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징어게임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1. 강조되는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
오징어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역시 민주주의적 '투표'에 대한 소재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감싸고 있는 더 큰 주제는 '자본주의'겠지요.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게임에 참여하였고, '민주주의 투표'라는 어거지성 의사결정을 통해 게임을 진행시킬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호스트는 절묘한 난이도와 게임, 그리고 인간들의 분열을 주무르며 어떻게든 게임을 진행시켜 VIP를 만족시킵니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빗대어 이야기하지만, 더 큰 기반은 결국 자본주의, 즉 '돈'이겠지요.
2. VIP가 원하는 것
넷플릭스는 VIP입니다. 돈을 줬으니 사람들의 도파민을 터뜨릴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라, 이것이지요. 감독 입장에서 무엇이 있겠습니까? 일단 받은 임금에 대해 만족시키기 위한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행히 K-문화는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으며, 전통 게임을 접목시킨 게임과 탈락자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방식은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이 콘텐츠를 즐기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작품을 만들게 합니다. 1편에서 끝내기로 했지만, 더 많은 돈은 시즌 2, 3 그리고 해외 제작을 위한 잘 닦인 발사대를 원할 뿐이었지요.
3. 감독의 마지막 발악
유독 시즌 3는 각 에피소드마다 제목이 두드러집니다. '222'라든지, '사람은'이라든지. 성기훈을 비롯해 각종 캐릭터들의 행동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리를 따른다면' 이런 행동은 그냥 '발암'입니다. '도시락' 같은 매우 실리적이고 도파민이 터지는 전략도 있는데, 우리의 주인공 '성기훈'은 왜 그러는 걸까요? 왜 인간의 존엄성을 이제 와서 따지는 건가요? 전에는 사람들 잔뜩 끌고 가서 죽일 때는 언제고?
이는 아마도 감독의 마지막 발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마치 영화 <퍼니 게임>처럼, 이 살육의 도파민을 즐기게끔 판을 펼치긴 했지만, 감독이 원했던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방증으로 서사를 망가뜨리든 캐릭터의 개연성이 붕괴되든 어떻게든 모든 콘텐츠에서 금기시되는 '신생아'를 탄생시키는 무리수를 던집니다. 이 드라마가 아무리 막자응로 간들 신생아를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되니까요.
"니들도 재밌게 봤지? 그래도 이 드라마를 보는 당신들이 '사람이라면', 누구를 죽이고 살리는데 실리를 따지지 말고 이런 콘텐츠 자체가 너무 잔인하다는 걸 한 번쯤 생각하고 뒤돌아봐야 하지 않겠어?" 라고 훈계하는 듯합니다.
4. 돈의, 돈에 의한, 그리고 돈을 위한
잘 모르겠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드라마를 만들어놓고 그 뒷이야기를 창작하기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나 시청자와의 연결고리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독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약점을 감수하고서라도 감독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를 222번 참가자처럼 모든 캐릭터를 희생시켜서라도 관통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이 작품은 세상에 나왔고, 세상이 후속작을 원하며, 결국 다른 나라로 넘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병헌을 오너캐 삼아 돈을 위해 자신이 '오징어 게임'의 모든 캐릭터를 학살시키고, 마지막 케이트 블란쳇의 따귀 장면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황동혁 감독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에 투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5. 해외판을 기다리며
사실 저는 <오징어 게임> 시즌 1부터 굉장히 비판적으로 이 드라마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제 시선과 달리 전무후무한 성공을 지켜보며, 그 뒤의 시즌이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애초에 이 작품에 무슨 주제의식이 있었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어떤 콘텐츠에서도 감히 손댈 수 없는 무적의 '신생아'라는 존재를 등장시키며 감독이 뚝심 있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점, 이런 콘텐츠를 보며 '돈'을 위해서 캐릭터들을 쉽게 죽이는 시청자에게 '이 게임은 사람이 하는 거라고!!!'라는 식의 훈계질은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감독의 바람과 다르게 '그래도 도시락 좌는 게임에 진심이었음' '도시어부 나올때마다 화장실다녀옴' '지가 선동해서 사람들 희생시킬 때는 언제고 눈 돌아가지고 강하늘 죽이는 성기훈 뭐임?' 식의 참가자 평가도 참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각종 모순과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 그리고 게임. 그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감독이 뚝심 있게 밀고나간 점은 참 흥미롭다 싶습니다.
특히 마지막 성기훈의 대사가 '사람은...'에서 더 내뱉지 않는 부분은 과소평가했던 이 드라마에 여운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 시즌, 과연 케이트 블란쳇이 공유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