좀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더 많은 승리와, 더 많은 성원과, 그것을 그에게 가져다 줄 드라마가.
  예상을 뒤엎어버려야 했다. 아직 자신에게 보여줄 것이 더욱 더 남았음을 모두에게 가르쳐주어야 했다. 오영종과 PLUS가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불리하다 생각되는 무대가 오히려 호기일 수 있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미지(未知)는 오영종에게 있어 가호였다. 임요환 조차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임요환은 다시 한 번 진군한다. 몇 번이고 그를 무릎 꿇린 가을의 안개 속으로. 그를 위해 오영종은 처음으로 준비한다. 몇 번이고 사람들이 되새기게 될 전설의 무대를.



  11월 5일 결승 당일.
  임요환은 친척들은 물론 연습생까지 전원 동원된 T1 20여 명의 코칭 스탭 및 팀원들과 함께 인천대 체육관 주경기장으로 들어섰다. 한편 오영종을 위해서는 광주에서 부모님부터 친척들까지 일가족 20여 명이 총출동했다. 팀원들 역시, 송호창 감독의 배려로 밴을 타고 경기장까지 함께 올 수 있었다.
  이 날 결승은 경기 시작 전부터 이미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2 SKY, 두 번째 가을의 전설이 동원한 2만 5000여 관객을 넘어 약 삼만 여 관객이 현장을 방문했다. 1만 8천 석의 객석은 진즉에 차버렸고, 온게임넷은 바깥에서 발을 구르는 나머지 1만여 관객을 위해 야외중계용 차량을 섭외하는 등 동분서주했다. 이 외에 ‘카트라이더의 황제’ 김대겸,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 선수 장원진, 개그맨 김형은, 이종규, 윤택 등이 경기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 원희룡, 맹형규 등의 국회의원들 역시 방문하여 e-sports 전용 경기장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타진하기도 했다. 한편 초대 가을의 전설, 김동수도 자리를 방문해 오영종을 격려했다.
  오영종의 서포터들은 저마다 목에, 입가에, 이마에, 死神이 새겨진 두건을 두르고 나타났다. 한편 임요환의 서포터들은 3회 우승을 의미하는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린 손 모양의 피켓을 들고서 입장했다.
  관객석은 이미 열기로 달아올랐다. 임요환과 오영종의 등장을 기다리며, 저마다의 관객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무대 뒤편에서 임요환과 오영종의 대기실은 상반된 분위기 속에 있었다.
  임요환의 대기실에는 친지들과 관계자들, 그리고 게스트로 온 개그맨 윤택 등이 방문하여 떠들썩했다.



  한편, 오영종의 대기실은 고요했다. 일찌감치 팀원들도 관객석에 앉아 게임을 기다렸다. 오영종은 대기실에 홀로 있었다. 어머니가 건네주신, 청심환과 피로회복제를 옆에 둔 채.
  오영종은 다만 한 번, “관객이 많이 왔나요?”하고 물었다.
  스스로 대기실 문 밖을 엿보았고, 문 틈새로 밀려드는 압도적인 열기를 느끼고는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시간이 될 때까지 오영종은 방 안에 그렇게 조용히 홀로 앉아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 많은 면에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숨 막히는 관중들 앞에 나서기 위한 서로 다른 준비였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서곡을 시작하는 루키와 클라이막스를 찍으려는 베테랑의 차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리프트는 그런 것을 상관치 않고 두 사람을 결승 무대 위로 올린다.



  시작을 알리는 불길이 치솟았다. 짧은 인터뷰와 더불어 송병구, 박지호, 전상욱이 차례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상욱만이 임요환의 승리를 점쳤을 뿐 송병구와 박지호는 승부에 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들은 함께 신 3대 프로토스인 오영종의 승리를 바랐을까, 아니면 오영종의 패배를 바랐을까.
  전용준 캐스터의 포효가 두 사람과의 인터뷰를 끝맺는다.

  “이제 매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선수들 여기서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가면! 한 선수는 고개 푹 숙이고 나올 수밖에 없고, 한 선수는 가족과 그리고 팀원들과 감독 분들과 얼싸안고 나올 겁니다. 이제 한 번 들어가면 결판날 때까지 못나오는 그 길을 갈 두 선수에게! 여러분! 다시 한 번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박수.
  그 우렛소리가 두 사람의 어깨를 묵직하게 짓누른다. 사방이 틀어 막힌 좁고 좁은 타임머신 안에서, 프로게이머들의 싸움은 고독하다.
  한 번 그 안에 들어선 이상, 승리자로서 나가거나 패배자로서 나가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는다. 낭만 시대의 화룡점정을 찍는 전설의 무대라 할지라도, 그 사실만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도, 포장할 수도 없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혹은 앞으로 무엇을 쌓아왔던가 쌓을 것인가는 이 무대에선 관계없는 이야기다. 다시 하게 될 리도 돌이킬 수도 없는 단 한 번 승부의 무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박수였고 그 사실에 맞부딪칠 선수들이 박수를 받았다. 두 사람은 R.O.V.의 무대로 무거운 첫 발걸음을 디뎠다.
  결승전이, 막 시작되었다.




  결승전 맵 전적(So1 당시)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
  테란 11-9 프로토스
  임요환 총 전적 3승3패(50%)
  임요환 프로토스전 2승3패(40%)
  오영종 총 전적 0승4패(0%)
  오영종 테란전 0승3패(0%)

  < So1 815 >
  테란 5-5 프로토스
  임요환 총 전적 3승1패(75%)
  임요환 프로토스전 2승1패(67%)
  오영종 총 전적 2승0패(100%)
  오영종 테란전 2승0패(100%)

  < R 포인트 >
  테란 12-13 프로토스
  임요환 총 전적 10승2패(83%)
  임요환 프로토스전 5승2패(71%)
  오영종 총 전적 7승3패(70%)
  오영종 테란전 1승1패(50%)

  <네오 포르테>
  테란 16-20 프로토스
  임요환 총 전적 4승1패(80%)
  임요환 프로토스전 3승1패(75%)
  오영종 총 전적 5승1패(83%)
  오영종 테란전 4승0패 (100%)






  언제라도Anytime



  오영종은 대담하고, 또한 치밀하다.
  이미 최연성과의 대결에서 오영종의 그러한 면모는 이미 드러났다. 뒤에 간웅(奸雄)이라는 이름까지 가지게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결승의 무대에서,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린 이 무대에서, 이미 다섯 번의 결승을 치러낸 노회한 베테랑을 상대로 보인 오영종의 움직임이란 것은 다시 한 번 놀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오영종은 시작부터, 아니 시작이었으므로 가장 자신 있는 칼을 뽑아들었다. 이제는 그 승리의 심벌처럼 되어버린 다크템플러.
  그 다크템플러, 볼 순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고 했던가.
  임요환은 오영종을 꿰뚫어 보려 했고, 동시에 막아내려 했다. 서플라이 두 개와 엔지니어링 베이의 완벽한 심시티가 다크템플러의 난입을 저지했고, 본진에서는 착실하게 팩토리와 커맨드 센터가 올라갔다.
  임요환은 처음부터 그렇게 자신의 무대를 짰다. 오영종이 오펜스, 자신이 디펜스다.
  다 보고, 실컷 찔러오게 놓아두고, 그리고 마지막에 나서서 짓밟자. 그렇다. 최연성처럼.
  하지만 이미 최연성이 그랬던 것처럼, 그 순간 이미 오영종의 트랩에 걸려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임요환 5시, 오영종 7시. 오영종에게 있어 이번의 다크템플러는 단지 가교에 불과했다. 다크템플러를 통해 임요환의 앞마당을 최대한 늦추면서 오영종은 빠르게 자신의 앞마당을 가져갔다. 본진에서는 다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스타게이트가 올라갔다. 임요환이 앞마당의 입구마저 틀어막고, 미네랄을 뚫고, 3시의 미네랄 멀티로 차근차근 멀티를 늘려가는 동안 오영종은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빨랐다. 오영종은 확신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임요환은 나오지 않는다고.
  결승 시작 전, 박지호가 인터뷰에서 두려워했던 것은 ‘임요환의' 프로토스전이었다. 자신을 상대로 3경기, 4경기를 잇달아 내찌른 강렬한 타이밍 러쉬. 박지호가 임요환의 최대 강점으로 지적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임요환은 자진해서 그것을 버렸다. 다시 한 번 최연성처럼 - 저 박정석을 쓰러뜨렸을 때와 같이, 다시 한 번. 발을 단단히 딛고 버티는 자세를 취한다. 오영종이 준비해둔 늪으로 천천히 발이 가라앉아 가는 것을 모른 채였다.
  박지호와의 승부에서 깨달은 것이 없었던 것인가? 오영종은 가볍게 그 움직임을 포착했고, 임요환이 자신의 트랩에 걸려들었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되면 상대는 어디까지나 급조 최연성이다. 아비터를 더한 프로토스 지상군이 밀릴 리 없다. 더욱이, 임요환은 메카닉을 이용한 지상군 회전 움직임에서는 그닥 훌륭한 편이 아니다.
  따라서, 오영종은 승리를 확신했다.
  우변으로 밀고 들어오는 드라군들의 움직임을 양동으로, 두 기의 아비터를 팩토리 지역 일대로 밀어 넣는다.



  폭음과 함께 임요환의 발을 묶고 있던 진흙이 밀려나갔다.
  거꾸로 오영종이 임요환의 트랩에 걸려들었다. 김동수, 강민에 뒤이어 박지호가 아비터를 불러낸 이후, 방송 경기 사상 테란의 가장 완벽한 리콜 방어가 임요환의 본진에서 이루어졌다.
  차라리 앞마당에 리콜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팩토리 지역을 노린 리콜이 과욕이 되어, 리콜의 푸른 소용돌이가 일렁임과 동시에 사방팔방에서 스파이더 마인이 반응했다. 그야말로 리콜과 동시에, 한 번 포탄을 발사하기도 전에 한 무리의 드라군과 질럿이 전멸당하고 말았다.
  오영종의 손이 한 번 떨렸다.  
  관중들의 입이 벌어진다. 그러나 투명한 유리 너머의 아우성일 뿐, 타임머신 안으로는 그 어떠한 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비명인지, 탄성인지 임요환은 괘념치 않았다. 순간을 만끽할 틈 따위는 없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었으므로. 과연 타이밍의 귀재답게, 중앙의 무대로 오른편에서 임요환이 달려 올라온다. 맞서기 위해, 왼편에서 오영종이 달려 올라온다. 3단 계단의 위편을 테란의 메카닉 부대에게 장악당하면 언덕 아래에서 그것을 밀어내기는 극히 어렵다. 오영종의 본진에서 올라가는 플릭 비콘은 그 순간 의미를 잃는다.
  좌현에서 치고 오른다.
  우현에서 치고 오른다.
  두 사람의 병력은 중앙 무대에서 격돌했다.

  그 결과, 오영종이 임요환의 병력을 대파했다.
  플릭 비콘은 빛을 발한다. 하늘을 뒤덮은 캐리어와 함께, 오영종은 임요환을 R.O.V.에서 압도했다.
  임요환의 치밀한 트랩은 오로지 마인만으로 리콜 두 번 분량의 질럿 드라군을 집어삼켰다. 그 순간 오영종의 병력에는 거대한 공백이 생겼을 것이다. 임요환은 내찌름은 그 공백을 계산에 넣은 것이었다.
  하지만 테란이 R.O.V.의 스테이지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 동안, 오영종은 ‘질럿공장장’이라는 그 본연의 이름에 걸맞는 회전력으로 병력들을 빠르게 보충했다. 동시에 드라군들을 탱크 사정 범위 밖에서 기민하게 움직여 끊임없이 스파이더 마인을 제거해냈다. 그 결과, 마침내 오영종이 결단을 내리고 다수의 질럿들을 밀어 넣을 때 질럿들은 단 하나의 마인에조차 당하지 않고 테란 병력에 달라붙었다. 하늘에서는 아비터가 투명한 장막을 내려 질럿들이 무사히 접근하도록 가호했다.
  그 결과가 임요환의 대패였다. 이 So1, 임요환식 메카닉의 특징은 대다수의 벌쳐와 소수의 탱크에 있었다. 소수 머신샵으로 탱크를, 그 외 다수 팩토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벌쳐를. 당연히 탱크를 보존하면서 고속의 벌쳐만을 소비시키는 전술이었고, 한 번 전투에서 모은 탱크를 모두 잃은 시점에서 임요환에게는 반격의 기회가 없었다.
  
  임요환의 덫은 오영종의 발목을 물고 늘어지지 못했고 오영종은 멈추지 않고 몰아붙인다.
  다음맵은 815.
  최연성을 침묵시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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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롯토
11/02/1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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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이전율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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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15 수정잠금 댓글잠금 [LOL] 2005년 so1 스타리그를 보는 듯 했던 2022년 롤드컵 [34] 활화산12176 22/11/06 12176 6
43975 RE so1 <5> 下 (完) [24] 한니발9882 11/02/19 9882 34
43972 RE so1 <5> 中 한니발7167 11/02/19 7167 4
43971 RE so1 <5> 上 [1] 한니발8287 11/02/19 8287 7
43962 RE so1 <4> 下 [5] 한니발8096 11/02/18 8096 10
43961 RE so1 <4> 上 [2] 한니발7674 11/02/18 7674 9
43958 RE so1 <3> 下 [15] 한니발13802 11/02/17 13802 12
43957 RE so1 <3> 上 [4] 한니발7710 11/02/17 7710 11
43954 RE so1 <2> [11] 한니발9696 11/02/16 9696 17
43950 RE so1 <1> [30] 한니발12330 11/02/15 12330 33
38861 so1 <4> [23] 한니발8679 09/09/07 8679 22
37232 so1 <3> [19] 한니발8377 09/03/07 8377 33
37104 한 토스빠의 E스포츠 회고록- 2. so1 스타리그,UZOO배 MSL. [9] ROKZeaLoT4755 09/02/23 4755 1
36359 so1 <2> [23] 한니발8378 08/12/18 8378 20
36037 so1 <1> [19] 한니발8626 08/11/15 8626 41
33145 so1 그리고 EVER 2007, 그 안의 르까프 오즈 [23] Artemis6650 07/12/09 6650 11
26961 2005 so1과 2006 신한은행 시즌2의 공통점 [18] SEIJI4887 06/11/11 4887 0
26725 Again so1 Really? [18] 스타대왕3568 06/11/03 3568 0
18433 so1 리그 시작 전에는 박성준 선수의 부진을 바랬습니다. [27] Radixsort4704 05/11/15 4704 0
18342 so1 행성 전투... 프롤로그... [4] 3656 05/11/12 3656 0
18175 뒤늦은 so1 결승 오프 후기. [4] 현금이 왕이다3506 05/11/07 3506 0
18172 so1 배를 회상하며... (1) 16강전 [15] SEIJI4863 05/11/07 4863 0
18129 so1 스타리그 맵별 최고의 명경기는? Part 4 815 [41] 꿈을드리고사4298 05/11/06 429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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