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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22 21:16
!!!!
고려 때 몽고에 패해서 부마국(몽골황실 여자를 왕비로 맞은, 고려왕이 몽고황제의 사위격)이라기 보다는 거의 속국이었죠. 물론 고려 후기에는 무력으로 몽고세력을 거의 몰아내긴 했습니다. 이후로는 몽고와 우리와 그리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습니다.
10/06/22 21:22
13c 제대로된 몽골군과 싸워서 이긴다는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전술 심리 효율성 등등... 싸우는 종종 승리를 하였지요. 몇몇 국가만이 망하지 아니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고려입니다. 진게 딱히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강한 상대였습니다. 나라는 망하지 아니하였지만 꼭두각시 국가나 다름없이 되었죠. 다만 특이하게도 대칸의 사위의 나라가 되죠. 그럼에도 고려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원제국내에서 있었지만 마지막 황제의 마누라가 고려인 기황후 때 되선 그런 이야기가 사라집니다. 여자를 비롯해서 몽골이 달라는건 다 줘야하는 그런 신세였습니다. 그 상태로 수십년을 가다가 공민왕 되서야 몽골을 쫓아내지요. 현재는 뭐 있나요. 그냥 국교 맺고 있는 나라지요. 거리가 워낙 먼 지라 크게 친교를 맺는 것 자체가 힘듭니다만 뉴스에서 보기론 한국인들이 몽골의 문화를 많이 망쳐놨다고 하더군요. 술먹고 노래부르고 여자 blabla 뭐 그런거 있잖아요.
10/06/22 21:22
그 시절 몽고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이라서.... 어쩔 수 없이 졌던거였죠. 원나라의 체계가 만들어질 무렵 영토가 러시아 정도 크기였으니 말 다한거죠. 그리고 기마민족이라서 전투력이 강하긴 했지만, 우리 나라의 전투력도 결코 약하진 않았을 겁니다. 패한 이유는 물량이겠죠. 더 자세한건 다른분들이 더 첨가해주시리라 믿고 여기서 이만..
10/06/22 21:28
뭐, 한국인 = 몽골인이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물론 고려시대의 원간섭기때 많은 몽골인이 우리나라에서 정착했었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닌 거 같아요. 몽골반점도 그렇고.. 그리고 한국인은 외견상 일본인이나 중국인보다는 몽골인과 훨씬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10/06/22 22:17
몽골에서 대장금 엄청납니다. 몽골,중국,동남아 등에선 대장금을 대표로한 한국 드라마가 인기죠. 근데 중국은 좀 간지 오래됐고 정부가 한국 드라마를 반금지시켜서(10시 이후에만 방송, 중국은 황금시간대가 7~8시.. 10시면 슬슬 자러갈시간이라)
10/06/22 22:41
13세기 중반부터 시작해서 40년동안 6번 쳐들어왔습니다
6번침략했다고 5번 자랑스럽게 막고 6번째 부마국이 된건 아니고 몽고군 특성상 말타고 유유히 내려와서 남자들 보이는 족족 죽이고 돈될만한거 가지고 올라가고 수습될 즈음이면 다시 내려와서 남자들 죽이고 6번째 침략에 고려가 gg친거죠 당시 삼별초항쟁이라고 자랑스럽게 역사시간에 배우곤 했는데 약간 다른시각으로 보면 고려 무신정권이 정권유지차원에서 항복 못하고 강화도에서 시작해서 제주까지 내려가는데 덕분에 강화도가 아닌 본토는 철저히 유린당했습니다 개경으로 다시 환도하고 고려군이 오히려 몽고와 연합해서 제주도로 내려간 삼별초를 공격해 진압했으니.. 아무튼 말이 좋아 부마국이지 속국으로 보면 됩니다. 충선왕의 경우는 자신이 고려국적인걸 부끄럽게 생각했으며 제위기간 동안 고려에 한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몽고는 점령한 지역의 자치권을 어느정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광활한 영토를 가질 수 있었고(기마술이나 화살의 위력 등등) 멸망할때도 재빨리 사그라듭니다
10/06/22 23:32
국사적으로 볼때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고려 26대 왕 충선왕 "고려 제 26대 왕(재위 1308~1313). 1298년 왕위에 오르자 정방을 폐지 등 관제를 혁신하고 권신들의 토지를 몰수하였으며 원나라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7개월 만에 폐위되었다가 1308년 충렬왕이 죽자 다시 왕위에 올랐다. 정치에 싫증을 느껴 원나라로 가 전지(傳旨)로써 국정을 처리하였으나 그 와중에도 각염법을 제정하여 사원과 권문세가의 소금 독점에 의한 폭리를 막았다. " - 네이버 백과사전 요약 대강 설명드리면 충선왕은 아버지인 충렬왕과 어머니 제국대장공주(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나 원나라의 황실에서 자랐습니다. 모계쪽으로 보면 외할아버지가 원나라의 쿠빌라이칸, 외고조할아버지가 징기스칸입니다. 충선왕은 고려의 왕보단 원나라의 심양왕으로 더 유명합니다. 그는 원나라 성종이 죽자 황위 쟁탈전이 벌어지는데, 그때 무종을 도와 그를 황위에 올리는데 공을 세웁니다. 그래서 심양왕에 봉해집니다. 말 그대로 원나라 황실의 왕야이죠. 심양왕이라는 지위는 그가 고려왕위를 물려받은 후에 여러 인물들의 쟁탈전을 벌이면서 유명무실 해집니다. 결국 고려왕은 아들인 강릉대군(충숙왕)에게 물려준후 연경에 계속 머물렀지만, 원 황실의 권력투쟁에 휘말려 토번등에 귀향살이도 합니다. 고려 - 원(몽고)와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뿐입니다. 네,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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