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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4/27 22:31:19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153
Subject [일반] 광무제를 낳은 용릉후 가문 (3) - 미완의 꿈, 제무왕 유연 2 (수정됨)
잔혹하고 충성스러운 자, 진부

유연은 거병의 첫 걸음으로, 완(宛)으로 동생 유수를 보냈다. 완은 남양군의 심장부, 남양태수가 머무는 군 치소였다. 지금으로 치면 군청 소재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유수는 그곳 토착 호족인 이통(李通)과 이일(李軼) 종형제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과 함께 세운 계획은 대담했다. 남양태수 진부(甄阜)가 병사들을 사열하는 틈을 노려, 완을 기습해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운명은 그들을 외면했다.

계획은 새어나갔고, 완성은 움직이기도 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이통과 이일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이씨 일족 64명은 모두 진부에게 체포당했다. 이들은 완성의 시장 한가운데에서 불태워졌다. 그 장면을 본 이들은 오래도록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부는 포악한 인물이었지만, 그저 잔인하기만 한 자는 아니었다. 그는 왕망이 세운 신나라 체제에 누구보다 충성했다. 그 충성은 때로는 이성마저 압도했다.


《후한서》는 그를 끝까지 '전수대부(前隊大夫)'라 부른다. 진부는 남양태수였지만, 왕망이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우면서 관직명까지 고친 결과였다. '전수(前隊)'[1]란 이름은 낙양 남쪽, 황제가 바라보는 '앞'을 뜻했다.

왕망은 수도를 장안에 그대로 두었으되, 낙양까지 수도권을 확장했다. 그리고 그 장안과 낙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남양에도 ‘전수’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용릉후 가문을 영릉에서 남양으로 이주시킨 유인에게 이 땅은 그저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왕망에게, 그리고 유연에게 남양은 수도권을 지키거나 빼앗기 위한 요충지였다.


진부는 그런 왕망의 뜻을 굳게 믿었고, 새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서슴지 않았다.


일족 64명을 잃은 이통과 이일은, 이때 비로소 신나라 체제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유연이 가담한 녹림군의 진격과 신나라의 반격.유연이 가담한 녹림군의 진격과 신나라의 반격.

녹림군에 가담한 유연

수현(隨縣, 지금의 쑤이저우시)을 공략하던 녹림군의 신시병과 평림병은 벽에 부딪혀 있었다. 그때 한을 부흥하겠다는 드높은 의지를 내걸고, 유연이 등장했다.


녹림군과 합류한 유연은 장취(長聚)와 당자향(唐子鄕)을 격파하고, 극양(棘陽, 지금의 신예현 동북)에서는 현장 대행 잠팽을 몰아내고 성을 손에 넣었다.

한 향(鄕)에서 일어난 유연, 그리고 본거지를 잃고 방황하던 녹림군은 드디어 현(縣)을 점령하고 어엿한 군벌로 발돋움했다.

형과 함께 종군한 유수도 이때부터 눈에 띄는 공을 세우기 시작했다. 신야현위를 죽이고, 승리의 물줄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용릉병의 규모는 아직 미약했다. 《후한서》 제무왕연전에 따르면, 당시 유연의 병력은 고작 7~8천 명 남짓이었다. 비록 전한 종실의 이름을 지녔지만, 그 이름만으로 온 세상이 무릎 꿇을 만큼의 힘은 아니었다.


녹림군은 이 작은 군대를 곱게 보지 않았다. 나중에 유연이 하강병(下江兵)을 끌어들이려 할 때, 하강병의 대장 성단(成丹)과 장앙(張卬)은 단호히 거절했다.

"남 밑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이미 형주 일대를 휩쓸던 녹림군의 눈에, 용릉병은 그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도련님들의 장난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녹림군도 뿌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왕봉(王鳳)과 왕광(王匡) 형제가 민심을 모아 봉기한 것이 녹림의 시작이었다.

이들도 송사를 대신 봐주던 동네 유지에 불과했다. 검은 산록을 타고 흐르던 작은 불씨가, 탐욕과 억압을 만난 시대의 바람을 타고 거대한 들불로 번졌을 뿐이다.


용릉후 가문의 유연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전한 종실의 피를 이었지만, 남방의 영릉에서 분봉된 이후 세대를 거치며 남양의 향족으로 자리 잡은 몸이었다.

그렇기에 녹림군과 용릉병의 갈등을 단순한 '귀족 대 농민'의 계급 대립으로 보기는 어렵다. 당시 양측의 긴장은, 오히려 세력 규모와 주도권을 둘러싼 현실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유연의 야망은 거창했다. 그러나 다른 녹림군 대장들의 눈에는, 그 야망이 결국 '나만 황제가 되겠다'는 선언처럼 보였을 것이다.


유연은 이때, 훗날의 원수를 만난다. 아직은 그저 같은 일족일 뿐인 유현(劉玄).


그는 용릉후 가문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이한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친척들이 유연의 거병에 기꺼이, 또는 마지못하여서라도 가담했지만, 유현만은 달랐다. 협객 생활을 하던 중 평림(平林)으로 흘러들었고, 그 연고로 평림병 대장 진목(陳牧)의 수하가 되어 있었다.

유연이 신시병과 평림병을 설득하기 위해 보낸 유가(劉嘉)는, 어느 순간 유현 쪽으로 흡수되었다. 같은 일족이라는 인연 덕분에 자연스럽게 편입된 것인지, 아니면 유연이 유현을 통해 평림병 내부를 엿보려 했던 것인지, 기록은 침묵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 조용한 조우는 훗날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의 불씨가 된다.


옛 호양현, 오늘날의 호양진(湖陽鎭) 주변 구글 지도. 유연이 도륙한 당자향은 호양현에 속했다.옛 호양현, 오늘날의 호양진(湖陽鎭) 주변 구글 지도. 유연이 도륙한 당자향은 호양현에 속했다.

약탈과 살육

승리는 그들을 군벌로 만들어주었지만,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극양(棘陽)을 차지한 유연과 녹림군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병사들은 갈증처럼 물자와 식량을 요구했다. 갓 얻은 성은 축하할 여유도 없이, 생존을 위한 약탈의 무대가 되어갔다.

장취(長聚)와 당자향(唐子鄕)은 함락되었고, 이어서 도륙 당했다. '屠' – 거대한 살육을 뜻하는 이 한 글자가 당시의 상황을 웅변한다.

현 단위는 아니지만, 장취와 당자향 모두 수백 가구가 모인 향(鄕) 규모였다. 유연은 그곳을 불태우고 약탈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의 유연은 명분과 생존 사이에서 피를 묻혔다. 그들의 깃발 아래 모인 병사들은 각자 굶주렸고, 분노했고, 살아남고자 했다. 명예 따위는 배고픔 앞에 무너졌다.


하지만 약탈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노획물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터져 나온 것이다. 《후한서》 광무제기에 따르면, 유연은 가족들과 가까운 종중을 우선 챙겼고, 그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만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녹림군 출신 무리들인지, 아니면 유씨 가문 밖에서 합류한 용릉병 내 병사들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군 내 분열이 심각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심각한 순간, 유수(劉秀)가 직접 종중들의 노획물을 거두어, 불만세력에게 나누어 주었다. 위기의 불씨는 가까스로 꺼졌다.


이 작은 사건은 훗날의 모든 갈등을 예고했다.

유연은 협객의 리더였다. 가슴으로 이끄는 사람이었지만, 때로는 그 가슴이 가장 가까운 자들을 먼저 돌아보게 만들었다.

반면 유수는 달랐다. 그는 더 넓게, 더 멀리 보았다.


이때부터 두 형제의 리더십은 다른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나라 기병 청동상. 이 말 한 필이, 소장안 전투에서 목숨을 갈랐다.한나라 기병 청동상. 이 말 한 필이, 소장안 전투에서 목숨을 갈랐다.

쓰라린 패배, 소장안 전투

세력을 키워 나가던 유연 앞에, 드디어 제대로 된 적수가 나타났다.

남양태수 진부와, 남양군의 군대를 지휘하는 현위(縣尉) 양구사(梁丘賜)[2].

완성(宛城)에서 이통과 이일의 반란을 저지했던 바로 그 인물들이, 이번에는 직접 군을 이끌고 나섰다.


그들은 단순한 관리가 아니었다.

왕망이 세운 신나라 체제에 뿌리 깊은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었다. 특히 진부는, 시장 한가운데서 64명의 이씨 일족을 불태우던 자였다.

이번에도 그들은 신나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유연은 오는 적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극양을 떠나, 완을 향해 북진했다.

승세를 탄 군대라면, 신나라의 한 군(郡)에서 일으킨 군대라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그렇게 서로의 생각이 엇갈린 끝에, 양군은 극양과 완의 중간 지점, 소장안취(小長安聚)라는 작은 고을에서 맞붙었다. 지금의 남양시 완성구 와점진(瓦店鎭)에 해당한다.


그러나 결과는 싸움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는 군대. 유연의 군세는 진부와 양구사의 정규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패주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유수는 병사들을 수습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겨우 말 한 필에 여동생 유백희(劉伯姬)만 태워 도주했다.

도중에 만난 누나 유원(劉元)과 그 세 딸은, 결국 구조하지 못한 채 뒤에 남겨두어야 했다. 결국 그들은 또 다른 유연의 동생, 유중(劉仲)과 함께 전장의 이슬이 되고 말았다.

가문의 종손 유지(劉祉) 또한 형제와 처자를 잃었고, 앞서 유현에게 파견된 유가(劉嘉)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유씨 가문은 곡할 사람조차 남아나지 않을 참패를 당했다. 종중에서 죽은 사람만 수십 명에 이르렀다.


소장안 전투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문 전체가 송두리째 무너질 뻔했던 절망의 순간이었다.

유연의 군대는 가족을 포함해 함께 움직였다. 지휘관들도, 병사들도, 그 가족들도, 함께 전장에 있었다.

대장조차 신나라에서 빼앗은 말 한 필로 도망치는 판국이었다. 하물며 일가친척에게 말을 내어줄 여유가 있었을 리 없다.

결국 한 마리 말에 둘은 태우고, 넷은 남겼다. 한 가문이 뿌리째 결딴나는 데에는, 그렇게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유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부와 양구사가 이끈 신나라 군대는 무자비했다. 수하인 잠팽의 어머니와 아내조차 사로잡아가며, 전장으로 나아가라 협박하는 자들이었다. 아군에게조차 이럴진대, 적에게는 오죽했을까.

그리고 아직 기회가 남아 있던 신나라와, 이제 막 깃발을 든 유연의 무리는 같을 수 없었다.

보라, 잠팽은 비록 지더라도 어머니와 아내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유씨 일족은, 그조차 사치스러운 꿈이었다.


패배란, 단지 전투에서 지는 것이 아니다. 패배란,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이날 유연이 잃은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가 꿈꾸던 한나라의 부흥마저, 이 패배 앞에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이옌탕 폐허 (원명원) – 신나라는 등씨의 묘도 이처럼 파괴해 욕보였다.하이옌탕 폐허 (원명원) – 신나라는 등씨의 묘도 이처럼 파괴해 욕보였다.

녹림, 무너지는가

소장안취(小長安聚) 전투에서의 참패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유연의 군세, 그리고 녹림군 전체의 사기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패잔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신시병과 평림병도 마찬가지였다.


《후한서》 왕상전(王常傳)에 따르면, 신시·평림의 무리들은 소장안취에서 패한 직후 서로 갈라지려 했다.

"각자 흩어지자."

그 한마디에, 녹림연합은 와해 직전까지 내몰렸다.


흔들린 것은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신야현위가 죽은 뒤에도, 신야현령은 등신(鄧晨)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거병의 추세를 조용히 관망했다.

그러나 소장안취의 패배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돌연 신 왕조에 '충성'을 다짐했다.

그 충성은 무참했다. 등신의 집을 더럽히고, 등씨 조상들의 묘를 파괴함으로써. 그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은 이를 찢어발겼다.


씨족들의 반응은 저마다 달랐다.


거병의 주역이던 용릉절후 유매의 후손들, 채양현(蔡陽縣) 유씨들은 말이 없었다.

수많은 가족을 잃었지만, 이 거병은 본디 그들의 이름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완(宛) 출신 이통(李通)과 이일(李軼)은, 이씨 일족 64명을 모두 잃고 남은 둘만이 살아남았다. 불평할 이조차 없었다.


그러나 신야의 등씨(鄧氏)만은 달랐다.

등신의 세 딸은 이 싸움에서 희생되었지만, 등씨 가문 자체는 대부분 살아남았다. 남은 이들은 원망했다. 등신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유연을.

정작 가장 슬퍼해야 할 사람, 아내와 딸을 잃은 등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의 분노는 조용히, 그러나 깊게 퍼져나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남은 자들은, 말없이 등을 돌린다.


녹림군은 흔들리고 있었다.

패배로 흩어진 무리들, 끓어오르는 원망, 끊어진 신뢰.

한나라 부흥을 꿈꾸던 깃발은, 피로 얼룩진 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유연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극양(棘陽)으로 돌아갔다.

폐허 속에서 남은 무리들을 모으고, 다시 싸울 준비를 시작했다.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도 잠시 멎었다. 그 불을 다시 일으키려면, 도움이 필요했다.


요약

잔혹하고 충성스러운 자, 진부 - 유수와 이통·이일을 통제했던 진부의 잔혹한 행동과 신나라 체제에 대한 굳건한 충성.

녹림군에 가담한 유연 - 녹림군의 고전을 딛고 극양에서 승리를 거둔 유연,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부 갈등의 불씨가 뿌려지다.

약탈과 살육 - 승리 후 약탈과 도륙으로 생존을 위해 피를 흘린 사건들, 그리고 그로 인한 부내 분열.

쓰라린 패배, 소장안 전투 - 소장안취에서의 참패로, 유연과 그의 동료, 가족들이 엄청난 희생을 당하며 가문 전체가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녹림, 무너지는가 - 패배로 녹림군 전체가 분열되고, 지방 관료층까지도 신뢰를 잃으며 모순과 절망 속에 빠진 가운데, 유연은 다시 반격할 불씨를 모으려 한다.


각주

[1] 이 隊는 《후한서·광무제기》 주석에 따르면 대가 아니라 '수'(遂)로 읽는다.

[2] 후한서의 원문은 신나라 식인 속정(屬正)이다. 양구사는 복성으로 양구(梁丘)씨다.


사진 출처

그림 1: 자작

그림 2: 허난성 난양시 호양진 일대 지도 – Map data © 2025 Google. 사용은 Google Maps TOS 4.4 에 따름.

그림 3: 서한 기병 청동상(Western Han Cavalry Figurine) – Photo by Flickr user Gary Todd,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그림 4: 海晏堂遗址西侧 – Photo by 颐园新居,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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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페인
25/04/28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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甄자가 진의 독음으로도 읽히는군요.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반격의 서막이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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