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7년의 어느 여름날, 해적들이 지배하는 나소 항구로 검은 깃발을 단 어느 낯선 배 한 척이 들어왔다. 그 슬루프선의 돛대와 삭구는 잔뜩 해졌고, 갑판은 전투의 상흔으로 뒤덮여있었다. 나소의 해적들 그 누구도 이 배를 알지 못했다. 마침내 고급스러운 가운을 걸치고 온 몸에 붕대를 두른 선장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구경꾼들은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단 하루도 바다에서 버티지 못할 것처럼 생긴 통통한 귀족 사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스티드의 증조부 토마스는 일찍이 바베이도스에 정착한 개척 1세대였고, 그 후 90여년 간 보넷 가문은 식민지 수도 브리지타운 남동쪽의 저지대 정글 수백 에이커를 개간하며 담배와 사탕수수같은 환금작물을 심어왔다. 스티드가 태어날 무렵, 가문은 번창하여 사백 에이커의 사탕수수 농장과 두 개의 풍차, 사탕수수즙을 짜내는 방앗간과 일백여 명에 이르는 노예들을 지니고 있었다.
스티드는 유소년기에 부모를 모두 잃었고, 광대한 농장의 어린 상속자가 되어 후견인들의 보살핌 하에 컸다. 그는 일찍이 식민지 귀족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교양 교육을 받았고, 섬의 민병대에서 군생활을 했으며, 또 다른 농장주 양갓집 규수와 혼인을 했다. 보넷 가문의 훌륭한 청년으로서, 스티드는 남부럽지 않게 컸다.
그러나 첫 아이가 어린 나이에 사망한 뒤로, 스티드의 결혼 생활과 정신 상태는 파탄에 이르기 시작했다. 스티드의 우울증은 분명 동료 농장주 친구들의 우려를 샀다. 그러나 1716년 바베이도스 식민지 사회에는 훨씬 더 큰 우려가 있었으니, 악한 새뮤얼 벨라미와 폴스그레이브 윌리엄스의 해적행위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스티드 보넷은 친구들의 두려움섞인 이야기에서 삶의 희망을 보았다.
스티드 보넷의 우울증은 돌연 씻은듯이 나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곧바로 10문의 대포와 70명의 선원들을 수용할 수 있는 60톤 가량의 슬루프 건조 주문을 체결했다. 건조된 슬루프에 스티드 보넷은 '복수(Reveng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배의 선실에는 선장의 교양에 걸맞게끔 수많은 책들이 꽂혀있는 서재가 마련되었다.
스티드 보넷에 의해 고용된 선원들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연안에서 약탈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이 괴짜 신사 해적은 즉시 '에드워즈(Edwards)'라는 가명을 만든 뒤 출항했다. 정말로 찰스턴의 사주(沙洲, sand bar)는 해적질하기에 최선의 지형이었다. 이 곳 노스캐롤라이나의 해안가엔 대형 군함이 들어오기에는 입구가 너무 좁고 얕으며 복잡한 공간들이 수도 없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에드워즈 선장은 별 값어치 없는 브리간틴 하나를 습격한 뒤, 남쪽에서 다가오는 슬루프 상선을 발견했다.
스티드 보넷의 해적기 상선은 해적기를 보자마자 곧장 투항했다. 그런데 이 배의 선장 조셉 파머는 스티드 보넷과 같은 바베이도스 동향 출신이었고, 고향의 유지가 해적선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아주 놀랐다. 에드워즈 선장은 해적질 1일차 데뷔날에 곧바로 정체가 탄로났던 것이다.
조셉 파머의 슬루프선에는 설탕, 럼, 노예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스티드 보넷은 복수호와 파머의 슬루프, 두 척의 배를 거느린 채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의 케이프 피어에 닻을 내렸다. 그는 이 곳에서 복수호를 기울여 좀조개를 청소했고, 다시 남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스티드 보넷은 중무장한 스페인 함선과 교전을 시도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삼사십여 명의 선원들이 죽거나 다쳤고, 스티드 보넷 본인 또한 거의 목숨을 잃을뻔한 중상을 입었다. 보넷의 선원들은 그렇게 선실에서 끙끙 앓는 선장님을 모시고 해적들의 공화국, 나소로 향했다. 나소의 해적들은 이 괴짜 해적 선장이 회복될 때까지 아주 잘 모셔야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그의 슬루프 선이 아주 쓸만해 보였던 것이다.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아픈 스티드 보넷 대신 검은 수염이 복수호를 인수했고, 두 문의 대포와 휘하의 수하들을 추가로 들여왔다. 검은 수염은 스티드 보넷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었는데, 굳이 사악하게 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티드 보넷의 부하들은 "선장이 삭구의 종류도 구별하지 못하고 지휘에도 젬병"이라며 공공연하게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스티드 보넷은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동안 선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고, 이따금 큰맘먹고 선실밖 갑판으로 모험을 떠나는 날에도 우아한 가운을 입은 채 한 손에는 읽던 책을 들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